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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타인의 고통 2010/09/20
  2. 한강의 책을 읽다. (3) 2010/09/20

타인의 고통

from in the book 2010/09/20 12:52

니나님의 [전투에서 멋있는 장면을 구하는 이들] 에 관련된 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 그 첫 부분...

 

1938년 6월 버지니아 울프는 전쟁의 근원에 대한 그녀의 용감하고 환영받지 못한 성찰을 담은 "Three guineas"를 출판했다.
글을 쓰던 2년동안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과 동료 작가들은 스페인에서 진전되는 파시스타 반란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 책은 런던의 저명한 변호사로부터 온 편지에 대한 마지못한 답변을 담고 있었다. 변호사의 질문은 "전쟁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였다. 울프는 그들 사이의 진실한 대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랄하게 말한다. 그들이 같은 계급, "교육받은 계급"에 속해있을지라도 거대한 해협이 그들을 갈라놓고 있다고. 변호사는 남성이고 그녀는 여성이다. 남성들은 전쟁을 일으킨다. 남성은 (대부분의 남성은) 전쟁을 좋아한다. 남성에게 "싸움은 조금의 영광, 조금의 필요, 조금의 만족"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그렇게 느끼거나 즐기지 않는다. 교육받은, 식자인, 특권층인, 유복한 그녀가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까? 그것의 매력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그의 것과 같을 수 있을까?

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테스트해보자. 울프는 제안한다. 전쟁의 이미지를 함께 보는 것으로써.
그 이미지들은 포위된 스페인 정부가 일주일에 두번 보내오고 있던 사진들 중 일부였다. 그녀는 각주를 달았다. "1936-37년 겨울에 쓰다" 울프가 쓴 것을 보자. "우리가 같은 사진을 볼 때 같은 것을 느끼는지" 그녀는 계속한다.

이 아침의 컬렉션은 한 남자의 몸 혹은 여성의 몸이었을 것 같은 사진을 포함한다. 아니면 돼지의 살덩이라서 그렇게 절단되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죽은 어린이들, 그리고 의심할 여지없이 어떤 집의 일부이다. 폭탄은 한 벽면을 무너뜨렸고, 거기에는 새장이 여전히 매달려 있다. 아마도 거실이었을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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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0 12:52 2010/09/20 12:52

한강의 책을 읽다.

from in the book 2010/09/20 12:06

19시 33분 영등포발 무궁화호 열차.

열차를 기다리며 작은 서점에 들어간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였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며칠 간의 청명함 끝에 다시 찾아온 비는 하루종일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걷기 여행, 라오스, 중국, 이런 책들의 책장을 무심히 넘기다가 사실 그다지 살 생각도 없으면서 좁은 책방의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저 구석으로 옮겨 시간을 때우고 있을 무렵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최근에 다가온 어떤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어떤 계기였는지 그 시작은 잊었지만, 붉은 고깃덩어리의 이미지가 어느 순간 나를 짓눌러오고 있었다. 식습관을 바꿨다기보다는 저녁 술자리에서 고기를 먹고싶지 않아졌다는 것 정도가 이후의 변화일까.

책을 집어든 순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읽었던 그녀의 책이 생각났고,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난 그 책을 놓을 수 없가 없게 되었다.

밤 10시 무궁화호 열차.
책을 읽는 동안 내 옆자리에는 어느 여자가 앉았다가 다시 남자가 앉았다가 다시 여자가 앉는다. 책을 읽던 어느 순간부터 끊이지 않고 내가 울고 있었음을 아마도 그들은 알았겠지만, 사실 어차피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니까, 책을 읽고 울고 있는 옆사람을 보는 일 따위는 사소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자매의 피.
나는 그 피를 마주한다. 하지만 그 피에 내 옷을 적시지는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명치 끝 어딘가가 답답하게 막혀와서 자꾸 한숨을 뱉어낸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폭력으로 가득차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세상의 가득찬 폭력을 바라보는 것과 아마도 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겪어내는 폭력은... 누군가 폭력에 내성이 있다면 그는 정상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느 날 그 내성이 툭... 더이상 견뎌낼 수 없는 지점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더이상 같은 인간의 종임을 지속하고 싶을 수도 있을까. 나는 어쩌면 그녀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쩌면 나무가 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인간 종이 아닌 무엇이 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폭력을 거부한다면 육식은 끊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득 눈을 감으면 며칠전 뼈째로 씹어먹은 몇 마리의 전어가, 꼬리만 남긴채 내 이에 짓이겨진 그 물고기가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육식을 멈추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추석이고, 나는 집에 내려가고, 그리고 지글지글 기름 위에 전을 부칠 것이고, .......

이런 글을 써내는 작가는 얼마나 속이 아팠을까. 이걸들을 써내려가기 위해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는 왜 이 폭력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 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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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0 12:06 2010/09/20 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