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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민]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하늘을 덮다, ...>를 읽고, 나도 당신을 지지합니다… 너무 늦어 미안합니다(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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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참세상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하늘을 덮다, ...]를 읽고,

나도 당신을 지지합니다... 너무 늦어 미안합니다

등록 날짜 2013년08월03일 01시15분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공감까지 바라지 않는다. 사실이라고 인정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중략… 동정받고 싶지 않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안됐다, 나라면 저렇게 살지 못했을 텐데… 대단하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가엾다 따위의 동정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 그 누구라도 동정의 눈길로 내게 손을 내밀지 않길 바란다. …중략…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겪었던 뼈를 깎는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그 일을 덧붙임 없이 사실 그대로 쓰려고 한다. p28-33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은 서평이 아니다. 이 글은 그동안 피해생존자의 고통에 무심했고, 그의 진실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이며, 늦었지만 피해생존자에 대한 지지의 글이다. 덧붙여 고통받고 있는 그를 내버려둔 채 여전히 ‘조직 보위’에 여념 없는 그 ‘조직’을 향한 분노의 글이다.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은 피해생존자의 고통스러운 증언을 통해 시작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의 1/3이 피해생존자의 증언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책은 아프다. 글자 하나, 하나에 피해생존자의 고통과 분노, 절망이 묻어 있는 듯했고, 그래서 다음 페이지로 눈을 옮겨가는 것이 두려웠다. “뼈를 깎는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그 일을 덧붙임 없이 사실 그대로 쓰려고 한다”는 그의 말이 없었다면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기에 책을 덮지 못했다.

 

 

‘진보’주의자, ‘진보’조직의 민낯, 종파주의 그리고 조직보위론

 

<하늘을 덮다, ...>에서 나는 ‘진보’주의자, ‘진보’조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종파주의와 조직보위론.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그들이 종파주의와 조직보위론으로 내부의 가장 낮은 자들을 외면하는 모습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그 외면 속에서 숨죽이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삶을 살았을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했다. 어쩌면 이제는 보수정당보다 더 사이가 멀어진 ‘진보’정당, 오랜 위원장 궐위 사태를 겪은 민주노총의 모습은 짙은 화장에 가려 있던 이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교조)위원장은 전교조나 민주노총이 매우 어려운 시기인 만큼 정부나 보수 언론,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 단체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를 빌미로 탄압하고 조직을 와해시키려고 할 것이다. 정부와 싸우기도 어려운데 이 사실만큼은 알려져서는 안된다. 그러니 참아달라고 했다. p67

 

사건은 있었지만, 사건의 교훈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도 잘못했다는 사람은 없고, 다만 오해라거나 다른 정파의 공격이라든가 하는 뻔한 소리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오히려 가해자들이 억울해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래서 종파구조는 참 편리합니다. p162

 

이들의 논리는 한결같았다. ‘거악(巨惡)과 대결하고 있는 조직을 위해 당신이 희생해 달라’. 이 요구를 피해생존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종파가 개입했다. ‘위원장을 낙마시키려는 정파적 색깔 공세다’ ‘뭔가 음모가 있다. 현 집행부와 다른 정파가 지도부를 사퇴시키려고 왜곡한다’ ‘피해자가 성폭력 사건으로 조직을 말아먹으려 한다’(전교조 게시판의 2차 가해글 중 p251)

 

 

참 쉽고, 편리하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논리는 조폭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린 조직원에게 피 묻은 칼자루를 쥐여주며 “네가 이 칼의 주인이 되면 조직이 산다”고 말하는 조폭의 그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지난해 이 사건을 취재한 한겨레 허재현 기자는 전교조가 전방위적으로 취재 보도를 늦추려고 했다며 “이건 시정잡배나 하는 짓입니다. 새누리당의 MB라인 영포회 같은 집단에서나 하는 짓”이라고 강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조폭, 시정잡배. 이것이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들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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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 연대와 통합진보당 정책협약식장 앞에서 지지모임 소속 활동가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참세상]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외면…‘그분’을 위해 목숨 바친 마실장처럼

 

<하늘을 덮다, ...>는 적나라하게 이들의 민낯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종파주의와 조직보위론이 진보진영 내에 발붙일 수 있는 근본원인을 지목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이 아픈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성폭력을 저지른 당사자가 응당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해자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조직으로서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조직이 공동체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책임을 넘어 공동체의 책임과 과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성폭력은 공동체의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권력 관계로 인해 발생해왔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개인이 조직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조직 내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문화가 성폭력을 발생시킨 것이다. p209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피해생존자에 대한 외면과 통합진보당 이00, 충남대련 김00 성폭력 사건에서 보이는 2차 가해자들의 안하무인격 적반하장은 아직 우리는 이 아픈 지적을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점을 아프게 상기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의 2차 가해자들이나 2차 가해자들의 행위를 용인했던 수많은 이들(이 중에는 국회의원, 민주노총 전 위원장, 진보정당 전 대표 등도 포함된다)이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만들어낼 끝없는 거짓이다.

 

만화가 강풀이 5.18민주항쟁을 주제로 그린 웹툰 <26년>에 ‘마실장’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1980년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마실장은 광주에서 자신이 행한 행위를 정당화하려 ‘그분’ 마저도 정당화하고,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 마실장은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살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사건의 2차 가해자들과 그들에게 동조한 많은 이들이 마실장이 될 것만 같아 두렵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불러오듯 이들은 최초의 거짓을 감추기 위해 끝없이 거짓을 덧대고 덧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책은 결국 더 많은 거짓이 스스로를 포위하기 전에 단 하나의 진실로 돌아오는 것뿐이다.

 

 

쉽게 권유할 수 없는 책, 하지만…

 

소위 ‘진보적’이라는 조직이, 그리고 조직의 성원이 자행하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확인해나가며 어떤 대목에서는 몇 번을 다시 읽고, 읽으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분노로 숨이 컥 막히면 심호흡을 하고, 감정을 다잡고, 또 다시 분노가 차오르면 다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책을 모두 읽어냈다.

 

그래서 선뜻 <하늘을 덮다>를 읽어보라고 권유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아픈 기록이고, 읽는 이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보는 고통과 불편함을 겪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두에 밝혔듯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뼈를 깎는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그 일”을 증언하는 피해생존자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길은 분명 이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를 향한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가 늘어나기를 희망한다.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피해생존자의 간절한 바람이 하루 빨리 이뤄지는 길은 우리의 지지와 연대, 그리고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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