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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05
    기아와 비만이 공존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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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에게] 20세기 미완의 전설 - 비틀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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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를 빛낸 빙판의 요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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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4/10/05
    마하, 아인슈타인 그리고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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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와 비만이 공존하는 세계


 

 

Oil on canvas; 134 x 100 cm (53 x 39 1/4 in); Musee du Louvre, Paris

 

 

Bartolome Esteban Murillo(1617-1682)의 [The Young Beggar]입니다.

 

무리요는 17세기 스페인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거장입니다.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연 무리요이지만, 그의 유년시절은 고아로 불우하게 보냈습니다. 무리요가 활동한 스페인의 세비아는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향해 떠난 이래로 식민지 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활동한 17세기의 세비아는 무역의 중심지가 카디스로 옮겨짐에 따라서 급속하게 몰락하게 되고, 여기에 중세를 휩쓴 페스트가 창궐해서 6만에 가까운 인구가 죽었습니다.

 

이 그림 역시, 폭동과 도둑이 일상이 되고, 거리에는 창녀와 부랑자로 가득찬 세비아에서, 특히 비참한 상태에 있었던 페스트 등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를 그린 그림입니다.

 

일반 서민-혹은, 민중을 그린 유럽의 풍속화들을 보면 북유럽과 스페인의 미술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 등으로 대표되는 북유럽의 그림들은 풍자와 번영으로 가득차 있지만, 스페인의 그림에서는 이 그림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무리요의 그림은 일반 민중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가 주로 성모마리아에 관한 그림들을 그렸던 것도 어쩌면 현실의 궁핍함과 비참함을 그림을 통해 희망과 이상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모순 속에서 언제나 약자로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와 여성인 것을 얼마전의 미국의 침략전에서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굶주린 아이가 17세기 세비아의 거리를 뛰어넘어서,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에서 이 그림이 주는 감상일 것입니다.

 

 

 



 

한때, 다이어트는 여성의 전유물로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이어트-비만은 여성만이 아닌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약 60억의 인구 중에 11억정도가 비만에 해당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무의식중에 비만을 하나의 사회의 풍족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비만은 그 사회의 발전과 경제적 여유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습다고 할지 어이없다고 해야할지 지구상의 약 8억정도의 인구가 기아상태에 있다고도 합니다. 단순히 기아가 아프리카만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아프리카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중남미, 게다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것같은 북미와 유럽에도 기아가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세계 3대 곡물수출국의 하나인 아르헨티나의 일반 민중들이 기아에 허득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순히 기아가 생산의 문제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곡물의 품종개량과 비료 등의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생산량은 과거에 비해서 증가했고, 세계 전체 인구가 먹고 남을 만큼을 생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지금의 기아 문제는 세계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7초(혹은, 3초라고도 한다)마다 1명의 어린이가 기아로 인해 죽는다는 통계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비만과 기아가 공존하는 이 모순들...

 

게다가 이 기아가 자연현상 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욕심에 의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라크침략전에 의해 최소한 740만명의 이라크인들이 기아에 빠질 것으로 예측한 유엔보고서 앞에서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충분한 부를 이성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21세기 비만 해결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된 지금, 자연재해와 전쟁, 질병 등에 의해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현실 앞에서 인간은 평등한 존재가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의식주,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건조차 주지 못하는 이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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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 아인슈타인 그리고 레닌


 

 

1899; Oil on canvas, 74 x 93 cm (29 1/8 x 36 5/8 in) Musee du Louvre, Galerie du Jeu de Paume, Paris

 

 

근대회화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Paul Cezanne의 [Pommes et oranges]입니다.

 

이 그림이나 이와 비슷무리한 그림을 본 적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자주 이 그림이 저 그림같고 저 그림이 이그림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비슷무리한 정물화 그림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와 같은 일반인을 위해서 몇개만 그렸으면 좋을 것을 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잔 입장에서는 그리고 싶을 때에 그렸을테니까 ... .. . 저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잔 역시 생전에는 무능한 화가의 전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의 중학교 때부터의 친우였던 프랑스가 자랑하는 문호 에밀 졸라도 그를 모델로 한 무능한 화가이야기를 쓸 정도로 실패한 화가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20세기의 미술을 르네상스의 사실주의로부터 해방시킨 cubism(야수파)의 모태가 되었기에, 앞에서도 거창한 칭호를 붙인바와 같이 근대회화의 아버지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세잔은 인상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인상파들이 순간의 감각에 치중한 것에 비해서, 그는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색채를 분할해서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물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서 전통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을 포기했습니다. 거기에 완벽한 형태를 위해서 사물을 왜곡하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물화]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떤 변화도 재미도 뵨태성도 반전도 없는 무미건조한 푸석푸석한 과일나부랭이 그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친구로부터 위의 그림을 보면서(모조품이지만), 많은 설명을 들으면서 정물화도 무미건조하기만 한 푸석푸석하고 맛없는 과일 등의 그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파와 테이블, 그 위에 넓게 펴져 있는 흰 천과 물병, 오렌지와 사과들 ... .. .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눈에 들어올 뿐, 어떤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듯한 안정감을 주는 듯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순들로 가득찬 그림입니다. 옆으로 경사진 소파, 올라가는듯한 테이블, 그 위에 놓인 흰 천은 수평을 유지하고 있어서 과일들이 지금이라도 쿵하는 소리를 내면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그림의 수수께끼는 원근법의 무시와 다양한 각도에서 본 것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즉, 이차원의 화폭에 다차원을 구성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과 색으로 바라보는 것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멋대로 지껄임

 

[상대성이론]에 관한 책에 [A. Einstein은 Ernst Mach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적혀 있어서 상당히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Ernst Mach에 대해 제가 알고 있었던 지식이라고 하면, V. Lenine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서 마하주의라는 이름하에 관념론자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대한 마하의 학설이 관념론적이라는 것에는 조금의 의문도 없다]고 한 정도였습니다. 그런 마하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 .. . 마하의 이론에 대한 레닌의 평가는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마하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면, 실증주의 철학의 논객으로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로, 18세기 뉴턴이 제창한 절대공간 개념을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부정하고, 상대성이론의 구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기류의 실험을 행한 까닭에 지금도 초음속의 속도를 나타내는 마하라는 이름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마하의 최대 공적은 뉴턴역학에 대한 비판입니다. 뉴턴역학이란, 던진 볼이 몇 초후에 어느 지점에 있는가, 천체의 운행법칙 등을 정리한 것으로, 이 법칙의 전제조건으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모든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절대시간과 절대 공간은 없고, 만약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라고 물은 것이 마하였습니다. 그 당시 과학에 있어서 절대적인 바이블과 같은 뉴턴역학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한 마하.

 

레닌이 마하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게 된 것은, 그가 뉴턴의 역학에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 잘 몰랐고, 또한 그는 단지 마하가 비판하는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에 대한 비판을 유물론에 대한 비판으로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뉴턴은 진공상태의 우주공간 속에 에테르로 가득차 있고, 이것이 [절대공간]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천체공간의 운행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해도 에테르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절대공간]이 부정될 수밖에 없으므로, [절대공간]을 전제로 해서 계산된 천체운행 역시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하는 절대적인 공간의 기준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새로운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마하 이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해서 말해진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이의 주장은,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는 사람은 기차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바깥 풍경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물에 대한 견해는 상대적인 것으로,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대적인 공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하는 [사물에게는 각각의 고유한 시간이 있다. 우리들이 말하는 [시간]은 사물이 변화하는 것에 의해서 나타난 개념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절대시간에 대해서도 부정합니다. 갈릴레이는 공간의 상대성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상대성으로까지 확대해서,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것입니다. 레닌이 마하를 비판한 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공간과 시간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마하는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했을 뿐, 실재성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마하는 뉴턴 역학의 약점(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이라는 개념)에 주의가 미쳤고, 이것을 레닌은 뉴턴을 비판하는 관념론자라는 딱지를 마하에게 붙였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야말로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마하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기에 상대성이론을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혁명과 소비에트연방의 건국을 이끈 레닌도 이렇게 많은 잘못과 판단 미스 등을 범했던 것입니다. 한 인간을 통해서 세계를 파악하고 진리라고 무비판적인 지지가 절대적인 선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것이 1905년, 마하 등을 비판했던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 나 온 것은 1908년이므로, 레닌이 자신의 실수를 그 후에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 것이 1916년인데도,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제2판이 출판되는 1920년에도 여전히 마하를 관념론자로 비판했습니다. 레닌이라는 한 때는 완벽한 인간으로 추앙받던 그 역시 자신의 실수와 잘못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대와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정신 등이 나오지만, 그 전까지 뿌리 깊게 당연시되고 있던 낡은 관념을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하의 위대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비판적인 추종은 결국 - 여러 가지 이유는 있었지만 -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라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도 완벽할 수 없고 언제나 정의나 진리만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부정되었을 때, 사이비종교로, 혹은 우상화 되어 왔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기 보다는 이름없는 풀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지 ... .. .

 

 

참고 링크 : 우주는 왜 동일 세계인가
                     아인슈타인과 일반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과 특수 상대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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