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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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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7
- 국가 경쟁력을 우리의 나아갈 바의 지표로 삼자!!! (1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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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7
-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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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27
-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1.(4)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어제 밤에 첼시와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이 경기의 해설자가 그러더라.
웨인 루니라는 맨유의 선수가 2012년까지 맨유에 남는 재계약을 했는데, 연봉이 1주일에 2억이라더라.
그러니까 하루 일당이 3천만 원쯤 되어라. 3천만 원이면 내 4~5년치 강사료이더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나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처럼 아주 값싼 질 낮은(?) 노동력을 받은 아이들의 미래 노동력 역시 아주 값싸고 질 낮은 노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 값 싸고 질 낮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어찌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무릇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값 비싸고 질 높은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임금이 계속 상승해야 하며, 그러한 노동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 위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이신 대중이 형님이 말씀하셨다.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고부가 가치의 산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고부가 가치 산업을 육성시키자면 값 비싸고 질 좋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대중이 형님은 고부가가치 인력으로 하여금 고부가 가치의 벤처 산업을 이끌게 하지 않으셨는가!
그것이 아이엠에프를 넘어서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는가.
하여간 고북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값 비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루니만큼은 아니더라도 모든 국민의 실질 소득이 팍팍 올라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모든 방면의 박사가 될 수 있도록, 그때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질 좋은 노동력은 일단 신체가 건강해야 한다. 무릇 체력이 국력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국민의 건강에 또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상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치료제는 최소한의 비용만 내게 해야 한다. 물도 최상급만 마시도록 하며, 최적의 자연환경을 유지하도록 환경보존에 힘쓸 일이다. 에너지도 마찬가지이다.
하여간 최상의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본 신>의 대리자인 국가가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한다.
<자본 신>은 말씀하신다.
"국가 경쟁력 확보가 곧 나의 제림이니, 나의 제림을 바라지 않는 자는 지옥불에 떨어지리라!"
그러므로 국가 경쟁력 확보가 곧 질 좋고 값비싼 노동력의 생산이니, 이를 어기는 자들은 <국가 보안법>으로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공공교육을 소홀히 하는 자들, 임금을 삭감하려고 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몰고 가려는 자들, 노동환경을 열악하게 하여 노동자의 건강을 손상시키는 자들, 모든 걸 민영화하려고 획책하는 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이니, 이들에게 <국가 보안법>을 적용하여 중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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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자본 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이 가끔씩 있다.
그리하여 <자본 신>께서는 99마리의 양보다는 1마리의 이런 철딱서니 없는, 길 잃은 1마리의 양을 위해 또 다른 복안을 내 주신다.
"나의 재림은 다른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너희의 뜻을 받아들임이다. 너희가 이것을 따르겠느냐! 만일 너희가 이것도 따르지 않으려 한다면 세상의 종말을 고하리라!"
그리하여 우리의 자비로우신 <자본 신>께서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또 다른 복안을 내시니, 그것이 이름하야 <가격 경쟁력>이다.
『자본』에 대한 사전 작업 속에서, 즉 부분적으로는 이미 『요강』에서,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우선 『잉여가치론』에서 맑스는 고전 정치경제학이 세 가지 문제들 안에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
1. 고전 정치경제학은 가치와 화폐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것은 또한 노동가치론의 단초를 뒤쫓는 경제학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맑스는 그들이 가치의 내용을 파악해야 되지 가치형태와 나아가서 화폐형태를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 자본과 노동 사이의 교환은 결코 등가교환이라는 토대 위에서는 해명될 수 없다.
3. 가치와 생산가격 사이에는 차이가 없는데, 노동시간을 통해 규정된 가치와 현실적으로 평균이윤이 존재한다는 사실 사이의 매개가 잘 이루어지 못했다.
고전 정치경제학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넘어설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맑스는 단순한 우연적인 현상으로 고찰하지 않았다. 맑스는 위의 사실이 아마도 정치경제학이 좀더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포착될 수 있는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맑스의 경우에 이러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근본적인 범주의 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전 정치경제학이 토대로 삼고 있는 범주들을 비판함으로써, 맑스는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이러한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정치경제학 비판은 범주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학에 대한 실증적인 앎까지도 제공해야만 한다. 따라서 맑스는 『자본』의 초판 서문에서 “근대 사회의 경제 운동법칙을 드러내는 것”(23/75f)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고전 정체경제학의 범주와 관련된 전제들에 대한 비판을 이렇게 동시대적으로 시도하며 또한 이러한 전제들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맑스가 고전 정치경제학의 담론으로부터 항상 성공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했다. 또한 새롭게 형성된 이론적 장 안에서조차도 고전 정치경제학의 담론이 여전히 남아 있고 (새로운 이론 장의-옮긴이) 근본적인 개념들 속에서 이미 맑스 담론의 특수한 문제(전형문제와 같은 것)를 낳지만 서로 다른 해석들의 토대를 마련해 주는 양가성이 나타나고 있다.
1.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본』 제1장의 서술과 관련이 있다. 이미 비크젤(Wicksell)(1893, S. 17f)은 『자본』의 초입부에 있는 노동가치론에 대한 맑스의 “증명”이 아주 불충분할 수 있다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비난의 고전적인 정식화는 그 이후에 뵘-바베르크(B?hm-Bawerk)(1896)에게서 나타난다. 뵘-바베르크는 맑스가 우선 개별적인 등가교환에 대한 고찰로부터 “공동의 제3자”라는 현실적 존재의 (요구 충족의) 필요성을 추론해 낸다고 주장한다. 상품은 일반적으로 비교될 수 있기 위해 후자(공동의 제3자)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단계로 맑스는 그 이후에 “배제의 방법”을 통해 추상 노동을 이러한 제3자라는 “실체”로 규정한다. 뵘-바베르크는 양 단계의 논리 정연함을 의심한다. 교환은 결코 등식으로서 파악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이후에 제3자라는 필요성이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필연성이 주어진다고 해도, 교환되는 상품의 유일한 속성으로 두 개의 노동생산물이 있다는 주장은 올바른 것이 못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비-노동생산물이 교환되기도 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 교환된 노동생산물이 적어도 좀더 확장된 공동 속성으로서의 유용성 일반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뵘-바베르크, 1896, S.81-90).(주7-)
부르주아 비판가들에 의해 항상 또 다시 새롭게 변주되는 이러한 주장은 최근에 부분적으로는 맑스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저자들에 의해서도 파악된다. 따라서 커트러 등은(Cutler et al.)(1977, S.11ff)은 맑스가 교환을 등식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도대체 이러한 등식이 가능한가 하는 질문 구조 속에 이미 그 답이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기한다. 크라우제(Krause)(1977, S.152ff)는 “공동의 제3자”에 관한 고찰 속에서는 “탁상공론적인 논의” 이상의 것을 결코 볼 수 없다. 카스토리아디스(Castoriadis)(1975)는 “노동”을 교환가치의 실체로서 증명하려는 시도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여기서 사용된 구성(“사회적 필요 노동시간”, “단순 노동”, “추상 노동”)조차도 결코 일관되게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카링(Carling)(1984)은 “배제의 방법”을 근거 없는 것으로 거부하였다. 그리고 베켄바흐(Beckenbach)(1987) 역시 『자본』 제1장의 두 소절(Unterabschnitten)에서 추상 노동을 증명하고자 하는 맑스의 시도를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였다.(주8-)
이 번역은 지난 번에 이어서 3부 [정치경제학 비판 근본 범주들의 양립] 중 5장 [화폐 가치론]의 1절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2절 [자연주의와 사회이론 사이의 가치론>부터는 2003년 판으로 번역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는 1991년 판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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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부 정치경제학 비판 근본 범주들의 양립 #
@ 5장 화폐 가치론 @
1849년 맑스는 프로이센에서, 그리고 그 다음엔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그가 죽을 때까지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 서문의 자서전적 스케치에서 나타나듯이, 1850년은 맑스의 과학적(학문적) 노동(작업)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나타난다. 대영박물관에서 대하였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맑스는 자신의 경제학 연구를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맑스의 연구 성과들은 우선 맑스가 실천적으로 거의 중요하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익명의 경제학자들과 논쟁하였던 것을 반영하는 일련의 발췌목록들 속에서 나타났다.(주1-) 맑스는 1857년서부터 비로소 하나의 “고유한” 경제학을 서술하려 하였지만 여러 측면에서 연기되었던 계획에 착수할 수 있었다. 바로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1939-41에야 비로소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 쓰였다. 이 수고는 직접적으로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맑스는 이 원고를 토대로 부르주아 경제학을 6권(자본, 토지소유, 임노동, 국가, 국제무역, 세계시장)으로 구상된 저작 안에서 다룰 생각이었다.(주2-)
1859년에 출간된 저작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는 이러한 생각의 서막이었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은 단지 자본과 화폐에 관한 두 장만이 포함되었다. 이 저작의 초안에 포함되어 남아 있는 단편은 자본에 관한 3장의 처음 부분에 들어 있다. 이 단편은 처음으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초고』라는 이름으로 『요강』과 함께 출간되었다.
원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의 연장으로 계획된 것이 있는데,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쓰였던 약 2400쪽의 방대한 분량의 맑스 수고였다. 그런데 이 수고는 맑스 자신에 의해서 출간되지 못했다. 카우츠키는 이 수고로부터 다만 (텍스트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잉여가치학설사』만을 출간하였고, 전체 텍스트는 1976년부터 1982년까지 MEGA에서 비로소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수고 1861-1863)』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주3-)
이 수고를 저술하는 동안에 맑스는 1859년에 나타난 "제1분책”을 연장시키는 대신에 하나의 독립적인 저작, 즉 『자본』을 내놓기로 결심하였다.(주4-) 1863년과 1865년 사이에 전체 3권으로 이루어진 『자본』의 원고가 쓰였다. 제1권의 원고 중에서 다만 이후에 나타난 결론 장인 「직접적인 생산과정의 결과물들」만이 유지되어 남아 있다. 제2권의 수고는 MEGA로 출간되었는데, 제3권 수고는 아직도 출간되지 않고 있다.(주5-)
그리하여 오로지 『자본』 제1권만이 1867년에 출간되었다. 1872년에 제2판과 불어판이 출판되었다. 그런데 이 두 판은 제1판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무엇보다도 가치형태 분석에 관한 절에서 그러하다. 맑스가 출간된 텍스트에서 수용하지 못했던 이러한 초과작업과 개념적 고찰을 시도했던 수고는 처음으로 1988년 MEGA에서 『‘자본’ 제1권에 대한 보충과 개정들』이라는 편집상의 표제로 출간되었다.
『자본』의 제2권과 3권은 맑스가 죽은 이후에 엥겔스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때 엥겔스는 제3권에 대해서 1864/65년에 쓰였던 수고에 의존할 수 있었다. 제2권에 대해서 엥겔스는, 자신의 서문에서 나타나듯이, 1864년에 쓰였던 수고가 아니라 60년대와 70년대에 쓰였던 더 많은 수고를 이용하였다. 이러한 수고들은 지금까지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대략 1857년 이후부터 쓰였던 경제적 저작들은 모두 『서문』에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의 이론 장과의 단절을 전제로 삼고 있다. 이런 한에서 이 저작들은 “정치경제학 비판”의 통일적 기획으로서 인간학에 기초하고 있는 40년대 초의 “국민경제학 비판”과 구분될 수 있다. 1857년 무렵에 씌어졌던 텍스트에 대한 개요가 분명하였지만,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기획에 대한 모든 해석은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앞에서 열거된 저작들 중에서 맑스는 오로지 두 가지(『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과 제1판과 2판으로 나온 『자본』의 제1권)만을 출판하였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남아 있는 텍스트의 대다수는 여러 다른 원고 작성 단계들 속에서 나타나는 수고들과 발췌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수고들과 발췌록 대다수가 여전히 출간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20여 년 동안 개별적인 수고들이 씌어졌다. 이 개별적 수고들은 변화와 발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변화와 발전은 그 자리에서 상이한 텍스트들을 단순히 개별적인 부분들이 상호 보완되는 전집으로 합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859년부터 1867년 사이에, 정치경제학 비판이 애초에 6권의 책으로 만들려는 계획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총괄하는 종합적 개념이 변하였을(주6-) 뿐만 아니라 가치와 화폐라는 근본범주들에 대한 파악 역시도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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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축구를 안보면 그짜슥들 연봉이 좀 떨어질라나요?ㅎㅎ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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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오리> 그런다고 떨어지겠어요?ㅎㅎ... 그걸 봤다는 게 좀 재수가 없었다는 거죠^^.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