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그가 올라간 곳은 크레인이 아니라 미래의 한 지점이다

[시] 김진숙 노동자 동지 점거 크레인 앞에서
 
이 나라 사람들은 자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땀 흘려 일을 마치면 발 뻗고 등 붙이고
눈비 막고 추위 가린 집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사랑을 나누고 지지고볶고 내일을 준비하는 집으로
 
이 나라 사람들은 자주 높은 곳에서 펄럭인다
희망 대신 불안이 쌓여가는 집으로
휴식 대신 통증이 두 발 뻗고 드러누운 집으로
그마저도 빼앗겨 거리에 나앉을까봐
가슴에 품고 돌아갈 내일이 허물어져 집으로 가지 못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주 깃발이 된다
땅에서는 발을 붙일 영토가 없어서
땅에서는 자신을 지켜줄 나라가 없어서
비와 바람의 나라에 온몸 찢기는 깃발이 된다
 
노동자들에겐 영토가 없다
나라는 전체가 거대한 기업이므로
이 나라에는 공장 안과 밖이 있을 뿐이다
공장 안에 있는 자는 노예가 되고
공장 밖에 있는 자는 난민이 되는 나라다
 
그래서
자신의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자주 불법체류자들이 된다
자신의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자주 난민이 된다
자신의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자주 보트피플이 된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법을 지켜도 불법이 된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기 땅에 발을 디디고도 불법점거자들이 된다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기 나라를 사랑해도 반국가행위자가 된다
그래서 노동자의 파괴는 자주 창조가 된다
 
그래서 그래서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주 바보 등신이 된다
불안에 쫓기고 벼랑 끝에 오금이 저려서
자존심도 팔아먹고 배알도 팔아먹는다
그걸 팔아 쌀도 사먹고 고기도 사먹는가
그건 또 치사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주 자본가가 되고 싶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싸우므로 서로 건널 수 없는
바다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알지만
벨트처럼 기아처럼 맞물려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틈만 나면 자본가 흉내를 낸다
틈만 나면 자본가가 되고 싶다
 
그것은 노동이 자본의 몸짓과 관습과
윤리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노동의 역사는 거짓이다 노동은 자본의 사생아다
노동은 자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노동 안에는 이미 타락과 부패의 씨앗이 있다
노동의 존재는 역설이다
그래서 노동투쟁은 자기부정의 투쟁이다
 
저기 저 높은 곳에 한 노동자가 있다
저 높은 무쇠의 집에서 혹한의 계절과 염천의 계절을
다 견뎌낸 아주 평범하면서 아주 특별한 인간이 있다
그는 아무나 할 수 없는 투쟁에 앞장섰기에 평범하다
그는 누구나 가져야 할 노동의 양심을 가졌기에 특별나다
그렇다 개인은 어떤 경우에도 평범하고 공통은
어떤 경우에도 특별나다
그는 견디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의 투쟁은 철저히 버리는 투쟁이었기에 평범하다
미래를 위한 투쟁이었기에 평범하다
왜냐하면 노동은 현실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며 창조적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절망한 것은 자본권력의 가공할 무력이 아니라
노동자의 비겁과 나태와 무관심이었다
그래서 헤어날 수 없는 길에서 그도 우리도 절망했으나
그는 절망을 한 순간에 과거로 돌려놓았다
노동은 현실에 없다 그래서 머물 곳이 없다
현실의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다
노동은 언제나 미래에 있으며 
미래의 노동자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가 보여준 것이다
 
보라! 그가 미래다
그가 올라간 곳은 크레인이 아니라 미래의 한 지점이다
절망의 늪에서 미래를 끌어올리는 크레인이다
 
그에게 가야 한다
그에게 가는 길은 인간의 미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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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2:01 2011/07/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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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2011/07/07 00:36 URL EDIT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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