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물고기

from in the book 2009/08/30 02:59

더이상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마침내 내 여행의 끝에 다다랐음을 안다. 어느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이다. 말라붙은 소금처럼 새하얀 거리, 부동의 벽들, 까마귀 울음소리, 십오년 전에 영겁의 시간 전에 물 때문에 생긴 분쟁, 우물을 놓고 벌인 싸움, 복수를 위하여 힐랄 부족의 적인 크리우이가 부족의 누군가가 나를 유괴해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강의 물을 만지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사막 먼지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는 내가 태어난 땅을 만진다. 내 어머니의 손을 만진다.

장은 내일 도착한다. 나는 카사 호텔에서 그의 전보를 받았다. 이제 나는 자유로우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름을 떨친 나의 조상 밀랄처럼, 노예였다가 예언자 마호메트가 속박에서 풀어주고 세상으로 내보낸 그 사람처럼, 드디어 나는 또 하나의 빌랄 족이 되어 부족의 시대에서 벗어나 사랑의 시대로 들어선다.

떠나기 전에 나는 바닷속의 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노파의 손을 만졌다. 단 한 번만, 살짝, 잊지 않기 위하여.

-pp. 294-295

 

 

황금물고기는 디아스포라의 이야기, 시작을 잃어버린 이의 이야기.

그녀는 이름이 없다. 아니 여러개의 이름이 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오늘 만났던 스리랑카 언니의 풀 몇 포기가 떠올랐다.

집 마당에 키우는 여러 화분들 중 셋을 가르키며

'여기 이 풀들은 스리랑카에서 온 거예요.' 라고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8/30 02:59 2009/08/30 02:59

주기율표-아연

from in the book 2009/08/24 14:55

그 내용에 따르면 부드럽고 예민하며 산에 고분고분해서 한 입에 먹히는 아연도 불순물 없이 아주 순수한 경우에는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럴 경우 아연은 어떤 결합도 완강히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악에서 지켜주는 보호막 같은 수수함에 대한 찬미와, 변화를 일으켜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불순함에 대한 찬미가 그 둘이다. 나는 메스꺼울 정도로 도덕주의적인 첫째 것을 버리고, 내 마음에 드는 둘째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었다.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잘 알고 있듯이, 땅도 무엇을 키워내려면 그래야 한다.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너는 파시스트가 아냐. 파시스트는 모두가 똑같기를 원하는데, 너는 그렇지가 않아.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게 존재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것이다.

 

p. 51,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8/24 14:55 2009/08/24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