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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처음에는 환청이거나, 소문에 듣던 휴거가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새벽 5시, 귀청을 찢으며 울리는 찬송소리에....중후한 중저음 베이스임에도, 거의 100m 가까이 떨어진 대로를 지나 제 창문을 흔드는 찬송가 소리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원흉은 길 건너 상가에 있는 모 교회에서 올리는 새벽 찬송이라더군요.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더구나 밤새 도록 휘황하게 빛나는 네온 사인이란~^^; 그 불빛에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신 저희 어머님께서 전화를 드리자, 자매님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실 생각이 없으시냐'고 물었다더군요.
상식이 없는 교회, 오로지 복음만을 앞세우고 시민 상식은 결여한 교회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해 봤습니다. 하긴,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그 교회의 복음이란 것도 조금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요.
2. 우연찮게 관여하게 된 단체에 자매님이 한 분 계십니다. 한 눈에 그 선한 품성을 알아챌 정도로 다정다감하고 예의 바른 그 자매님이 얼마전에 구원의 길을 제게 알려주시겠다고 장담을 하시더군요.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 보다 그곳이 이른바 '구원파'라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마나 저야 가톨릭 신자에 나름대로 신학 전공자라는 사실이 아셨기 때문에 그 권유가 더 계속 되지는 않았지만 같이 일하던 몇몇 개신교 신자분들은 그 자매님과 함께 성서 세미나에 몇 차례 다녀오시더군요.
쩝....가톨릭 신자인 제가 나서서 그걸 막는 다는게 왠지 주제 넘은 짓인 듯 하여 그냥 지켜만 봤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착찹한 마음이 들더군요. 만약에 제가 저 자매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그 곳은 이단이니 성당을 가라거나 아니면 개신교회를 찾아가라고 권유했다면, 공부만 아니라 신앙 생활에도 지름길은 없으니 그저 여러분이 속한 교회를 더 열심히 섬기라고 충고를 했다면 과연 몇 사람이나 제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요?
그곳이 구원파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차마 그 자매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뭐 씹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서던 분들을 떠올려 보면 이 물음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과연 '증인'으로 불리웠고 그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자원한 나는 어떤 종류의 징표를 드러내고 있었을까요?
3. 감히 시민 상식이란 것을 복음에 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상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상식이 없는 복음이란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름대로 가톨릭에 정통하셨을(그 자매님 무슨 신학교를 나오셨다더군요. 신학교에서 붙잡고 씨름하던 성서학 책들을 통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구원의 확신을 박옥수 목사를 통해 체험하셨답니다...^^;) 분이 목에까지 차올랐을 가톨릭 논박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모습을 재밌게 지켜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통의 이름으로 복음주의의 깃발을 들고 저를 칼빈의 법정에 세우려던 분들을 하도 많이 겪어서 인지 그 분의 '힘겨운' 예의 바름이 훨씬 아름답게 다가 왔다는 말입니다.
4. 교의적 정통성과 실천의 올바름을 겸비한 교회와 그리스도인....
힘들지만 늘상 꿈꿔야 할 미래일테지요.

1. 다시 안중근을 생각하다.
도마 안중근이라는 영화가 촬영 중이라고 한다. 서세원씨가 이 영화의 제작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음으로 양으로 교회가 이 영화의 제작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후문에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신부수업” 같은 허접한 3류 멜로 영화에 이름을 빌려 주고는 “젊은이들에 대한 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찬하는 것 보다야 낳은 일일 테지만 안중근 토마스라는 인물의 후광을 되살려 교회를 치장하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에 불과하다’는 주님의 책망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3장 29~32)
2. 안중근의 그림자 그 사이로 보이는 어떤 것.
당대 가톨릭 교회가 탄환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거사를 앞두고 성사와 기도를 올렸던 안중근 토마스라는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해서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뮈텔주교는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뜻을 거슬러 안중근 의사에 대한 마지막 성사를 집전한 빌렘 신부를 소환하고 심지어 성무집행정지라는 중벌로 다스렸던 것이다. 하긴 비서들을 대동하고 이토의 명복을 빌기 위해 몸소 일본군 병사를 방문한 뮈텔 주교의 그 후 처신을 생각해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한동안 교회의 이름으로 살인죄의 오명을 뒤짚어 써야 했던 안중근 의사는 이제 신원되었다. 오랫동안 그 이름을 거론하는 것 조차 왠지 껄끄러웠던 안중근 토마스를 이제 교회는 당당하게 한국 가톨릭 교회의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길게 드리워진 안중근의 영광으로도 가릴 수 없는 오욕의 한국 가톨릭 교회사가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가톨릭 교회는 단지 ‘오해’나 ‘무지’로 안중근을 처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하고 올바른 것으로 받아 들였다는 증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뮈텔 주교는 1906년도 파리 외방 전교회로 보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통감부 설치로 시작된 정치 상황이 이 나라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 진보, 과학 등 문명을 상징하는 모든 것에 열중합니다” 이어 두세 신부는 1908년 보고서에서 “조선은 일본인들의 지도 아래 발전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하여 일제의 통감정치가 조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고 했던 것이다.
1910년 발생한 경향신문 필화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뮈텔주교가 내뱉었던 그 유명한 말, “천주교회는 정부와 군인, 경찰 행정당국의 편에 서 있다”는 발언은 바로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교회의 해명은 분명하다. 조선의 현실에 무지했던 선교사들이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벌였던 과잉충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적지 않은 조선교회의 평신도들 또한 장상들의 이러한 망동을 제지하기기 보다는 그에 부화뇌동해 왔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병조라는 인물이다. 독립협회의 회원이자 국채보상운동의 지도자였던 부친(서상돈)의 이름을 더럽힌 이 인물은 영광스럽게도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대표적 친일 부역자 708인에 포함되는 영예를 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가문이 지금의 대구 교구를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구 교구의 대표적인 성지 가운데 하나인 성모당의 토지를 기부했던 것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3. 안중근 묵시록, 봉인이 열릴 때.
과연, 이러한 과거를 지닌 교회가 안중근을 기념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안중근에 대한 교회의 기억과 체험은 일종의 묵시록이다. 그것은 과거의 체험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규정하고 예고하는 현재화된 사건의 일종인 것이다. 진실로 과거를 기억하려는 공동체는 자신의 치부에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그 용기가 가져올 진통에 정직한 태도로 맞설 수 있어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생략한 추억과 기념은 주님께서 지적하신 바로 그 위선에 다름 아닐 뿐이다.
싫든 좋든 최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이를 더욱 재촉하고 있다. 역사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를 회피할 수 없다면 공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특히 교회에 더욱 무겁게 주어질 수 밖에 없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되, 사랑안에 뿌리 박은 공의를 믿는 교회야 말로 과거사 규명의 참된 주체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지난 대희년을 앞두고 유행처럼 행했졌던 입에 발린 참회가 아니라 역사의 엄중한 무게를 깊이 체감하는 가운데 교회가 거듭 날 수 있다면 혼탁한 정치판과 갈라진 세상에 대한 새로운 봉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는 감출 수도 없고 미화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만이 내일에 대한 교훈으로 자래매김 할 수 있을 것이기에....
교리서 1213항은 세례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세례는 물로써 그리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다.”
이러한 세례의 중요성 때문에 교회법은 세례 지원자가 "예비 신자 기간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인 생활을 인정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세례의 의미가 한 없이 무거운 까닭에 몇 년전 서울 교구는 9개월까지 예비 신자 기간을 연장 하였고 심지어 12개월이나 그 이상으로 예비 신자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논의도 심심치 않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神父修業''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영화를 찍은 영화 배우 권상우씨가 바로 이 세례 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영화를 찍는 동안 낮은 곳으로 임하는 가톨릭 신부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데, 도대체 신부수업이라는 영화를 통해 그런 감동을 받을 만한 구석이 어디에 있었는지 이해 못할 노릇이다. 물론 영화 촬영상 필요한 가톨릭 문화를 익히려 상당한 과외 수업을 받았다지만, 바로 그런 제작 시스템 자체를 고려해 볼 때 과연 얼마나 제대로된 교리 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 교회가 요구하는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의 교리 교육 기간은, 분명히 현대인에게 과도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 규정은 본당 사목자가 이에 관한 관면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관면권이 힘 있는 사람, 유명한 사람을 상대로'만' 행사된다면 더이상 세례는 주님 앞에 평등한 형제-자매로 거듭 나는 계기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강금실 장관이 세례를 받았고, 이번에는 권상우씨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권상우씨를 가르치고 세례로 이끌었던 인물은 지난 번에 '죽음 보다 더한 고통이 아니라면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신부님이다. 그토록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충실한 신부님이라면 교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그 신부님의 양심을 믿는다. 그렇지만 예비 신자 기간 중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결국 세례를 받지 못한 이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권상우씨가 과연 얼마나 '그리스도교인 다운 생활'을 인정 받을 만 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례는 상품이 아니다. 교회가 연예인 끌어 들이기에 혈안이 된 사립 대학들 마냥 유명인을 통해 자신의 성가를 높이려 한다면 그것은 기업이지 교회일 수 없다. 선교는 결코 스타 마케팅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마케팅을 통한 선교는 복음을 선택의 대상으로 만드는 자살행위일 뿐이다.
한번 복음을 '구매'했던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낳은 효용을 제공하는 신상품을 찾아가게 마련이 아닌가? 선교적 측면에서 본 해방 신학 운동의 좌절이나 한국 개신교회의 정체는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가 이러한 교훈을 계속 무시하고 성공과 성장을 향한 중단 없는 질주를 계속하려 한다면...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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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마음에 듭니다. 서울인가요? 옛 봉천동의 모습인 것같기도 하고 무척 정겹게 와닿네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