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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김00의 항소심 재판을 보며 생각한다.

지난 21일,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김00의 항소 재판이 있었다.

우리가 재판에 주목하는 이유는 성폭력의 정의가 법에 달려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다. 재판은 성폭력이 왜 문제이고, 가해자는 어떤 지점을 반성해야 하며, 피해자는 왜 위로받아야 하는지-그 정확한 이유들을 따지는 과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형이 많이 나와도, 엉뚱한 이유를 들어 가해자를 처벌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 판결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형량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정확하고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낸 판결이라면 우리는 이 판결이 읽어낸 지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

이번 재판을 방청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가해자들의 태도를 접했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재판부와 가해자, 변호인 측 모두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두고 있었다. 합의를 위해 열심히 쫓아다녔으면 노력한 것이고, 그럼에도 합의가 안 이루어졌으면 재판부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다.

합의를 종용하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하기에 노동조합 성폭력 관련 규약규정에서는 ‘합의 종용’을 2차 가해로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해자와 가해자 변호인은 이러한 운동질서 내의 질서와 규율은 철저히 무시하고, 오직 법적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만 골몰하였는지, 합의를 종용하며 끊임없이 피해자를 괴롭혔다. 가해자의 부인이 피해자가 근무하는 직장으로 수차례 찾아와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해서 급기야 피해자가 이사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진 바 있다. 법정에서는 사죄한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바깥에서는 부인으로 하여금 피해자를 쫓아다니게 해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기만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서, “구속된 상태로는 피해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마치 출소하면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더 잘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가해자를 보며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둘째, 가해자 변호인과 피고인들(2차 가해자들)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피해자의 피해의식, 과장된 분노 탓으로 돌렸다.

‘민변’ 소속이라는 가해자 변호인에게 묻고 싶다. 피해자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변호인은 합의를 하지 못한 이유가 피해자가 객관, 냉철함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이라면서, 노조에서 피해자의 요구를 다 수용했는데 피해자가 고소를 해서 피해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말까지 했다. 이것은 명백히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며 명예훼손이다.

진상규명 특위에서 권고한 사항에 대해서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어떻게 지지부진하게 처리해 왔으며, 전교조 재심위원회에서 어떻게 2차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정녕 모르는가.

고소를 해서 피해를 자초했다고?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지도부가 사건을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했다면 피해자가 고소를 했을까? 조직적으로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외면당하고 결국 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배신감과 절망감을 저들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바로 그런 식의 태도와 논리가 피해자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셋째, 가해자 변호인은 피해자 주변인들이 피해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 지지모임을 명확히 지칭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피해자 지지모임이라고 유추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 지지모임을 특정 정파의 정치적 행위로밖에 보지 못하는 저 구태의연한 사고. 피해자에게 그렇게 사죄한다고 하면서도, 피해자를 지지하는 모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격리하여 음해하는 이중적 잣대.

피해자 지지모임 카페에 가입한 250명의 사람들은 어떤 정파의 조직적 결정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이다. 단체나 노조에 속한 사람들도 많지만, 단체나 노조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개인의 이름으로 피해자를 지지하고 가입한 것이다. 또한 전교조 대의원대회 당시 발의한 안건은 피해자 동지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무척 단호하고 명확했다. 그런데 가해자 변호인은 마치 피해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넷째,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이 피해자가 치유되는 길인 것처럼 아전인수하며 ‘용서’마저 다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2차 가해자 이** 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야 치유와 평화가 찾아오는데 용서를 못하고 있다면서, 재판부가 먼저 사회적 용서를 해서 피해자가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말을 했다. 피해자 치유의 길은 피해자가 스스로 선택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용서를 하든 말든 그것은 피해자의 선택이다. 죽을 때까지 용서를 안 할 수도 있고, 설사 용서 못 한다고 해도 당신들이랑 상관없이 아주 아주 잘 살 수도 있다. 치유든 용서든 피해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하면 되는 것인데, 왜 가해자들의 항소심에 맞춰서 치유를 하고 용서를 하라고 난리인지?(그래서 사과문도 재판 직전에 냈는가?)

당신들이 할 몫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성찰하면 될 것을, 왜 피해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주문하는가? 왜 용서가 치유라고 강변하는가? 그것도 2심 선고공판 전에 하라고 시기까지 친절하게 정해주는 것을 고마워해야 할지?
이제는 피해자가 용서의 미덕을 모른다고 비난할 건가. 어떻게 그렇게 가해자 중심적인가.

다섯 번째, 2차 가해자들은 성폭력은 개인적으로(우발적으로) 발생한 일이었고, 조직적으로 자행했다는 혐의는 검찰의 정치적 공세라고 말했다.

정치공세라고 하기 전에, 왜 지도부에 대해 그런 의혹들이 생기는지 천천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지도부 은닉에 비혼 여성들을 동원해온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부부관계, 혹은 애인관계로 보이는 것이 공권력의 감시망을 피해 갈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것을 ‘조직적 임무’로 포장해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들이댔을 장면을 상상하면 분노가 치민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무방비로 침해당하면서도 고스란히 감내했을 여성 활동가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우발적인 것이라고? 여성 활동가들의 인권보다 그 놈의 ‘조직적 임무’를 늘 우선순위에 두는 조직적 분위기가 바로 이번 성폭력 사건의 숨은 범인이다.

여섯 번째, 가해자 김00와 2차 가해자들 모두 재판정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계속 부르면서 말하는 것을 보며 분노를 넘어 참담함마저 느꼈다.

그것이 자신들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래야 재판부가 선처해 줄 것이라고 생각 했는가. 진정성을 표현하겠다는 방법까지도 어쩜 그렇게 자기중심적인가. 사죄한다는 사람들이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성폭력 사건에 있어)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도 어찌 그렇게 쉽게 내동댕이치는가.

2차 가해자 손00은 전교조 소식지에 실린 공개 사과문에서도 피해자의 신원을 노출했다. 보수언론마저 최근의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이름이 아닌 가해자 ‘조두순 사건’으로 명명하는 마당에 사죄한다면서, 매일 새벽 기도한다면서 정작 재판정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버젓이 불러대는 저들과 과연 우리가 소통할 수 있을까. 동지라는 이름으로 함께 투쟁 전선에 나설 수 있을까....


이번 재판은 김00 성폭력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한 조직과 그 조직 속의 개인들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가해자 김00은 “차라리 공안사범으로 불리면 떳떳하겠지만, 앞으로 평생 안고 살아갈 ‘성폭력범’이라는 낙인-주홍글씨가 두렵다”고 했다. 가해자에게 묻고 싶다. 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고도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당신은 성폭력을 너무 가벼이 여겼기에 그러한 처벌과 낙인에 대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년 동안 활동가로서 진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당신에게, 그 ‘진자리’에, 여성과 여성의 인권은 없었다. 당신의 명예와 20년 운동의 역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 밑에 한 명 여성 활동가의 인권이 눌리고 짓밟힐 이유는 없다.


2009년 10월 30일
민주노총 김00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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