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보기] 박노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만복이   | 2006·12·21 09:56 | HIT : 35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 만감: 일기장  2006/12/20 20:27 

   

제 애독서 중의 하나는 다이쇼 시대의 일본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芥川 龍之介; 1892-1927)선생의 "슈쥬노 코토바" ("侏儒の言葉 ":"보잘것 없는 글쟁이의 말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1922년 작)라는 일종의 명언집입니다. 아직은 한글로 안나온 것 같은데, 그건 아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 명언 중의 압권 하나는 이것입니다:


"軍人は小児に近いものである。英雄らしい身振を喜んだり、所謂光栄を好んだりするのは今更此処に云う必要はない。機械的訓練を貴んだり、動物的勇気を重んじたりするのも小学校にのみ見得る現象である。殺戮(さつりく)を何とも思わぬなどは一層小児と選ぶところはない。殊に小児と似ているのは喇叭(らっぱ)や軍歌に皷舞されれば、何の為に戦うかも問わず、欣然(きんぜん)と敵に当ることである。

 この故に軍人の誇りとするものは必ず小児の玩具に似ている。緋縅(ひおどし)の鎧(よろい)や鍬形(くわがた)の兜(かぶと)は成人の趣味にかなった者ではない。勲章も――わたしには実際不思議である。なぜ軍人は酒にも酔わずに、勲章を下げて歩かれるのであろう" (http://www.aozora.gr.jp/cards/000879/files/158_15132.html)


아주 대략적으로 번역을 하자면 대충 그렇게 될 거에요: "군인들은 작은 아이들과 같은 것들이다. 소위 '영웅적인 행동'을 기쁘게 여긴다든가 소위 '명예'를 좋아하는 이러한 그들의 처신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기계적인 훈련을 귀하게 여기고, 동물적인 용기를 중요시하는 것은, 소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살육을 하는 것도 작은 아이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작은 아이들과 비슷한 것은, 나팔소리과 군가에 고무되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적 앞으로 돌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인들이 자랑하는 것은 필히 작은 아이들의 완구와 흡사하다. 번쩍가리는 갑옷이나 투구들은 성인들의 취향이 아니다. 훈장이라는 것도 나에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왜 술에 취하지도 않은 채 군인들이 훈장을 달고서 거리를 활보하는가?"




일제의 군사주의적인 광기가 사회를 꽉 잡았던 시절에 이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쿠타가와선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약간 고치고 싶습니다. 군인이 작은 아이와 흡사하다 라기보다는 군대가 인간의 퇴영적인 심리를 십분 이용한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가부장적인 가정이 키우는 "강한 남자"의 콤플렉스를 이용하여 살육의 전문가인 군인을 마치 "진정한 남성"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인간의 로봇으로 만들려는 기계적인 훈련을 무슨 놈의 "낭만"으로 포장하여 팔지 않습니까? "용기"에 대한 숭배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간사한 전략이지요. 가부장적인 남성의 이미지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담력이 좋은 남성"이 대접을 받게 돼 있고 군대가 이를 이용하지요. 한데, 자신과 남의 생명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란 인간의 가장 심층적인 본능인데 "용기"의 숭배는 그 본능을 스스로 압박하게 하여 그 본능의 발로에 대한 스스로의 수치심을 키우지 않습니까? 마치 중세적인 종교들이 섹스에 대한 수치심을 키우듯이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온갖 가미카제, 육탄용사, 결사대 등등이 세상의 본보기가 되고,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지 않는 장삼이사가 "비겁한"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함께 "용감한 군인"에 대한 동경의 염을 갖게 되지요. 그런데 도대체 아쿠타가와 선생 시대의 평범한 일본인이 미쯔이와 미쯔비시가 중국에서 사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진정으로 목숨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나요? 오늘날의 한국인이 모 건설업체가 미 점령군의 총독부로부터 수주를 잘 받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자이툰 부대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은 과연 합리적이고 올바른 일인가요? 사실, 건군 이후로 한국군이 해온 일이란 무엇입니까? 남한 지배계급과 북한 지배계급이라는 두 개의 깡패 집단의 다툼의 과정에서 전자를 지켜준 것과, 두 번 정도로 상국의 부름을 받아 "화려한 외출"을 한 것 이외에는 뭐가 있나요? 군대를 당장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닌데, 이와 같은 기능들을 "신성한 병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가 아닌가요?  필요악일지는 몰라도 "신성한" 그 무엇도 찾아보기 어렵지요.  



출처 : http://wnetwork.hani.co.kr/gategateparagate/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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