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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을 부수지마!


노브레이크.gg.gg

일산 풍동 철대위....와 연대하는 친구들이 만든 버튼.

 

 

'우리집을 부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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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는 전쟁에 반대한다

 

 

 

 

'이주노동자는 전쟁에 반대한다'가 새겨진 버튼.

한참 파병반대 목소리가 드높았을때,

어디선가 받은 거다.

 

가끔, '이주노동자들이 왜 반전집회에 가는냐'며 의아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때, 왜 이주노동자들은 반전집회에 가서는 안되는지를 되묻고 싶다.

 

혹시, 우리는 '이주노동자'라면 어눌한 한국말로 '사장님 나빠요~'라고 하면서

기계 앞에서 일하는 모습만 떠올리는 것을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은 어디 사람이든, 다 마찬가지다.

내가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남도 그것을 안다.

 

어떤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이나 할 것이지

왜 반전 집회며 연대집회를 가냐고 비아냥 거린다.

 

이런....

이런...

 

반전 집회는 한국사람만 가야하는 집회인가보다.

뭐라고 할말이 없다.

 

좋은 얘기를 쓰고 싶었는데, 결국 별로 좋은 얘기를 쓰지 못했네.

누군가를 탓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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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반전행동의 날과 이주노동자

오늘 국제반전행동에, 친구들과 함께갔습니다.
저는 조금 늦게 갔는데요.

투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밥으로 연대하는 '투쟁과 밥' 친구들.
(밥은 생존이며, 그 밥을 짓는 행위는 인간 삶의 재생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밥을 짓는 노동은 '그림자 노동'혹은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으로
가리워진 노동이기도 했는데요. 또 다른 측면으로 보면, 생산은 재생산이 있어야만
가능하기도 합니다. 즉, 밥 짓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인거죠 ^^)

그리고, '나의 월경은 내가 관리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는
'피자매연대'친구들. 피자매연대는 일회용생리대가 아닌, 천으로 만든
대안생리대를 전파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합법화를 위한 모임'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뱃지를 팔고, 이주노동자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놀았어요)
반전집회는 '정부의 테러범 어쩌구저쩌구' 이후의 첫 집회라서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적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한 천명정도...

어쨌든,
테러유발은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원인입니다.
이주노동자를 내쫒으려는 정부의 정책이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자,
정부는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억지로 짜낸 위기를 사람들을 통제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논리>
이라크 무장단체는 이슬람교다
한국내 이주노동자 중에 이슬람국가 출신이 있다.
따라서, 한국내 이주노동자는 무장단체와 연관이 있다.

라는 요상한 등식을 만들어 단속추방의 정당성을 획득하려고 하고 있군요.

한국인/외국인 이라는 분열선을 더욱 강화하여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하게 만들고 있네요.
사실, 서로를 경계하고 미워하게 만들때, 권력을 가진 자의 지배는 더욱 손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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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귀신이 사는 대나무 숲 - 전설의 고향 촬영장>

어젯밤 꿈속에...

귀신이 나타났다.

 

대나무 숲속에 사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 귀신이다.

가만히 두면 괴롭히지 않지만,

그녀를 귀찮게 하거나 불러내면 방문한다.


귀신이 나타나면, 헤코지를 하지는 않지만,

계속 울어대며 돌아다니고,

벽은 피로 물들고,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고인다고 들었다.

 

귀신이 나타나서,

이불속에 숨어있는 나에게 와,

이불을 계속 잡아당겼다.

 

일어나서 생각하니,

자다가 이불이 침대 밑으로 떨어지려고 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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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 아니다'를 넘어선 것이 뭐가 있을까?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미 이 말의 준거는 국가와 자본이 규정한 '테러리스트'에 기대고 있다. 이미 한 발짝 지고있는 형세인데...
뭐 딴 게 없을까?


공포의 정치.
이제 또 다시 시작되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그 생각만했다.
공포의 정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공포와 위협,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안전. 만들어진 공포와 위협속에서
실제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안전 속에서 살고 있다.

부르주아 정치의 한 일면이다.


애니웨이.
김구도 테러리스트.
윤봉길도 테러리스트.
안중근도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가 영웅이 되는 사회에서,
테러리스트를 응징하시겠단다. 나, 참 웃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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