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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중요한 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 새만금 바닷길을 걷고 나서



'4공구를 터라'
2005년, 올해의 새만금 바닷길 걷기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말에 있었다. 올해로 6회를 맞는 바닷길 걷기. 아직까지 다른 어떤 길이 아니라 '바닷'길 걷기로 남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다.

올해의 걷기 주제는 '4공구를 터라.' 였다. 새만금 방조제 4공구, 새만금 방조제의 공사구간중 가장 북쪽, 군산쪽에 있는 곳이고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2003년 6월에 기습적으로 물막이를 한 곳이다.

4공구가 막힌이후 군산지역의 내초도, 하제들의 마을은 엄청나게 쌓인 죽뻘과 바닷물의 염분농도의 변화, 해류의 변화에 인한 갯벌 생태계의 파괴로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새만금 연안 전체에도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피해가 쌓여가고 있다.

이 4공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터야만이 새만금 갯벌이 살 수 있다라는 것이 지역의 어민들과 새만금 문제를 깊게 고민해온 사람들의 꾸준한 주장이었으나 이번에 다시 바닷길 걷기의 핵심적인 요구로 어민들의 마음을 모으려고 한 것은 새만금 문제에 대한 행정심판 조정권고안과 그 이후에 내려진 판결이 그 배경이었다.

현재의 새만금 간척 사업계획이 그 실효성이 없다는 판결은 많은 이들이 환경단체의 승리라고 하고 일각에서는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그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어민들의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그 판결은 기존의 방조제 공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보강공사의 길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에 4공구가 막힌 것을 바꿀 수 없는 현실로 보는 것이고 공사추진측과 환경단체간의 새만금 이용(?)계획의 협의도 이러한 바탕 위에서 하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전북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중앙의 환경단체들도 내심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새만금 신구상안에도 4공구는 뚫리면 좋겠지만 안 뚫리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신구상 안에는 군산쪽으로의 부분 간척에 의한 토지 이용, 갯벌 국립공원, 해양 스포츠 레저 센터, 생태 체험장, 공동 어획장 등 전북도민들을 달래기 위한 화려한 환경친화적(?)인 선물세트가 있지만 역시 어민의 목소리는 들어있지 않다.

사실 이런 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전북도민의 개발과 그로 인해 쟁취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발전에 대한 열망은 외부인의 짐작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보다 개발에서 계속 소외 받아왔다는 한이 서린 이 열망은 비록 그것이 왜곡되었을지언정 그 정서를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새만금 갯벌을 그래도 살리기 위한 타협의 미끼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동강의 기억
이런 저런 생각 속에 동강이라는 곳이 불현 듯 떠올랐다. 동강댐 건설저지에 성공하여 자연 생태계 보전에 성공한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편으로 도로가 뚫리고 많은 다리가 놓여지고 있으며 과도한 레프팅 붐으로 지속적으로 파괴되어가는 곳 말이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남겨져 있던 동강에 살던 사람들, 특히 수몰 예정지의 주민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빽빽이 과수를 심고 작목을 심고 급조된 건물을 지은 사람들, 동감댐 건설 반대운동에 분노와 증오를 보이던 사람들, 댐 건설 계획의 취소로 떠나지도 남지도 못하게 된 그 사람들이 생각났다.

비록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무심코 스치며 보았을 뿐이고, 그 우스꽝스런 과수원과 증오에 찬 현수막을 스치듯 지나가며 보았을 뿐인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마음의 짐이 되어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 중에서는 보상을 받기 위해 들어온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에 뿌리 내리고 살던 사람들일 것이다. 동강과 함께 자기의 삶을 일구어 가던 사람들 말이다.

그 사람들의 마음에 동강이 이미 죽어버린 것이라면 누가 동강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돈을 쏟아 부어야 뭔가 하는 건 줄 아는 자본가나 관료가? 모든 걸 일반화, 표준화시켜야 이해하고 직성이 풀리는 과학기술자가? 오늘 하루도 수십가지 사안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환경단체가?


자연과 어떻게 살아갈까?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연을 지키자.', '생태계를 보전하자.' 따위가 아니라 '자연과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물어야 하고 스스로 대답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 문제의 답을 내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손과 발을 이용해서 직접 자연과 살아가는 농민과 어민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농민과 어민이 자연과 함께 사는 완벽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화도의 은식이 형이 항상 얘기하듯 새만금이 막히기 이전에도 어민들의 마음속에는 바다가 차츰 죽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획량이 줄어드는 가운데도 더 큰배를 다투어 구입하여 더 멀리나가 더 촘촘히 잡아들이는 경쟁속에서, 뻘을 물펌프로 뒤집어 조개를 채취하는 대량 채취의 방식에서, 바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마음자세에서 이미 바다는 차츰 죽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농사꾼이 얘기하듯 WTO 이전에도 농민의 마음속에 땅은 죽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땅이 산성화되고 생명의 기운을 점점 잃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수확량을 유지하기 위해 화학비료와 농약의 양을 점점 늘려갈 때 이미 땅은 죽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새만금 간척이나 WTO 개방은 이미 점점 죽어가던 바다와 땅에 사망선고를 내리고 그 명줄을 조여가는 마지막 수순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이 땅을 지켜온 소농들과 맨손 어업을 하며 바다와 함께 살아온 어민들이 그렇게 사라져도 괜찮은 것인가?

자기 마을 주위에 들어오는 군산지역 쓰레기 매립장 건설을 막기 위해서 싸우던 내초도 주민들이 4공구가 막힌 이후로 더 이상 바다일도 못나가게 되자 자신들이 반대하던 바로 그 매립장에 나가 쓰레기 분리작업을 하는 날품팔이를 하고 있는 현실이 새만금에 살고 있는 모든 어민들의 미래가 되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는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파멸의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닐까?
그들과 함께 수백년을 이어 내려온,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지혜들도 같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 자리를 자연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 자본가와 산을 깍고 물을 막고 들판을 파헤쳐야 자기의 역할을 하는 줄 아는 관료들과 자기가 모든 해법을 알고 있다고 과신하며 문제만 더 키우는 전문가와 땅에는 잔디를 심고 공을 치며 '나이샷!'을 외쳐야 자연과 무언가를 주고 받는 줄 아는 사람들이 채운다면 그 자체를 종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농업과 새만금
이번 바닷길 걷기하는 동안 알게된 소식중에 하나는 전국적으로 정부에서 돈을 주고 소형어선들의 폐선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남획을 방지하고 수산자원을 보존하려 한다는 정책이란다. 천혜의 자원을 망가뜨려놓고 한다는 짓이 그런 짓이다. 결국엔 기업화된 경쟁력있는(!) 대형어선만 남는 것을 의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농업대책이랍시고 휴경논직불제를 시행하는 거랑 어찌 그리 똑같은지.

사실 새만금의 아픔은 우리나라 농업의 아픔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 넓은 들과 풍부한 바다를 가진 축복 받은 땅, 전라북도가 절망의 땅으로 주민들에게 각인된 것은 농업의 쇠퇴에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것이 수입이 되지도 않고 더 이상 존중받지도 못하게 되면서 전라북도는 미개발의 땅으로 보이게 되고 그렇게 쌓인 한들이 여전히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밀고 나가게 하는 힘 중의 하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농업이 죽어가는 것은 다른 것의 죽음도 함께 부르고 있다.

갯벌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
새만금 바닷길을 걸으면서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지만 그 풍경에 그레질을 하는 어민들, 갈쿠리 하나들고 갯벌에 나가 조개잡는 어민들, 배 위에서 그물을 펼치는 어민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그 풍경들이 여전히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곳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단순한 관광지로 여겨질 때 정말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자본에 종속된 도시의 시간과 해와 같이 살아가는 농촌의 시간이 있다면 어촌의 시간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따라 매일 다른 일상을 꾸려나가는 달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다.
새만금. 그곳에는 오늘도 달의 시간에 맞추어 삶을 일구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손과 발에는 퇴색하고 변질되어갈지언정 우리가 가꾸어 가야할 '오래된 미래'가 스며있다.

"진정 살리려 하는가? 진심으로 살리려 하는가?"
바닷길 걷기를 할 때 갯벌이 끊임없이 물어온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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