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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 1

 

#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입장 #

(Zillah R. Eisenstein 편집, Monthly Review Press, New York and London, 1979)

 

 

(206) @ 10장 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 @

 

 

- Heidi Hartmann -

 

 

성별 노동 분업은 인류 역사를 통하여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 성별 노동 분업은 남성이 위에 있고 여성이 아래에 있는 위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과 역사는 이러한 분업이 항상 위계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성적으로 질서 잡힌 노동 분업의 발전과 중요성은 이 논문의 주제이다. 현재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뿌리가 이렇게 성적으로 질서 잡힌 노동 분업 속에 있다는 것이 바로 나의 주장이다. 성별 노동 분업의 위계적 본성이 사라져야 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고 여성과 남성이 모두 자신의 인간 잠재력을 완전히 펼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바로 성별 노동 분

업 그 자체가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탐구해야 할 근본적인 몇 가지 물음들은 첫째, 좀 더 평등한 성별 분업이 어떻게 덜 평등한 성별 분업이 되었는지, 그리고 둘째 이러한 위계적인 노동 분업이 현대 시기에 어떻게 임금 노동으로 확대되었는지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많은 인류학적 연구들은 첫 번째 과정, (207) 즉 성적 계급화(sexual stratification)가 생산력 증대, 전문화 그리고 사회의 복잡성과 더불어 발생하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정착된 농업, 사적 소유, 또는 국가 형성 등을 통하여 발생됐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가 처음에 나타나서 “문명화”가 시작되었을 때 성적 계급화가 발생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출현한 것인 반면, 남성이 지배하고 여성이 종속 당하는 여남 사이의 위계적 질서인 가부장제는 일찍 출현한 것이었다.

 

나는 자본주의 이전에 남성이 가족 내에서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을 통제하는 가부장 체계가 성립되었고, 또한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남성이 위계적인 조직 방식과 통제 기술을 습득하였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폭넓은 교환과 좀 더 커진 생산 단위들에 기초한 국가 기구와 경제 체계의 출현에 따라 생겨난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분리 같은 것이 시작되면서, 남성의 문제는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유지시키는 것이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직접적으로 개인을 통제하는 체계가 폭넓은 사회 제도에 의해 매개된 체계, 즉 직접적으로 개인을 통제하지 않는 체계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남성에게 유리한 메커니즘은 (1) 전통적인 성별 노동 분업이었고, 또한 (2) 위계적인 조직 방식과 통제의 여러 기술이었다. 서유럽과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한 시기에, 이러한 메커니즘들은 성적으로 질서 잡힌 노동 분업을 임금 노동 체계로 확장시키는 두 번째 과정에서 중대한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많은 낡은 제도들을 해체하고 “자유로운” 노동 시장과 같은 새로운 제도들을 만들어 내었을 때, 15세기와 16세기의 자본주의 출현은 제도적 권위에 기초하였던 가부장적 통제를 위협하였다. 자본주의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협적으로 노동력 부문에 편입시킴으로써 가족과 여성에 대한 남성 권력(예를 들어 가족 안에서 여성의 노동력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기초를 해체시켰다. 순수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경향이 노동자들 사이의 모든 임의적인 지위 차이들을 없애버리고, 모든 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동등한 존재로 만들었다면, 왜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남성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것인가? 가능한 대답은 여러 가지이다. 그 대답들은 두 번째 (208) 과정이 불완전하다거나 또는 불완전한 시장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는 신고전주의 관점으로부터 시장이 명목상 “평등”을 요구하는 것처럼 생산이 위계질서를 요구한다는 급진적 관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설명들 모두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낮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남성(보통 남성, 남성으로서의 남성, 노동자로서의 남성)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다. 특히, 급진적인 관점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산 과정에서 위계질서를 만들어 내는 자본가로서의 남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가들은 노동시장을 (인종, 성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민족 경향에 따라) 분할하며 노동자들을 서로 서로 경쟁시켜 이득을 본다. 이 논문에서 나는 남성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에서의 성별 분업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계속 그러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성별 직무 분리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를 유지시키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이라고 말할 것인데, 왜냐하면 성별 직무 분리가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저임금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저임금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데, 왜냐하면 남성들이 여성들을 결혼하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다. 결혼한 여성들은 그들의 남편을 위하여 잡다한 가사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좀 더 높은 임금과 가사 노동 분업을 통해 이득을 본다. 다음으로, 이런 가사 노동 분업은 노동 시장에 의해 영속되며 노동 시장은 가사 노동 분업에 의해 영속된다. 이러한 과정은 서로 맞물려 있는 체계들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따른 오늘날의 산물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좀 더 극복되고 발전된 가부장제는 여전히 번식력이 강하다. 가부장제는 마치 자본주의 발전이 가부장적 제도들을 변형시켰던 것처럼, 근대 자본주의가 취하고 있는 형태로 변한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상호 조화는 결과적으로 여성에게는 악순환이 되었다.

 

나의 주장은 신고전주의와 맑스주의 경제학자들 둘 다의 전통적 관점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 둘은 물질적 토대를 가진 사회 체계인 가부장제를 무시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직무 분리의 원인을 물질적 토대 외부에 있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들로 봄으로써 자본주의가 가부장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직무 부분과 (209) 수세기에 걸친 가부장적 사회 관계들의 효과를 무시함으로써 직무 분리의 원인을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균형을 잡고자 한다. 내가 여기서 윤곽을 잡아 왔고 아래에서 좀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논의의 방향은 아마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논문이 논증할 여지가 없는 명백함보다는 오히려 그럴 듯한 타당성을 지닌 논문이 되었으면 한다.

 

이 논문의 첫 번째 부분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지배-종속 관계들이 만들어진 것에 대하여 인류학 문헌에서 나타난 증거와 설명들을 간략하게 재검토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자본주의의 출현 시기와 영국과 미국에서의 산업혁명 시기의 성별 노동 분업에 관한 역사적 문헌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남성-여성 지배-종속 관계들이 임금-노동 시장으로 확대된 것에 대하여,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와 그에 따른 남성 우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남성이 행했던 주요 역할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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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0.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전두환이 잡혀 가는 꿈을 꾸었다.

머리가 전두화처럼 훌러덩 까진 별 넷 장성이 직접 전두환을 호송해 가는 꿈...

그 호송하는 차량 맨 뒷좌석에 나도 타고 있었다는...

근데 난 잡혀 가는 게 아니라 기자처럼 관찰자 정도인 것처럼 보였다는... 

 

근데 이 이야기는 왜 쓰고 있을까...

시어머니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0.

요즘 학교에서 운동을 하는데,

갑자기 왜 운동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운동하는 게 무슨 수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옛날 소림사의 스님들이 무예를 닦으면서 수련을 하듯이...

그 스님들이 수련을 하는 것은 아마도 잡 상념들을 모두 비워버리고

그 비워둔 곳에 열반의 도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능...

(이거 완전히 조지콩 님의 글쓰기 스타일로 되어가고 있다능...)

 

그것처럼 잡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잡생각이 들면

일단 증오와 적개심이 타오르는지라...

그러한 증오과 적개심을 사그라트리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운동을 해서 숨을 고르는 데만 신경 쓰도록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는...

그 증오와 적개심이 가득찬 잡생각을 비우고,

거기에 충만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을 수만 있다면...

 

이제 스님들처럼 아예 머리를 밀어볼까...

근데 두상이 안 예뻐서 머리 미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폐를 끼칠 것 같은...

그로 울 여친께서 가만 안 둘 것이고...

울 엄니도 가만 안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찰 것이고...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별로 머리를 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능^^...ㅋㅋ...

 

0.

요즘도 계속 졸린다.

잠을 7시간 이상 못 자는 날엔 짤 없다.

그렇다고 7시간 이상을 자면 졸음이 안 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는 정도가 좀 야갈 뿐이다.

난 보통 1시 반에서 2시에 잔다.

늦으면 4시에 잘 때도 있다.

일어나는 것은 보통 8시인데,

아침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은 짤 없이 6시 반에 일나야 한다.

왜냐하면 하도 곰탱이처럼 행동이 느릿느릿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매 군대에서 고생 많이 했다!)

 

7시간 이상 못 자면,

학교 오자마자 10분도 안 돼서 30분 이상 졸아주셔야

점심 먹기 전까지 쫌 가준다.

그러다가 점심 먹고 와서 또 10분도 안 돼서 40분 이상 졸아주셔야

운동 가기(4시 반)전후까지 쫌 가준다.

운동 끝나고 저녁을 먹고 와서 또 10분도 안 돼 20분 정도 졸아주셔야

집에 갈 때까지 쫌 살아주신다.

 

문제는 테레비다!

테레비를 안 봐 주셔야 덜 졸 텐데...

집에만 갔다 하면 테레비부터 켜 놓는다.

테레비 안 켜 놓으면 쫌 뭐랄까 적막강산이다.

적막강산, 이거 이거 안 겪어본 사람들은 모른다.

얼마나 거시기한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날이 좀 더 쌀쌀해지면 덜 졸래나...

테레비를 확 끊어버릴까...

그러면 위약금 물어야 한다...

3년 약정으로 할인 요금 내는데,

아직 2년도 채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막강산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ㅋㅋ...

 

몰라! 배째!

 

이상 주저리 주저리 뉴스였심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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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발전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7

4. 전략에 관해 몇 가지 주목할 것

 

 

앞서 논의했던 모든 것들은 혁명 전략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첫째,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관련하여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개념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목적을 위한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둘째, 고전 맑스주의에 의해 규정된 잠재적인 것이 과연 앞으로 미국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몇 가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론과 전략의 발전이 상호 연관되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할지라도, 나는 그것들을 어느 정도 분리된 행위들로 본다. 이론을 통해 당신은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전략은 그 가능성들로부터 나타난다.

 

이런 논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지만 그 이론의 전략에 관한 몇 가지 논의들을 발전시키기가 다소 망설여진다. 전략은 앞으로 이론을 사용하려는 시도들로부터 완전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이론 논의들로부터 추상적으로 전략을 규정하려고 할 때, 현재 존재하고 있는 혁명적 전략들을 현실에 강제로 적용하고자 하는 경향은 너무나 크다. 현재 존재하는 혁명 정식들은 혁명적 변화를 구성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한하고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전략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그 전략이 생산, 재생산, 소비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일상적인 투쟁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점이다. 혁명적 의식의 잠재성은 여성들이 집과 일터 양쪽에서 착취 당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타난다. 여성들은 현재 노동력 부문에서 저임금으로 일을 하고 있고 무보수로 가족 체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이것은 의식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이다. 여성들은 정치적 행위를 조직할 필요가 있으며 여성 억압이 자본주의 노동 분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해 이해하는 것을 토대로 자신들의 억압에 대한 정치적 의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Nancy Hartsock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의 힘은 일상의 삶과 부닥치는 데서 나온다. 현대 페미니즘의 의미는 일상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분석 방식을 다시금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일상적 삶(whose everyday life; 여성의-옮긴이)에 대해 물어야 한다.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들 사이에는 현실적인 차이들이 있지만, 또한 계급과 교차하는 구성 방식의 토대(a basis for cross-class organizing)를 제공하는 접촉 지점이 있다. 그 현실적인 차이들이 인정될 수밖에 없지만 (그리고 정치적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페미니즘의 투쟁은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이 공유하는 특별한 역할로부터 나타나는 공통성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는 처음에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다. 그들의 여성으로서 그들의 억압을 느꼈고, 그런 후에 그들이 이런 억압 체계에서 자본주의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또한 그들은 사회주의에 전념하게 되었다. 비슷하게, 점점 더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이 아주 거대한 체계의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집(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그들이 전문직이건 비전문직이건 간에, 경쟁력 있는 어머니와 가정 보호자가 되라는 압력과 근심을 견디며 살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이중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 좌파들(Male leftists)과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종종 여성이 집안에 격리되어 있고 그녀 남편의 계급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결코 조직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 사이의 계급 갈등 때문에 계급과 교차하는 구성하는 방식이 모든 점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유산, 건강관리, 강간, 아이 돌봄과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능하다. 우리가 우리의 계급 차이들을 의식적으로 다루고 그 차이들을 무시하는 대신에 그 차이들에 우선성을 부여할 때, 계급과 교차하는 구성 방식은 진지하게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동시에 여성들의 삶은 기존의 가부장제적 통제와 매우 비슷하다. 바로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잘 작동하는지 좀 더 잘 알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정치적 행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모든 여성을 움직일 수 있는 전략은 결코 시도된 적이 없다. 이런 전략의 실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게 될 때 (전략 실행의-옮긴이) 시작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 끝 -

 

** 다음에는 같은 논문 모음집에 있는 하이디 하르트만(Heidi Hartmann)의 논문 [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Capitalism, Patriarchy, and Job Segregation by Sex)을 해석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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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발전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6

3. 자본주의 가부장제에서 노동과 사회의 성 분업 : 새로운 페미니즘 이론을 향하여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상호 연관성을 분석하려는 과정에서 생시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우리의 언어가 가족과 경제를 분리된 체계로서 다룬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계적인 노동의 성별 분업은 이 두 가지가 만들어 내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따르는 인간의 행동, 목적, 목표, 욕망 그리고 꿈을 규정해 주는 노동과 사회의 성별 분업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기초를 이룬다. 이 성별 분업은 여성과 남성을 그들을 대표하는 위계적인 성 역할로 분리하고 그 역할과 관계되는 의무들을 가족 영역과 경제 영역으로 구조화시킨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상호 의존성에 관한 이러한 진술은 가부장제가 자본의 필요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자본이 가부장제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점을 가정하고 있다. 누군가가 자본주의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하여 가부장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성적 위계 체계로서 남성의 우월성이 (28) 자본주의에 필요한 질서나 통제를 자본주의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 진정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가부장제 통제 체계는 사회와 경제적 체계를 부드럽게 기능하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며, 그리하여 결코 그 토대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남성 우월 체계로부터 나타나는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겉보기에, 이익과의 관계와 사회적 통제와의 관계가 가부장제와 뒤엉켜 있으며(그렇지만 결코 서로에게 환원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완전한 과정이 된다. 각 체계의 특수한 요소들은 다른 체계에 의해 필요한 것이 된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를 이용하며 가부장제는 자본의 필요에 따라 규정된다. 이러한 진술은 앞의 주장, 즉 하나의 체계가 다른 체계를 사용하는 동시에 다른 체계의 특성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체계의 필요 주변에서 다른 체계를 조직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유지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체계는 자신의 특성을 잃어 버릴 것이며 이와 더불어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가능한 한 단순하게 이것을 말한다면,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부장제(남성 우월성)는 정치적 통제를 위해 사회에 성적인 위계 질서를 제공할 것이지만, 하나의 정치적 체계로서 경제적 구조로 결코 환원될 수 없다. 반면에 이익 추구를 원동력으로 삼는 경제적 계급 체계로서 자본주의는 가부장적 질서를 이용한다. 이 둘(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은 둘 중의 이것 또는 저것이 아니라 둘의 특수한 혼합물인 사회의 정치 경제를 함께 형성한다. 이렇게 과도하게 단순화시킨 진술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진술은 이 두 영역 모두에 존재하는 관계들을 끊어낸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는 사회의 경제적 계급 관계들과 그 관계들을 작업장 내에서 조직화하는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일련의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진술은 모든 점에서 두 체계 사이의 조화를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발전된 자본주의로 나아가 보면, 이러한 관계 맺음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볼 수 있다. 노동력 부문(경제적 계급 영역-옮긴이)에 여성의 편입이 점점 더 늘어나면, 가부장적 가족 관계들과 관련된 몇몇 통제는 허물어지게 된다(이중 노동은 보다 분명해진다(the double day becomes more obvious)). 그러나 여성을 노동력 부문에 게토화시키는 것은 동시에 사회의 성적인 위계 체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여성의 위계적인 통제 체계를 성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다. 가부장적 (29) 위계와 통제에 대한 복종은 바로 다음과 같은 사실, 즉 값싼 노동을 구한다는 것이 여성을 노동력 부문의 모든 부분들로 완전히 통합시킨다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비록 여성의 노동이 값 싸다고 하지만, 사회의 필수적인 질서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여성 노동의 싼 가격 모두를 유지시켜 주는 통제 체계는 여성이 (가사노동으로부터-옮긴이) 노동력 부문으로 분리돼 들어감으로써 보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성의 이중 노동(woman`s double day)과 불평등에 대한 정당화는 오늘날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여성 삶의 현실 사이에 모순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모든 여성이 어머니(그리고 비노동자)로서 규정된다고 할지라도, 미국 여성의 약 45%(3천 8백 6십 만 명)가 임금을 지불 받는 노동력 부문에서 일을 하고 있고, 거의 대부분의 노동이 집에서 이루어진다. 전체 노동하는 여성의 4분의 1 가까이가 독신이다. 19%는 과부이거나 이혼했거나 별거 중이다. 그리고 나머지 26%는 년 소득 1만 달러 이하의 남성과 결혼한 여성이다. 그러나, 지배 이데올로기 내에서 여성은 노동자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은 노동에 대한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 여성을 어머니로서 성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녀를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집안 노동에 머물게 하거나 그녀에게 부과된 성적인 열등성 때문에 그녀를 낮은 임금에 고용할 수 있도록 한다. 실업률이 문제라면, 여성은 전혀 일을 구할 수 없거나 더 낮은 비율로 일을 구하게 된다. 노동과 사회의 성적 분업은 여성이 임금을 받는 경제 영역에 있다고 하더라도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일하는 어머니로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에 순응한다. 그리고 두 개의 일은 한 개 일에 해당하는 임금 가격보다 더 적은 가격으로 수행된다.

 

가사노동에 포함된 모든 과정은 현존하는 사회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도록 해 준다. (1) 여성은 가부장적 구조들(가족, 주부, 어머니 등)을 이런 역할 수행을 통해 안정화시킨다. (2) 동시에, 여성은 임금을 받는 노동력과 그렇지 못한 노동력 모두로 새로운 노동자를 재생산한다. 여성은 사회의 남성들과 아이들을 돌본다. (3) 여성은 또한 저임금으로 노동력 부문에서 일한다. (4) 여성은 소비자로의 역할을 함으로써 경제를 안정화시킨다. 생산의 또 다른 측면이 소비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의 또 다른 측면은 가부장제이다.

 

사회와 노동의 이런 성적 분업이 (30) 자본주의에 선행한다고 하더라도, 그 분업은 발전된 자본주의의 필요 때문에 점점 더 제도화되었고 특히 핵가족의 측면에서 규정되었다. 이제 그 분업은 전(前)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었던 것보다 더 많은 형태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前)자본주의사회에서 남성, 여성 그리고 아이들은 집, 농장 또는 경작지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생산하기 위해 같이 일하였다.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이었지만, 일을 구성하는 방식은 이러한 성적 역할 구분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산업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남성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임금 노동 경제로 편입되었다. 여성은 집안에 갇히기 시작했고 많은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에 의해 점점 더 비생산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들은 성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배타적으로 여성의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여성이 산업 자본주의 이전에도 어머니였지만, 이것은 배타적인 역할이 아니었다. 반면에 산업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가정주부가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쪽에서 보면, 가정주부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중적 특성을 지닌 노동자로 나타난다.” 여성이 집안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은 노동으로서 인정되지 않았다. 생산적 노동이 임금 노동, 즉 잉여가치(자본)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규정되었다.

 

따라서 사회의 생산 조건들은 가족 내에서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소비를 규정하고 또한 그런 형태를 구체화시킨다. 그렇게, 또한 가족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소비 양식은 상품 생산에 영향을 준다. 이것들은 모두 정치 경제를 규정한다. 정치적 질서와 통제 체계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이윤이 통치 계급에게 기본적으로 우선되는 영역인 자본주의 가부장제 경제 영역에서 사회와 노동의 성적 분업은 특별한 목적에 기여한다. 이 분업은 가족을 통해 사회를 안정화시킨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노동, 다시 말해서 가사노동을 조직하는데, 이 가사노동에는 무임금이거나(가정주부), (집안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얼마 안 되는 임금(limited pay)이거나 또는 (임금이 지불되는 노동력 부문에서의) 불평등한 임금의 경우가 있다. 이 마지막 범주는 계급 구조 내에서의 노동의 성별 분업에 따라 여성에게 궁극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임금을 지불 받는 노동자로서 여성의 지위는 이윤 계기를 둘러싸고 조직된 사회의 위계적인 성적 분업의 직접적 반영인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규정된다.

 

(31) 모든 개별적인 남성이 그들을 위해 수행되는 노동(labor)과 연관하여 이익을 얻는 반면에, 한 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는 여성 노동(women`s work)의 기본적인 배치로부터 이윤을 얻는다. 계급과 상관없이, 남성들은 (이익을 얻는 정도가 다를지라도) 그들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얻는 여러 특권의 체계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이데올로기와 남성 위계 구조가 사회의 기초가 아니었다면, 여러 특권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그 자체 결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계급 체계를 통해 만들어진 인위적 욕구들과 함께 노동과 사회의 성별 분업을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위계이다.

 

가족을 유지하고자 지배계급의 욕망은 최대 이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위계적인 질서를 사회에 부여하는 노동 분업에 가족을 문화적이고 정치적으로 연루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단 노동의 성별 분업이 변화한다면, 특히 자본주의 질서와 관련하여 도전을 받게 된다면, (특히 가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체 사회에 폭넓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의 여러 구성 형태 중 하나도 도전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어 있는 자유로운 노동 풀(pool), 그리고 값싼 노동 풀(pool)뿐만 아니라 성적 위계 그 자체인 기본적인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회 구성을 위태롭게 만든다. 사회의 성적 위계를 함축하고 있는 권력 배치로부터 도출되는 그러한 질서와 통제는 해체될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일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경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은 계급이 여성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여성이 계급 범주에 꼭 들어맞는 방식을 재검토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범주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의 복잡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 대한 여성의 의식과 관련하여 계급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현재 계급 범주는 현재 기본적으로 남성의 측면에서 규정되고 있고, 여성은 그녀의 남편이 맺는 생산수단과의 관계를 기초로 하여 계급에 귀속된다. 여성은 자율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여성이 중간 계급(middle-class)으로 불리는 것은 어떤 척도에 따른 것인가? 중간 계급 여성의 지위가 중간 계급 남성의 지위와 상당히 차이가 날 때 그녀의 삶이 노동 계급 여성의 (32) 삶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사노동자(houseworker)로서) 전혀 소득이 없는 여성은 누구이며 그녀의 남편이 중간 계급이기 때문에 중간계급이라고 불리는 여성은 누구인가? 그녀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돈을 버는 그녀 남편과 똑같은, 그녀의 삶을 넘어서는 자유, 자율성,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는가? 그녀의 지위는 남은 임금의 직업을 가진 독신 여성의 지위와 어떻게 비교되는가?

 

 

명확하게 상위 계급 또는 중간 계급(자세하게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건 간에)이라는 딱지를 붙인 남성은 자신의 상대방인 여성보다 더 많은 돈, 권력, 안전,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남성의 부양에 의존하고 있는 아내이고 어머니이다. 그리고 주인(남성-옮긴이)은 무엇을 베풀지만 거두어 갈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물음들을 통해서 계급 표식이 의미가 없다거나, 또는 계급 특권이 여성들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가정주부들(가사노동자들)이 하나의 고유한 계급이라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현실적인 유사성이 무엇인지를 다루기 전까지 우리의 현실적인 계급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담고 있다. 나는 우리가 여성과 남성들 사이의 관계와 계급 구조, 생산과 재생산, 가사노동과 임금노동, 그리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등의 측면에서 여성들 사이의 권력 차이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 단어와 개념적 도구들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후라야 우리는 여성을 조직하기 위한 우리의 이해에 대해 이것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유사성과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차이가 우리를 갈라놓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유사성은 이러한 갈등들을 재규정하는 그 무엇이 된다. 페미니즘 계급 분석은 전체로서의 경제 영역 안에서 여성들이 수행하는 노동과 관련하여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구별, 즉 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 사이(전문직 여성 대 비전문직 여성 사이), 가사노동자들(가정 밖에서 일하지 않는 가사노동자 그리고 가사노동자이면서 또한 밖에서 일하는 여성 사이), 생활 보조금을 받는 여성들, 실업 여성들 그리고 전혀 일을 하지 않는 부유한 여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구별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이러한 계급 구별들은 더 나아가 인종과 결혼 상황과 연관하여 규정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33) 이러한 각각의 범주에 속하는 여성들이 다른 범주에 있는 여성들의 경험들을 재생산, 아이 양육, 섹슈얼리티, 소비, 가정 유지라는 행위 속에서 어떻게 공유하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의 이러한 계급 탐구 분석에서 우리가 앞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의 복잡하고 다양한 패턴인데, 다양한 눈금을 가진 이러한 페미니즘의 개념화는 여성의 현실적인 삶과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성과 계급 차이들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이 모델은 사회의 성적 위계와 자본주의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 맺음이라는 문맥 안에서 계급 차이에 주목하도록 만들 것이다. 희망적이게도, 사회주의 페미니즘 분석은 본질적으로 분리된 체계가 아닌 이러한 체계들 사이의 관계 맺음을 계속 탐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러한 페미니즘 계급 분석은 앞으로 여성의 서로 다른 경제적 현실을 다루게 될 것이지만, 이 분석을 통해서 크게는 (34)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필요라는 문맥 속에서 규정되는 여성들을 보게 될 것이다. 여성은 여성으로서 비슷한 경제적 지위를 가지지만, 현실적인 경제적 계급 차이들을 경험하는 가족 구조를 통해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고립된 가정 속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소외되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 아닌 창조적 일을 하기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잘못된 의식에 대립하는 것으로서의 비판적 의식을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새로운 개념들로부터 나타나는 무제한의 섹슈얼리티를 위한 여성의 잠재력을 현실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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