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11/29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29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4.(4)
    곰탱이
  2. 2006/11/29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3.
    곰탱이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4.

두 가지 사물이 서로 동일하게 되고 이 동일함이 우연적인 것도 아니고 자의적 결정에 따른 결과물도 아니라면, 이 두 가지 사물은 어떤 모종의 것과 관련하여 동등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자면 두 가지 사물이 동등하다는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물을 동등하게 만드는 (또는 떠맡는) 양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넘어서 이 두 가지 사물이 특정한 양적 비율 속에서 동등해진다면, 이 두 사물은 양적으로 규정된 질과 관련하여 동등할 수밖에 없다. 맑스에 관한 특정한 논쟁점은 그가 어떤 공통적인 질의 현존을 추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어떤 방식(이 어떤 방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으로 이런 공통적인 질을 상품 자체에 옮겨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맑스는 어떤 공통적인 “실체”에 관해 말한다.

 

맑스는 여전히 자신의 교환등식에 시선들 두면서 이제 이 제3의 것에 대해 좀더 상세한 규정을 내리고 있다. 맑스의 논의는 세 단계로 완수된다. 우선 그는 이러한 인위적인(gesuchte) 질에 대해서는 상품 몸체의 어떠한 자연적 속성도 문제가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자연적 속성이 오로지 상품의 사용가치와만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그렇지만 모든 사용가치가 그에 상응하는 양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립한다. 상품의 사용가치를 추상하여 나타난 교환관계의 특성을 묘사할 수도 있는 맑스의 이러한 확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즉 개별적인 상품 소유자가 자신의 교환하고자 하는 상품의 사용가치에 대해 아주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견이 바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상품 소유자의 동기는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교환관계 자체가 문제가 된다. 맑스는 (『자본』 1권-옮긴이 삽입) 2장의 교환과정에 대한 고찰에서 상품 소유자의 (사용가치에 대한-옮긴이 삽입) 관심을 다루게 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 맑스는 사용가치에 대한 추상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상품들에게 여전히 오로지 노동생산물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속성이 남아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지금까지 맑스는 일반적으로 상품에 관해 말하고 있다. 맑스는 자신이 오로지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만을 고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런 것 때문에 맑스가 이 점에 관해 아무런 해명도 없이 “약삭빠른 변증법적 능숙함”으로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는 물건”의 본질적인 부분을, 즉 자신의 고찰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대략 경작되지 않은 토지와 같은) 비-노동생산물을 취하고 있다는 뵘-바베르크의 비난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 아니다(B?hm-Bawerk 1896, S.84). 『자본』에서 맑스가 이러한 반박에 대하여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단순한 자연력들의 교환가치에 대한 해명을 지대에 관한 장에서 하였다는 점에서는 대답을 하였다(Ⅱ.2/139; 13/48).

 

세 번째 단계에서 맑스는 노동의 생산물이 상품이라는 노동의 특성을 규정하고 있다. 상품 몸체에서 노동생산물이게끔 하는 속성이 고찰되지만, 동시에 그 노동생산물의 사용가치가 추상된다면(도외시된다면), 상품은 더 이상 특정한 사용가치를 생산해 내는 특정한 구체적 노동의 생산물로서 파악되지 못한다. 따라서 상품은 여전히 노동 일반의 생산물로서만 간주된다. 서로 다른 구체적인 노동들은 따라서 “동일한 인간 노동, 즉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 환원”된다(23/52). 추상적 인간 노동은 교환되는 상품들의 “공통적인 사회적 실체”(ebd.)이다. 상품들의 “가치”는 이러한 실체의 결정체이다.

 

 

방금 전에 언급한 맑스의 일련의 주장들은 비판가들에 의하여 일상적으로 노동가치론을 증명하려는 시도로서 파악된다. 이때 노동가치론에서는 상품의 교환 비율이 그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시간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진술이 자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비판가는 맑스가 시장에서 일어나는 수백만의 교환행위 중에서 하나의 교환행위를 끄집어내어 고찰한 다음 교환에서 노동량의 동등함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확립한다고 간주한다. 맑스가 『자본』 3권에서 교환 비율을 (더 이상 가치들의 교환이 아니라 생산가격들의 교환이라고) 다르게 규정하기 때문에, 뵘-바베르크는 맑스 이론 안에서 하나의 근본적인 모순이 확립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한에서 맑스는 동일한 경험적 내용에 관한 두 가지 모순된 진술을 하고 있다.

 

 

좀더 새로운 저작들 속에서 이러한 모순 테제들은 결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이 젊은 저자들은 맑스가 제1장에서 결코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실제적인 교환 비율에 관한 어떤 직접적인 경험적 진술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상품과 화폐」 절은 특정한 모델(이 모델이 “단순” 상품생산이건 또는 서로 다른 자본의 동등한 가치구성에서의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건 간에 말이다)에 관한 진술로서 파악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모델에 대한 노동가치론의 타당성은, 뵘-바베르크가 이미 자본주의의 경험적 지식에 관한 것을 자세히 여러 번 보여 주었던 것(교환은 결코 어떤 “공통적인 제3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배제방식”이 부적절하다 등)과 같은 유사한 논박을 통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사태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맑스의 문제 제기(die Marxsche Problemstellung)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상품을 다소간이라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가치가 있지만 우연적으로 발견된 경험적 지식의 대상(Objekt)으로 고찰하지 않는다. 자신의 텍스트에 대한 코멘트를 서술하고 있는 「바그너에 대한 방주(부수적인 주석)」에서 맑스는 자신의 출발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내가 출발하는 곳은 상품이 현재 사회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장 단순한 사회적 형태이고, 이것은 ‘상품’이다.” (19/36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3.

맑스는 상품이 한편으로는 사용가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환가치의 담지자라고 단언하면서 『자본』의 상품 분석을 시작한다. 따라서 맑스에게 어떤 한 상품의 교환가치는 이 상품이 교환되는 다른 상품의 양이다. 그러나 한 상품이 여러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기 때문에, 그 상품은 다른 여러 교환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로부터 이제 동일한 상품의 여러 다른 교환가치가 “서로 알아 볼 수 있는 또는 서로 동일한 양의 교환가치를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23/51).(주9-)

한 상품의 여러 다른 교환가치는 서로 다른 사용가치들의 특정한 양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용가치들의 그런 양(x량의 구두약, y량의 비단)은 일반적으로 양적으로 비교될 수 없다. 교환가치들이 서로 동일한 양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은 단순히 동일한 상품의 교환가치들이 문제라는 것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바로 이러한 사용가치들의 양이 사로에 대한 교환가치가 된다는 의미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다음과 같다 : “교환

가치의” 연관은 다수의 상품의 양을 기초로 한 하나의 등가관계이다.(주10-)

여기서 바로 맑스의 출발점이, 즉 상품과 상품의 교환관계가 일반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가 생긴다. 『자본』 제1장 도입부의 단락(주11-)에 따르면, 맑스가 상품 일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에서의 상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상품교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품 대 화폐의 교환이 일어난다. 이제 화폐가 상품이며 W-W가 단순히 W-G의 추상적 표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W-G의 거래에서는 W와 특수한 상품 G가 교환된다는 사실에 좌우되기 때문에, 결코 단순히 이러한 특수성을 도외시(추상화)할 수 없다. 물론 경험적이며 직접적으로 주어진 행위 W-G는 결코 연구 대상이 될 수 없다. 화폐는 이미 상품을 전제하고 있으며 교환행위의 연관성을 전제하고 있어서, (사회적인 물질교환이라는 매개의 문제가 걸려 있는 한) W-G 다음에 G-W가 온다. 더욱이 화폐는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이지만, 여전히 우선적으로 이론적인 대상으로 생산될 수밖에 없다. 연구 대상인 교환 W-W는 유통행위인 W-G와 G-W의 결과물이다. 교환관계 W-W는 따라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시피 하는 두 상품(주12-)의 직접적 교환(예를 들면, Itoh 1976, S.48f, Levine 1983, S.28, Beckenbach 1987, S.69)에 대한 어떠한 묘사도 아니다. 오히려 상품 생산의 가장 보편적인(일반적인) 규정을 연구하기 위한 하나의 개념적 구성이다 : 교환에 의한 사회적 물질교환의 매개라는 개념적 구성.

 

그러나 맑스는 “교환가치의” 관계가 등가관계라는 결론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맑스가 문제 삼은 것은 우연적인 교환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매개의 지배적인 형태로서의 교환이다.(주13-) 그러나 이것이 맞다면, (적어도 동일한 시장에서) 단순한 교환을 통해서는 어떠한 지속적인 이윤도 획득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교환가치의” 관계가 등가관계일 때에만 보장된다. 맑스는 이제 좀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동일한 상품의 정당한 교환가치는 동등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교환가치는 일반적으로 오로지 표현양식, 즉 교환가치와 구별되는 내용(사용가치-옮긴이)의 ”현상형태“이다.”(23/51)

 

따라서 맑스는 교환비율을 통해 등가관계가 정의된다고 확언하지 않고, 이제 이러한 관계의 기초가 되는 상품의 “내용”을 이끌어 낸다. 다시 말해서 맑스는 이제 이러한 등가관계를 통해 정의된 분배 몫의 양(Quotientenmenge)의 경제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주14-모든 등가관계는 계급 분류를 기초로 한 수량을 규정한다: 한 계급에서 그때마다 모든 사람이, 따라서 우리의 경우에 모든 상품이 서로 앞서 말한 관계(상품의 내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옮긴이)에 서 있게 되는 요소가 발견된다. 계급들은 그 자체 또 다시 객체로서 파악될 수 있다. 분배 몫의 양(Die Quotientenmenge)은 이러한 계급들이 (필요로 하는-옮긴이 삽입) 양이다. 가치실체에 대한 표상을 거부하고 가치를 여전히 등가관계들과 관련해서만 해석하는 크라우제(Krause)(1977, 1979)는 가치실체에 관한 맑스의 문제가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다름 아니라는 것, 즉 등가 관계가 경제적으로 이러한 분배 몫의 양으로 실현된다는 것의 문제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지 못했다. 가치론을 하나의 단순한 관계론으로 환원하는 크라우제는 화폐를 형식주의적으로 파악하며, 따라서 예를 들면 모든 상품이 화폐상품인 순수하게 형식적인 경제적 구조를 규정한다.) 이와 함께 맑스는 <1쿼터의 밀 = 100파운드의 철>이라는 하나의 개별적인 교환방정식을 고찰한다(주15-앞서서의 내용에 따르면, 어떤 우연적인 교환방정식이 아니라 하나의 “전형적인” 교환방정식이 등가관계를 토대로 주어지는 방정식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이 방정식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물들 속에, 즉 1쿼터의 밀과 그리고 100파운드의 철 속에 들어 있는 동일한 양이라는 공통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물은 따라서 즉자대자적으로(본래) 두 가지 사물 중 어느 하나의 것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것에 비추어볼 때 동등하다. 그러므로 두 가지 사물의 각각은, 그것이 교환가치인 한, 제3의 것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23/5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