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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덫'에 갇힌 대한민국, 그 이유는?

'박정희 덫'에 갇힌 대한민국, 그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기사입력 2011-07-01 오후 6:16:11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이광일
메이데이, 2011

 

학문적 논쟁 대상으로 박정희 정권 시기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1980~90년대에 비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학문 외적-이런 표현 역시 문제적이지만-요소에 의해 박정희 정권 시기에 대한 논쟁이 간헐적으로 표출되곤 한다.

돌이켜 보면 박정희 정권 시기는 경제 개발 계획, 자본주의화와 사회 성격, 유신 체제의 등장 원인과 성격 그리고 붕괴 원인, 유신 체제 아래에서 사회 운동의 전개 등 여러 접근이 이루어져 왔다.

서평을 쓰는 나 역시 이 시기 '여공'이라고 불렸던 여성 노동자를 둘러싼 담론을 분석했으며, 이광일도 전작인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되었나>(메이데이 펴냄)에서 이 시기 '자유주의에 포획된 사회 운동'에 관해 분석한 바 있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메이데이 펴냄)는 2개의 비판 지점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한 가지는 정치와 경제를 외재적으로 분리하는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이분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비판 대상은 박정희 시기 '비판적 자유주의' 혹은 '재야'라고 불리던 사회 운동의 헤게모니이다.

전자는 이미 박정희 정권 시기 '경제 성장과 권위주의'를 분리해서 평가하는 '산업화 불가피론'이란 입장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이광일이 언급한 것처럼 일부 진보적 연구자조차 수용하는 해석 틀이다.

후자는 재야와 비판적 자유주의의 이념과 조직적 자장으로부터 당대 사회 운동이 독립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사회 운동으로 진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논지이다.

 

이들 논지가 전개되는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정치와 경제의 외재적 이분법과 관련해서,

(1) 박정희 체제를 둘러싼 논쟁이 재생산되는 중요한 이유가 자유주의적 이분법 때문이며, 이른바 박정희 체제 비판자의 박정희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2) 자유주의 이분법의 효과는 박정희 체제의 모든 문제 근원을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등이다.

 

다음으로 자유주의 정치 세력과 관련해서, 이광일은

(1) 1971년 대선 시기 김대중의 <대중경제론> 그리고 전태일 분신과 광주대단지로 상징되는 사건은 비판적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적 정치 권리와 함께 희미하지만 서민 대중의 삶 개선이란 항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증대시켰다.

(2) 1970년대 재야는 제도 정치와 같은 재현의 정치가 아닌, 운동의 정치에 근접했기에 정치의 본질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재야와 제도권 정치(신민당) 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3)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의 헤게모니는 다양한 대중 투쟁을 반독재 민주화로 수렴하면서, 자유주의 세력의 특수한 이해에 종속시켰다.

(4) 특히 도시산업선교회, 가톨릭노동청년회 등 기독교 노동 운동은 그들의 후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순수한 노동 운동 활동가'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이었고, 이는 이후 노동 운동의 탈자유주의화와 급진화를 예고해주는 것이었다.

(5) 결국 교회는 자유주의의 계몽자이자 이념·조직 수준에서 운동의 급진화를 제어하는 '안전판'이었다.

 

나는 이 책 전반을 흐르는 논지 자체에 대해서 커다란 이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적어도 박정희 체제에 대해 근본적이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논자들은 이 두 가지 논지에 대해 그 자체로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책 전체를 읽으며 든 생각은 뭔가 막혀있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되었나>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자유주의적 이분법은 문제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것 자체로 문제의 해결 지점이 찾아질 수는 없다고 본다.

'추상화의 사다리'가 높은 정치와 경제의 외재적 분리를 당대 지식인들 상당수와 대중들은 받아들였다.

대중들이 능동적으로 독재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단 사실과 당대 경험적 사실 사이엔 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대중들은 경제로 표상되는 삶의 변화를 박정희와 연결시켜 사유했다.

반면 그들은 정치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박정희 정권 시기 당대에 인식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 해답이 이광일이 지적한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이분법으로 만족스럽게 풀리진 않는다.

오히려 왜 지금도 당대 꾸불꾸불한 일상을 살아가던 대중들이 이광일이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해석 체계를 자신의 기억 방식으로 습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은 이른바 '불가피론자'들만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광일이 분석 수준을 지금보다 훨씬 밑으로 내려야하지 않나 싶다.

 

다른 한 가지는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관한 문제다.

이번 책에서도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되었나>와 유사한 논지가 전개되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책에서 이광일이 말하고 싶은 것은 자유주의 정치 세력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은 자유주의가 전유한 민주주의라는 '정치 언어'는 본래 자유주의자의 것이 아닌 좌파의 '정치 언어'였다는 것이리라.

이광일이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제도와 경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셈할 자격이 없는 자들의 것이라는 자크 랑시에르의 말을 인용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당대 민주노조운동이나 폭동을 일으킨 광주대단지 주민들이 사용한 언어는 '적의 언어'였다.

비판적 자유주의자들은 막 태어난 급진주의의 씨앗을 그들의 방식으로 길들이려고 했고, 주체들은 그것과 다른 언어나 문법을 지니지 못했다.

아마도 이는 이광일이 당대 대중 운동을 지배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나, 그것이 재구성되는 '상식' 수준이라는 그의 문법의 맥락과도 그리 다르지 않을 듯싶다.

이광일은 결론에서 "중요한 점은 박정희 체제의 성패보다 오히려 그 비판 세력의 한계가 좀 더 성찰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지만, 역시 그 방식이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자유주의자들이 인민이 전유해야할 민주주의란 언어를 오랫동안 빼앗겼다'는, 이른바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타격'은 타당할 수 있지만, 다소 진부하지 않은가?

자유주의자들은 인민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동원하지만, 그 임계점을 넘어설 경우에는 비정하게 그들에게 '오명'을 씌운다.

과격한 세력, 선량한 시민과 다른 존재 등이 인민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자들이 계속 통제할 수 있으려면 제도화된 지식과 실천이 담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체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고, '민중'이란 새로운 발견에 잠시 흥분했던 비판적 지식인들도 다를 것은 없었다.

 

나는 이광일이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왜 이토록 오랫동안-이광일은 이제 역사적 임무가 종결되었다고 언급했지만-자유주의 그리고 이들이 관리하고자 했던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치와 민주주의가 반복되고 있는지 경험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나의 단견이지만, 박정희 체제의 경험적인 부분을 분석하는 3~5장 사이는 전체 논지와 유기적 긴장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끝으로 결론에서 이광일은, 중요한 것은 각 영역에서 이론·실천 작업의 불완전성에 주목하고, 경계를 재구성하며 노동 중심성을 반복함이 아닌, 각 운동 정치의 입장에서 탈자본의 프로젝트를 제출하는 것이 생산적이며, 이것이 민주주의, 발상과 실천의 급진화라고 주장한다.

아직 나는 이광일이 사유하는 대안적인 이론 패러다임과 급진화의 인식론적·실천적 구체성에 관해서 아직 충분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다음 책에서는 경계 외부의 사람들이 왜 박정희 체제 아래에서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사유 방식을 일부 받아들였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되었는지 발본적인 답변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광일이 언급한 발상과 실천의 급진화의 윤곽도 같이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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