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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새.롭.게/ 희.망.차.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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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내글을 내가 긁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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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는데,

2000년도부터 2001년도까지 13일동안 명동성당앞에서 쓴 농성일기 한자락이 보였다.

반가워 읽어보면서 이글을 쓴 이가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끝에 보니 내 이름이 써있었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하는건지...

 

어쨌든 일신우일신의 마음으로 긁어왔다.

나머지 글은 어디에 있을까하는 궁금함과 함께...

 

 

8일째, 한 여성 인권운동가의 명동성당 앞 단식일기

단식 6일째(2001년 1월 2일)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뺨이 눈물로 젖었다는 것 이외에는...

"이렇게 하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천식이 있어 바람부는 날엔 나서지도 못하는데…"

평생 법 없어도 살 것 같은 얼굴에 가득 드리운 주름살.

도저히 방구석에 앉아 있을 면목이 없어 서울 상경을 결심했다는
윤한봉 민족미래연구소 소장님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윤 소장님의 눈에 고이고야 만 눈물...
내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목구멍 깊은 곳으로부터 말못할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단식 6일째.
사람들은 우리들이 그들의 마음을 울린다고 말했지만 아니, 우리 역시
울고 있다.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하고 투쟁하고 있지만 이렇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퍼,
그들을 울릴 수밖에 없는 우리가 미워 우리는 매일 눈물을 머금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닫는다.

배고픔이 힘들지 않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어주긴 할까?

단식이 일주일째 접어들다보니 위장도 지쳤는지 때때로 꼬르륵 소리를
내긴 하지만 음식을 넣어달라는 투정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그럼 힘든 것은?

물론 추위다.

연초에 들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는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듯
매분마다 우리의 얼굴과 손, 발 그리고 몸을 엄습한다.

천하장사는 없는 듯 했다.
유난히 발과 손이 찬 나는 오늘도 놀림을 각오하고 4켤레의 양말을
얼어버린 듯한 발가락 위로 씌웠다.

얼굴은 눈을 빼곤 모두 목도리와 모자로 둘러쌌다.

목조차 뒤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그러고 천막을 나서는데 모두 다 한결 같다.

어느새 빼꼼해진 눈. 그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전부가 되버렸다.


단식 7일째(2001년 1월 3일)

세상에 태어나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루 이틀 술 마시고 뻗은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
신문지를 덮고 추위를 면해야 했던 이는...

우리는 "그래도 노숙자보단 낫다"며 하루를 연다.
정말 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니....

살을 에는 듯한 날씨에 자고 일어나니 물이 다 얼어버렸다.

따스한 물이라도 마셔야 몸이 조금이나 풀릴 듯 한데 온기란 찾아볼 수
없는 천막이라 물을 녹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단식단 도우미들이 서둘러 버너를 켜보지만
부탄가스도 얼어버려 부탄가스를 켜는데만 10여분이 걸렸다.

보다가 속이 탄 한 도우미가 서둘러 부탄가스를 사왔다.

"왜 이렇게 생고생들을 하는 겨, 정말 가슴아파 못보겠네."

자신이 잘못 살아서 이렇게 어린 활동가들이 이 혹한에 단식농성을
하게됐다며 지난 1일부터 농성에 합류하고 계신
오영자 어머님(비리재단 축출, 독재타도를 외치다 스스로 목을 맨
서울교대 박선영 열사의 어머님)은 또 다시 눈물을 훔치시며
우리를 타이르셨다.

"내가 가서 가스난로 사올께. 그거 쓰자?  응?
이러다 몸이라도 상하면 어쩔라고 그래."

어렵사리 고개를 젓고 마는 우리.

"하이고, 정말 청와대가 우리 애기들 이러고 있는 거 아는지 몰라…"
매 순간 안쓰러워 하시는 어머님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은 쉽지가 않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어머님 정말 괜찮다니까요"하며 환하게 웃어드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왜 그렇게 고행을 자쳐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본래부터 우리의 조건이 그러했고 절박한 것이 있었다면 설명이 될까?

손에 뭘 들고 오지 마십시오. 대신 한 사람 손을 잡고 오십시오

우린 "국가보안법 철폐! 올바른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주장하며
농성을 고민하면서 명동성당을 우리의 농성지로 선택했다.

아니 별다른 선택의 길이 없었다.

국회 앞으로, 민주당사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곳에서
농성을 보장받는 것은 국가보안법 철폐가 이뤄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니
우리의 선택지는 명동성당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명동성당측은 한통파업 이후 시설물보호요청을 해놓은 상태였고
우리는 쫓겨날 각오와 노상에서 단식농성을 할 각오를 하며 성당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천막을 치거나해서 성당측을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성당측을 자극하는 것은 우리의 요구 사안을 흐려
'국가보안법 문제와 인권위원회 문제'를 제대로 알려내는데
큰 장애가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난 30일 한 차례 성당측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성당측과 일정 정도의 타협으로 현재의 들머리 계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막을 거부하고 3일간을 들머리 계단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침낭과
비닐을 뒤집어 쓴 채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일 내린 눈은 천막을 치진 않고 잠을 청하긴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다.

잠잘 때 위에 얻었던 비닐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천막을 쳤다.

명동성당 측과의 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쳐진 천막은 다음날 탈수증세를 보이고 누워버린 두 명의
단식농성단 때문에 걷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리는 천막 안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천막을 얻은 우린, 지금 이 정도면 족하다.

매서운 추위를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지만 우리에게 절박한 것은
추위를 막아줄 스티로폼과 몸을 녹여줄 난로가 아니다.

혹한기에 노상 단식농성을 하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절박하다.

1월과 2월을 넘기면 언제 또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절박함과 처절함이
이곳에서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이다.

추위에서 몸을 돌보거나 내일의 내몸을 생각하게 하는 여유를 잃게
하는 것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투쟁에 나서는 것만이 지금 우리에겐
소중하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에게 난로를 가져다 주고 싶은 분들은 몸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나누어주시길, 함께 투쟁하고 있음을 보여주시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힘내라는 한마디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얼어버린 듯한 손발을 주르면서도 한명씩 찾아와주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추위 정도야 하는 생각에 입을 싸맨 마스크를 열게 된다.


쫓겨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지난 30일인가 민주당의 이종걸 의원(민주당 인권위원장)이 농성장을
찾았다가 봉변을 당하고 갔다.

올 필요 없다고, 오면 봉변을 당한다고 그렇게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고를 무시하고 들이닥친 것이었다.

결국 이종걸 의원은 소금세례를 받고 쫓겨났다.

너무했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일이
없는 듯 하다.

정말 너무한 것은 그들이 아닌가?

52년의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잘 알면서 당정싸움에 휘말려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게 언젠데
아직까지 변변한 안조차 만들지 못하고...

만든 안이라는 게 법무부의 안보다 더 못하지....

정말 민주당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서
왜 농성장을 찾아오는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실 역시 마찬가지. 과연 누구의 탓인가?

이렇게 길거리로 우리를 내 몬 것이...

이곳에 찾아올 힘이나 생각이 있다면 차라리 책상에 앉아 우리의 요구가
무엇인지, 민심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에나 귀를 기울여야할 것을...

결국 시민사회비서실 관계자는 "당장 가라"는 호통을 듣고서 농성단에게
얼굴도 내비치지 못한 채 사라졌다.


농성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너 또 단식이다 뭐다 하고 있는 거 아니지? 알아서 해."

나중에 맛난 것을 사달라는 말에 큰 언니가 뭔가 냄새를 맡았는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참 내가 맛난 것 사달라는 말 처음 하냐?"
대충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28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연합 단식농성이 시작되던 날,
새벽에서야 짐을 꾸린 나는 부모님께 이러저러한 농성이 있는데
사람들을 보살펴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집을 빠져나왔다.

계속 불러대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지난 30일은 엄마의 생신.
아침 일찍 미역국은 드셨냐고 전화를 하니 엄마는 아직 주무시고 계셨다.

"못 가서 엄마 미안! 9일날 갈게."
엄마는 졸린 듯한 목소리로 "응"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농성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집으로 달려가
우리 엄마를 껴안는 일이다.

또 가족 얘기가 나오니 코끝이 찡해진다. 역시 나는 어린가 보다.

오늘도 우린 무사하다.

오늘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장기수 어르신들, 학생들 게다가
우리의 농성을 보도했던 언론매체 종사자까지...

그들의 방문을 받으며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이 우리가 딱하고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국보법 투쟁과 국가인권위원회 설치투쟁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 밤(1월 3일)이 지나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농성 8일째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일은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으로 하루의 농성을 접으며 진흙같은 하늘에 뜬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내일 역시 모두들 일어설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 잡기장 | 2007년 02월 19일 21:02 | 링크할 이 글 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