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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무상의료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아래에서 소개한 내용에서 제기되는 논점은 굉장히 유익하다.

무상의료를 '정책'이 아닌 '민주주의의 확장', 대중의 의료에 대한 참여와 조직화, 그리고 사회화에 대한 경로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소위 'professionalism'과 '대중' 그리고 제도와의 관계 등.... 여전히 고민할 내용은 많고 할 일도 많지만...시간도 여유도 주체도 없다.   

 

 

 

 

 

6월 28일 제7차 무상의료정책포럼이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교실 대회의실에서 무상의료의 급여범위에 관한 주제로 진행됐다. 발제는 서울대 의대 오주환 교수가 맡았다. 발제문 제목은 ‘무상의료,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

 

 

 △ 서울대 의대 오주환 교수

 

우선, 오주환 교수는 ‘무상의료’라는 것이 특별하거나 급진적인 내용이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Universal Coverage’라는 개념으로 이미 2~3년 전부터 이야기해 왔다고 한다.

 

즉 ①의료서비스의 대상자 ②의료서비스의 종류 ③의료서비스 제공시 본인부담금 비율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사실상 무상의료가 가능하거나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수 년 전부터 일반적으로 회자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시작부터 1993년까지 대상자 확대 중심으로 무상의료의 한 측면이 완결되었고(전국민의료보험), 1994년부터 보험서비스 항목의 확대와 본인부담금 축소(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추진되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이미 대상자가 전 국민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남은 무상의료의 쟁점은 의료서비스의 종류와 그것이 제공될 때의 본인부담금 두 가지 측면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어 오주환 교수는 전문가와 국민, 그리고 시장주의자들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급여범위와 본인부담금 등 무상의료의 쟁점을 만들게 됐다고 분석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국민은 간병비나 노인틀니, 치석제거, 의사가 권고하는 추가적인 의료서비스 등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의사가 권고하는 추가적인 의료서비스나 의약품 등에 대해서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시장주의자들은 ‘의학적 필요성’을 뺀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오주환 교수는 ‘사회적 가치’와 ‘비용효과성’에 대해 서로가 불균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민들은 의료서비스나 의약품의 비용효과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지한 반면, 실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비용효과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인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오주환 교수는 전문가들이 아닌 국민 대중이 무상의료의 급여범위를 결정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주환 교수는 영국의 ‘시민위원회’ 모델을 제시했다. 영국은 이러한 의료서비스의 급여범위를 정할 때, 법원의 배심원제와 같이 성별, 나이, 지역, 장애 여부 등의 균형을 맞추면서 무작위로 국민을 선발하여, 전문가들의 최신 정보를 듣게 한 후, 충분한 토론을 하고 의료서비스의 보험급여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의 민주주의 방식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숙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영국을 비롯한 스웨덴, 캐나다 등 다른 국가들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는 것을 강조했다.

 

 

 

 국가  예시
  영국 NICE 시민위원회
  미국 Oregon 주의 공청회, 지역사회 회의를 개최, 전화설문을 통한 대중의 가치 파악
  스웨덴 의회 우선순위 선정위원회(Parliamentary Priority Commission)에서 설문조사 실시, 시민 배심원을 통한 대중의 피드백
  캐나다

최근 의약품 정책에 초점을 맞춘 Ontario 시민위원회가 조직됨.

단, 아직 그 참여의 정도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

  뉴질랜드 핵심 서비스 위원회(Core Services Committee)에서는 설문조사, 시민회의, 토론, 포럼 등의 방법을 통해 우선순위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

 

시민위원회, 즉 20~30명의 평범한 국민들이 모여서 전문가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것만으로 과연 급여범위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오주환 교수는, 일단 시민사회단체들부터 그런 생각을 깨야한다고 조언한다. 오 교수는 시민사회단체나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미 전문가 수준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전문가들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급여범위 결정 등에 관해서 시민사회단체가 전문가적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주환 교수는 이런 부분부터 국민에게 결정권한을 돌려주어야 하고, 시민사회단체는 그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분한 정보, 충분한 토론, 충분한 심사숙고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무상의료 실현에 있어서 급여범위의 문제는 국민에 의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영국 시민위원회 위원들

 

 

오주환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이러한 실험을 해봤다며, 지난해 11월에 시행한 한국형 시민위원회 진행 결과(An Experiment of Citizen Council in Korea)를 언급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우선순위 원칙 및 적용방안’이라는 연구 보고서에 포함된 시민위원회 진행 결과는 오주환 교수가 볼 때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포럼 자료실 발제문 참조]

 

오주환 교수는 시민위원회가 무조건 보험급여 확대만을 주장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국민에게 결정을 맡기면 무조건 모든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이다.

 

실험은 시민위원회 진행 전 사전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토론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친 뒤 최종설문을 진행하여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예를 들어 “도입하려는 신의료기술의 효과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꼭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존재(예: 줄기세포 관련 신기술)하는 경우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사전설문에는 50%가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최종설문에서는 25%만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결과가 나왔다.

 

또한, “심각하게 목숨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넓은 범위의 대상자가 걸리는 질환(예: 감기)을 치료하는 신약을 건강보험에서 보장해 주어야 하느냐”란 질문에 대해서도 사전설문에서는 46.4%가 동의했지만, 최종설문에서는 25%만 동의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오주환 교수는 이러한 실험결과를 놓고 볼 때, 시민위원회 등 관련 지식이 거의 없는 국민이라도 충분한 정보와 충분한 토론, 충분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치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무상의료와 관련된 질문도 있었는데,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서 보험료(세금)를 추가부담 하실 의사가 있으십니까?”란 질문에 대해, 사전 질문에서는 57.1%만 동의하였지만, 최종설문에서는 88.9%가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주환 교수는 무상의료가 아직 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돈 문제 등이 걸림돌처럼 보이는 것이지, 실제 무상의료가 국민적 이슈가 되어 토론되고 여론이 형성된다면 분명 다수의 국민이 무상의료의 취지와 실현에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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