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2018/07/13 15:19

2018년 4월..마광수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1. "마광수, 2011, <마광수의 뇌 구조>, 오늘의책"에서 발췌

 

지금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돼도 괜찮은 시대가 아니라 소수의 돌출된 창의성을 위해 다수가 너그러워져야 하는 시대이다.(75쪽)

 

천재적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광기'는 작가의 본능적 의지와 위선적이고 억압적인 왜곡된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마찰에서 나온다. 작가 또는 민중들의 본능적 배설욕구들이 이념의 틀로써 부정되거나 흑백논리에 의해 매도당하지 않는 풍토, 그것이 바로 문화의 민주화...(중략)

 

...이 세상의 악과 불행은 이상의 결핍 때문에 비롯되지 않는다.
되레 모든 악과 불행은 잘못된 이상, 잘못된 신념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18쪽)

 

 

2.

행복한 자살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
아무렇지도 않게 섹스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질 수 있는
그런 여자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어

아무런 부담없이 햝고
아무런 부담없이 빨고
아무런 부담없이 박고
아무런 부담없이 빼고......

아아 그런 사랑이 내게 찾아온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자살할 수 있을 것 같아

천국도 지옥도 없는 텅 빈 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윤회하지 않을 것 같아

 

- 마광수, 2013, <2013 즐거운 사라>, 책읽는귀족, 186~187쪽.

 

 

3.

사라의 법정

 

검사는 사라가 자위행위를 할 때
왜 땅콩을 보지 속에 집어 넣었냐고 다그치며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재판장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내려고 애쓰며
피고에게 딸이 있으면 이 소설을 읽힐 수 있겠냐고 따진다

 

내가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을까
또 왜 아들 걱정은 안 하고 딸 걱정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왼쪽 배석판사는 노골적으로 하품을 하고 있고
오른쪽 배석판사는 재밌다는 듯 사디스틱하게 웃고 있다


포승줄에 묶인 내 몸의 우스꽝스러움이여
한국에 태어난 죄로 겪어야 하는 이 희극이여

 

- 마광수, 2013, <2013 즐거운 사라>, 책읽는귀족, 190~191쪽.

 

 

4.

업(業)

 

개를 한 마리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식 낳고 싶은 생각이 더 없어져 버렸다
기르고 싶어서 기르지도 않은 개
어쩌다 굴러들어온 개 한 마리를 향해 쏟는
이 정성, 이 사랑이 나는 싫다.
그러나 개는 더욱 예뻐만 보이고 그지없이 사랑스럽다
계속 솟구쳐나오는 이 동정, 이 애착은 뭐냐
한 생명에 대한 이 집착은 뭐냐
개 한 마리에 쏟는 사랑이 이리도 큰데
내 피를 타고난 자식에겐 얼마나 더할까
그 관계, 그 인연에 대한 연연함으로 하여
한 목숨을 내질러 논 죄로 하여
나는 또 얼마나 평범하게 늙어갈 것인가
하루 종일 나만을 기다리며 권태롭게 지내던 개가
어쩌다 집 안의 쥐라도 잡는 스포츠를 벌이면 나는 기뻐진다
내 개가 심심함을 달랠 것 같아서 기뻐진다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불쌍한 쥐새끼보다도
나는 그 개가 내 개이기 때문에, 어쨌든
나와 인연을 맺은 생명이기 때문에
더 사랑스럽다
하긴 소가 제일 불쌍한 짐승이라지만
내 개에게 쇠고기라도 줄 수 있는 날은 참 기쁘다
그러니 이 사랑, 이 애착이 내 자식 새끼에겐 오죽 더해질까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자신 없는 다짐일지는 모르지만
정말 자식은 낳지 말아야지
모든 사랑, 모든 인연, 모든 관계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도록
이를 악물어 봐야지
적어도, 나 때문에, 내 성욕 때문에
내 고독 때문에, 내 무료함 때문에
한 생명을 이 땅 위에 떨어뜨려 놓지는 말아야지

(1979 년 作)

 

 

5. "마광수, 2016, <인간에 대하여>, 어문학사"에서 발췌

 

‘민주화’...‘정신과 육체가 두루 억압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는 상태’를 가르키는 개념...

육체의 솔직한 욕구를 은폐하지도 않고 왜곡하지도 않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정신도 솔직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115~116쪽)

 

인간과 동물이 같다는 생각은 인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나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보지 않고 ‘윤리라는 쇠사슬로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결박해 버린 불쌍한 동물’로 볼 수 있을 때, 인간은 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210쪽)


표현의 영역은 말이나 글의 범주를 뛰어넘어, 인간의 유한한 표면의식이 접근하지 못한 육감적 심층의식의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 언어적 문자적 표현의 불완전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전신적 감각의 세계 안에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242쪽)

 

문자적표현의 불확실성 문제는 기호와 상징 그리고 문장론의 문제와 결부되면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데 있어 다른 사안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특히 우주적 실상을 문자적 상징으로 표현하는 데 따른 무지의 가속화 문제는 초지각적직관의 실체를 규명하는 문제와 함께 새로운 연구과제..(242쪽)

 

섹스를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고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326쪽)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이성 위주의 ‘어른스런 사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동물적 놀이본능’에 의해서 가능한지도 모른다.(328쪽)


...섹스 역시 놀이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놀이하는 인간’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인간은 자기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인간 실존의 본질인 ‘고독’과 ‘불안’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오직 ‘놀이’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29쪽)


참된 에로티시즘은 ‘사정’이 아니라 ‘발기’에 있다. 긴 손톱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언제나 나의 ‘상상적 발기’를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었다. 다시 말해서 오르가슴의 순간을 기대하는 시간을 한없이 기분 좋게 연장시켜 주었다. (361쪽)


나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동양의 실용주의적 가치관과 일원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는 ‘육체주의 문화’에 ‘고도의 과학문명’이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인간의 쾌락 또는 복지를 극대화시키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401쪽)


...미래의 신세계 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힘은 ‘절대적 평화주의’이다. 그리고 그것이 확립되도록 도와주는 역활을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포기’와 ‘위선적 도덕의 포기’를 전제로 하는 ‘쾌락지상주의와 복지지상주의의 범인류적 수용’이다. (403쪽)


무엇보다도 섹스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일이 시급하다. 앞으로 우리가 살 세상은 식욕이 아니라 성욕 중심의 시대이며, 섹스가 주는 욕망의 카타르시스가 즐거운 놀이이자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생존권으로 자리 잡을 시대이기 때문이다.(442쪽)

 

 

6. "마광수, 2017, <추억마져 지우랴>, 어문학사"에서 발췌

 

우리가 계속 그 지겹고도 상투적인 인터코스만 되풀이했더라면...섹스의 묘미는 ‘사정과 수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능적 상상력을 통한 성희로부터..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변태 게임으로부터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92쪽)

 

나는 수음을 하고 싶은 미칠 듯한 충동을 느꼈다...(중략)...순간적인 배설은 나를 긴장감으로부터 급격히 이완시켜 나의 온몸을 나른하게 했고 머릿속을 텅 비게, 정말 깨끗하게 비어 있는 공백 상태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127쪽)


“아 쓰발, 더러운 세상 잘 떠났다.”

......

“마 교수님은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

“역시 지옥에 오길 잘했어. 천국을 갔으면 맨날 찬송가만 부르고 있었겠구만.”

(151~156쪽)

 

공자나 석가 같은 이들이...애초에 주장한 것은 ‘육체의 행복”이었지 정신 일변도의 행복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악한 장사꾼들은 권력자와 결탁하여 민중들에게 자꾸 정신의 중요성만을 주입시켰지요. 민중들이 육체적 행복 또는 쾌락에 눈을 뜨면 통치하는 데 애를 먹게 되니까요..(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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