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성찰

2010/04/26 11:15

- 김용철, 2010,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 (  )는 쪽수.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악도에 살고 있음을 깨달고 성찰하지 않으면

나도 이 악마와 한편이 되거나 작은 악마가 될 것이다. 

 

회사가 붙잡고 싶어 하는 우수한 인재일수록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다. 반면 다른 일자리를 얻기 힘든 사람일수록 회사에서 윗사람에게 아부하며 자리를 지키려 든다. 회사가 임직원을 일회용 소모품처럼 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때, 우수한 인재들이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188)

 

이건희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묶어주는 끈은 혈육간의 정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을.(235)

 

정치적 영향력은 탐나지만, 정치인 개인의 권력은 십 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게 언론재벌이다. 영속적인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242)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386)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을 늪에서 빼내는 대신 사법부 전체를 사지(死地)로 내몰았다"는 이야기가 법조계 주변에서 나왔던 것도 그래서다.(387)

 

대법원당의 반성은 그저 과거사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 꿈틀대는 권력 앞에서는 옛날 버릇 그대로였다. 대법원장은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법관을 비호했고, 삼성사건 심리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대법관을 배제하려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사과문을 발표한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졌다.(388)

 

삼성에 대한 입장은 재벌 친화적인 우리 사회 주류의 가치관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한다. 삼성에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는 "나는 반(反)기업적인 법조인이요"라고 선언한 것과 같다. 그런데 대형 로펌에서 천문학적 연봉을 받는 변호사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재벌 계열 대기업들이다.(389)

 

군사정권 시절에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반(反)기업적'이라는 낙인을 모두들 겁낸다.(389~390) 현직 판,검사들 역시 변호사 개업 이후를 대비해서 재벌에게 '반기업적'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몸을 사린다. 언론 역시 재벌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분주하다.(390)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들이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그물을 쥐고 있는 것은 재벌이다. 이게 현실이다.(391)

 

아무리 흔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견고한 주류 질서. 그것을 지탱하는 힘은 끈적끈적하고 촘촘하게 엉켜 있는 인맥이다. 검사시절, 법조 비리를 수사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연루된 자들이 모두 특정 학교 동문이었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복잡하게 얽힌 인맥은 불법도 합법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391)

 

친분 있는 선후배를 돕기 위해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경우에 대해 죄의식을 갖기는 커녕 '남자다운 일', '의리있는 행동', '통 큰 배짱' 등으로 여기는 일도 흔하다. 공식적인 법질서보다 사적인 관계가 우선하는 사회인 셈이다.(392)

 

검사 후배를 두지 않는 사람, 검사 친척이 없는 사람들만 억울해진다. 물론, 많은 이들이 검찰에 '끈'이 있으면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꽤나 견고한 것이어서, 너도나도 검찰에 '끈'을 만들려고 한다.(392)

 

부패한 재벌 총수들에게 관대한 법은 대체로 서민에게는 가혹한 법이다. 단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던 삼성 비리 사건과 당사자 전원이 구속됐던 용산 참사 사건을 비교해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393)

 

미네르바, YTN 노조 위원장, [PD수첩]제작진을 체포한 검찰의 행태는, 과거 군사정부 시절 공안검사들이 한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396)

 

[PD수첩] 수사는 미국산 쇠고기 관련 정책을 다뤘던 정운천 전 농림부 장관의 소송으로 시작됐다. 이 수사는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보복"일 뿐, 그 외에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제정신을 가진 검사라면, 정 전 장관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게 당연하다.(397)

 

검찰은 다시 과거 공안검찰 수준으로 돌아갔다. '죽은 권력'을 물어뜯기에 급급했지,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는 몸을 사렸다. 그리고 영속 불변하는 권력, '죽지 않을 권력'인 재벌에 대해서는 한없이 비굴해졌다.(402)

 

검사를 사직하였다 하여 이미 벌을 받은 양 더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는 정말 말이 안 된다. 사직함으로써 중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 경력 변호사로서 돈을 벌며 종신토록 차관급에 해당하는 연금을 받으니 축복받은 일일 뿐이다. 부패한 자의 안락한 삶을 평생 보장한다면 범죄자에 대하여 사회보장이 잘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나라가 아닌가.(406)

 

(용산 참사 사건) 당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 중에는 2009년 1월 참사 현장에서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가 있다.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거꾸로 아버지를 죽였다고 기소된 셈이다. 통상적인 재판에서라면, 이런 경우 설령 혐의가 인정된다고 해도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을 감경 사유로 보는 것이다. 법원은 이런 상식을 무시했다. 그뿐 아니다. 재벌 비리 사건 재판에서는 온갖 명목으로 이루어졌던 작량감경이, 용산 참사 재판에선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408)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한없이 관대했던 법원이, 가장 힘없고 연줄도 없는 이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끝없이 가혹했다.(408)

 

법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돈 많은 자들의 편을 들었던 역사가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사법부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410)

 

무턱대고 권력자들에게 끈을 대고 억지 친분을 쌓으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억지로 친한 척하는 것은 영혼을 녹슬게 할 뿐이다.(412) 평범한 이들까지 '마당발'을 동경하게 된 한 원인은 허술한 사회안전망이다. 개인의 삶이 위기에 닥쳤을 때,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412)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편인 이건희, 김인주 등이 광범위한 로비를 통해 한국 사회를 제멋대로 흔들었던 것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이 아무리 친화력이 좋다한들, 돈으로 인맥을 산 자들을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413)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게 꼭 옳은 일은 아니다. 조직의 이익과 사회 정의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414) 우리 사회에서는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만을 중시하는 분위기 탓에 옳지 않은 일을 하더라도 동료 및 선후배들에게 좋은 평가만 받으면 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인맥을 통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자신이 속한 인맥 그물에서 떨어져나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414)

 

조세 투명성이 낮으니, 지하경제만 번창한다. 대표적인 게 룸살롱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으니, 다들 권력층에 줄을 대려고만 한다. 이들이 끈끈하게 어울리는 곳은, 역시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다. 마음에서 우러난 교제가 아닌, 억지 친분을 쌓으려면 술과 접대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폭탄주를 주고받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법과 질서는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해진다.(420)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병역을 회피하고, 세금을 탈루하는 나라가 튼튼한 안보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류역사를 아무리 샅샅이 훑어도 이런 사례는 없을 게다. 이건희 집안 사람들에게 병역 등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세금 제대로 내고,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래서 국가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424)

 

부패와 비리는 곰팡이와 같아서 햇볕 아래 드러나는 순간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령 권력이 양심고백한 내용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늘어나면, 권력이 비리를 덮어버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444)

 

권력층이 부패한 사회는 힘센 자가 아무런 견제 없이 횡포를 부리는 무법천지일 뿐, 우파의 이상도 좌파의 이상도 될 수 없다. 부패를 막는 문제는 좌-우 이념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동시에 좌파도, 우파도 끊임없는 감시와 성찰이 없다면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시민이 부패에 맞서는 장면을 꿈꾼다. 반(反)부패시민혁명에 관한 염원이다.(446)

 

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448)

 

 

- 김예슬, 2010,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느린걸음. ; (  )는 쪽수.

 

내가 학생운동을 하고, 그 시간 동안에 어울렸던 모임에서

단 한명의 대학거부자 또는 그런 선언을 하지 못한 것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단 한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없었던 것을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내가 학교를 싫어했지만 대학을 거부하지 않았고,

내가 군대를 꺼려했지만 병역을 거부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사상과 가치관은 내 삶과 내면에 깊숙히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가 너무 부족했음을 고백한다.

참으로 부끄럽다.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국가야말로 일정한 봉급을 보장 받는 영원히 망하지 않는 기업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 맞지 않은가?(47)

 

그리하여 내 몸으로 하지 않는 것조차 내가 안다고 믿게 하며, 그런 자신을 지식 엘리트라고 착각하게 한다.(58)

 

아이는 유아방과 유치원과 학교에 맡기고, 아이들의 대화상대는 TV와 컴퓨터에 맡기고, 가사는 도우미에게 맡기고, 옷과 생활도구는 마트와 백화점에 맡기고, 영혼은 제도 종교에 맡기고, 건강은 병원에 맡긴다. 이 체제는 온전한 것을 갖고 태어난 인간을 매일 매일 불구자로 망가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59)

 

'탐욕의 포퓰리즘'(60)

 

시인과 작가가 되려고 해도 문예창작과를 나와야 한다. 사진을 찍고 싶어도 사진학과를 나오고 유학을 가야 한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삶을 바치고 싶어도 사회복지학과를 나오고 자격증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요리를 하고 싶어도 비싼 돈을 들여 무작정 대학가서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알바해서 이탈리아, 프랑스 유학부터 가야 한다.

(중략)

시에 대한 순수한 정신도, 다규멘터리 사진에 대한 사명감도, 가난한 이를 섬기는 자발적 친절도, 아픈 사람에 대한 치유와 정성도, 법에 대한 정의감도 생기기 이전에 들인 돈부터 뽑아내야 한다는 계산이 먼저 작동하지 않겠는가?(64)

 

알기는 하는데 느끼지는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85)  불안과 실존의 문제를 키에르케고르 책에서 발견하게 하면서, 정작 살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한 가슴과 포개지는 실천과 경험은 지나쳐 버린다.(85)

 

지식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삶과 실천의 흡수능력을 넘어서는 인문학은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을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가난한 마음이 없다면, 그런 자기 내어줌의 실천이 없다면, 그 많은 지식과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87)

 

지금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모르는 건 없는 역설의 시대이다. 네비게이션으로 찾을 수 없는 길은 없으나 나의 기억력과 야생의 본능은 사라진 것처럼. 가난한 이들 속에서 세끼 동냥으로 밥을 얻어 먹고 지붕 있는 집이 아닌 나무 밑에서 수행하고 잠자던 혁명가 붓다를,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불교 대학을 나와 성직자 옷을 입거나 대학 교양과정의 인문학을 공부하면 다 아는 듯 말할 수 있게 되었다.(87)

 

머리는 계산이지만, 가슴은 직관이기에,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머리를 잠시 멈추고 진정으로 내 가슴이 부르짖고 있는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보자.(95)

 

제발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몸을 빌어 왔지만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하고 고유한 존재이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100)

 

우리 젊은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부모산성을 뛰어 넘어야 한다. 부모의 사슬도 사슬은 사슬이다. 자신의 눋 날개를 얽어 맨다면 사랑의 사슬도 사슬이다.(101)

 

거짓고 더불어 제 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친 듯이 사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115)

 

나는 먼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것이다. 주관적 바람이나 희망를 섞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볼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직시할 것이다. 거짓 희망의 말들에 속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 버린 것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서 이기에.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 상처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117)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건강법을 익힌다.

지감각을 되살리고 민감한 감성으로 / 절정체험의 순간을 느낀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사는 법을 익힌다.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 슬픔과 고통을 다루는 삶의 기술을 배운다.(119)

 

억지로 하지 말고 자유롭게 하되 / 서로의 약속을 지키고 사람으로서 '안 되는 건 안된다.'(120)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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