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인간연습

2007/01/19 09:05

- 2006. 8. 12.

1. 조정래는 지독한 민족주의자이다. 그의 사상의 끝은 '민족'이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깊이가 대단하다.
깊은 성찰과 더불어 시대를 초월하여 일상적 민중의 삶과 마음을 후벼 파는 미세한 서술은
단연 현대소설가중에 으뜸이다. [태백산맥]이 그렇다.

2. [인간연습]은 4년의 공백기간이 지난 후 쓴 소설이다. 아~ 나도 소설 쓰고 싶다.

3. [인간연습]은 '이념형 인간'에 대한 깊은 반성이다. 나와 느낌이 비슷하다.
그라믄 이념이 아니면 무엇이가? 내가 또 말하믄 '우주인'되는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볼 일이다.

4. [인간연습]은 전향한 장기수(간첩)의 엄청난 삶과 삶의 고민이 담겨있는 이야기이다.
나도 '인간연습'하여 인간이 되고 싶다.

5-0. (소설에 대한 이해를 위해)
박동건과 윤혁은 강제 전향 장기수임. 박동건은 먼저 죽고 윤혁은 계속 살아감. 따라서 윤혁이 소설의 주인공임.

5. 말이나 언어보다는 시선이 훨씬 효과적이며, 때로는 눈빛이나 감정이 진실에 가까울 때가 있다.
- '혀보다 눈의 반응이 더 정확했다'(p.19)

6. 아~ 늙는다는 것.
- 시아버지로서 힘을 발휘할려면 며느리가 군침을 흘릴 만큼 돈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없으면 명예라도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난 박동건은 무일푼에다가 명예는 커녕 불명예의 덩이리일 뿐이다.(p.26)

7. 죽는 것.
- 남자의 눈에서도 저렇게 많은 눈물이 흐르는 구나...... 윤혁은 또 박동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없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박동건의 모습은 죽음의 문 앞에 선 불쌍하고 가련한 한 늙은이의 모습일 뿐이었다. 이렇게 죽어가려고...... 윤혁은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그 실감은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다.(p.27)

8. 죽음은 최고의 술안주이다. (보통보다 훨씬 많이 먹어도 쉽게 취하지 않는다) 지독한 삶으로 빚은 술이기 때문이다. (박동건이 죽고 장례식장에서 술을 먹는 윤혁을 묘사하는 장면을 읽을 때 든 생각임)

9. 종교와 이념의 유사점과 갈등.
- 종교든 이념이든 관념이었다. 그런데 그 관념이 현실성을 획득하면 충돌을 면치 못했다. 그 현실성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간 행동의 극한 상태가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힘을 빌리면 두 관념의 충돌은 광적인 활화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종교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체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는 예수교인들로서는 신을 부정해버리는 공산주의 무리들은 사탄일 수 밖에 없었다.(p.32)

10. 죽음!!!
- (화장터에서 나오는 박동건의 뼈를 보고) 사람이 결국 저렇게 되고 마는가! 흩어진 뼈에는 아무런 무게감도 색채감도 없었다. 아무 쓸모없는 쓰레기처럼 흩어져 있는 뼈들은 덧없는 허망감만 자아내고 있었다. 그 깊고 사무치는 허망감이 일으키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갑작스럽고도 격했다.(p.40)

11. 인간의 한계: 이기심, 이타심, 종교, 본능, 이성
- 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이데올로기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그 발명품은 당초의 목적대로 쓰이지를 못했다.

흡사 칼이라는 발명품처럼. 똑같은 칼을 주부가 들었을 때와 도둑이 들었을 때...... 결국 각국의 공산당원이란 칼이라는 유익한 도구를 잘못 든 도둑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인간.......인간......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원들의 부패와 타락의 뿌리는 이기주의다. 이기성이라는 본능의 힘은 무섭다.

모든 종교의 공통된 미덕은 나만을 위한 이기심을 버리고 남도 위할 줄 아는 이타행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 지고한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각 종교의 성직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다수가 이기심에 사로잡혀 신의 이름을 팔아가며 타락하고, 사회권력을 형성해 횡포를 자행하고, 심지어 신을 내세워 살인을 합리화하는 전쟁까지 불사해온 것이 인류사였다. 그 막대한 해독 때문에 마르크스는 일찍이 종교를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이기심이라는 본능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당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인간......인간이란 본능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럼 인간의 이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며, 이성의 힘은 능히 본능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가.

그 이성의 힘에 의해 마르크시즘이 탄생했고, 그 이상세계를 반드시 실현시킬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내가 30년 넘게 감옥살이를 하지 않고 그냥 당원으로 살았다면 나도 인민들에게 원한을 살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을 것인가.

인간......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pp.119~120)

12. 시민단체에 대한 엉뚱한 발상
- 선진국에는 그 많은 시민단체들이 있다면, 사회주의 국가들에는 시민단체들이 있었을까, 없었을까......정치권을 감시한다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당을 감시한다는 것인데, 인민들이 자율적 조직체를 만들어 당을 감시한다?......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사회주의는 시민단체들을 용인하지 않아 몰락했을 수도 있다......(p.143)

13. 새로운 규율-이미 익숙해진 위계질서: 장교와 사병, 선배와 후배
- 인민군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장교가 허벅지에 부상을 당해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는데, 자기는 나중에 할 테니 사병들부터 먼저 치료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의시와 간호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국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우리는 국군 사병을 치료하다가도 장교가 나타나면 당연히 장교부터 치료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니까요. 사병부터 먼저 치료하게 한 것은 그 장교가 특별히 마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인민군 전체의 규율이 그렇고, 그건 당원들이 인민들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기본정신에 입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원들은 모두 감탄을 했습니다.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고 저는 한순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p.180)

14. 아이들!~
- 아이들은 인간의 꽃입니다. 그러니 저희 보육원은 인간의 꽃밭입니다....(중략)...제가 무작정 인민군을 따라나서며 그렸던 세상을 아이들을 길러내면서 만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니까요.(p.186)

15. 화장실 청소-이기심과 이타심
- “이런 일이 어때서 그래. 이게 좀 좋아. 내가 청소를 말끔히 해서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깨끗한 변소를 쓰게 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나. 자네 모르지? 예쁜 아이들 똥에서는 쿠린내가 아니라 단내가 나는 거.”(p.197)

16. 인간의 생존조건 : 즐거움과 삶의 의욕

17. 이타행도 이성?
- 인간 스스로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단련 즉 ‘연습’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이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족이나 더 큰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일 대 ‘연습’을 통해 습득한 이타행 또는 더 큰 자아를 위한 자기헌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하는 것도 이성이다.(p.218 황광수의 해설글)

18. 큰연습
- 인간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서 그 무언인가를 모색하고 시도해서, 더러 성공도 하고, 많이은 실패하면서 또 새롭게 모색하고 시도하고......그 끝없는 되풀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 그 고단한 반복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 그것이 인간 특유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들다.(작가의 말)

p.s. 예술가는 꼬뮨주의자
- “진정한 작가란 어느 시대, 어떤 정권하고든 불화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이란 오류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진정한 작가는 그 오류들을 파헤치며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정치성과 전혀 관계없이 진보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진보성을 띤 정치 세력이 배태하는 오류까지도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작가는 끝없는 불화 속에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작가의 말).

 

 * 인용은 조정래. 2006. [인간연습].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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