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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보고회

G8 보고회겸 영상상영회를 갖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예정대로 진행하였으면 합니다.

 

일정이 촉박해서 많은 인원은 안모이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간 사람이 있고 함께 준비했던 사람들이 있기에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소는 평박에 알아보았더니

현재 티벳관련 전시회가 14일까지 진행 중이기에

티벳의 친구들에서 이 번 전시회를 준비한 캄포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날짜는 길바닥 행동이 있는 목요일과 다음 날인 금요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8월 7일과 8일 양일 중 하루를 잡아야 되는 데 댓글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7일날이 길바닥 행동 날이기에 그 날 진행 했으면 하는데요.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개략적인 진행은 ( 총 2시간 )

 

-  영상 상영 ( 30분 )

 

-  보고회

 

   1.  준비는 어떻게 했나 / 준비. 준비현황 등 - 카라 ( 5분 )

 

   2.  일본에서의 활동  - 조약골, 켄짱  (15분)

 

   3.  G8포럼과 일본 공권력에 대해 /-디온 ( 10분)

 

   4.  신자유주의 / 반세계화 반대투쟁에 대한  난상 토론 (20분)

  

   5. 피날레 공연 ( 길바닥 밴드 30분)

 

   6. 뒷풀이

 

 

<  위 판걸이는 철저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참조 바라며 의견을 댓글로 올려 주시기 바람니다.  시간이 없는관계로 일요일 홍대 공간 민들레 5시에 모여 구체적인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 참석 가능한 분 알려주시길 >

 

*  역할 분담

 

  1.   웹자보 / 제작 , 홍보 - 켄장

  2.   빔프로젝트 및 관련 기자제 (노트북 등 ) 준비 - 카라

  3.   공연 준비 -  꼬미, 양군

  4.   사진 촬영 -  짱돌

  5.   뒷풀이 준비 -  카라 ( 술 만 가지고 가려고 감 ,  나머지는 붕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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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휘두르는 경찰의 말로

경찰폭력이 많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나 일본 같은 경찰국가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경찰의 폭력이 큰 문제입니다.
경찰은 인도까지 난입해 시민들을 폭력 연행하는가 하면, 방패를 휘두르며 찍는 것은 다반사에다가 인권침해 감시활동을 벌이던 인권활동가도 연행해갔습니다.
 
이번 G8 반대활동을 위해 일본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2001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때 이탈리아 경찰이 보였던 만행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삿포로 미디어센터에서 잠을 자면서 어쩌면 일본 경찰이 한밤중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기에 주의해야 했지요.
토요우라 캠프에서 생활할 때에도 언제 경찰이 침입해 폭력을 휘두를지 몰라서 항상 경계를 해야 했습니다.
 
아래 기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폭력 휘두르는 경찰의 말로, 이탈리아를 보라"
  [촛불의 소리] 2001년 反신자유주 집회 폭력진압 경찰에 유죄 판결
  2008-07-27 오후 2:46:37
  촛불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폭력행사를 비판하는 앰네스티 보고서가 미처 출판되기도 전에, 경찰은 앰네스티가 사실관계를 충실히 담지 못했으며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법적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공포했다.
  
  또한, 경찰은 한술 더 떠서 촛불집회를 '강경하게' 진압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남긴 것을 '표창'한다고 한다. 본말이 전보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지난 여름 거리를 채웠던 수많은 촛불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국민을 무력하게 만들며 인내심을 극한까지 발휘하게 만드는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과연 최근 촛불시위에 대해 경찰이 취한 적반하장 식 대처를 몇 년 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그 해답을 암시해주는 사건을 2001년 이탈리아의 여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01년 G8회담이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개최되었다. 전 세계에서 참가한 이십만여 명의 시위대는 무정부주의 단체인 'Black Bloc'의 참가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합법적인 방식으로 반세계화 집회를 진행하였다. 이들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항의했다.
  
▲ 디아즈 기숙사에서 연행되는 남녀시민.

  당시 이들 중 일부는 제노바의 디아즈 페르티니 학교 기숙사에 거처하며 회담이 열리는 기간 동안 집회를 이어갔다.
  
  자정이 가까웠을 무렵 기숙사에 머물던 100여 명의 남녀 시위대는 씻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자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 이탈리아의 진압경찰이 홀연 달려들어서 기숙사를 급습했다. 경찰당국은 기숙사에 머물던 시위대들을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한 무정부주의 단체의 조직원들로 이해했다.
  
  하지만 당시 건물 안에 머물던 대부분의 시위대는 평화적인 시위방식을 고수하던 사람들이었다.
  
▲ 영국인 기자 마크 코벨은 극심한 폭력을 당한 후, 한 영국 일간지가 그를 무정부주의 단체의 리더로 왜곡보도하면서 지난 7년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번 판결이 나오는 데는 그가 치열하게 관련 증거를 모은 업적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찰은 건물에 들어오기 직전 '인디미디어' 기자인 영국인 마크 코벨(Mark Covell)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였다. 코벨은 거듭 이탈리아어로 자신이 기자라는 점을 밝혔지만, 그를 단지 무정부주의 단체의 조직원으로 단정 짓던 경찰은 집단폭력을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자행된 폭력으로 인해 14시간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날 밤 극악무도한 수준의 경찰폭력에 희생된 사람은 코벨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은 곧이어 건물로 진입해서 당시 시위대의 안전을 관리하던 벨기에 출신의 시위대 미하엘 기저(Michael Gieser)를 공격하였다.
  
  기저는 처음에는 경찰에게 폭력적인 진압 말고 서로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자고 제의했지만, 경찰은 끄떡도 하지 않은 채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일군의 경찰들이 기저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하는 사이, 또 다른 경찰들은 침낭에서 자고 있던 스페인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68세였던 돌로레스 에레로(Dolores Errero)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두움 속에서 행해진 진압에서 온몸의 부상을 입었다.
  
  이날 부상자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독일인 멜라니 요나쉬(Melanie Jonasch)는 시위에는 직접적으로 참가하지 않은 채 시위대들이 머물던 기숙사에서 자원활동을 도맡았다. 그녀는 이날 경찰의 집중공격 대상자가 되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진압봉으로 반복해서 멜라니의 머리를 거세게 가격했다. 이에 요나쉬가 마침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경찰은 폭력을 멈추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그녀를 구타했다.
  
  당시 현장에 같이 있었던 카트리나 오토웨이(Katherina Ottoway)에 따르면, 당시 시위대는 그녀가 맞아 죽었다고 착각할 만큼 그녀의 상태가 아주 위중했다고 전했다.
  

  
  
  
  
  
  ▲ 당시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폭력진압의 결과,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요나쉬 말고도 당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시위대 중에 또 다른 독일인 다니엘 알브레히트(Daniel Albrecht)가 포함돼 있었다.
  
  첼로를 전공하는 알브레히트는 팔과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은 이후 4일간 의식불명사태를 겪을 만큼 상태가 위독했다.
  
  남자친구와 더불어 시위에 참여했던 영국인 니콜라 도허티(Nicola Doherty)는 이성을 잃은 경찰로부터 여자친구를 구해주기 위해 남자친구가 그녀의 몸 위에 누워서 막아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노출된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격해서 머리를 감싸던 팔이 골절되도록 만들었고, 니콜라 주변에서 한동안 그녀를 몹시 힐난하며 인격적인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독일인 레나 췰케(Lena Zühlke)는 경찰을 피해 복도로 도망가다 붙잡혀서 상상을 초월하는 구타를 당했다. 그녀는 당시 사건을 가리켜 '야생토끼를 쫓아서 물어뜯는 굶주린 사냥개' 같았다고 전했다.
  
  더 이상 저항할 의사도 힘도 없었던 시위대들를 향한 잔인한 폭력은 기숙사를 나서면서도 추호도 중단되지 않았다.
  
  당시 시위대들은 이구동성으로 항복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들은 아무런 무기도 휴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보다 몇 배 많은 수의 진압경찰들의 폭력을 당해야 했다. 기숙사 여기저기에서는 항복의 뜻을 절박하게 전달하거나, 제발 폭력을 멈출 것을 간곡히 탄원하는 외침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경찰서에 연행되거나 병원에 이송된 뒤에도 기숙사에서 당했던 끔찍한 인권유린 못지않게 더욱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었다.
  
  시위대는 연행 이후 변호사나 대사관 접견권을 거부당했으며, 경찰들은 반복해서 연행된 시위대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침을 뱉거나 언어폭력을 일삼았고, 음식이나 물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허기와 갈증을 유도했고, 수면을 박탈하고, 여성연행자들에 대해서는 성폭행을 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성매매여성으로 비하해서 부르기고 했다.
  
  이들은 특히 장시간 동안 불편한 자세로 서 있도록 강요받았는데, 인공 다리를 갖고 있던 52세의 모하메드 타베흐(Mohammed Tabach)가 장애로 인해 견딜 수 없어 쓰러지자 경찰은 그를 심하게 구타하였다.
  
  독일인 슈테판 바우어(Stefan Bauer)는 이탈리아와 독일이 모조리 유럽연합에 속해 있는 만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역시 그를 폭력으로 응대했다.
  
  또한, 마르코 비스따치따(Mark Bistacchia)는 알몸으로 경찰견을 따라하라는 모욕적인 행위를 강요받았으며, 엄청난 공포 속에서 시키는 대로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 경찰이 시위 참가 시민 한 명을 구타하고 있다.

  
▲ 부상흔적이 또렷한 여성.

  터키 여성인 에스터 페르치바티(Ester Percivati)는 경찰이 연거푸 그녀를 성을 파는 여성이라고 지칭하며 성기를 건드려서 치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한 그녀는 여경인 바바라 아마데이(Barbara Amadei)에 의해 변기에 얼굴이 담가지는 물고문을 당하였다.
  
  게다가 여성연행자들은 남성경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몸 수색을 당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남성 연행자들을 향해 소변을 누며 파시스트 찬양가를 따라 부르도록 강요했다. 조셉 아졸리나(Joseph Azzolina)는 경찰이 그의 얼굴 바로 앞에서 최루탄을 발사해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사라 바르테사기에(Sara Bartesaghie)는 구치소에서 경찰이 반복해서 구금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증언했다.
  

  
  
  
  ▲시위진압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슬 퍼렇게 자행됐다. 맨 위쪽 사진은 니콜라를 비롯한 영국인 부상자들. 가운데 사진은 부상당한 채 널브러져 있는 한 여성시위대. 맨 아래 사진은 진압봉에 맞아서 온통 부상을 입은 한 시위대의 어깨.

  병원이라고 해서 경찰서에 비해 추호도 안전하지 않았다. 심각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당시 갈비뼈가 부러져 치료를 요했던 프랑스 인 다비드 라호꿸(David Larroquelle)은 치료도 받지 못했으며 이미 골절된 손으로 서명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코뼈가 부러진 터키인 에스터 페르치바티 역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최근 한국 경찰처럼, 당시 이탈리아 경찰도 적반하장으로 시위대들을 상대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한 점, 절도, 공격적인 무기 운반, 범죄조직 가입으로 기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대부분 기각됐다.
  
  당시 이탈리아 경찰 역시 시위대가 고소를 하기 힘들도록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인식표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경찰의 야만적인 행위 앞에서 거의 모든 연행자들은 변호사나 대사 접견을 하지 못했으며, 이미 부상당한 상태에서 고문에 가까운 가혹행위와 모욕적인 행위를 강요받았으며, 상당수가 이탈리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역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노바의 만행이 G8회담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강경진압과 불법적, 자의적 구금으로 채워지기 전, 강경일변도의 이탈리아 경찰의 자세는 이미 감지됐다. 경찰은 무정부주의 단체 시위대였던 이탈리아 인 까를로 지울리아니(Carlo Giuliani)가 경찰차를 공격하다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즉사한 것이다.
  
  얼핏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채 묻힐 듯했던 이 사건은, 엠네스티와 피해자들이 끈질기게 문제를 삼으면서 차츰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당시 경찰은 최소 200여명 이상을 가혹하게 연행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더 이상 저항할 의사가 없는 비폭력 시위대였다. 이들 중에서 최소 62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앞서 언급한 독일의 멜라니와 다니엘, 그리고 영국인 마크를 비롯하여 3명은 중상을 입었다.
  
  구금자들이 차츰 이탈리아 경찰을 고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당시 이탈리아 치안당국은 외국인 연행자들을 즉각적으로 추방하였고, 향후 5년간 이탈리아의 입국을 금지해서 재판의 증인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꾀했다.
  
  당시의 만행을 가리켜 한 이탈리아 경찰은 '멕시코식 정육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1년 제노바의 거리와 기숙사에서 있던 시위대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극심한 치욕감과 무력감, 그리고 단말마의 공포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외부와 소통할 수 길이 극단적으로 차단된 상태에서 무법천지 같은 이탈리아에서 경찰력에 묵종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었고, 적잖은 미디어는 당시 시위대들의 폭력피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채 이들이 폭력을 일삼는 무정부주의 단체의 조직원들인 것처럼 알렸다.
  
▲ 진지한 표정의 시위대.

  하지만 정의를 찾으려는 부단한 싸움 끝에 마침내 이 사건은 해결을 보게 된다.
  
  고위경찰을 비롯한 기소된 관련자들 중에서, 총 15명의 경찰, 교도관, 의료진들에게 최소 5개월부터 5년까지의 형량이 선고됐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집행유예 처분을 받아서 이들 가운데 실제 징역형을 치러야 하는 사람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직도 '고문'이 불법에 속하지 않아서 재판을 치르는 동안 근본적인 난항을 겪었으며, 최근 만연하고 있는 이탈리아 공권력에 의한 인권탄압을 온전히 막을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 또 다시 강조됐다.
  
  기소된 사람들 중에는 남녀 경찰이 골고루 포함돼 있었으며, 몇몇 소식통에 의하면 이탈리아 경찰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파시스트 조직이나 극우당에 소속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예컨대, 구치소에서 시위대들에게 연거푸 파시스트 찬양구호를 외치게 하거나, 진압이 유난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행해진 것도 일종의 증오범죄의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하는 의견도 개진된다.
  
▲ 마크 코벨을 비롯한 당시 사건의 고소인들.

  당시 시위에 참여해서 잔인한 폭력에 노출된 시위대들은 여전히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이미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악몽을 꾸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을 가장 매섭게 할퀴고 있는 기억은 육체적인 부상을 떠나서, 법과 정의가 사라진 경찰국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던 공포와 모멸의 순간에 대한 질긴 상처일 듯하다.
  
  비록 형량이 미미하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법원이 당시 초강경진압을 야기했던 관련자들에게 법적인 심판을 내리며 희생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언도한 것은 긍정적인 결과로 주목된다.
  
  촛불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최근, 우리는 수많은 사건을 목격했다. 시위대 바로 앞에서 물대포를 발사함으로써 고막을 파열시키고, 시위 중 쓰러진 여성을 군홧발로 짓밟으며 몽둥이를 휘두르고, 중년의 남성을 연행하면서 단체로 힐난하며 모욕감을 가하고, 누워서 평화적인 시위를 외치던 시위대를 밟고 구타하며 지나가던 경찰의 모습을 생생히 보았다.
  
  국가가 국민을 위협할 때 파시즘은 생생하게 재현되며 시민권은 가차 없이 유린된다. 2008년 거리를 달궜던 사람들은 촛불을 으깬 공권력과 군홧발과 몽둥이, 물대포에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먼 훗날 다시금 정의가 우리들을 비출 때 질문해야 한다. 당시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보상이 되었는지, 그때 시민을 폭정으로 옭아맨 사람들은 온전히 법의 심판을 받았는지에 관해서 똑똑히 질문해야 한다.
   
 
  박정준/서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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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반대투쟁 활동보고회를 해보자

약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일본을 방문해 G8을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돌아온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활동보고회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방금 양양으로 출발하기 전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보고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들의 활동을 후원해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본 활동을 알리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식과 지금 현재 계속 이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 등을 공유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일본의 활동가 한 명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7월 5일에 구속된 세 명의 일본인 활동가들이 석방되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곧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또한 현재 일본의 활동가들이 필리핀의 활동가들과 연대해서 싸우고 있는 사안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정부와 필리핀 정부가 맺으려고 하는 경제동반자협정(EPA,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에 반대하는 활동입니다.
필리핀과 경제동반자협정(자유무역협정보다 더 수준이 높은 협정)을 맺으려는 일본은 핵폐기물을 보관하는 폐기물처리장을 필리핀에 몰래 건설하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경제동반자협정을 맺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런 민중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는 이런 더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는 일본과 필리핀의 지배계급에 대한 투쟁에 일본 측에서 한국 활동가들의 연대를 요청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소식 등을 포함하여 모금활동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일단 올해 G8 반대투쟁에 대한 다양한 영상들이 있습니다.
켄짱이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고, 한국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찍어온 영상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국제활동가들이 찍어서 자신들의 사이트에 올려놓은 영상들도 있고요, 피플파워에 나온 영상도 있습니다.
이런 영상들을 모아서 상영회를 하려고 합니다.
 
또한 길바닥평화행동이 주축이 되어 공연도 펼쳐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과 기타 자료를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자세한 활동설명을 할 수도 있어요.
 
이런 내용을 가지고 8월 둘째 주 (8월 3일-9일) 사이에 활동보고회 날짜를 잡아보면 어떨까요?
일단 저는 8월 7일 목요일로 제안을 드립니다.
이 날짜가 좀 촉박할 수도 있지만, 너무 늦어질 경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장소는 좀더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괜찮은 곳이 있으면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민중의 집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길바닥 엠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추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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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짱의 후기2

욘사마의 글을 보니 마음이 무겁네요...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네요...정신줄 놓기 전에 빨리 후기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7월 5일 밤부터 6일 아침 일찍까지 캠프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밤에 들어와보니...에**상은 내가 잠깐 빌려쓰던 미싱으로 아이누아나키스트 깃발을 만들고 있었다...잘 굴러가는 미싱을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이 미싱은 삿포로상이 길에서 득템한 것인데 아마도 개시를 내가 한 듯. 5일 아침에 완장 만든답시고 미싱을 밟아봤는데 꽤나 잘굴러가는 부라더 미싱이라 완전 감동을 받기도...굉장히 오래된 사양이라고 삿포로상이 알려줬지만 역시 부라더의 힘은 굉장했다) 드디어 캠프로 출발하는 날. 마지막으로 힘차게 자전거를 밟아 대여소에 반납한 다음... 카데루 니나나에서 있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었다. 드디어 도착. 이 집회에는 아이누 민족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AWC, 그리고 전빈련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 독일친구들(다테에서 숙박하기로 되어 있는), 일본 각지에서 온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사실 뭐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섞인 상태에서 발언들이 지속되었고...(이건 뭐...발언하다 끝나겠네...라고 늘 생각했다...) 실내에서 기자회견 형식(실내 풍경이)의 집회는 처음이라 당황하기도 했다... 거기서 만난 AWC 친구들은 대개 대학생들인데...아시아민족의 연대를 주창하며...(내가 이해하기에) 불타오르는 열혈청년들인듯 했다...자체적으로 한국어 스터디도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신이나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물론 일어와 영어로...) 켄짱 바로 도주... 독일 친구들 꽤나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통역기를 가지고 있었다...한대로 여러명이 돌려듣고 있긴 했지만... 기나긴 발언이 끝나고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거리행진을 마치고 다시 카데루 니나나 앞으로 모이는데 우익들이 등장!!! 이녀석들은 정말이지 끈질기구나... 이미 전날 일본 친구들의 설명으로 돈을 받고 동원된 3류 야쿠자 녀석들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컷 비웃어줬다... 토요라로 갈까 다테로 갈까 고민하는 나고야에서 온 사**상을 꼬드겨서 같이 다테로 가기로 했다. 다테캠프로 향하는 버스. 아마도 네다섯시간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에 급좌절... 기절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 앉아있는 사**상과의 수다로 절반은 보낸 것 같다... 어찌나 재밌던지...나의 짧디 짧은 일본어를 이해해주고 또 5살 수준의 질문을 마구마구 쏟아내어도 쉽게 설명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버스 안에서 슬슬 에**상과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화장실을 위해 멈췄던 곳에서...J8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보았다... 이건 뭥미...혼자서 잔뜩 흥분해서 난리... 중간에 도착한 휴게소...지만 우리나라 국도변에 있는 휴게소와 흡사한 느낌??이랄까...이곳에서 이럴수가...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감자와 버섯이 잔뜩!!! 고로케와 버섯시루를 사서 점심 해결. 곧 출발하려는데...맙소사... 고기에 굶주렸던 우리 독일친구들이 그 와중에 고기를 구워드시고 계셨다... 출발이 30분 정도 지연되었다...그래도...힘들었겠지...자기들도... 먹을 수 있는게 거의 없었으니... 다테캠프에 도착해보니 웬걸...완전 허허벌판 풀밭... 아디다스 모기...뱀...벌레...갑자기 확 무서워지는 느낌... 공동주방은? 공동샤워장은? 토요라하고 소베츠에만 있는겨??? 도착해서 각자의 구역에 텐트를 치고 바로 시작한 것이 아이누민족의식. (우리의 텐트는 에스페란티스토 그룹인 E구역에...쳐졌다) 약간 민족주의의 어둠의 그림자가 느껴졌다...이거 위험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의식의 첫줄이 모두 남자들...이어서 그냥 자리를 비켜서 서있었다... 신에게 바친 술을 모두가 나누어 마시는 형태의 의식... 긴 의식이 끝나고 준비해간 초로 촛불을 켜 들었다... 이어진 전빈련 아저씨의(이분은 이름도 생각이 안나...) 말도 안되는 발언. "촛불은 2002년 효순이 미선이...중략...이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희생...중략...촛불은 반미의 상징..." !?!!!!?!!??! 헐...언제 촛불이 반미의 상징이 되었지? 나 분명히 2002년 의정부에 있었는데...언제 그런 얘기를 했더라...말도 안되는 민족주의적인 발언들, 반외세, 침략주의반대 발언들이 아저씨의 입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내 나와 톰, 코기토는 자리를 떴다... 셋이서 심각하게 텐트로 돌아와서...상의를 시작했다... 저쪽 지역 몽땅 다 민족주의 진영인거 아냐??? 우리 삿포로상의 부탁도 있고 하니까 낼까지만 참고 낼 소베츠나 토요라로 갈까??? 사**상 내일 소베츠간다는데...거기 묻어가면...어쩌고 저쩌고... 사**상과 에**상은 우리 구역에 텐트가 있었기 때문에 의식이 끝나고 돌아온 두친구에게 아저씨의 이야기가 사실은 문제가 있다며 붙잡고 해명을 시작(일본어로 아저씨의 발언이 다 통역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설명을 시작하니까...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두 가지 개념을 내가 혼동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까 발언했던 아저씨는Nationalist...라는 설명을 하기 시작은 했는데...사**상이 가르쳐준 구호도 그렇고...암만 생각해도 여기서는 Nationalism이 국가주의로 쓰이고 있는 듯한 느낌...그래서 다시 정리 시작...민족주의자라고 애써 설명했더니 운동하는 사람들도 Nationalist가 있냐는 질문을 받고 그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NL, PD까지 설명이 들어가야 되는겨? 그래서 쉽게 아주 간단한 도식으로(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크게 보면 두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일본의 우익 같은, 그리고 하나는 운동을 하는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말해주었다...그렇지만 둘다 말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민족통일, 조국통일 이런 식이라고...(힘들었어...ㅠ ㅠ) 말도 짧은데...이건 뭐 제대로 설명한 건지 오해를 낳은 건지... 저녁은 채소스프...(먹고 봤더니 생선비린내가...) 각자 해먹어야된다고 들었는데...배급이었다...나야 뭐 생선만 빼면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잘먹었지만...다들 입에 잘 안맞는 느낌... 씻으러 가려고 했는데(바로 옆에 동네 목욕탕) 목욕탕은 9시까지밖에 입장이 안돼서 들어갈 수 없다고...샤워만 하겠다는 우리랑 실랑이가 붙었다...내일은 게다가 정기휴일인데... 텐트에서는 셋이 자기로 하고 욘사마는 다른 텐트로...(욘사마 정말 고마워요!) 7월 7일... 일어나서 행진장소로 향했다...소베츠의 친구들과 만나 함께 행진한단다...다테와 소베츠는 토야코에서 6km떨어져있고...토요라는 20km. 애초에 다테와 소베츠만 허가가 나서 토요라는 불법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것까지 설명을 듣고 팔랑팔랑과 거기 있는 다른 고양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그리고 거긴 20km를 걷는다는...이야기도 들리고...아예 원봉이라는 얘기도 들리고... 도착한 장소에 생각보다 소베츠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어제 저녁 의식 후 떠나간 아이누 사람들도 버스를 타고 도착했다... 이건 뭐 기자들의 카메라, 채증카메라...온통 카메라 투성이... 얼른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에스페란토 헬멧 장착. 헬멧에 반해버렸다...나는 검은 두건 위로 빨간 수건을... 길고 긴 발언이 시작되고...행진을 시작했다... 어디선가 커다란 확성기가 왔다...에**상이 그걸 메고 경찰들을 약올리기 시작했다...거의 혼자하는 만담형식이었는데 알아듣는 것도 있고 못알아듣는 것도 있고...거의 못알아들었지만 그 자체로 너무 재밌어서... 그리고 중간 중간 사**상의 퍼포먼스...랩인듯, 노래인듯 신나는 구호들과 오금질 비슷한 걸음새...거기에 손동작까지... 7월 5일 행진에서 과자를 들고 경찰들에게 나눠주더니...역시...사**상... 이때 배운 구호가... "항~아항~아항 시혼슈기~항~아항~아항~코카슈기~" 사**상이 하면 어쩐지 에로틱해서...느낌이 확!!!!! 살았다... 원래는 'An-Anti Anti Capitalistas An-Anti Anti Nationalistas'인가 뭔가 하는 건데...(이거 맞나? 들리는대로 적은 건데) 사**상이 그 구호가 그냥 들으면 잘 들리지도 않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니까 자기가 쉽게 바꾼거라고 가르쳐줬다...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서미또 훈사이 에자니이까!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에자나이까! 나카마 카에세 에자나이까!'(좋지 아니한가 서미트 분쇄 좋지 아니한가 좋지 아니한가 동지를 풀어주는게 좋지 아니한가) '나이 나이 나이 이미가 나이 G8 서미토 이미가 나이 나이 나이 나이 카치가 나이 ....'(없어 의미가 없어 G8 서미트 의미가 없어 없어 가치가 없어...' 이런 패턴들의 구호를 랩처럼 쏟아놓았다...그리고 그 마른 몸에서 솟아나는 체력...일단 시작하면 따라하기 힘들정도로 오래... 어쨌거나 사**상과 에**상 덕분에 신나게 행진할 수 있었다... 가는 중간중간 에**상은 현지 주민들을 향한 안내방송까지 소화해냈다...어찌나 감칠맛나는 말투이던지... 드디어 도착한 토야코... 윈저는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고...(이건 뭐니...) 분하고 분해서 화가 났다... 돌아와서보니 목욕탕이 문을 열었다... 목욕탕은 온천탕이라...물이 무지하게 좋았다... 씻고 났더니 매끈매끈...감동적인...온천탕... 나오는데 보니...목욕탕이 휴일인데 문을 연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 아이누 사람들과 AWC가 교류회를 준비한 듯 했다. 그 준비로 목욕탕은 시끌벅적...그 자리에 있기가 영불편해서 나와서 신문과 뉴스롤 보면서 오니기리 하나값인 아이스크림까지...질러주고...캠프장 분위기를 살피자며 텐트로 돌아갔다... 사**상은 저녁에 소베츠로 떠났다...내일 토요라로 간다고... 우리는 내일 토요라로 가자는 중론을 모으고 일단 다시 다테에서 잠이 들었다...밤에 모두 함께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데...우리가 싸온 김을 내놨다...삿포로상이 김을 굉장히 좋아해서 뭐랄까 기뻤달까...게다가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사방이 새까만데...구름 속에 가려져있던 별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흑융단에 박힌 보석이라는 표현이 확 실감날만큼 태어나서 처음보는 아름다운 하늘이었다...매일 이 하늘을 보면서 잠이 들 수 있다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면서 누워서 하늘을 보다 깜빡 잠이...(잠에서 깨서 어찌나 후덜덜하던지...뭐라도 물리면 어쩌려고...아무튼 무방비...) 사**상이 없음 행진이 재미가 없을텐데... 오늘은 헬멧을 쓰지 않는단다... 난 쓰고 싶은데...라고 말했더니 에**상이 슬쩍 자기가 몰래 챙겨둔 헬멧을 쓰라고 줬다...모두에겐 비밀이라면서...(이거 굉장히 역사적인 헬멧이라 아마 몰래 챙겨가려고 했던 듯 하다...) 내가 헬멧을 쓰고 나타났더니 삿포로상이 허허허 웃었다... 그렇게 둘째날 집회가 시작됐다... 오늘은 소베츠에서 사람들이 많이 왔다...모**상도...페*상도... 요와 토모도... 소베츠에서 온 사람들이 북을 가지고 와서 엄청 신나는 행진이 됐다... 이 행진에서 켄짱 데뷔... 우리가 개사한 노래...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케사츠와 카에레 카에레' '서미또 훈사이 훈사이' '나카마오 카에세 카에세'를 불렀다... 에**상의 꼬드김으로 내친김에 사**상의 주제가 아항시혼슈기까지 달려주었다...해버렸어...ㅠ ㅠ 중간 중간 캠코더를 든 한사람과 모자를 쓴 한사람이 경찰의 틈을 노리고 대오에서 이탈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중간에 한두번인가 마찰도 있었다...경찰들이 '좃또 마에 구다사이' '마에 마에'라고 하길래... 화가 확 치밀어올라서 같이 '케사츠와 마에 구다사이' '오니짱 마에 마에'로 응수해줬다...우리가 너무 세게 나가면 다 채증된다고 해서 일단 경찰이 치면 연행되는 사람이 없게해야한다는 생각에 몸으로 막자는 각오로... 나중에 북을 하나 얻어서 두드리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재밌던지... 칠줄아는 리듬이 하나밖에 없어서...계속 그것만 쳤지만 진짜 재밌었다...어쩌다보니 나중에 북잡이들이 다 여자들이 되어버려서 완전히 신나는 판이었다...혼자 들떠가지고...후훗...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덜 걸었다... 에**상과 에**상의 친구분(일본 목사님이신데 이름을...)의 차를 빌려타고 잠깐 토요라를 방문하기로 했다... 토요라로 가는 길에 잠이든 켄짱...꽤 멀었다... 토요라에 갔더니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도 않고... 물어봤더니 다들 행진하러 나가서 4, 5시쯤 들어온단다... 이런...오늘 다테에서 독일친구들의 마지막 공연이 있어서 다테로 다시 돌아가야 되는데... 반가운 도영을 만났다... 토요라에서 유일하게 수영복을 입고 노천샤워를 하는 도영... 미디어센터는 냄새로 들어가 있기가 괴로웠다... 뺏지랑 티셔츠를 사고 싶었는데 비싸서 사지도 못하고...크흑... 도영이 준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어제 토요라와 관련된 우와사들을 확인하고 안심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다테로 향했다... 도착하니... 장비들을 실은 차가 와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코기토의 다이지나 다**상도 와있었고 소베츠에서 많은 친구들이 왔다...우리 텐트 옆에 귀여운 일인용 텐트에 어디서 많이 보던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아레...아나르코퀴아' 토*상의 텐트였는데 삿포로의 유**상이 일이 많아서 캠프에 합류하지 못한 것을 대신해 유**상의 포스터를 가져왔단다... 허허벌판에서 독일친구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와 톰은 또 달리기 시작했다...솔직히 무지하게 피곤했지만... 고별공연이기도 하고...이런 척박한 상황일수록 더 뛰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근데 뛰면서 슬쩍 슬쩍 보이는 뒤의 사람들... 허허벌판에 앞에서 밴드가 공연하고 밴드 코앞에 한줄로 서서 미친듯이 뛰고 환호하는 예닐곱명의 사람들...그 뒤로 띄엄띄엄 앉아 있는 사람들... 영상으로 찍으면 대박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코기토가 뒤에서 찍어주고 있었다... 독일 밴드는 스스로 앵콜을 두곡 날려주고 공항으로 떠났고 해프닝이 공연을 이었다... 짧은 즉석 합주도 있었고... 그런데...두둥...어제 교류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오키나와의 할아버지가 기타를 메고 나오셔서 공연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좀 그랬지만 이윽고 공연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나름 운치가 있었달까...가사도 괜찮은 것 같고...문제는 영감님께서 같이하자면서 혼자 끊어먹고 나가시는 것 정도?? 정리하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사실 오늘은 안하고 버틸 생각이었는데 공연 때 너무 흥분해버려서...) 하고 제**상이 자신의 디너파티에 초대해줘서 합류했다...뭔가 즐거운...디너파티...제**상과 나누는 대화는 무언가 100%이해할 순 없지만...어딘가 모르게 다정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저녁 내내 삿포로상이 보이질 않아서 걱정했는데 독일 친구들을 치토세까지 데려다주고 오셨단다...진짜 진짜 힘들텐데... 내일은 토요라와 소베츠, 다테 세 캠프가 함께 행진하는 마지막날... 어느덧 마지막날...이라니 아쉽기도 하고...분하기도 하고...슬프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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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을 넘어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G8을 넘어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피플파워  / 2008년07월19일 14시16분

하주영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사프로젝트 피플파워 하주영입니다. 또다시 미국경제가 금융위기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미국 모기지업체인 인디맥이 고객들의 대규모 인출사태로 영업중단조취를 받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국책 모기지 업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긴급 구제책을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헤지 펀드 매니저인 조지 소로스는 생애 최대의 심각한 금융위기라 표현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로 허덕이는 한국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 생각만해도 아찔한데요, 이미 전세계 민중의 삶을 주무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금융의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3. 현장플러스


G8을 넘어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


하주영 / 오늘 현장플러스에서는 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해온 국가들의 모임인 G8에 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이어온 활동가들의 직접행동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영상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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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영상 : 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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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영/ 함께 얘기 나눌 분은 길바닥 문화행동의 조약골 활동가입니다.안녕하세요.


조약골/ 인사




하주영/ 지난 7월 6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 토야코 호수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렸는데요, G8 정상회담이 어떤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①


조약골/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세다는 8개국 정상들이 모여서 세계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결정하는 모임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모여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파괴 등의 문제는 지구 차원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하주영/ 이번 G8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었고,
회담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②


G8 정상회담, 환경문제 중점으로 다뤘으나 구체적 합의 없어


조약골/ 21세기 시작하면서부터 환경재앙이라는 여러 번 들이닥쳤고, 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래서 이번 2008년 일본 토야코 G8 정상회담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주요 의제였습니다. 회담이 진행된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라 회담 개최국인 일본은 그 점을 널리 홍보하면서 생태친화적인 회담을 개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일본은 2012년으로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환경협약을 이번 G8 회담에서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협약을 참가국들(G8 나라들을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8개국이 이번에 추가로 참석함)의 동의로 이끌어내려고 하였으나, 아무런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회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주영/ 전 세계적으로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회담이 열리는 일본 홋카이도에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대거 입국하여 여러 가지 반대 행동을 펼친 것으로 아는데요, 이들의 회담 반대의 주요 이유는 어떤 것입니까? ③




G8 정상회담- 세계 전쟁, 빈곤, 환경파괴를 사실상 주도해와


조약골/ G8 정상회담이 스스로 세계정부를 자처하면서 매년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주로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가의 입장에서 정책들을 추진해왔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시장의 기능강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탈규제, 관세철폐와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개방, 외국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정책들이 결국엔 전쟁과 빈곤을 강화시키고 환경파괴를 불러왔기 때문에 G8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하주영/ G8 정상회담 반대의 목소리는 돌이켜보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에 반대해온 전 세계 운동과 그 맥이 닿아있어 보입니다. 이번 G8 정상회담 반대운동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하는 것입니까?④


G8 정상회담 반대투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투쟁의 연장선


조약골/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벌어져온 세계화 반대운동 덕분에 기존의 세계화를 추진해오던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구들은 회담 자체를 갖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들이 어딜 가든 반세계화 시위대가 따라붙었으니까요. WTO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대세가 되면서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제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G8 정상회담이 반세계화 운동가들을 결집시키는 주요 목표가 된 것입니다.




하주영/ 이번 회담이 열린 일본 내에서도 다양한 사회단체 구성원들이 대규모 반대 움직을 보였다는데요, 어떤 활동들이 있었습니까?⑤


조약골/ 이번 G8 반대운동을 위해 지난 1년간 일본의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운동단체들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G8 정상회담의 개최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보다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고, G8 정상회담의 대안으로 다양한 세력들이 힘을 모으는 대안회담을 만들어가자는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습니다.


7월 5일에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이들이 모두 모여서 행진을 했어요. 약 5천 여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3개 블록으로 나뉘어서 맨 앞에는 급진적인 세력들과 개인들, 가운데 블록은 일본 공산당, 마지막 블록은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서 행진을 했습니다. 각 블록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 같아요.




하주영/ 일본 현지에서는 다양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정작 이 대열에 함께 하지도 못하고 입국 저지당한 한국 사회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영상으로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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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2. 입국저지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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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영/ 조약골 활동가께서는 이번 G8 정상회담 반대투쟁 현장에 직접 계셨는데요, 주목할 만한 점이나 흥미로웠던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⑥


조약골/ 일본 경찰의 폭력성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7월 5일의 집회와 행진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던 디제이들과 트럭 운전수가 경찰에 연행되었는데요, 최대 23일간 유치장에 갇혀서 조사를 받으면서 변호사 이외에는 면회도 금지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집회를 반드시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경찰이 허가를 내줄 때에도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일일이 간섭을 하고 결정을 해서 통보를 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심하면 연행을 당하기도 하고, 집회가 끝난 다음날 집회책임자를 찾아내 연행하기도 합니다.
집회 가운데도 경찰이 따라붙어서 카메라와 캠코더로 불법채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행진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끊임없이 요구를 합니다. 일본 경찰이 허용한 집회만 할 수 있다니, 정말 갑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주영/ 일본이 경찰병력을 대규모로 동원한 것은 과거 시애틀, 부산, 홍콩 등지에서 벌어진 WTO와, 아펙 반대투쟁을 과격한 운동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인 듯한데, 일본 당국의 과잉대응을 직접 겪으신 일도 있습니까? ⑦


일본. 대규모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세계 활동가 입국자체 불허해


조약골/ 일본 정부는 신경이 곤두서서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했습니다. 저와 같이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해온 ‘카라’는 이번에 결국 일본 입국이 불허되어 공항에 하루를 억류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입국을 하지 않으면, 일단 G8 반대행동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사람은 공항에서 기본적으로 10시간 가까이 억류되어 심문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입국이 불허되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많고, 가까스로 입국이 된다고 해도 통상적인 3개월짜리 비자가 아니라 5일 체류하고 7월 7일 이전에 출국해야 하는 단기 비자가 나오는 식입니다. 민주노총이나 전농의 활동가들이 입국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더나 반세계화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도쿄에 며칠 있다가 홋카이도는 가보지도 못하고 출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하주영/ G8 정상회담은 이번뿐 아니라 과거에도 특별한 성과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 정상회담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조약골 활동가는 이번 G8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고 있습니까? ⑧


홋가이도 G8 정상회담, 립서비스에 그친 합의


조약골/ 한 마디로 립서비스에 그친 합의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딱 이 두 줄을 합의한 것이죠. 선진국이라는 8개 나라가 모였는데, 큰 틀에서는 이해를 같이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합의를 하기 힘든 것입니다. G8 정상회담은 그냥 일 년에 한 번 정상들이 만나서 축배를 드는 비공식 사교모임인데, 스스로 지구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하주영/ 한국 언론은 이번 G8 정상회담에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다고 잔치집 같은 분위기를 냈습니다. 곧이곧대로
믿기는 힘든 사실인데요, 한국이 G8에 참가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⑨


한국의 G8 정상회담 참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모임 때문에 간 것


조약골/ 한국이 참가한 것은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이기 때문에 참가한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이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참가한 이유는 이들이 G8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환경파괴국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모인 김에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보자고 한 것 같은데, 후쿠다 총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네요. 온실가스 최대배출국 싹 모아놓으면 뭔가 해결이 되리라 믿었나 봅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당기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거의 폭발수준까지 올라 있습니다. 경제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런 문제들은 경찰력으로 억누르면서 덮어놓고 가겠다는 것이죠.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대통령이 G8에 참가해 샴페인 같이 마셨다고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리 없습니다.


하주영/ 조약골 활동가, 생생한 현장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인사)


조약골/ 감사합니다.(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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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파워에 G8 반대투쟁이 나옵니다

'시사프로젝트 피플파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참세상 상근자들이 만들고 있는 시사프로그램으로 위성방송과 케이블로 방영되고 있는 RTV에서 방송되고 있습니다. 매주 30분으로 제작되고 있고, 본방과 재방으로 1주 3회 이상 방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현장플러스'라는 코너에서 이번 G8 반대투쟁을 다뤄보고 싶다고 해서 돕이 연락에 응했습니다. 아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고요, 방송은 위성 방송 RTV를 통해 7.18(금) 오후 11시에 본방송이 나가고요, 일부 지역은 케이블 방송으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참세상 www.newscham.net 에서도 시청이 가능합니다. 재방송이 2회 정도 더 나가게 된다니까 보실 수 있는 분들은 보시기 바랍니다. --------------------------- 1. 지난 7월 6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 토야코 호수에서 G8 정상회담이 열렸는데요, G8 정상회담이 어떤 것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이 세다는 8개국 정상들이 모여서 세계의 주요 현안들에 대해 결정하는 모임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모여서 중요한 문제들을 결정하고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파괴 등의 문제는 지구 차원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 이번 G8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었고, 회담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21세기 시작하면서부터 환경재앙이라는 여러 번 들이닥쳤고, 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래서 이번 2008년 일본 토야코 G8 정상회담에서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주요 의제였습니다. 회담이 진행된 홋카이도는 일본 내에서도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이라 회담 개최국인 일본은 그 점을 널리 홍보하면서 생태친화적인 회담을 개최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일본은 2012년으로 끝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환경협약을 이번 G8 회담에서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협약을 참가국들(G8 나라들을 포함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8개국이 이번에 추가로 참석함)의 동의로 이끌어내려고 하였으나, 아무런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회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3. 전 세계적으로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회담이 열리는 일본 홋카이도에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대거 입국하여 여러 가지 반대 행동을 펼친 것으로 아는데요, 이들의 회담 반대의 주요 이유는 어떤 것입니까? G8 정상회담이 스스로 세계정부를 자처하면서 매년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 주로 강대국과 초국적 자본가의 입장에서 정책들을 추진해왔습니다. 지금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시장의 기능강화와 공공부문 민영화, 탈규제, 관세철폐와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개방, 외국투기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정책들이 결국엔 전쟁과 빈곤을 강화시키고 환경파괴를 불러왔기 때문에 G8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4. G8 정상회담 반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단순히 G8 정상회담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 10여년간 펼쳐졌던 신자유주의 - 세계화 반대 운동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보이는 데요, G8 정상회담 반대 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지난 10년간 줄기차게 벌어져온 세계화 반대운동 덕분에 기존의 세계화를 추진해오던 세계은행, IMF, WTO 같은 기구들은 회담 자체를 갖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이들이 어딜 가든 반세계화 시위대가 따라붙었으니까요. WTO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대세가 되면서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제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G8 정상회담이 반세계화 운동가들을 결집시키는 주요 목표가 된 것입니다. 5. 이번 회담이 일본에서 열리면서 일본의 많은 노동조합, 시민/사회 단체, 학생 등이 조직적인 대규모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그 움직임이 상당히 다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내 G8 정상회담 반대 움직임에 대해 소개부탁드립니다. 이번 G8 반대운동을 위해 지난 1년간 일본의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운동단체들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G8 정상회담의 개최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보다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고, G8 정상회담의 대안으로 다양한 세력들이 힘을 모으는 대안회담을 만들어가자는 입장을 가진 단체들도 있습니다. 7월 5일에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이들이 모두 모여서 행진을 했어요. 약 5천 여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3개 블록으로 나뉘어서 맨 앞에는 급진적인 세력들과 개인들, 가운데 블록은 일본 공산당, 마지막 블록은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서 행진을 했습니다. 각 블록마다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것 같아요. 6. 이번에 회담장 주변에서 펼쳐진 G8정상회담 반대 운동에 직접 참여하셔서 현장의 생생한 장면을 직접 보시고 오셨는데요, 주목할 만한 점이나 흥미로웠던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일본 경찰의 폭력성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7월 5일의 집회와 행진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던 디제이들과 트럭 운전수가 경찰에 연행되었는데요, 최대 23일간 유치장에 갇혀서 조사를 받으면서 변호사 이외에는 면회도 금지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집회를 반드시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경찰이 허가를 내줄 때에도 아주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일일이 간섭을 하고 결정을 해서 통보를 합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심하면 연행을 당하기도 하고, 집회가 끝난 다음날 집회책임자를 찾아내 연행하기도 합니다. 집회 가운데도 경찰이 따라붙어서 카메라와 캠코더로 불법채증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행진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끊임 없이 요구를 합니다. 일본 경찰이 허용한 집회만 할 수 있다니, 정말 갑갑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7. 일본정부는 이번 회담을 준비하면서 과거 99년 시애틀 WTO 3차 각료회의 반대투쟁, 2005년 부산 아펙 및 홍콩 WTO 반대 시위 등을 사례로 들어 ‘반세계화 운동세력의 과격성’을 부각하며 보안을 위해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반세계화 운동 경력’이 있는 활동가들의 입국을 불허하기까지 했는데요, 직접 겪으신 상황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일본 정부는 신경이 곤두서서 모든 경찰력을 총동원했습니다. 저와 같이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해온 ‘카라’는 이번에 결국 일본 입국이 불허되어 공항에 하루를 억류되어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해서 입국을 하지 않으면, 일단 G8 반대행동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든 사람은 공항에서 기본적으로 10시간 가까이 억류되어 심문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입국이 불허되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많고, 가까스로 입국이 된다고 해도 통상적인 3개월짜리 비자가 아니라 5일 체류하고 7월 7일 이전에 출국해야 하는 단기 비자가 나오는 식입니다. 민주노총이나 전농의 활동가들이 입국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더나 반세계화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도쿄에 며칠 있다가 홋카이도는 가보지도 못하고 출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8. 이번 G8 정상회담의 성과를 놓고 ‘실행방법 없는 선언적 합의’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뿐 아니라 회담이 열릴 때마다 이런 평가가 내려지고 있고, G8 정상회담 자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시는지? 직접 이번 G8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내려주신다면? 한 마디로 립서비스에 그친 합의입니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노력하겠다’ 딱 이 두 줄을 합의한 것이죠. 선진국이라는 8개 나라가 모였는데, 큰 틀에서는 이해를 같이 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부분에서 보면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합의를 하기 힘든 것입니다. G8 정상회담은 그냥 일 년에 한 번 정상들이 만나서 축배를 드는 비공식 사교모임인데, 스스로 지구 전체를 좌지우지하려는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9. 한국 언론은 이번 G8 정상회담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후쿠다 총리로부터 초청을 받아 한국 대통령 최초로 G8 정상회담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한국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국이 참가한 것은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이기 때문에 참가한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이외에도 멕시코,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참가한 이유는 이들이 G8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환경파괴국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모인 김에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보자고 한 것 같은데, 후쿠다 총리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네요. 온실가스 최대배출국 싹 모아놓으면 뭔가 해결이 되리라 믿었나 봅니다. 한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당기면서 사회적 불평등은 거의 폭발수준까지 올라 있습니다. 경제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런 문제들은 경찰력으로 억누르면서 덮어놓고 가겠다는 것이죠.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대통령이 G8에 참가해 샴페인 같이 마셨다고 서민들의 생활이 나아질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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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G8 반대투쟁

참세상 기고글입니다. ------------------ 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G8 반대투쟁 약 2주일 간 일본에 다녀왔다. 지난 7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렸던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는 홋카이도에서도 아주 구석에 있는 토야코라는 호수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윈저호텔이었다. 사진이나 지도로 볼 때는 몰랐지만, 그 호텔은 마치 중세 시대의 천혜의 요새를 연상시키듯 산꼭대기에 우뚝 솟아있었다. 멀리서도 잘 보이지만, 사방이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높은 봉우리 정상을 완전히 깎아 만든 곳에 모셔져 있는지라 차량이 없는 일반인들의 접근은 험한 산길을 수풀을 헤치며 올라가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외진 곳에 호텔을 지은 이유는 일본에서도 돈이 매우 많은 자들이 여름 휴양지로 즐겨 찾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예쁜 토야코 호수와 아기자기한 토요우라 마을 그리고 저 멀리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드넓은 원시림의 높은 봉우리 한가운데에 휴양을 온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졌다. 바로 그곳에 이 세상에 전쟁과 빈곤 그리고 환경파괴와 차별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확산시켜온 주범들이 모인다고 들었다. 한번 가서 따져묻고 싶었다. 왜 쥐새끼처럼 그렇게 숨어서 작당모의를 하냐고 말이다.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런 고립된 곳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만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세계로 뻗어가면서 세상의 자원을 어떻게 훔칠 것인가 모의하기 위해 권력자들이 모임을 개최할 때마다 성난 시위대가 항상 따라붙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 모임은 이제 토야코 호수 한 켠에 산을 깎아만든 윈저호텔 같은 곳에서 막강한 경찰력을 동원해 보호받지 않으면 열리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009년 G8 정상회담이 열리기로 예정된 이탈리아 역시 일반인들의 접근이 무척 어려운 어느 아름다운 섬에 회담 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권력자들이 세계의 민중이 연대해 펼치는 저항운동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이런 사실 자체가 운동의 성과라고 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어쩌랴, 저들은 여전히 고립무원의 고도를 마다하지 않고 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니. 애초 나는 그런 곳까지 쫓아가 밥맛 떨어지는 지도자의 얼굴들 면면까지 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G8 반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일본 활동가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준비를 했고, 나는 그들의 성의에 감동을 받아 급기야 일본 입국 시 강제로 지문과 얼굴사진 등의 생체정보를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행을 결심하게 됐다. 내 삶에 무지막지한 영향을 끼칠 중요한 사항을 왜 쥐새끼들 몇몇이 모여서 죄다 결정해버리느냐고 따지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은 무한경쟁의 체제에서 힘든 삶을 강요받고 있는 전 세계 민중들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함이었다. 일본 입국은 쉽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05년 홍콩 WTO 반대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이와 관련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사람들, 즉 반세계화 운동가들, 또는 저들의 말을 빌면 요인의 신변에 위험을 끼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협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의 정보를 이미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예 입국을 불허하고 본국으로 추방하는 바람에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대항국제포럼’에 참여해 학술활동을 하기로 한 학자들까지도 일본 공항에서 열 시간 이상씩 억류되었고, G8 반대활동을 독립적으로 기록하고 보도하기 위해 온 미디어 활동가들도 공항에 붙들려 한참을 심문을 받아야 했다. 집회에서 발언을 하기로 예정된 연사나 포럼 발표자들까지 입국을 불허하는 일본 정부의 강경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본 출입국관리소는 외국에서 온 활동가들에게 회담 개최일인 7월 7일 이전에 일본을 떠나도록 하는 3~5일짜리 임시 체류허가증을 발급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회담 시작 전부터 과도한 공권력의 사용으로 비판을 받은 일본은 그야말로 경찰국가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G8을 반대하는 집회와 행사를 조직하는 일본인 활동가들을 사찰하고 은근히 협박하는가 하면, 모든 집회와 행사에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불법채증을 버젓이 자행했다. 3인이 모여 촛불을 들고 간단한 집회라고 할라치면 어느새 알고 달려온 정보과 형사들이 외국인 활동가들의 신상을 모조리 파악해 향후 입국금지 자료로 활용할 터였다. 모든 집회는 3일전에 경찰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하며, 시작 시간에서부터 끝나는 시간, 장소와 참가인원 그리고 허가되는 행동과 불허되는 행동의 목록이 자세히 적힌 경찰의 방침에 집회참가자들은 따라야 했다. 예를 들어 행진할 때는 4열을 맞춰 행진해야 하며(군대의 사열이라고 받고 싶은 건가?), 대열 중간에 공백이 생길 경우 얼른 앞으로 달려가 메꿔야 했는데, 경찰은 보통 집회참가자의 수만큼 배치되어 바로 옆에서 같이 행진하면서 쉴 새 없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였다. 길바닥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를 적는다든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전단지를 뿌린다든가, 1차선 이상을 차지한다든가, 경찰과 신체적 접촉을 한다든가 등등 미리 경찰의 받지 않은 어떤 행동도 불허되었는데, 이를 어길 경우 현장에서 연행을 하기도 하지만 집회가 끝난 후 다음날 조직에 책임을 맡은 활동가들을 찾아내 연행하여 구속을 시키는 등의 파렴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일본은 연행될 경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도 경찰에 의해 23일까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일절 면회도 금지된다고 한다. 즉 한 번 연행되면 거의 한 달에 가까운 기간 동안 판사의 개입 없이 완전 고립된 상태에서 경찰의 심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에서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없으며, 경찰의 감시와 탄압이 일상화되어 있고, 그에 따라 공권력의 (부당한)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의 상상력이 메말라버렸다고 보면 된다. 국가에 순응하는 얌전한 시민사회의 활동은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뿌리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제거하며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저항적 사회운동이 기를 펴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체제가 만들어지는지 곁에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권력자들은 법을 통과시키고, 새로운 방침을 마련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기 때문에 반체제의 자유와 권리는 투쟁하면서 지켜내지 않으면 어느새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체제다. 6월 말부터 교토, 오사카, 도쿄 등지에서 크고작은 집회와 행동 그리고 대항포럼 등이 마련되었고, 7월 5일에는 어떤 식으로든 G8 정상회담을 반대하거나 문제제기 하는 모든 사람들이 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에 총집결해 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이 약 오천 명 정도였다. 오천 명이라면 한국에서 매일 촛불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숫자 아닌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몇 달간 일본의 시민사회와 운동권이 발벗고 나선 성과가 겨우 오천 명이라니. 그런데 그렇게 볼 일이 아니었다. 사실 저항적 사회운동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한국도 1-2년 전 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이나 비정규직 투쟁에 만 명을 모으기가 쉬운 형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촛불을 끄기 위해 모든 권력을 총동원해 만든 공안정국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앞으로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만 명의 시민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 오천 명이 모였는데,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집회와 행진을 했다. 빨간색, 검은색, 분홍색, 흰색 등 색깔도 다양했고,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두드리며 행진하는 이, 얌전히 깃발을 따라가는 이, 음악에 맞춰 춤추며 가는 이, 피켓이나 허수아비를 들고 걷는 이, 경찰에 도발을 하는 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 이 등 제각각으로 보이던 사람들도 ‘G8 반대’라는 구심점에 하나가 된 아름다운 투쟁이었다. 문제는 삿포로에 모인 그 사람들이 모두 토야코 호수까지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까지 따라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려는 골수(!)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삿포로 시내에 머물면서 포럼이나 토론회를 열거나 집회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일정을 짰고, 윈저호텔 주변에 가려는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대가 등을 바라지 않고 낮은 곳에서 묵묵히 운동을 해온 이름 없는 활동가들이었다. 체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일본 공산당은 삿포로 집회에 많은 당원들을 출석시켰지만 그들은 토야코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행진에서는 큰 깃발을 들고 많은 수가 참여해 조직력을 과시했던 어떤 노동조합도 회담장 근처에 가서 활동을 벌일 계획은 없었다. 큰 단체 소속이 아닌 사람들, 또는 느슨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 활동가들, 국제연대라는 이름의 상호부조 이외에는 별다른 자원을 갖고 있지도 않은 풀뿌리 지역 활동가들만이 삿포로에서도 차로 3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토야코 호수 주변에 모여들 고민을 하고 있었다. 회담장 주변은 온통 산지여서 그곳에 반세계화 활동가들이 머물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애초부터 일본 활동가들의 최대 고민거리였던 듯 싶다. ‘천 명’ 정도가 함께 머물면서 낮에는 집회를 하고 밤에는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무리 뒤져봐도 토야코 호수 주변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회담장에서 가깝게는 10km 이상, 멀게는 30km 이상 떨어진 산 속의 몇몇 캠프장에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우라 캠프와 소벳츠 캠프 그리고 다떼 캠프 등 세 곳이 선정되었다. 이 중 토요우라 캠프는 회담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고, 규모도 가장 큰 캠프장으로 최대 2천 명까지 수용이 가능한 삼림캠핑장이었다. 기본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시위 전력을 가진 국제 활동가들은 대부분 토요우라 캠프로 가게 되었고, 일본 활동가들은 주로 소벳츠 캠프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목초지에 임시로 마련한 다떼 캠프에도 활동가들이 들어가 총 세 곳에서 회담장을 포위, 압박한다는 집회 전략이 짜여지게 되었다. 이 전략은 토야코 호수까지 내려간 사람들이 많을 경우 유효한 방법이었다. 일본 전역의 모든 경찰이 홋카이도로 총집결한 상황에서 회담장 근처에 어떤 압박이라도 가하기 위해서는 반대행동에 참여한 사람이 최소한 몇 천 명은 되어야 했다. 특히 천혜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윈저호텔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산정상으로 뻗어 있는 유일한 도로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곳은 이미 대테러 특공대가 원천봉쇄하고 있지 않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없는 일본의 상황도 문제가 됐다. 회담장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물리적 압력을 가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소벳츠 캠프와 다떼 캠프는 경찰이 행진 허가를 내주었지만, 토요우라 캠프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행진 허가는 마지막까지 경찰이 내주지 않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G8 정상회담을 막으러 텐트며 코펠이며 25kg 이상 짐을 싸들고 그 멀고먼 토야코 호수까지 무진 애를 쓰고 갔다가 경찰의 봉쇄로 캠핑장 정문을 나서지도 못한 채 산 속에 갇힐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토요우라 캠프에서도 행진 허가가 나긴 했지만, 경찰의 그 허가사항이란 것이 참 웃긴 것이었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로는 행진을 할 수 없고, 산길을 돌고돌아 20km를 걸어가면 도착하는, 회담장에서 5km 떨어진 한적한 마을까지만 행진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토요우라 캠프에 간 사람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허가된 것 같았다. 토요우라 캠프에 도착한 첫날, 이 문제로 주로 국제 활동가들과 일본 활동가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다. 즉 일본 경찰이 허가된 경로로 20km를 넘게 걸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6시간을 걸어봤자 회담장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그렇게 해야 하나, 차라리 다른 방법을 동원하면 안되나. 이런 주제를 놓고 새벽까지 이어진 전체모임에서 결국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직접행동을 하자는 의견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에서 경찰이 허가한 행동 이외에 다른 행동을 하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되었다. 몇 백명이 머리를 맞대고 몇 개 언어로 통역을 거듭하며 합의를 내려고 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일부는 아침에 예정된 행진 코스로 행진을 시작하고, 다른 일부는 좀 시간이 지난 뒤 다른 행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나 경찰은 다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찰과 마찰을 일으켰다가는 경찰과의 (강요된) 합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애꿎은 일본 활동가들만 모조리 구속될 판이었다. 토요우라 캠프에서는 일부가 행진을 하고 일부는 경찰과 대치하다가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소벳츠 캠프와 다떼 캠프에는 예정된 코스에 따라 행진을 했다. 회담장 가까이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행진의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또한 온갖 언론사의 기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G8 정상회담의 문제점을 행진을 통해 압축적으로 알리는 것도 행진 이유가 되었다. 7월 5일 삿포로 집회에서 사운드 데모를 하다가 부당하게 연행된 DJ들과 트럭 운전사의 석방을 요구한 것도 토야코 호수를 둘러싸고 진행된 행진에서 주요한 이슈였다. 캠프장에서의 첫날이 지나자 문제는 더욱 명확해졌다. 저들이 교묘하게 마련해놓은 윈저호텔 근처로 바짝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회담장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접근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경찰국가가 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시민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지, 안보라는 이름으로 어떤 식으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지 알리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다. 애초에 경찰의 저지선을 넘어 회담장으로 접근해 펼침막을 펼쳐보이거나 ‘호텔 인간띠 잇기’ 등의 꿈을 꾸었던 활동가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좌절이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세상을 열망하며 10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수 백명의 사람들이 3일간 캠핑장에 모여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그곳에 모였던 이유일 수 있으니 말이다. 윈저호텔에 다가가 이명박이나 부시, 후쿠다 총리 같은 자들의 역겨운 얼굴을 보는 것보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나와 같은 꿈을 꾸며 비슷한 모습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포옹하며 며칠을 같이 보내는 것이 훨씬 즐겁고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 없어 보였다. 쟤네들은 지들끼리 스스로 고립시키라고 하지 뭐. 우리는 이번에 이곳에 모여 다시 한번 부자들만의 세계화를 멈추라고 경고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가고 있었다. 찐 감자와 주먹밥으로 점심을 같이 먹고 20km 등산을 하며 새까맣게 탄 얼굴로 서로 활짝 웃어주는 사람들,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우정이랄까 아니면 정감어린 무엇인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연대라는 두 단어로는 세밀하게 표현하기 힘든, 수평적이고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집단의 일부이자 뚜렷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랑스러운 그런 느낌이었다. 2001년 외환위기로 국가경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아르헨티나의 민중들이 스스로 자치운동을 벌이며 삶을 복원하는 과정도 그런 느낌을 민중들이 공유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 느낌을, 마리나 싯트린Marina Sitrin이라는 사람은 ‘Horizontalism’이라는 책에서 현지 풀뿌리 주민들의 생생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지난 몇 달간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즉 나에게 중요한 어떤 문제를 남이 결정해버리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해결해가려는 참으로 지난한 과정에 온몸을 내맡긴 사람들만이 서로 느낄 수 있는 애정과 존중의 연대의식 말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따뜻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반가울 수 있는 힘 말이다. 일본에서 만난 많은 활동가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런 느낌이 가능해진 배경이 되었던 촛불집회와 길거리 행진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해 애를 썼고,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스페인에, 프랑스에, 홍콩에, 미국에 그리고 일본에도 있었다. 애초 일본 활동가들은 세 개의 캠프를 조직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캠프에 모든 사람이 몰려 있을 경우 쉽게 말하면 ‘몰살’되기 십상이고, 또한 캠프를 두 군데, 세 군데로 나눔으로써 탈집중화된 투쟁을 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이것을 잘만 하면 커다란 힘으로 승화시켜 G8 정상회담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적은 수의 사람들이 토야코 호수에 모였고, 그런 가운데 다시 캠프를 세 군데로 나눔으로써 우리의 힘은 더욱 분산된 역효과도 있었다. 회담장 가까이 간 사람들은 대부분 아나키즘과 자율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탈집중적 기획을 한 것은 당연했지만 어떻게 보면 ‘탈집중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런 우려를 나만 느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째날의 행동이 끝나고 모인 사람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세 캠프가 결합해 마지막 행동을 하자는데 동의했다. G8 정상회담은 우리가 가서 막지 않아도 이미 각국 자본가들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합의를 내지 못하고 폐막되고 있었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 환경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어서, 이곳을 회담장소로 잡으면서 일본 정부는 ‘에코’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 아름다운 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각국의 합의를 이끌어내기에 ‘에코’는 가장 효과적인 선전구호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자본가들은 ‘에코 마케팅’을 하지 않고는 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모든 제품에 에코를 내세우는 형편이 되었다. ‘이 제품을 사면 환경이 보호된다’는 문구가 광고에 한 두 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해서, 이제 일본에서는 에코라는 것이 운동권의 구호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가치로 변질되고 말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유행하던 ‘웰빙’이 일본에서 지금 에코가 된 셈이다. 그래서 어떤 활동가는 집회에 나가 큼지막하게 ‘에코 반대’라고 써붓인 피켓을 들고 내내 행진을 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에코를 내세워 2012년으로 마감이 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2050년을 목표로 삼은 새로운 환경정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고갈되는 석유와 에너지 위기의 시대에 개발만이 답이라고 여기는 자본가 정부들이 에코의 가치를 위해 산업에 제한을 가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각국의 정상들이 샴페인과 산해진미를 즐기던 7월 9일 세 군데 캠프로 나뉘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침내 토야코 호수 저 너머로 윈저호텔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모여 신나는 행진을 벌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같이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삿포로에 모두 모여 행진하던 사람들이 며칠 간 다른 캠프로 헤어져있다 다시 상봉하는 순간은 박수와 환호성이 가득했다. 경찰은 여전히 귀찮게 굴면서 연행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골칫거리는 되지 못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싸움은 진행형이다. 7월 5일에 사운드 트럭을 몰다가 연행된 운전사와 그 트럭 위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며 행진을 할 수 있게 음악을 틀던 DJ 두 명이 아직도 일본 삿포로 중앙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다. 이 친구들의 석방과 집회 시위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일본에서 같이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는 어디에 있건 다시 만날 것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억압을 가하기 마련일테고, 나에 대한 억압은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억압이기에 그렇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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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회(7월 19일): G8 반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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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코기토입니다.

 

G8 액션에 함께 했던 코기토입니다.

톰과 저도 어제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두 분이 서울로 떠나고

11일날은 톰과 저는 저희 일정을 진행하고

12일날 그동안 만났던 일본친구들을 만나려고 연락을 돌렸는데

 

도쿄에서 우리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주었던

일본활동가는 경찰의 감시가 심해서 삿포로에서

도쿄로 오지 못한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걱정도 많이 되고 마음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아노상한테 연락을 했더니 12일날 집회가 있다고 해서

어떤 집회인지 전화통화여서 정확히 모르고 갔는데

 

연행자 석방을 위한 집회였습니다.

톰과 저도 12일날 도쿄 코엔지에 있었던

연행자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같이 했구요.

 

그 곳에서 그동안 만났던 활동가들을 다시 만나고

같이 집회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집회가 마지막쯤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다같이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치는데

 

눈물이 핑돌 정도로 짠했어요.

연행자들이 하루 빨리 석방됐으면 좋겠네요.

로이터기자는 하루만에 로이터회사의 전화로

인해서 풀려났다고 하던데 진짜 화나고 열받네요.

 

12일날 일본집회에서의 사진도 찍고 했으니

지금까지 사진들이랑 영상들을 정리해서 올릴 수 있도록

빨리 저 스스로를 재정비해야 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잘 돌아왔지만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감시받고 있는

활동가나 삿포로에서 우리에게 숙식을 제공한

활동가를 도쿄활동가들이 다 걱정하고 있던데

 

저도 참 많이 걱정되네요.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잘 활동하고

무사히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서울에서 연행자 석방요구 행동을 해주신 분들

너무 멋있구요.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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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된 친구들을 석방하라

2008년 7월 5일 삿포로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반대 집회에서 부당하게 연행된 일본인 활동가 3인의 즉각 석방과 경찰폭력 중단을 위한 공동 행동이 7월 12일 토요일에 일본 주요 도시와 서울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열렸습니다.
서울에서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G8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리 피켓을 준비하여 우리의 요구조건을 알렸습니다.
비가 하루종일 내렸지만 약 2만 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우리들은 원천봉쇄된 서울시청을 돌아 시내 행진을 했습니다.
앞으로 일본 경찰의 폭력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G8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가보자
G8, 누가 이기는지 한번 끝까지 해보자!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한번 해보자
이명박, 누가 이기는지 한번 끝까지 가보자!
강제로 연행해간 우리의 친구들을 즉각 석방하라!
강제로 연행해간 우리의 친구들을 즉시 석방하라!
경찰은 닥치고 당장 물러가라!
경찰은 닥치고 당장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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