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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파업] 악법 저지 투쟁 동참

표현의 자유와 언론 다양성을 파괴하는 이명박 정권의 법 개악을 저지하려는 투쟁에 힘을 더하기 위해 '블로그 파업'에 동참한다.
2008/12/29 16:11 2008/12/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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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신용'? -- 기록을 위해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역시 김규항 -_-b

돈 갚는 약속

갚지 못한 돈과 주지 않은 돈

 

신뢰와 신용 (원글과 달라져서 기록 가치가 없지만, 아무튼 시발점이 된 글의 흔적이다. 트랙백은 막혀있다. 2012년 4월8일 삭제됐다.)

간략한 해명 (이 또한 트랙백이 막혀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남의 말에 귀막고, 자기 블로그에 오는 다른 사람도 못듣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가? 2012년 4월8일 삭제됐다.)

 

위의 두 글이 사라진 2012년 4월8일 이런 글이 등장한다. 팩트는 모르지만 들은 이야기 (3년여의 세월이 지나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괜한 말이 아니다.)

2008/12/07 11:57 2008/12/0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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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라는 현상과 '집단지성'의 허구성

'미네르바'라고만 알려진 인물이 쓰는 경제 예측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여러 측면을 반영한다. '미네르바'라는 현상을 간단히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이 현상에 얽힌 문제들 가운데 두가지에 관심이 있다.

 

첫째, 지배층에 대한 집단적, 전면적 불신을 꼽을 수 있다. 뭔가 경제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데, 지배층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이 현상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몇달전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촛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촛불'이 지배층에 대한 전면적이고 집단적인 거부와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봤는데, 이 또한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불신의 대상들은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 '리만 브러더스'(이명박, 강만수)로 대표되는 현 집권 세력이 한줌의 신뢰도 얻지 못한다는 건 긴 설명이 필요없다. 경제 학자나 전문가들도 신뢰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호하고 어렵다. 그들은 이쪽 저쪽 눈치보면서 대충 얼버무린다는 인상을 준다. 경제신문들로 대표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주로 해온 일은, 기업 이념 옹호 그리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 띄우기가 전부라 해도 그리 심하지 않다. 보수 신문들도 경제신문들과 거의 같은 행태를 보인다. 게다가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진보적이라는 언론도 신뢰를 못얻는다. 그들은 재벌을 비판하고 부동산 거품, 주식 거품 따위를 꾸준히 경고했으나, 그들의 비판은 많은 '생활인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안되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이렇게 믿을 데라고는 없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미네르바'라는 익명의 인물은 과감하게 말한다. 특히 호소력을 갖는 것은 “믿을 놈이 없으니 알아서 각자 생존 방법을 찾으라”는 외침이다.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듯한 그의 목소리는 메시아의 목소리와도 같은 느낌을 준다. “88만원 세대여, 영어책 대신에 짱돌을 들라”는 식의 외침보다 “각자 제 살길을 찾자”는 목소리는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처럼 들리게 마련이다.

 

둘째, '미네르바'라는 현상은 이른바 '집단지성'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블로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터넷 공간은, 전문가들 못지 않은 숨은 전문가가 얼마나 많은지 여실히 보여준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인터넷은, 지식의 소수 독점을 깨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열어준다고, 그렇게들 떠들지 않았던가? '촛불'을 계기로 이른바 '집단지성' 예찬론이 극에 달하지 않았던가? 경제 분야에 관한 한 숨은 전문가가 별로 없다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이 반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초유의 경제 위기 앞에서 '집단지성'은 작동하지 않고, 모두 '미네르바의 말씀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가? 정부도 믿을 수 없고, 언론도 믿을 수 없고, 경제 전문가들도 믿을 수 없는, 극단적인 불안의 시기에, 왜 놀라운 창조성과 순발력을 발휘해 '촛불'을 이끈 '집단지성'은 잠잠한가?

 

나는 '집단지성'이라는 말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영어 'collective intelligence'는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지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성'은 'intelligence'가 아니라 'intellect'인데,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보면 지성은 “지각된 것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 작용”이다. 그리고 지능은 “새로운 대상이나 상황에 부딪혀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알아내는 지적 활동의 능력”이다. 지성은 새로운 인식을 열어가는 능력이고, 지능은 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지능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촛불의 물결'을 이끈 '네티즌 집단의 능력'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시위 상황이 바뀔 때마다, 네티즌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순간 순간 찾아냈다. 만약 촛불의 물결이 '지성'의 작동이었다면, 지각된 것들(정부와 야당의 태도 변화, 시위 진압 방식 변경, 언론의 보도 태도 따위)을 정리하고 통일하여 새로운 인식을 창출했어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인식'(예컨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와 변화의 국면에 와 있는지에 대한 '집단적 인식', 광우병 문제는 결국 자본주의적 탐욕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집단적 인식' 따위)은 없었다. 다만 '새로운 각성'(이 정부의 본질에 대한 '집단적 각성',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기회주의자일 뿐이라는 '집단적 각성' 따위)만이 남았다. 이것이 각성이지 새로운 인식이 아닌 것은, 이미 대중들이 알던 것을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의 질문은 이렇게 다시 써야 한다. “왜 경제 위기를 맞아 '집단지능'은 작동하지 않는가?”

 

이렇게 쓰고 나면 이 질문이 잘못 됐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아고라를 가보라. '경제 위기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아 합리적인 적응 방법을 찾으려는 집단적 시도'가 얼마나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지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도 믿을 수 없고 아파트도 믿을 수 없는 지금, '경제 위기'라는 밀물 앞에서 '개미' 또는 '천민'이 살아남을 방법이 얼마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지 말이다.

 

주목할 부분은, '미네르바의 예측'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경제 위기라는 '새로운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지배층이 솔직하게 말하기 꺼려하는 것을 쉽고 노골적으로 말해줬을 뿐이지, 우리를 새로운 인식으로 이끄는 게 아니다. 또 대처 방안은 미네르바가 아니라 아고라에 모인 '집단지능'이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집단지능'은 결국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위기에 처할 때 '한 개인이 살아남는 방법'은 없다는 각성을...

 

'집단지능'이 아니라 '비판적 지성'을 획득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인식 곧 자본의 탐욕이 너무나 파괴적이며 그래서 그것을 넘어설 방안을 찾는 게 너무나 시급하다는 인식을 얻게 될 것이다.

2008/11/20 18:39 2008/11/2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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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