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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3

영민함..


작품을 끝내고 사람들에게 듣는 말들은 대개....
듣고 싶은 말. 듣기 좋은 말, 듣기 싫은 말, 듣기 힘든 말,
그리고 가슴이 아픈 말과 화나게 하는 말들중 하나입니다.

이중 가슴이 아픈 말들을 하시는
요상 야시꾸리한(^^) 투시력을 가진 분들이 몇 있는데요.
지난번 상영회 이후 이런 신공을 가진 분들을 몇 대했습니다.

이른바 한명의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d급이든 f급이든 좌파적 삶과 행동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피할 수 없고 쉬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약한 고리들을
치시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주로 쓰는 단어들은 '타협' '밀도' '부재'
그리고 '안타까움'... 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장편 작업을 하다 '전략'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되었는데
표현의 '전략'으로서도 사용되어지기도 하지만
제작 과정상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삶의 지속'의 문제와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면서 자주 썼던거 같아요.

당연히 '전략'적으로 판단하여야 겠죠.
과정에서 넘어야 할 난관을 돌아가면서 풀어낼 줄 아는 스킬도 알아야 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의도에 걸맞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도
지금의 현실을 '전략'적으로 사고하여야 했었구요.

헌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는 이른바 이 '전략'이라는 말을
좀 과하게 사용한 듯 싶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많겠지만...
이번 작업의 주된 방향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현실세계가 제공해 주는 이슈와 담론 보다는
사적인 시선의 충만함을 목표했기 때문에
스스로 '전략'적이지 않으면 웬만한 난관을 이겨내기 힘든거니까요.
그러니까 그 전에는 그랬던거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싸움이 끝나느냐 안 끝나느냐를 가지고
제작일정을 결정하려 했던 이런 습성들이 있었다면
이번 작업은 그런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이 없기 때문에
제작과정 자체를 스스로 조직하여야 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 작업의 경우,
어떤 시기에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밀도와 심화의 과정마저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회피'할 수 밖에 없었음을 솔직이 고백합니다.

고백? 고백이라니까 제가 무슨 큰 죄를 지은 듯 한데요. ^^
한 작품을 여러형태로 평가할 수 있고 또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중 주요한 하나의 잣대에 따라,
주어진 작가적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그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회피'도
긴 시간동안 작업해야 할 지금 이 시절의 저의 총합이라 생각하구요.

하지만 그 신공을 가진 분들의 '타협'
(주로 감독의 삶과 현실이 미학적인 영영에까지 미친 그 결과)
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왜냐면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회피' 하듯이'타협'은 했었기 때문이죠.
음.... 음.. 음.

버트.. 가슴이 아픈건 아픈것이고 그런 인간적인 고뇌없이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저만의 고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 이 타협하는 솜씨 좀 봐라~.. 헐)
요즘에는 '영민'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하게 됩니다.

독립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가끔씩 방송이라는 안온한 환경에서 작업하다
'독립'이라는 브랜드에 혹해서, 잠시 들렸다 가는 사람들 하고는
본질적으로 성향과 처한 상황이 다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삶을 대하는 자세 또한 까칠하면서 또는 매우 절실합니다.

저는 이런 삶이 주는 현실과 작가적 우직함,
그리고 활동가로서의 자존감등을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히난 마'흔'클럽 가입을 앞두고 있는 이 불안감 앞에서는)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이 3가지의 기둥들을
'영민'한 토양위에 조화롭게 배치하여야 할 거 같습니다.

현실이 주는 풍부한 관계에서 나오는 성찰들을
활동의 자양분으로 해석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어느 시기에서는 (진정)'전략'적으로 판단하여
그 관계가 작가적 우직함을 강화하는데 복무하게끔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작가적 완성도를 당장 충만케하려는(또는 착각하는) 찌질한 어린아이처럼 굴테고,
바람따라 물결따라 흘러흘러 살다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릴 것이며,
자신의 위치따위는 망각한체 자기들만의 언어만 무한반복하며
점점 더 섬처럼 고립되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시작하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
제가 별다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대안이 되고자 하는 순간 '꼰대'가 되버릴거라는 브레이크도 가끔 작동하지만
그들의 막막함이 나의 막막함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마음이 많이 아픈 것이지요.

하지만 영상활동가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살아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것이고
살아지고 있다는 허무한 삶의 방벽 앞에 머물러 있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 임을 자위하고 있고, 또 실천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완고한게  '영민'함이라는 미덕을 가져야 할 거 같습니다.

작품 하나로 그 작가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더 이상 들키지 않기 위해서도요.
(왜그러냐면 그들이 나에게 한 단어 중 '안타까움' 뒤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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