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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8가ㅣ천지인 - 전태일과 그 후예들의 소망

 

故 전태일 열사

 

 

 

 

전태일 열사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절규하며,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더불어 분신하신 것이 1970년 11월 13일이니까... 내일이면, 39주년이 된다. 그동안 이 땅의 노동자 서민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모처럼, '천지인의 '청계천 8가를 들으며, 몇년전에 '피플타임즈와 '진보누리에 썼었던 '전태일과 그 후예들의 소망에 대한 단상을 꺼내 읽는다. 몇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 그 글이 그 문제 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일종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전태일을 닮는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소박한 사랑임을 새삼 깊이 새기며... 우리 시대 혁명은 아직 현재 진행형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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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 청계천 8가

 

청계천 8가..

 

 
파란 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 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워~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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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벼리] 전태일과 그 후예들의 소망에 대한 단상. [11] 2003.11.13


Link1 : 30여년전 눈을 잃은 젊은 음악도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청년 전태일의 순박한 애틋함이 21세기 노동에도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 컴퓨터에 갈무리해 둔 전태일님의 자필 글을 여러분들과 재음미하고 싶습니다.

 

 

 

(열사 살아 생전인 70년대 초반 중앙일보 가십란에 실린 시각 장애인 음대 졸업생에게 자신의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편지입니다.)

 

국민소득 2만불시대 - 동북아 중심국가 - 경제대국의 장미빛 미래가 출렁이는 21세기 대한민국입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 아이의 우윳값을 걱정하며, 휘어진 허리띠 졸라매어도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노동-서민들의 현실은 1970년대와 다를 바 없는 21세기 대한민국이기도 합니다.

 

'' 전태일님이 가신지 3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열사와 똑같은 심정으로 - 똑같은 절망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마지막 선택'으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척박한 노동의 현실인 것입니다. 피와 땀으로 일군 자신의 일터이건만, <경영합리화>란 이름으로 해고당하고, <불안정생활자>로 거리에 내몰리는 피폐함이란 열사의 1970년대 못지 않은 벼랑끝 삶을 강요당하는 형국이기도 합니다.

 

정치위정자들과 배불뚝이 독점자본은 룸살롱에서 퀘퀘한 지하 주차장에서 수천, 수억, 수백억의 게걸스런 돈상자를 주고받으며 자기들만의 장미빛 미래를 짝짜꿍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추접한 뒷거래는 생산현장에서 철야-잔업을 묵묵히 견디며 불철주야 땀을 흘려온 노동의 댓가를 가로챈 것임은 초등학생이라도 다 알만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왜 초등학생도 알만한 상식이 기만당하고, 약탈당하고 있는 걸까요. 왜 30여년동안 남한 노동의 현실은 변함이 없고, 외려 더 많은 땀방울들을 착취당하고 있는 걸까요. 왜 20년 이상을 근속하여도 월급여는 위정자 놈들과 배불뚝이 놈들의 하루 골프놀이 값보다 적게 받는 걸까요.

 

21세기 전태일은 말합니다. 배달호의 입을 빌어서, 김주익의 몸짓으로, 이해남의 절규와 이용석, 곽재규의 소망으로 21세기 전태일은 말합니다. 특별한 시혜를 바라는 게 아니다. 만들어진 법이라도 제대로 지켜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자의 단결만이 근로기준법을 지키고, 노동자가 사는 길이다.

 

'''' 그들은 특별한 그 '누구'가 아니었습니다. 가슴엔 뜨거운 피가 돌고, 손발엔 식구들과의 소박한 웃음을 꿈꾸는 노동으로 굳은 살이 배긴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었습니다. 바로 낼 아침 길가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노동자-서민들의 지친 일상에 스며 있는 평범한 '우리들'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과 이웃의 삶을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맘이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보다 이웃의 가난을 서러워하던 정많은 이웃집 아저씨들이었습니다. 배달호님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마지막 말씀에도, 불태워 사라질 자신의 몸뚱아리보다 남겨진 해고노동자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안타까워 하던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30여년전 눈을 잃은 젊은 음악도에게 자신의 한 눈을 기증하겠다는 청년 전태일의 순박한 애틋함이 21세기 노동에도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뻘건 빨갱이들이나 사회정의와 질서를 파괴하는 폭도들의 자해 행위가 아니라,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지극히 소박한 인간사랑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가슴을 후벼파는 찬바람을 마주하며 전태일님과 21세기 그 후예들의 또렷한 외침을 상기해 봅니다. 서리서리 얼어붙은 서울의 청계천 어딘가에서부터, 노동과 인간사랑의 소망이 피어나는 그 어딘가에서부터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게으른 우리들의 가슴에 나직히 그러나 분명하게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직히, 그러나 분명하게...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2003.11.13. 피플타임즈, 진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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