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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논란에 대한 나의 생각(프로메테우스 인터뷰 기사)

“영화인들, 뼈저린 자기반성 해야”
이마리오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
강준상 기자 메일보내기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와 <미친시간>을 연출한 바 있는 이마리오 감독은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에서 그 기운이 남다른 감독이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좌충우돌하던 열혈청년에서, 베트남의 생존자들의 기억을 통해 한국 군인들의 민간인학살을 다룬 <미친 시간>까지, 또 광주에 대한 인디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 행보.

△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 서울영상집단

 

그는 99년 스크린쿼터 투쟁이 한창일 때 그 선봉에 함께 섰던 바 있다. 투쟁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의 스텝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삭발투쟁을 하기도 했다.

최근 스크린쿼터 축소논란에 대해 독립영화인으로서 그가 느끼는 것은 90년대 후반과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거란 짐작이 들었다. 그는 “스크린쿼터는 할리우드의 독과점에 대한 자국영화의 보호 장치로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는 한편 주류 영화인들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고 말하며 일침을 놓았다.

그로부터 스크린쿼터 축소와 관련된 생각을 들어보았다.

 

프로메테우스 : 90년대 후반에 어떤 계기로 참여하였고 어떤 역할을 했었나?

이마리오 : 당시 처음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얘기가 나왔고, 영화인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한독협도 참여를 한 것. 스크린쿼터의 내용만 대충 알았고, 그런 수준에서 참여한 것이다. 그때 99년 겨울 서울영상집단에서 <노래로 태양을 쏘다>라는 스크린쿼터 투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난 촬영스텝으로 참여했다. 그때 김진균, 심광현 교수 등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스크린쿼터가 단순히 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라는 큰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그때 작업하면서 알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 : 스크린쿼터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한 부분으로 보는 흐름이 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운동의 주체들에 다양한 면면이 있을 것 같다. 실체가 뭔지? 집단이기주의라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밥그릇싸움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없는 것이 문제

△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와 <미친 시간>을 연출한 이마리오 인디다큐멘터리 감독.
ⓒ 프로메테우스 강준상 기자

 

이마리오 : 참가했던 사람들 안에서 왜 쿼터를 지켜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자기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것은 현재와 99년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밥그릇싸움이라 해도 그게 왜 중요한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갔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비난을 한다. 가령 왜 외제차 타냐는 그런 식이다. 여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얘기하고 있는 상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스크린쿼터에 의해 한국영화 잘 되었는데, 돈을 많이 벌었으니 국산품 애용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로 비난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 : 스크린쿼터를 지키자는 이유가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영화다양성을 위해 영화인들이 한 것이 무엇이냐며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크린쿼터와 자국 내 영화 다양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

이마리오 : 기본적으로 스크린쿼터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다. 스크린쿼터는 할리우드에 대항한 자국영화의 의무상영일수다. 자국 내 영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것을 섞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문화관광부의 4천억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 두 가지를 섞어서 보게 하려는 의도이다. 굉장히 기분 나빴다.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비슷하게 올려놓고 지원해주겠다는 것은 약 올리는 것 같다. 스크린쿼터 줄이면서 지원 해주겠다는 것은 영화진영 내부를 이간질시키는 것이다. 쿼터 폐지 하고 4천억 지원했을 때 실재로 독립영화진영에 얼마나 지원이 되겠나.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99년 투쟁 이후 현재까지 오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주류의 상업영화진영이다. 그리고 문화정책을 짜는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비주류 영화에 대해 아무런 지원책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화인들, 99년 이후 과연 한 일이 무엇인가?

△ 지난 2월 8일 있었던 스크린쿼터 사수 집회. ⓒ 프로메테우스 자료사진

 

99년 스크린쿼터 투쟁의 한 축이었던 독립영화에 대해 상업영화 진영이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실미도>나 <태극기를 휘날리며>나 <왕의 남자>와 같이 한 영화가 스크린 전체의 1/3 이상에 동시에 걸리는 이런 상황에서 자기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안 해왔다. 그러니까 정부의 논리에 먹히는 것이다.

극장은 돈만 벌면 되니까 한국영화든 외국영화든 상관없다. 제작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제작하는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안을 만들어야 한다. 수백억 벌었으면 자기 영화로 인해 개봉하지 못한 소수 영화들에 대한 지원책을 고려해야하는데 한 것이 뭐가 있나. 하나도 없다. 우린 여전히 같이 싸우겠지만 99년과는 다를 것이다. 예전에는 당연히 같이 했지만 지금은 자국 내 문화다양성에 대해 말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로메테우스 : 근본적으로는 스크린쿼터투쟁과 영화다양성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상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90년대 후반 스크린쿼터 폐지위협이 있으면서 소위 한국영화의 국가경쟁력의 필요성에 대한 많은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언제까지 쿼터가 유지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영화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강제규, 강우석 감독 등이 있었고 그들은 일단 한국영화를 살려야 한다며 경쟁력을 위해 할리우드 시스템, 스타, 마케팅 비용 늘리기 등의 산업논리로 갔다. 스크린쿼터 지키기 운동이 역설적으로 한국영화산업의 모순을 만든 측면이 있지 않나?

 

돈 되는 영화만 만들면서 문화다양성을 말하는 것은 이율배반

이마리오 : 그런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스크린쿼터 제도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스크린쿼터가 있건 없건 그런 시스템으로 갔을 것이다. 스크린쿼터 제도를 정확하게 봐야한다. 할리우드의 독과점을 막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을 자국 내의 이야기로 치환시키게 되면 스크린쿼터 자체가 별로 필요 없는 것처럼 된다. 다른 층위의 얘기라는 것이다.

사실은 충무로 영화계가 스스로 함정을 판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때 승인을 했으면 당연히 영화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하고,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동참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안 했다. 그러다보니 위기에 몰렸을 때 누가 연대해 주겠나? 스스로 함정을 판 거다. 내부에서 그런 것들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이다.

또 현재의 한국 영화들은 무국적 영화들이 상당수이다. 그런 충무로 영화들을 만들면서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라고 말하면서 돈이 되는 영화만 만들고 있다. 이율배반이다. 영화인들이 각성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 : 90년대 후반 스크린쿼터를 사수한 이후가 더 문제일 수 있겠다.

 

영화인들 스스로의 책임이다

이마리오 : 그렇다. 그때 스크린쿼터를 싸워서 지킨 영화인들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본다. 후속작업을 하지 않았다. 왜 스크린쿼터가 지켜져야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정책과 실천을 위한 노력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스크린쿼터 투쟁 이후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바뀐다. 그러면서 내부구성이 보수적인 사람들에서 젊은 사람들로 완전히 바뀐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대학교수, 영화제작가들, 감독들이 전부 그 자릴 차지했다. 새로 변화된 영화진흥위원회 내부에서도 비주류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에 대한 정책을 입안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스텝들? 처우개선 무엇이 되었나? 결국 스텝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독립영화 전용관? 그때부터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제야 논의되기 시작한 상태다. 자승자박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싸움 이후 전과 같이 간다면 다음번에는 완전히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프로메테우스 : 스크린쿼터 축소가 독립영화에 줄 영향은 무엇일까?

이마리오 : 직접적 영향은 없다. 하지만 최근 2년 독립영화들이 극장개봉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개봉할 수 있었던 이유가 스크린쿼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안녕 사요나라>나 <다섯은 너무 많아>와 같은 독립장편영화가 만약 쿼터가 73일인 상황이었다면 개봉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프로메테우스 :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극장상영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나?

이마리오 : 극영화의 경우 단편영화들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독립영화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대학에서 영화과 출신들이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단편은 많지 않다. 중편과 장편을 만드는 경향으로 가고 있다. 아트플러스가 있긴 하지만 상영한계가 크다. 모색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프로메테우스 :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해야할 것은 주류의 시장인 극장에서 독립영화가 상영되어지기 위한 노력보다는 주류영화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새로운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상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가령 프랑스 영화감독 고다르는 할리우드 자본주의 스타일에 투쟁하는 영화가 혁명적인 영화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의 투쟁이 오히려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해야할 것이 아닌가?

 

독립영화가 시민운동단체들처럼 제도화되지 않아야 한다

이마리오 : 주류시스템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배급의 다른 가능성들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충무로에 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갔다. 영화과 학생들은 충무로에 가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단편영화를 한다. 그런 상황이다.

걱정되는 지점이라면 독립영화가 현재 시민운동단체들처럼 제도화되는 것이다. 전체 영화의 시스템 안에서 제도화되고 단체화되는 것. 그렇게 되면 독립영화가 아니다. 미국의 B급영화와 같은 시스템 말이다. 그것은 독립영화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 마지막으로 스크린쿼터 운동에 어떻게 참여할 계획인가?

이마리오 : 집회하면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99년에 싸웠던 만큼 열심히 싸우지는 않을 것 같다. 싸움을 하더라도 그 내에서 투쟁과정을 통해 영화인들이 의식적인 부분의 각성을 해야 한다. 스타들 불러놓고 눈물 한 번 흘리게 해서 여론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만 생각하고. 또 그렇게 가면 안 된다. 영화정체성에 대해 각성해야한다. 공부도 좀 더 해야 한다. 그렇게 가지 않으면 끝장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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