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분산형 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은 민주주의와 친화적이다. 예를 들어 동네 학교와 집 지붕에 얹는 태양광 발전 판넬, 중소형 풍력 터빈, 지열과 바이오가스, 하천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소수력 발전들은 거대하고 위험한 기술들이 아니고, 지역 주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그리고 절약하는 방식까지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에너지 효율상으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고용까지 창출할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 같은 민폐를 끼치지도 않는 방식들이다. 에너지 수급 방식이 곧 민주성의 정도와 민주주의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다.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이제껏 우리가 취해온 자연착취적이고 극히 낭비적인 삶의 양식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지만, 핵발전 없는 녹색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안의 틀거리를 필요로 한다. 탈핵 한국 사회를 상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반론은 수출과 소비 증가로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핵발전 증설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것과 함께,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당장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둘 다 일정하게 부당한 전제를 깔고 있는 주장이지만, 핵발전 비중을 중심으로 다르게 접근하는 틀거리를 제안할 수 있다. 요컨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때 이에 해당하는 전력분은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로 커버하고, 노후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로 인해 발생할 전력 부족분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충당하는 시나리오다. 마땅히 이 과정은 한국 온실가스 배출의 유의미한 감축을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나 핵 산업보다 잠재적인 고용 창출 능력이 더욱 큰 것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고 있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는 소규모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격 덕분에 지역에 밀착하여 다수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된다. 여기에는 태양광, 풍력 발전 뿐 아니라 주택에너지 효율화나 환경관리 같은 다양한 녹색일자리까지 포함된다.
태동 당시부터 생산력주의에 비판적이었던 환경운동은 노동운동이 부의 재분배에만 관심을 둘 뿐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체계의 반생태적 성격에는 관심이 적다고 여긴 반면, 노동운동은 빠르게 성장한 환경운동이 환경파괴에 내재된 계급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무시함으로써 계급 모순을 희석하고 체제유지적인 보수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았다.
여전히 한국의 노동운동이 환경문제에 거시적인 조망을 가지고 수미일관한 대응을 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불안정 고용과 지역 사회의 황폐화와 같은 더욱 다변화된 문제를 포함하여 대안을 강구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용과 환경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이를 지혜롭게 소화할 정책담론과 사회적 논의 틀도 부재한 형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탈핵 전환은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자 탈핵을 지혜롭게 소화해내도록 집단적 주체, 즉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존재의 전환이기도 할 것이다. 자본과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노동자와 시민 사이의 단순한 연대를 넘어, 반자본주의적 생태사회를 함께 만들어내는 연대의 주체가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산 따로, 투쟁 따로, 연대 따로의 운동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가를 함께 결정하는 대중운동이 가능하다면, 다른 기술적인 문제는 그러한 동력과 집단적 지혜를 가지고 함께 풀어가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촉발된 탈핵 논의가 앞으로는 그러한 새로운 적록 연대에 대한 모색과 함께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핵발전의 두가지 대안-에너지 전환과 새로운 적록 연대 / 진보평론 48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