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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5
    장석남 시인 시 낭송회
    엔지

장석남 시인 시 낭송회

최근 <뺨에 서쪽을 빛내다>라는 새 시집을 낸 장석남 시인의 시 낭송회에 다녀왔다. 시 낭송회는 처음인데 참 괜찮다. 앞으로 자주 다녀야겠다.

 

얼마 전부터 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시를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를 조금씩 읽고는 있는데, 도통 별 느낌이 없다. 김어준이  <게르니카>원작을 앞에 놓고서도 별 느낌이 없는 자신을 보고 입시공부하느라 미적 감수성을 키울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난 시적 감수성을 키울 타이밍을 놓쳤나보다.

 

이번 장석남 시인의 시집 제목인 '뺨에 서쪽을 빛내다' 가 어떤 의미로 와 닿나. 물론 각자의 느낌과 해석이 있겠고 정답은 없겠지만, 난 도통 모르겠다. 근데 작가는 "서쪽을 지는 태양, 석양이 뺨에 비친다. 뺨에 홍조가 드는거죠. 좀 부끄럽단 겁니다. 사는게 좀 부끄럽지 않나요. 살기위해 먹어야 되고 생활을 해야하고 그런게 다 참 부끄러운 것 같아요..." 뭐 대충 이런 식의 말을 한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확 와닿는다. 인간으로서 연명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유기체들을 먹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생활이란 것을 해야하고. 생각해보면 참 무엇에 대해서인지도 모를 부끄러움, 구차함.. 같은 것이 한 없이 느껴진다. 최규석의 <사랑은 단백질>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시인이 자신의 시를 몇편 낭송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니 시들이 많이 와닿는다. 시를 읽는 방법을 한걸음이나마 떼었단 느낌 같은 것이 들었다. 그리고 시인에 대한 편견 같은 것도 많이 깨져 좋았다. 장석남 시인 스스로가 말했는데 "중국집 주방장과 시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시인은 뭔가 대단한 것 같고 깨우친 것 같고 달관한 듯한 이미지인데 막상 알고보면 똑같은 생활인이라는 것. 여러 독자들의 질문에 장석남 시인도 의미심장한 답변보다는 별 생각이 없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들이 더 소탈해보이고 해서 좋더라.

 

오늘 게스트로 하이미스터메모리가 나와서 시 낭송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펜으로서 참 좋았다. 사인도 받고 얘기도 몇마디 나눴다. ㅎㅎ 곧 2집 앨범이 나온다하고 10월 초에 쇼케이스가 있으니 꼭 오란다. ㅎㅎ

 

장석남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하나,

 

 

부뚜막

 

 

부뚜막에 앉아서 감자를 먹었다

시커먼 무쇠솥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솥 안에 금은보화와도 같이 괴로운 빛의 김치보시기와

흙이다 겨우 씻어낸 소금 술술 뿌린 보리감자들

누대 전부터 물려받은 침침함,

눈 맞추지 않으려 애쓰면서

물도 없이 목을 늘려가며 감자를 삼켰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감자를 삼킨 것인지

무쇠솥을 삼킨 것인지

이마 위를 떠도는 무수한 낮별들을 삼킨 것인지

 

눈물이 떨어지는 부뚜막이 있었다

어머니는 부뚜막이 다 식도록, 아궁이 앞에서

자정 너머까지 앉아 있었다 식어가는 재 위의 숨결

내가 곧 부뚜막 뒤의 침침함에 맡겨진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치마 끝단을 지그시 한번 밟아보고 뒤돌아설 뿐이었다

마당 바깥으로 나서는 길에 뜬 초롱한 별들은

모든 서룬 사람의 발등을 지그시 누른다는 것이

이후의 내 상식이 되었다 그로부터 

 

천정이 꺼멓게 그을린 부엌 찬 부뚜막에 수십년을 앉아서 나는

고구려 사람처럼 현무도 그리고 주작도 그린다

그건 문자로는 기록될 수 없는 서룬 사랑이다

그것이 나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학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시(詩)로 알고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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