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 정신인가?
요즘 이런 저런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진심으로 드는 생각은 “우리는 정말 제 정신인가?” 하는 것이다.(이 ‘우리’에는 분명 ‘나’도 포함된다.) 내가 이렇게 묻게 된 것은 꼬리를 무는 질문들 때문이다.
1. 방송법·신문법을 바꾸자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 재벌과 거대 신문이 방송에 진출하면 경제가 나아질 거라고 믿을까?
2.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하라며 농성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쩌면 보이지 않는 힘 앞에서 ‘꼭두각시’ 노릇하는 게 아닐지 의심해 봤을까?
3. 저들에 맞서다가 “100일 뒤에 법 통과시키자”는 ‘합의’를 이끌어낸 사람들은, 잘 들춰보지도 않은 몇십개의 법률을 하룻밤 사이에 뚝딱뚝딱 통과시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할까?
4. 뚝딱뚝딱 통과시키는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못해서 몇개의 법률은 통과시키지 못한 ‘의원 나리들’에게 계속 세금을 바쳐야 하는 걸까?
5. 법무장관이라는 사람이 국회에서의 폭력을 엄단하겠다고 하자 “당연한 일”이라고 논평하는 의원들과 기껏 “야당 탄압”을 우려하는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시정잡배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6. 그래서 지금 이 현실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도 아까울 정도의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가 아닐까?
내 질문은 여기서 그칠 수 없다.
7. “가톨릭 국가도 놀랄 정도”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 종교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물결이 넘쳐나고 신문과 방송은 이 소식으로 도배질을 하는 게 이상한 건 나뿐인가?
8. 이런 현상을 “사회 정의” 또는 “참 스승” 또는 “양심과 도덕”에 대한 갈망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돈’ 대신 ‘사회 정의’를 갈망하고, ‘가벼운 독설가’ 대신 ‘참 스승’의 말에 귀 기울이며, ‘눈 앞의 이익’보다 ‘양심과 도덕’을 높게 평가한다고 믿을까?
9. ‘추모 물결’은 그저 정의, 스승, 양심, 도덕 따위 ‘멋진 말들’을 ‘제물’로 삼는, 거방진 ‘사육제’는 아닌가?
이쯤에서 질문을 그칠 수 있으면 나도 행복할 것이다.
10. 학원 광고 모델로 나온 한 음악인은 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게 자신의 ‘음악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을까?
11. 무슨 깊은 뜻이 있을지 모르니 기다려보자던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행동에는 어떤 깊은 뜻이 있기에 귀를 기울여 볼 가치가 있다고 평소에도 믿던 사람들일까?
12. “예술가나 연예인은 좀 널럴(?)하게” 봐 줄 필요가 있다는 사람은, 자신이 사실 “예술가나 연예인”을 무시하는 게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13. “나는 공교육을 비판했지 사교육을 비판한 적 없다”는 그 음악인은, 우리가 사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과외’(학교의 정해진 교과 과정 이외의 수업)를 뜻하며 그래서 ‘저 사교육’은 ‘공교육’ 없이는 존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공교육의 부실화를 부추길 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봤을까?
14. 저 음악인을 비판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시장의 논리’에 빠져있으며 시장주의를 진보로 착각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진보주의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사실 ‘자유주의자’이며 그래서 자신이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허깨비 진보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까?
민주주의라는 게 뭔지, 이 사회의 가치는 뭔지, ‘진보’ 운운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이 14가지 질문은 결국
15. “우리, 정말 제 정신인 것 맞아?”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ㅋㅋ..
13.번까지는 매우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14번.이 좀 헷갈립니다.
말씀하신 "진보주의자"는 좌파, 혹은 사회주의자(혹은 반시장주의)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시장주의, 체제 내 개혁은 진보와는 상관이 없거나, 혹은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신지 궁금합니다.
시장주의와 체제 내 개혁은 별로 상관 없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저 질문은 누군가를 “진보주의자”로 지칭하는 사람들 머리 속의 “진보주의”는 도대체 뭐냐를 묻는 게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진보주의자”는 사실 “자유주의자”아니냐?
도무지 숙연해지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포스팅입니다.
글감덩어리군요.
마리신님 이번 포스팅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글쓰기 토픽을 14개나 잡았군요.
공감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용산 참사는 50일이 지나도록 장례도 못 지내고 있는데 그 7명의 죽음과 1명의 죽음의 무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다만 하나의 상징일 뿐이고 그 상징을 추모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더 진화하든지 멸종하든지 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어제 만난 분은 더 비관적으로 얘기하시더군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런 일은 없을 거 같다"고요.
이 얘기 들으니 더 끔찍합니다.
저라도 정신 좀 차려야 하는데,
먹고살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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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농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