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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나...


정보공유연대의 "지적재산권을 향한 거침없는 수다, <이달의 토크> 3 : 이광석 매체연구가"(http://ipleft.or.kr)를 보고, 이번에도 가야지 하면서 안내문 안의 발제문을 읽다가... 버퍼링이 있어서... 메모를 하다보니... 쓸데없이 길어졌네... 

 

 

 

 

저작권이라는 저자에 대한 최소 보상 권리는 인류에 공헌할 지식의 저장고로써 기능함을 원칙으로 삼아 발전했으나, 현실 속에서 지나치게 사적 재산권 행사의 장이 되고 있다

역사 적으로 보면, 인류 지식의 저장고로 기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 같고(검열 위해)... 현대에 와서 법제화가 될 때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안 그랬을 것 같음... 그러고 보니, 저작권법의 목적에 명시된(지금은 사문화돼버린) '문화발전'이나 '공정이용' 등의 문구는 당시 어떠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넣을 수 있게 된 것일까...


 

저작물 창작자와 저작권 소유자 중심의 저작권 논리를 뒤흔드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이와 함께 등장
미국의 냅스터나 한국의 소리바다 등 중앙 서버의 중개없이 음악파일을 이용자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개인 파일교환(P2P) 방식

소리 바다도 아마 그랬을 텐데, 냅스터는 중앙 서버가 있었고, 최소한 서버의 중개가 있었다. 그래서 음반협회로부터 기소를 당했을 때, 서버가 폐쇄되면서 서비스가 중단된 것... 그래서 바로 2주 후인가에 그누텔라 같은 서버 없는 본격적인 파일공유로 진화한 것.... 물론, 인터넷 자체가 초기에 p2p였고 유즈넷 같은 서버로 매개되지만 그 매개가 없어져도 지속되는 풀뿌리 인터넷들이 예전부터 있기는 했으니...


 

다 른 하나는 웹2.0의 확산을 들 수 있다. 90년대 중반 이래 시작된 인터넷의 대중화는 2천년대 들어오면서 이용자들의 정보이용 패턴을 확실히 바꿔놓았다. 단순 저작물의 파일 교환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생산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공유하는 생산자의 위치로 상승했다. 즉 이용자 스스로 UCC, 블로그, 미니 홈피를 통해 수많은 글, 이미지, 동영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웹2.0 기업들은 그래서 저작권 체제의 강화에 유보적이거나 살짝 반발하기도... 기존 저작물을 이용하며 생산하기 마련인 대중 생산자들의 (출현이 아니라) 전면화는 이들 기업들이 손 안대고 코풀려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의 총 자본 + 국가의 저작권 체제 강화와, IT쪽의 이들 웹2.0 개별 자본들의 사업모델 간의 충돌 혹은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를 분석하는 어떤 이는 결국 총자본의 이해관계로 수렴될 거라고 하는데... 그렇게 갈수록 자유노동 착취의 웹2.0을 대안이라고 얘기하는 꼴이 되겠네...

 

 
저작권자에 의한 법적 기소로부터 이를 방어할 이용자들의 권리보호 기제가 없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저작권을 마치 실물의 재산권처럼 포장하고, 창작자의 권리'만'을 절대화하는 저작권의 신화들이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저작권을 옹호하는 논리
'낭만적 저자'를 축으로 아직도 저작권자들에 의해 스스럼없이 차용되는 방어 기제로 그들의 몇 가지 수사학적 오류들을 토론하려 한다.
첫째로, 아직까지 디지털이 물질 재화의 논리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
둘째, 창작은 '백지 상태에서' (ex nihilo)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라는 '낭만적 저자'의 가정이

저자 가 낭만화된 것만이 문제인가? 저자 자체는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 수 있는 개념이자 실체인가? 저자성의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구성은 최소한 그 낭만성을 넘어서는 듯 한데... 특히, 저자-독자, 생산자-소비자의 이분화(자본주의적 노동분업)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지, 따라서 낭만적 저자성을 넘어서는 대안으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노동분업의 해체를 포함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작자와 인류의 지식간에 밀접히 주고받는 '삼투 효과'(seepage effects)가 존재함을 뜻한다.

현실적으로 이 원리를 통해 어떻게 인류가 현실의 창작자들과 소통했는지 그 사례들

마지막으로 지적될 것은, 많은 저작권 옹호론이 자본주의 생산과정 내 위치되는 저자의 위치를 외면한다는 점

올커 니! 저작권은 디지털+네트워크 기술로 인해 그 모순이 커지고 이 난리통이 된 것이지만, 언제나 생산관계의 문제... 그런데 그 생산과정 내 저자 위치를 외면한다는 저작권 옹호론자들은 누구일까? 옹호하는 자들이라면 무엇보다도 거대 자본가들인데 당연히 저자를 그 생산과정에 밀어넣고 '사용'해 먹으니 외면할 것도 없을 듯... '론자'들을 말한다면, 자유주의적 저작권 개혁론자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고 이들의 이러한 정치경제학비판에 대한 외면은 분명히 문제이고, 더 나아가 온전한 저작권 체제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사회 전체가 그렇게 들여다 보지 않는 "외면"이 가장 큰 문제 아닐까나...


 

영화감독의 역할은 그저 전체를 디자인하는 구상 노동자 역할로 떨어진다. 감독의 위상이 노동자의 지위로 떨어지는 반면, 대부분의 권력은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로부터 나온다

그런 데, 자본의 입장에서는 더 하위 노동자들과 감독과 같은 노동자를 분별해 왔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특수한 노동자, 대중의 눈에는 '낭만적 저자'인 이들의 특수한 '창조' 노동자성은 ... 문화산업, 창조산업에 긴요하긴 긴요한 가치생산 방식을 드러내는 듯... '창조계급'이라고까지 칭송하는 판이니...

 
 
자본주의의 생산과정내에 저작자를 놓는 이유는, 현실 저작권 실세 관계를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법률상 창작자의 작품이 원저자로부터 대리인(문화산업)으로 위탁, 양도되는 시장의 법칙을 간과

이렇게 말하 면, 앞서 언급한 저자성 자체의 문제를 여전히 놓치게 되는 게 아닐까... 본질적으로는 저자성이란 것이 낭만적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 자기 창작물에 대한 소유-보상권을 갖는 저자가 있기는 한데 그 부의 분배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저자의 자본주의 생산과정 내 위치를 달리할 방도는 없을까나... 노동가치설까지 넘어설 수는 없을까... 자기 생산물을 자기가 소유할 필요 없고, 생산(창작)은 생산(창작)대로 하고 먹고사는 건 따로 근심없이 되는(풀뿌리 공동체들의 이른바 '우정과 환대' 삶의 방식인건데)...

 
 
저작권의 독점화 현상

" 저작권의 독점화 현상"은 좋은 진단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저작물(정보와 지식과 콘텐츠 등)의 독점화와 더불어 그 사회적(법적) 관계 방식을 독점화한다는 의미루다가... 그런데 저작권의 독점화를 막자면, 저작권을 자유시장화 하는 게 있을 것이고(레식 등), 더 나아가 공유지-공동체-공산의 저작권은 어떻게...

 
 
발제를 통해 저작권의 수사학적 오류를 진단해 보고, 그것이 문제라면 그 대안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청중들과 함께 구상해보는 시간

문화산업 보다 더 큰 규모(범위)를 갖는 저작권산업을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의 비물질적 영역에 대한 물질적 지배 방식의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까지 나아가고 잡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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