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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_ 잊고 싶은,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1639일 생존과 지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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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 잊고 싶은,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1639일 생존과 지지의 기록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 메이데이 | 2013년 6월 1일 펴냄
A4신(153*225, '신국판') | 576쪽 |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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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일로부터 5년이 되어가는 긴 시간 동안의 투쟁의 나날들. 붉은 피가 뚝뚝 듣는다. 그러나 그녀는 크레인이나 교회 첨탑에 오르거나 대한문 광장 앞에서 공공연히 이 사건의 진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으로 이들의 투쟁은 다른 사회적 정의와 인권을 위한 정치 투쟁 리스트에조차 오르지 못한다. 모두가 잊혀지고 버려지면서 성폭력은 계속되고 확장되어왔다. [...] 

 

그 적들이 지인, 남편, 심지어 형제나 아버지 등 친족일 때 그 투쟁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적들이 자기 삶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정이 곧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면서 엄청난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을 겪는다. 이 사건은 조직 내 가까운 동료와 리더들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 언론, 가해자의 아내, 심지어 일부 ‘진보’ 정치인까지 가세한 유례없이 길고 광범한 2차 가해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진 보’적인 전교조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했고 그 공동체의 일부로 자신을 정체화했으므로 ‘가해자’를 가해자로 인정하는 과정은 그 자신이 기대온 ‘진보’라는 가치와 그를 실현하려는 그동안의 생활양식을 부정해야만 하는 깊은 고통을 수반했다.
 

‘진보적’ 사회운동과 학생운동 내에서 성폭력은 사실상 일종의 ‘구성적 외부’와도 같은 것이었다. 주류 사회가 일부일처제와 함께 ‘매춘’과 ‘간통’이라는 제도를 그 내부적 외부로 하여 존재해온 것처럼 말이다. ‘진보’라는 수식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 내부에서 성폭력의 발설은 언제나 금기였다."

_  11~13쪽, 추천의 글(허성우/성공회대 교수, NGO대학원 실천여성학 전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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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동사회 성폭력, 그리고 특히 이 사건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누가 집단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우리’는 누구인가의 문제 말이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라는 ‘집단’에 가해진 공격은 속해 있는 집단 구성원 모두의 비호를 받는다. 그런데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 생긴 문제는 그 개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집단의 문제가 되기도 하고 개인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사건의 피해당사자는 비혼 여성이었고, 조합원이었고, 운동사회의 구성원이었다. 가해자는 기혼 남성이었고, 간부였고, 운동사회의 대표 중 하나였다. 가해자와 그를 대변해온 일군의 대표자들은 조직 안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더욱 보호되었고,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조직의 성원 중 하나일 뿐이었고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조직의 이해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렇다면 이 조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조직 내 구성원 간의 직위를 둘러싼 이런 이중 기준이 조직의 상식으로 자리잡는 순간. 그 조직은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 -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다.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누구를 위한 대의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피해당사자가 사건 이후 겪은 고의적 은폐, 절차적 지연, 책임 떠넘기기, 악의적 소문 유포 등 집단 내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은 피해당사자의 성원권을 효과적으로 박탈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피해당사자가 계속해서 얘기하는 조직의 ‘배려 없음’, ‘성의 없음’ 등의 진술은 ‘공감과 연민’이라는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읽었다. 벌써 사건이 발생하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직 차원의 공식 백서를 출간할 수 없었다는 것이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여러 차원에서 이 책은 백서白書, whitepaper가 아니다. 백서는 보통 특정 사건이나 주제에 대한 공식적인 종합 보고서를 지칭하며, 보통 사건의 종결 이후에 발간되어 사건 전후의 사정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밝혀 기록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사건의 핵심 관련 당사자 조직인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발간되는 공식 보고서가 아니기에 발간되는 그 순간부터 갑론을박이 다시 시작될 운명을 타고났다. [...] 그래서 이 책은 하얀색의 백서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피해당사자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 보라색의 책purplepaper, 紫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가 성취해낸 놀라운 자기객관화 같은 것을 기대한다면 이 책을 읽기는 꽤 괴로울지도 모르겠다(또한 그런 성취를 기대하는 것은 자기몰입적 자아에 빠져들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또 다른 폭력이기도 하다). 피해자는 여전히 분노에 차 있고, 절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은 불편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독자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던지는 질문에 귀를 기울일 것을 제안하고 싶다. 피해자가 지금도 조직에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아픈데 왜 피해자의 말을 무시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아끼고 사랑하고 헌신했던 조직의 구성원이었던 나를 위한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왜 나는 이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 누가 이 조직에서 보호받았으며, 누가 이 조직에서 소외되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조직이 민주적이고 정의로웠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이 아프게 다가올 때 비로소 우리는 사건에 대한 판단자가 되기를 멈추고 그녀의 고군분투에 경의를 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생존자는 결코 혼자서는 될 수 없다.

 

- 15~17쪽, 추천의 글(권김현영/여성주의 연구/활동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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