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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노동법 반대 투쟁을 어떻게 볼까?

프랑스에서 대규모 대중 반란이 벌어지고 있다. 계기는 우파 정부가 '최초 고용 계약법'(CPE)이라는 악법을 의회에서 '강행 통과'시킨 것이다. 연일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노동조합도 총파업에 동의했다. 이 땅 좌파들은 '노학 연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이라는 점 때문에 특히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정리하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사실관계와 과거 사건들과의 맥락을 챙기고, 사태를 보는 시각까지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1. 사실관계 2. 최근 몇년간 사건들과의 연관성 3. 정치적 맥락 4. 시각 정리 등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1. 사실관계

1) 법의 내용: 간단하다. 26살 이하 또는 미만(어느쪽인지 잘 모르겠다)의 노동자가 21인 이상 사업장에 최초로 취업할 경우 처음 2년동안은 언제라도 아무 이유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알아야 할 내용은 1) 2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지난해 이미 똑같은 권리가 부여됐다는 점('새 고용 계약법' 곧 CNE, Contrat Nouvelle Embauche이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2) 현행 프랑스 노동법은 1개월 이내엔 아무 이유없이 해고할 수 있게 하고 있다는 점(쉽게 말해 1개월을 2년으로 연장한 것이다)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3)57살 이상 고령노동자의 경우 '기간 고정 고용 계약'(CDD, Contrat a durée déterminé) 기간을 최대 2년(또는 1년6개월)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법도 이번에 함께 통과됐다는 점이 있다. (CDD 부분은 정보가 별로 없어서 정확하다는 자신이 없다. 이 점을 고려해 그냥 참고만 하시라.)

 

2) 법 통과 과정: 사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최초 고용 계약법은 그 이전에는 몰라도 최소한 올해초부터는 상당히 논란이 됐고 학생들은 크게 반대했다. 이 반대 물결은 지난 3월7일 10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파 정부는 이런 시위 와중에 상원에서 법안을 강행 통과시켰다. 법안을 놓고 의원들간의 토론을 충분히 진행하는 전통을 무시하고 헌법에 규정된 특별절차 곧 '토론종결'을 발동해서 밤중에 밀어붙인 것이다. 말이 토론종결이지, 토론없이 마구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3) 프랑스 경제 현실: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004년 2분기 현재): 프랑스 2.8% 아메리카 4.8%, 영국 3.6%, 독일 1.5%, 일본 4.3%, 벨기에 2.7%, 스페인 2.6%, 이탈리아 1.2%, 네덜란드 1.4% 실업률(2004년 9월 현재): 프랑스 9.6%(25살 이하 22.0%) 아메리카 5.4%(11.8%), 영국 4.6%(12.1%), 독일 9.9%(11.4%), 일본 4.6%(-), 벨기에 7.7%(19.6%), 스페인 10.6%(21.6%), 이탈리아 8.5%(26.8%)(2003년 현재), 네덜란드 4.7%(7.9%)

 

2. 최근 몇년간 사건들과의 연관성

최근 몇년동안 프랑스는 우파 정부건 좌파 정부건 지속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조처들을 취해왔다. 조금 길게 보면 1994년 이번과 유사한 노동규제 완화 시도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고 95년엔 연금개악 투쟁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싸움이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97년부터 2002년까지는 좌파인 리오넬 조스팽이 총리로 있었는데, 이 때도 비슷한 규제 완화 조처가 계속 이어졌다. 이에 맞서는 투쟁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2003년 우파 총리가 다시 연금개악을 시도하자 반대 투쟁이 벌어졌으나 이 싸움도 실패했다.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 등 이른바 '다수의 좌파세력'(Plural Left)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한 사회당은 이 싸움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렇듯 프랑스 대중은 지난 10여년동안 좌·우를 막론한 신자유주의적 정부 정책을 거의 저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삶은 날로 불안해졌다. (물론 불안이라곤 하지만 이 땅의 현실과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이렇게 쌓인 불안과 불만이 최초의 정치적 승리로 이어진 것이 바로 지난해 5월29일 유럽헌법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를 부결시킨 것이다. 대중들은 유럽연합의 강화가 결국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인식했다. 선거 결과가 이를 분명히 말해준다. 결과는 55% 대 45%였지만, 세부 결과를 보면 계급적 투표 양상이 분명했다. 육체 노동자의 79%, 실업자의 71%, 한달 수입 1500유로(187만원정도) 이하 가구의 66%가 반대했다. 반면 파리 중심 지역에서 찬성률이 66%였고 한달 수입이 4500유로 이상인 이들은 74%가, 파리의 부유층 지역 뉠리의 찬성률은 82.5%에 달했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파 정부는 물론이고 좌파인 사회당조차 유럽헌법에 찬성했다는 점이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어서, 좌우의 대표신문인 <르몽드>와 <르피가로>를 비롯해 <리베라시옹>, 월간 <르누벨옵세르바퇴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언론( 또는 언론인)들이 찬성 캠페인에 참여했다. 심지어 하버마스와 귄터 그라스 등 유명 독일 지식인 11명이 찬성투표를 호소했음에도, 대중은 단호하게 '반대'를 외쳤다. 이 사건은 집권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를 대표하는 사회당에게도 큰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그리고 10월부터 11월초 이주민들의 폭력 시위 사태가 전국을 휩쓸었다. 두명의 젊은이가 경찰에 쫓기다가 숨진 걸 계기로 시작된 이 사태는 이주민들의 열악한 생활 조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사태가 긴급하게 돌아가자, 강경진압을 주도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사태 수습은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에게 넘겨졌다. 그는 빈민지역 경제 대책, 특히 청년 실업 대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법안은 거의 전적으로 드빌팽 총리가 주도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빈민지역 청년실업 완화 대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장기적으로는 프랑스 지배계층의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의 맥락에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빈민층 청년 실업 대책'의 맥락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대책이 아니라 상황만 악화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주민 폭력 시위를 방관하던 엘리트 청년층들까지 들고 일어나게 됐다. '소르본 대학'으로 상징되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은 학생들이 이번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

 

이렇듯, 이번 사건은 지난해 유럽헌법 부결을 주도한 대중들의 불만이 '투표장'을 벗어나 '거리'로 나왔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번 싸움은 향후 프랑스 정치 '헤게모니'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이냐를 결정하는 의미를 지닌다고도 할 수 있다.

 

3. 정치적 맥락

이 사건의 정치적 맥락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헤게모니 주도 문제와 직결된다.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이 법 찬성쪽의 태도와 반대쪽의 태도를 확인해야 한다.

 

1)찬성쪽: 집권 여당은 이 법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켰다. 특히 이 법은 사실상 드빌팽 총리 작품이다. 우파 신문 <르피가로>의 고참 정치기자 필립 굴리오(Phillippe Goulliaud)는 이렇게 평했다. “드빌팽은 자신의 개인적 미래를 이번 개혁에 걸었다. 지난 두달동안 사실상 그가 단독으로 이 일을 이끌었다. 그는 이번 일을 자신의 대선 캠페인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한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측근인 드빌팽은 지난해 유럽헌법 국민투표 부결 이후 정국 돌파를 위해 시라크가 등용한 인물이다. 그에게 최대의 임무는 10%에 달하는 실업률을 낮추는 등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우파 정부 지도층에게 이번 일은 2007년의 대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드빌팽보다 더 심한 우파이자 우파 연합내 또 다른 유력 대선주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해 이주민들의 시위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는데, 이번엔 이 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삼가고 있다. 드빌팽과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그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주듯, 이번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데는 열을 올리고 있다.

 

당연히 규제 완화를 좋아하는 경영계도 이번 사건에 대해선 조금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는 드빌팽 개인의 기획이라는 인식이 작용한다.

 

2)반대쪽: 반대세력의 주도층은 물론 학생이다. 특히 소르본으로 상징되는 엘리트 학생들이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을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경제 상황이 워낙 나쁘다는 점 때문에 반정부적 성향이 상당히 강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세력들은 초기에 대체로 유보적이었다. 이주민들이 몰려있는 빈민지역의 대체적인 정서는 “우리는 지금도 죽을 맛이다. 이보다 얼마나 더 나빠지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이 법에 반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처지와 시위 주도 학생들의 처지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끼는 것으로 봐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좌파 정치세력들은 대체로 이번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도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데, 이들은 지난해 유럽헌법 찬성으로 잃은 지지를 회복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노동계 또한 초기엔 유보적이었다. 최대 노조조직이고 공산당계라는 노동총동맹(CGT)은 계속 총파업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대화를 강조해왔다. 상황이 계속 번지고 학생들의 압박이 심해지자 총파업을 결정했지만, 그나마도 한참 뒤인 28일로 정했다. 그래서 '노학연대'라는 말은 진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학생들이 만든 판에 뒤늦게 발을 담그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옳다고 본다. 물론 개별적으론 노동자들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3)정치적 맥락: 프랑스는 내년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집권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이를 의식하면서 이번 사건의 파장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당은 잃어버린 영향력을 이번 기회에 회복하려고 시도할 것이고, 집권층도 온갖 계산을 할 것이다. 다만 시위대 사이에는 우파도, 좌파도 믿을 수 없다는 비판적 시각이 꽤 있는 듯 하다. 지난 10년동안의 상황을 보면 이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정치인 어느 놈도 못 믿는다'는 분위기가 아마도 대중적 반란의 원동력일 것이다.

 

4. 시각 정리를 위하여

이런 사실들과 변수들을 종합해 파악하면 이번 사건을 보는 기본 시각을 정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신자유주의 반대 대중 투쟁', '68정신의 부활' 등처럼 간명하게 구호식으로 정리하려면, 이런 변수들은 귀찮거나 무시하고픈 것들이 될지 모르겠다.

 

아직까지 명쾌하게 사태를 꽤뚫는 분석은 나오지 않고 있는 듯 하다. 프랑스어로 된 글들은 어떤 게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영어로 쓰인 글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분명한 시각을 보여주는 건 러시아 지식인 보리스 카갈리츠키(Boris Kagarlitsky)가 쓴 '1968 Vice Versa'라고 생각된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번 사건은 대중과 유리된 정치 지배층의 위기를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정치와 삶의 모순을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신자유주의 시대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갈등의 서막일 뿐이다. 프랑스는 다시 한번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 투쟁의 '고전적인 나라'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1968년과의 차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카갈리츠키는, 1968년엔 학생들이 훨씬 급진적이었지만 대중으로부터 어느 정도 고립되어 있던 반면 지금은 덜 급진적이지만 폭넓은 사회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또 당시는 좌파 정치세력이 강력했고 영향력도 지금보다는 컸지만 주류를 대변하지 않은 반면 지금은 '진지한 정치' 영역안에 좌파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회당은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당시보다 더 좌파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그 원인은 경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968년엔 유래가 없던 서양의 경제 호황이 끝물에 이르긴 했어도 여전히 풍요로운 가운데 상황이 나빠진다고 느끼던 시절이라면, 지금은 불황의 끝에 이르러 더는 못견디겠다고 느끼는 시절이다. 그래서 당시 '침묵하는 다수'는 조용히 드골에게 표를 던졌지만, 지금의 대중은 '어느 세력도 믿을 수 없는 절망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참고 글:

카갈리츠키의 '1968 Vice Versa' (영문)

수전 왓킨스의 '대륙의 떨림' (한글 번역본, 2005년 유럽헌법 국민투표에 대한 글)

2006/03/22 16:31 2006/03/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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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과 계급의식

이재유, '계급의식의 형성과 보편화에 관하여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박사학위논문, 2006.

 

글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자신에게 걸맞게 써야한다. 자기 주제 파악을 못하고 쓰면 내용을 떠나서 잘못된 글이다. 그래서 이 글은 애초부터 잘못됐다. 문외한이 철학 박사학위논문에 대해 평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글임을 뻔히 알면서 쓰는 건, 논문을 보내준 저자의 성의 때문이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논문의 문제의식이 아주 흥미있게 느껴졌다는 점도 작용했다.

 

제목만 보면 의도가 선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상당히 야심적인 의도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계급 기반과 계급의식 형성 기반의 불일치 때문에 노동자들이 실패했고, 자본의 공세 속에 신음하면서도 반격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선 계급 기반과 분리되지 않는 계급의식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에 따르면, 쟁점은 '어디에서' 계급의식이 형성되어야 하느냐다. 저자는 시발점을 '공장 밖'(시민사회), 더 좁혀서 말하면 '가족'에서 찾는다. “노동자 계급이 계급을 형성하고 계급의식을 가질 수 있는 장소는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생산하는 장소”이고 이 장소는 다름아닌 가족이다. 가족은 시민사회(공장 밖)의 기초이며 계급의식의 맹아를 지니고 있다. 가사노동은 임금노동과 전혀 다른 논리로 작동한다. 곧 “서로의 동의에 의해 능력만큼, 그리고 필요한 만큼 배분하고 배분받는다. 그 자원은 자본처럼 가족 구성원 중 어느 누구에게 사적으로 소유되지 않는다.” “개인의 보편적 발전에 기반하며 공공의 사회적 생산성을 사회적 부로서 복속시키는 데 기반하는 자유로운 개인성”의 사회가, 가족 관계에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 문제는 어떻게 이 가족의 인간관계를 사회적으로 확대시켜 나갈 것인가가 된다. “개별 가족을 뛰어넘어 시민사회 속에서 어떻게 사회화시킬 것인가?” 그 답의 실마리는 가사노동의 주 담당자인 여성의 조직화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거의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가사노동을 공공화, 사회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본의 측면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인 것, 즉 상품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자본이 지향하고 있는 바와 정반대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고, 그리하여 이 가사노동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생산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헤게모니를 구체화시키게끔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차이에 주목하고 가사노동을 계급의식 형성의 기반으로 삼는 시각은, 문외한인 글쓴이로서는 처음 접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재산도 없고, 아내와 자식과의 관계도 이제 더 이상 부르주아적 가족 관계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엥겔스, '공산주의의 원칙') “우리는 프롤레타리아가 보다 고차적인 가족 형태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남편과 부인들 그리고 어린이들간의 보다 훌륭한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을 기억한다”(프리가 하우그[크?], '공산주의당선언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 등의 인용을 볼 때, 분명 노동자의 가족은 자본가의 가족과 다르다. 다만 이를 저자의 주장으로 발전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이것이 전적으로 새로운 시각인지 여부는, 읽은 게 변변치 못한 글쓴이는 모른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품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자본이 가사노동을 지속적으로 상품화함으로써 '돌봄 노동'( 또는 '보살핌 노동')의 영역을 야금야금 침투해 들어간다는 점을 지적한 어슐러 휴즈 또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걸 보면, 이는 저자만의 한계는 아닌 듯 하다. 다만 저자가 “이 글이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람시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들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가능한 한 구체화하는 것 또한 현실적인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도 좀더 세밀해야 한다고 본다. 가사노동이 남성들에게 '하찮고 귀찮은 일'로 여겨지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뭇 여성들은 쉽사리 저자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에겐 '가사노동 떠넘기기'와 '가사노동 띄워주기'가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가사노동 그리고 노동자의 가족이, 임금노동과 자본가의 가족에 비해 '본질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과 '현실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별개라는 점도 남는다. 자본은 이미 노동자 가족관계 또한 심각하게 훼손하고 '오염'시켰음이 분명하다면, 강조할 부분은 본질적 우월성이 아니라 오염 제거 방법인지 모른다.

 

글쓴이가 아는 범위에서만 말하자면, 이와 관련해서는 어슐러 휴즈의 <싸이버타리아트> 1장 '신기술과 가사노동', 2장 '살림용 기술 : 해방자인가 속박자인가'를 참고할 수 있겠다. 휴즈는 “가정은 소외되고 짜증나며 긴장되는 노동 환경의 피난처가 되고 오락과 휴식, 정서적 지원, 성적 자극과 기쁨을 제공하는 장소가 되기를 사람들은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이렇게 쓰고 있다. “정서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이제는 금전적 관계의 일부가 됐음에도, 여전히 이 욕구의 충족을 돌보는 책임은 주부들 몫이다.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면 주부 잘못이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가사 노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임금 노동이 더 따분해지고 더욱 단순반복적인 작업이 되고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이런 욕구 또한 커진다. 그런데 임금 노동이 이렇게 힘들어지는 추세는 새로운 기술 도입의 직접적인 결과다.” 가사노동 문제, 만만한 게 아니다.

 

아마도 이 논문은 누구나 쉽게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이 논문의 기본 문제의식에 대해선, 저자의 다른 논문 '마르크스의 생산력 개념에 대하여'(<시대와 철학> 11권 2호, 2000년 가을호)를 참고할 수 있겠다. 이 논문은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이밖에 이 논문의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지 않지만 참고문헌 가운데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동-사회철학과 정치이론'(최형익) (<시대와 철학> 11권 1호, 2000년 봄호)도 흥미있다. 하나 더 꼽는다면, 프리가 하우그[크?]의 '공산주의당선언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이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이 글은 <선언 150년 이후>(보리스 까갈리쯔끼 외 지음, 이후, 1998)에 실려있는데, 영어본은 여기에서 구할 수 있다.

 

덧붙임: 이재유씨의 박사학위논문 축약본이라고 할 수 있는 논문이 <진보평론>에 실렸습니다. 25호인 2005년 가을호에 실린 글인데 최근(2006년 4월10일)에 인터넷을 통해서 공개됐으니, 관심있는 분들 참고하십시오. 계급의식과 노동자 계급의 자기 생산, 그리고 여성의 조직화

2006/03/15 22:00 2006/03/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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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와 웹2.0

이글루스가 네이트로 넘어가게 된 것에 대한 반응이 두가지로 크게 나뉘는 것같다. 주류는 안타까워하거나 분노한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뿐이다. “이제 왜 저 같은 사람들이 진보블로그 쓰는지 아시겠죠?” (비웃음이나 냉소가 아니고 진정으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돈벌이가 어차피 안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식의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만약 유료화한다면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 또한 충분히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가운데 웹2.0 좋아하고, 웹2.0을 “사용자와 상호 교류하고 사용자들이 내용을 만들어 가도록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것” 정도로 규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글루스를 누가 만들었는가?” “그 열렬하고 진지한 사용자들이 없었으면 이글루스가 15억원의 가치라도 인정받았겠는가?”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글루스에 정열을 쏟았던 운영진과 개발진이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돈이 웬수다. 대기업 밑에서 일하는 처지가 되더라도 부디 첫 마음을 잃지 마시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2006/03/09 13:56 2006/03/0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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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