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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3
-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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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03
-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비판 5.
따라서 맑스는 상품을 처음부터 “사회적 노동의 물질화”로서 고찰하였고, 그가 규정하고자 한 것은 우선 첫째로 양적인 교환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특수한 성격이다.(주19-) 맑스가 이 특수한 성격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처음부터 그렇게 정식화하고 있기 때문에, 맑스는 두 개의 상품에 포함된 “공통적인 제3의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노동을 이러한 제3의 것의 실체로 규정하기 위한 “배제방식”도 사용하지 않는다. 뵘-바베르크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판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이의의 본질적인 부분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논증 과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논증 형태들은 아주 그럴 듯하게 맑스가 『자본』 1판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대중화”에 근거한다.(주-20) 맑스가 분명하게 노동가치론에 대한 그 어떤 성질의 “증명”에도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노동을 교환가치의 유일한 원천으로 특징짓는 것이 동어반복일 수 있다라고 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의 그의 주장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Ⅱ.2/114; 13/22).
사람들이 맑스의 문제 제기에 대한 오해의 기원을 위에서 언급했던 비판가들을 통해 그들의 개인적인 한계에서 찾는다면, 그건 거의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맑스의 논증이 그의 고유한 경험적 문제 틀(Problematik)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가치론에 대한 증명의 결함에 주목하는 여러 비판가들에게 공통적이다. 맑스에게는 맑스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현상들(이 현상들은 또한 하나의 모델이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일 수 있다)로부터 출발하고 단순한 추상을 통해 그 현상의 (개념) 규정 요소들을 찾아내고자 한다는 사실이 가정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앞 장에서 서술되고 있듯이, 맑스는 곧바로 정치경제학의 이론적 장에서 나타나는 경험주의와 손을 끊었다. 맑스는 경험론에서 단순히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여러 규정들의 연관이며, 따라서 개념적 구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경험적 현상들은 항상 이미 구성되어 있고, 단순한 직관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형태들로서 간주되는 특정한 사회적 형태들 안에서만 존재한다. 물론 맑스는 경험주의와의 이러한 단절을 단지 불충분하게만 반영하였다. 게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맑스는 사회적 형태들을, 즉 “경제적인 형태 규정들”을 찾아내는 것을 모든 정치경제학의 과제로 편성하였다.(주22-) 이에 반해서 『자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정치경제학이 비록 불완전하긴 하였지만 가치와 가치량을 분석하였고 이러한 형태들에 숨어 있는 내용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정치경제학은 이러한 내용이 왜 그러한 형태를 취했는지에 대한 문제를 결코 취급하지 않았다…” (23/94f)
맑스가 여기서 고전 정치경제학으로부터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문제로서 인식되지 못하는 문제에 눈을 돌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경험적인 현상들이 존재하고 단순하게 “주어진 것(또는 소여)”으로서 나타나는 그러한 사회적 형태들을 고찰함으로써, 맑스는 말하자면 모든 경험주의에 의해서 명백하게 감추어지고 맑스에 대한 현대의 비평가들이 그들 자신의 경험주의에 기초해서는 결코 알아낼 수 없는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주23-)
맑스의 연구 대상은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생산물의 사회적 형태로서의 상품이고(주16-), 상품의 사회적 형태는 그 상품의 “가치”이다.(주17- “가치로서 상품은 사회적 양이며, 따라서 사물로서의 그 상품의 ‘속성’과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어떤 것이다. 상품은 가치로서 인간의 생산활동 속에서의 인간관계만을 나타낼 뿐이다. 가치는 사실상 ‘교환’을 ‘함축하고’ 있지만, 교환은 사람들 사이의 물건의 교환이다; 교환은 사물 그 자체와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는다.” (Ⅱ.3.4/1317; 26.3/127)) 따라서 맑스가 처해 있는 문제는 노동이 가치실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노동생산물의 이러한 사회적 형태로부터 자기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는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특성을 재구성하는 데 있다.(주18-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맑스는 이미 자신의 가치론을 증명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과 대결한다 :
“가치 개념을 증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관한 수다는 오로지 문제가 되는 사실뿐만 아니라 과학의 방법에 대한 완전한 무지로부터 기인한다.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1년이 아니라 몇 주 동안이라도 파업이 일어나는 모든 민족이 쓰러진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필요의 양에 상응하는 생산물의 양이 양적으로 서로 다르게 규정된 사회적 총노동의 양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 노동을 특정한 비율로 분할하는 필요성이 전적으로 사회적 생산의 특정한 형태를 통해 해소(지양)되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현상 방식만을 변경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자연법칙은 일반적으로 결코 해소(지양)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상황들 속에서 변경되는 것은 오로지 그 법칙이 관철되는 형태뿐이다. 또한 이러한 노동의 비율적 분할이 사회 상태 속에서 관철되고, 사회적 노동의 연관이 개별적 개인들의 노동생산물의 사적 교환으로서 간주되는 형태는 바로 이러한 생산물의 교환가치이다.”(32/552f))
상품생산이 자연형태가 아니라 사회적 생산의 늑정한 역사적 형태라는 사실은 바로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사회적 특성이 상품생산에 기인하지 않는 사회적 연관 속에서 지출된 노동과는 다른 노동의 사회적 특성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상품생산은 단순히 생산의 여러 형태 중의 한 형태가 아니다. 오히려 상품생산과 사회적 생산의 서로 다른 형태들 사이에는 결정적인 구조적 차이가 존재한다. 상품생산에서 노동이 사적으로 지출되고 또한 그 노동이 나중에 비로소 교환 속에서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 총노동의 구성 요소로서 승인받는 반면에, 사회적 생산에서는 “생산의 사회적 특성이 전제된다.”(Ⅱ.1.1/103; Gr 89, Herv. von mir)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특성에 관한 문제는 『자본』 제1장 1절에 상응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경우에서처럼 이 1절에서는 그렇게 분명하게 정식화되지 않고 있다. 맑스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구별한 이후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따르자면 다음과 같다 :
“사용가치는 직접적인 삶의 수단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삶의 수단은 그 자체 사회적 삶의 생산물이며, 지출된 인간의 삶의 능력이고, 대상화된 노동이다. 사회적 노동의 물질화로서 모든 상품은 사회적 노동을 통일시키는 결정체이다. 이러한 통일의 특수한 성격, 즉 교환가치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의 특수한 성격이 이제 고찰되어야 한다.”(Ⅱ.2/108f; 13/16f, Herv. des letzten Satzes von m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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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 곰탱이 님의 덧글에다가도 말씀드렸지만, 얼마전 미하엘 하인리히를 봤어요. 정말이지... 책 들고가서 싸인이라도 받고싶을 정도로... 전적으로 동의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수긍이 가는 양반들 중 하난데... 흐... 암튼 정말 좋았고요, 저도 지금 바쁜 일이 좀 정리되면 다시 "가치의 학" 읽는 데 돌입할게요. 늘 고맙습니다.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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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아 그러셨군요^^. 독일 유학 갔다온 제 선배는 미하엘 하인리히 하고 <가치의 학> 가지고 1년 동안 세미나했대요. 가끔 미하엘 집에서도^^... 저도 이 양반 문제의식 맘에 들어요^^. 저도 고맙습니다^^(꾸벅^^)...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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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한국사람 중에 그분과 함께 공부한 분이 계시나보군요. 좋으셨겠네요 ^^;;요새 좀 보니까.. 곽노완이란 분께서 논문에 하인리히 얘길 많이 하시던데...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맑스주의도 나름대로 발전하고 잇는 것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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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완이라는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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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군요! 한국에서 하인리히 얘기하는 분은 그분이랑 김만수씨 정도 계신 것 같아요. 하긴.. 영어권에선 아예 없으니...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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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라는 분은 잘 모르겠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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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씨는 독일 보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실업사회>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1) 첫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이 만들어(?)봤습니다: "맑스가 분명하게 노동가치론에 대한 그 어떤 성질의 “증명”에도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노동을 교환가치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하는 것이 동어반복이라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의 그의 진술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2) 그 다음 문장에서... "마지막 장"은 "앞장"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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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1), (2) 지적하신 것 참조로 해서 고쳤습니다. 미흡한 것이 너무 많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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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하시긴요.. 저한테는 아주 그냥.. 곰탱이 님이 신입니다 ^^;;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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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너무 과한 말쌈이군요^^... EM 님이 저한테는 너무 좋으신 선생님이십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