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허균은 자기 주장을 펼치기 위해 12편의 논(論)과 3편의 설(說)을 썼는데,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다"라는 구절로 <호민론>(豪民論)을 시작하여 이 글이 민중에 바탕을 두었음을 밝혔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범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렵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자들은 백성들을 제멋대로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는다. 도대체 어째서 그런가?

 

그는 백성의 힘을 크게 인정했는데, 모든 백성을 한 가지로 보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항민(恒民), 불만을 느끼기는 하지만 힘이 없어서 원망이나 하는 원민(怨民), 다른 마음을 품고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가 때를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풀어보려는 호민(豪民), 이 세 가지 종류의 백성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두려운 자가 바로 호민이다. 잠자는 민중을 이끌고 나가는 지도자가 바로 호민인데, 그들이 앞장서면 항민과 원민도 따라나서기 때문이다.

 

이들 호민이야말로 크게 두려운 존재이다. 호민은 나라의 틈을 엿보다가 일이 이뤄질 만한 때를 노려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밭이랑 위에서 한 차례 크게 소리를 외친다. 그러면 저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드는데, 함께 의논하지 않았어도 그들과 같은 소리를 외친다. 항민들도 또한 살길을 찾아, 어쩔 수 없이 호미자루와 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인다. (줄임)

하늘이 사목(司牧)을 세운 까닭은 백성을 기르려고 했기 때문이지, 한 사람이 위에 앉아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골짜기 같은 욕심이나 채우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즉 그러한 짓을 저지른 진나라나 한나라 이래의 나라들이 화를 입은 것은 마땅한 일이었지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

 

허경진, <허균평전>, 2002, 돌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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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2 23:34 2006/07/1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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