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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03
-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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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1/03
-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1(1)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1>에 이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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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포이어바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이론에서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보았다고 강조하였다.(주56-)
물론 맑스는 이후 몇 개월 동안 앞에서 말했던 비판에 착수하지 않았다. 8월 말 맑스는 엥겔스를 통해 파리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견해를 계속해서 일치시켜 나갔다. 그들은 공동으로 브루노 바우어에 대한 비판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신성가족 또는 브루노 바우어와 그 동료들에 대한 비판적 비판의 비판』을 썼다.
바우어는 그 사이에 자신의 “자기의식의 철학”을 추상적이고 “순수한 비판”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바우어에게서는 더 이상 민족과 통치권력이 대립하였던 것이 아니라, (바우어가 비판하고 있는 형태인) “정신”과 바우어 자신의 정치적 이념의 실패에 대한 책임 전가 대상이었던 무지몽매한 “대중”이 대립하였다. 그러나 맑스와 엥겔스는 바로 “대중”(프롤레타리아트)을 미래의 혁명 담지자로 보았다. 따라서 맑스와 엥겔스가 바우어와 그에게 여전히 항상 지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는 추종자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사실은 명백한 것이었다.
비로소 이렇게 청년헤겔학파와 결별하면서(결별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글들을 맑스가 썼다) 맑스는 자신의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 중의 일부분, 따라서 바우어를 둘러싼 영역에서 여전히 발견되고 있는 헤겔의 자립화된 추상에 대한 비판을 총괄하였다. 맑스는 또한 국민경제학의 관점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비판으로서의 프루동의 비판을 비판하며, 『경제학-철학 수고』에서의 자신의 경제 연구의 결과물의 가치를 비판한다.
새로운 요소는 이념적이고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관련성에 대한 분석 속에서 비로소 나타난다. 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역사”와 “이념”의 관념적인 자립화에 대하여, 맑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이념’은 자신이 ‘이해관계’와 구별되는 한 항상 자신을 욕되게 한다. 다른 한편 대부분 역사적으로 자신을 관철시켜 나가는 모든 ‘이해관계’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들어서게 될 때, ‘이념’이나 ‘표상’ 속에서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서 인간적인 이해관계와 완전히 혼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쉽다.”(2/85)
프랑스 유물론의 발전에 근거해서 이념과 이해관계를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 연관시키는 일은 일반화된다 :
“17세기 형이상학의 붕괴가 18세기의 유물론으로부터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론적 운동 자체가 그 당시의 프랑스인들의 삶의 실천적 형태로부터 해명되는 한에서이다.”(2/134)
그런데 이념의 생산과 실천적인 사회적 삶 사이의 연관성이 인식되면, 이념은 결코 더 이상 이성적 본질인식으로서 현실성과 대립할 수 없게 된다. 참된 존재와 현실적 현존재 사이의 모순이라는 문제틀(Die Problematik), 즉 지금까지 맑스 담론 구조 틀을 형성해 온 문제틀은 이러한 새로운 표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유적 존재의 역사성과 더불어 인간학적인 본질철학에 두 번째 폭약이 장전된 셈이다. 물론 맑스와 엥겔스는 이에 관해서 결코 알지 못했다. 포이어바흐는 『신성가족』 여러 곳에서 여전히 열광적으로 환영받고 있다.(주57-) 그러나 포이어바흐의 의식적 비판은 이후에 비-인간학적이고 비-본질철학적인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
이 부분은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중에서 6절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을 번역한 것입니다. 6절은 2부분으로 나누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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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맑스의 과학적 혁명 #
@ 제3장. 비판으로서의 인간학 : 청년 맑스의 이론적 개념 @
** 6절 맑스 개념의 해소의 계기들 **
『경제학-철학 수고』를 통해 맑스의 관심은 마지막으로 새로운 대상영역, 즉 경제학으로 옮겨졌다. 물론 이런 것은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을 이론적 도구로 삼는 것과 같이 나타난다. 맑스는 단순히 개별적 이론에 대한 비판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으로서의 국민경제학 비판을 겨냥하는 국민경제학의 비판을 구상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포이어바흐의 종교비판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 따라서 이 종교비판이 종교를 인간의 자기소외 형태로 파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맑스는 이제 국민경제학을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파악한다.
맑스의 경제학은 여전히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것과 동일한 이론적 영역에서 출발한다. 맑스의 인간주의 개념은 이미 분명하게 나타났다. 정치경제학뿐만 아니라 맑스의 비판에 대해서도 특정한 인간 “존재”가 기초를 이루고 있다. 정치경제학이 상품소유자를 “인간으로” 파악하는 반면에, 이 상품 소유자는 맑스에게서 오로지 자신의 존재로부터 소외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가 개인이라는 영속적인 존재가 객관화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한에서, 사람들은 맑스의 개인주의에 관해 말한다. 또한 “인간 존재”가 직접적으로 파악될 수 있기 때문에 맑스의 과학개념 역시 경험적이다.(주-54) 분명히 정치경제학의 비역사주의(Ahistorismus)는 맑스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맑스는 국민경제학의 이론적 장과 결별한다는 사실 때문에 국민경제학 비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의 인간학을 사용하는 방식과 양식을 통해서 국민경제학 비판자가 된다. 정치경제학이 자신의 인간학을 단정적으로 사회적 현실과 관계시키려고 하는 반면에, 맑스는 현실적인 (인간)관계와 그 관계를 무비판적으로 반영하는 국민경제학에 대한 비판의 척도로서 자신의 인간학을 사용한다.
대상의 변화를 통해 포이어바흐에게서처럼 의식과 종교가 아니라 노동이 분석의 중심에 있을 것을 요구 받는다. 또한 맑스는 인간 유적 존재 개념에 대한 내용의 풍부함으로 이미 포이어바흐 인간학의 내용적인 규정들을 넘어섰다. 맑스 담론의 구조는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의 발자취를 가지고 있다.
맑스는 자신이 이론적으로 포이어바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맑스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불리우며) 『수고』의 세 번째 노트의 끝부분에서 발견되는 “머리말”에서,(주55-) 맑스는 법, 도덕, 정치 등에 대한 비판을 더 확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포이어바흐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국민경제학과 사회주의의 유용한 문헌을 언급한 후에, 맑스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게다가 실증적인 비판 일반과 마찬가지로 국민경제학 비판과 그 비판의 참된 근거는 포이어바흐의 발견에 힘입은 바 크다. 포이어바흐에 의해서 비로소 실증주의적이고 인간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비판이 생겨나게 되었다.”(Ⅰ.2/317; EB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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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어렵고 잼없슴돠~! 잼있는 글을 올려주삼~! ㅋㅋ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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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죄송함다!!! 잼있는 글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삼^^...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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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스머프님... 좀 어렵긴 해도, 잘 읽어보시면 무지 재밌답니다. ^^;;(1) 두번째 문단: "신성가족"의 제목은 다음과 같이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성가족 또는 브루노 바우어와 그 동료들에 대한 비판적 비판의 비판> --> <신성가족 또는 브루노 바우어와 그 동료들의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
(2) 다섯번째 문단: "새로운 요소는 이념적이고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 "새로운 요소는 이념과 물질적인 이해관계의"
- 그 다음 문장에서... "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역사”와 “이념”의 관념적인 자립화..." --> "“역사” 및 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이념”의 관념적인 자립화" (즉 여기서 자립화되는 것은 "역사"와 "이념"이며, 다시 "이념"="역사를 앞으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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