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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경제학] 제1회 신용제도의 본질,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모순



제1회 신용제도의 본질,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라는 모순



자본가는 부의 공동 사용을 실천하고 있다



글을 쓰다가 보면, 누구나 귀차니즘에 빠지기 때문에, 언제라도 끝낼 수 있도록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은행과 증권회사, 생명보험, 우체국 저금, 또는 금융/증권시장 등의 신용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본가적 사회주의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은 벌써 알아차렸겠지만, [자본가와 사회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인데 무슨 소리냐?]고 속으로 별 미친 넘 다 보겠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당연히 [자본가적과 사회주의]는 모순되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좀 문제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자본가들이 서로 돈을 융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자산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자본이란 속성은 빌리거나 가진 돈을 금고 속에 감추어 두거나 땅에 파묻어 두어서는 별의미가 없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원료나 기계 등의 생산수단을 구비해서 상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이 서로의 돈을 빌려 준다고 하는 것은, 돈의 공동 사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노동력이나 생산의 제수단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자본가들은 이러한 공동 사용을 하는 가는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전제는 사유재산제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공장이나 발전소, 공항, 항만시설, 도로 등을 사유재산제도에 의해 [네 꺼니까, 만지지도 말고 들어오지도 마] 등으로 제한을 가해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휴지가 되어 버립니다. 즉, 단순히 [너의 것은 너의 것이고, 나의 것은 나의 것]이라는 수준의 사유재산제도에 머물러 버리면, 현대의 거대한 생산제력들은 나타나지 못 했을 것이고, 또한 자본의 방대한 이윤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본가적 사회주의라는 표현은 지나치다. 공동 사용이더라도, 공동 소유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딴지를 거는 분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본간의 금융의 관계는 매일 매일 일상적, 항상적, 전면적으로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 항상적, 전면적인 공동 사용은 이제 거의 공동 소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소유? car? man?



 



 

공동 사용은 사유재산과 모순된 [신용제도]를 출현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사회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가적]이라는 말이 따라 다니는 가짜 사회주의입니다. (게다가, 공동 소유 직전까지 간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들이고, 여기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거래되는 상품 -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는 노동력에 불과한 것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자본가들 사이에서 아무리 공동 사용이 발달하더라도, 사유재산제도라는 옷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공동 사용이 진짜 사회주의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신용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용제도는 공동 사용이 공동 소유가 되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의 사유권이 남겨진 [貸借]의 범위내에서 형성됩니다.

자본은, 생산제력의 공동 사용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해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사유재산 - 즉, 이윤을 늘려 주기 때문에,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생산력의 공동 사용이 노동력의 착취를 증대시켜서, 그 열매가 금리나 배당 등의 형태로 돌아오기 때문에 신용관계가 맺어 지는 것입니다. [사리사욕]이 신용제도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사리사욕]을 원동력으로 한 공동 사용체제의 발전은 확실히 모순된 것이고, 이 모순이 신용제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제도라는 낡은 란닝구를 남기기 위해서는, 공동 사용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건 누구 꺼]라는 소유권에 관한 쓰잘데기 없는 장부를 기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공동 사용되고 있는 부가 사유재산으로서 누구에게 얼마나 소속되어 있는가를 표기한 장부가 소위 말하는 금융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현실의 부가 아니라, 부의 소유권, 혹은 청구권을 적은 기록으로서, 현실의 부가 나타내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림자이기 때문에, 현실의 부와는 전혀 다른 왜곡된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공동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누구의 것인지 확정지울 수 없는 것도 장부에 열심히 기재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굴절되거나 삐뚠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것이 이중으로 삼중으로 기록되거나 있지도 않은 것이 있는 것으로 표기됩니다. 부가 있기 때문에 기재되는 것인데, 기재되어 있으면 부가 있다는 착각마저 나타나서, 모래위에 자산이 더욱 더 높고 크게 세워지고 있습니다.




 


건설은 장기간, 붕괴는 순간!!



금융자산의 [재고 조사]에 따른 혼란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런 눈속임이 계속 되지는 않습니다. 장부에 기재된 부가 현실에 진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를 살피는 [재고조사]가 정기적으로 옵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재고자산대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입한 원자재, 생산한 상품 등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가가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월말이나 회계연도 말에 [재고 조사]가 행해져서 장부의 기록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합니다. 점검할 때마다, [누가 어디에서 언제 구입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구석에서 나오거나,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담당자를 미치게 만드는 그 [재고 조사]입니다.)

버블 붕괴라든지, 불황이라든지, 또는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재고 조사]의 명칭은 다양합니다. [재고 조사]가 오는 이유와 원인은 버라이어티쇼이지만, 그 근본에 있는 것은 노동착취의 곤란입니다.

노동의 착취가 순조로워서, [빌려 준 돈]이 탱글탱글한 과실을 추수의 기쁨으로 주는 동안에는, 호기롭게 [뭐, 괜찮다면 언제까지라도 사용해.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지]라는 등의 말을 지껄이다가, 추수할 과실이 없어지면 [빌려준 돈이 정말 괜찮을까]라는 의심병이 도저서 앞에서 말한 [재고 조사]를 행합니다. 점검해 보면, 장부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없거나, 또는 이중 삼중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나오면, 완전히 꼬리에 불 붙은 고양이 꼴이 되어 버립니다. [이거 네 꺼니까, 손도 대지 말고,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마]라는 상태가 되어, 결국 [bank-run(예금이탈)]이나 [대출거부]가 되면서, 마침내 금융공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장부의 기재 내용과 현물이 다른 경우에는, 제대로 된 [재고 조사]라면, 현물에 맞추어서 다시 장부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금융자산의 장부라는 것은, 현물이 아니라 기입된 내용을 신성시합니다. 왜냐하면, 장부에 쓰여진 내용은 헌법도 보증하는 [사유재산]이므로, 현물에 장부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부의 내용에 현물을 맞추어야 하므로, 지랄발광이 벌어집니다. [공적자금]이니 뭐니 해서 다른 곳에서 현물을 가져와서 [보충]하거나, 장부와 현물이 다른 것을 못 본채 하거나 해서 자산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듭니다.)

여기서, 문제. 이 개지랄이 끝난 후에는 무엇이 올까요?




 


아~~ 뚫고 싶다!!!



신용제도 자체가 거품과 함께 사라지는 날이 온다



 


공동 사용에 의해서만 탱글탱글한 과실을 맺는 자산이기에, 자본으로서도 언제까지나 그것을 장롱 속에만 둘 수는 없습니다. 공장도 원료도 노동력 등의 생산제력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데, [신용기관]만이 마비되어 있을 뿐인데, 생산제력들이 결합되지 않아서 새로운 부가 창출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것입니다.

신용기관의 문제가 [불황]이나 노동 대중의 곤란으로 나타나는 가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됩니다. 그러한 논의에 의해서 보다 교묘하게 자본가의 사유재산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 제도나 금융 기술적인 방법들이 궁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 시작은 노동 착취의 곤란에서 출발해서, 자신의 자산에 대한 과보호가 나타남에 따라서, [신용기관]이 마비된 것입니다. 신용기관 자체를 아무리 메스를 가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 착취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신용제도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노동 착취의 재건이 필수조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노동 착취가 순조로워 지면, 사유재산제도와 부의 공동 사용에 의한 모순을 잊고 [신용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노동 착취가 재건되지 않으면?

혼란 끝에는 자본주의체제의 몰락이 있다는 식의 예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다만 확실한 것은, 사유재산제도가 없어진다면, 즉 진정한 사회주의가 실현된다면, [자본가적 사회주의]라는 모순되고 어설픈 것은 소리만 요란한 빈깡통같은 [금융자산]과 함께 거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이 세상은 돈이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잘 굴려서, 즉 금융을 잘 운용하면, 이 세상의 모순을 없애거나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용제도] 자체가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하나의 버블에 불과한 것입니다. 신용제도에는 그렇게 세상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신용론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신용제도가 현대에 가지는 거창한 의의 등을 말하면서 [신용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그럴듯하게 쓰는 편이 좋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세상만사는 돈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2회에서는 돈(화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음 편부터가 이 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긴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하실 것입니다. 맞고라도 한판 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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