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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코지토 님의 일본 만화 몇편, 그리고 파시즘 에 관련된 글입니다.
처음으로 진보넷 블로그 밖의 포스트에 트랙백을 겁니다. 감개무량하다. 하하..
저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만화를 보는 편이고 코지토님 글과 그 댓글들에 나온 만화들은 아주 재미있게 보거나 적어도 보려고 한 두권은 넘겨보다 포기한 책들이라 관심있게 글들을 봤습니다.
우선 저는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만화의 팬이라는 것을 밝혀야 할 것 같군요. 누가 만화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얘기하곤 하는 책이죠. 그리고, '반항하지마(GTO)' 도 엄청 즐겁게 읽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나오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나 묘사가 가슴을 뜨끔뜨끔하게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하는 만화만 읽지는 않지요.
그래서, 코지토 님의 글이 '일본 만화 몇편, 그리고 남성 중심주의' 라고 달렸다면 '흐음.. 역시 그렇지.' 하고 넘어갔을텐데 파시즘이라는 타이틀은 좀 동의하기 힘든 딱지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댓글에 나온 많은 만화들 (정치9단, 생츄어리, 지팡구....) 은 파시즘이나 군국주의 딱지를 붙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팡구와 같은 작가가 그린 것이지만 '침묵의 함대'는 파시즘이라고 붙이기는 좀 모호한 면이 있지요. 군국주의적 냄새를 품겨서 한발만 더 나가면 '에이 군국주의 만화야!'라고 부를려고 하는데 끝가지 줄타기를 하며 마지막 한발을 더 나가지 않는다고 할까요. 사실 그런 줄타기에서 오는 묘한 긴장으로 만화를 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넓게 봐서는 우파적 세계관이긴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적을 뛰어넘는 주인공 캐릭터의 특징이 그런 느낌을 준 것 같기도 합니다.
딴쪽으로 샜는데 쿠니미츠의 특성을 박정희와 비교하고 그것을 통해 파시즘 국가의 지도자 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비약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쿠니미츠의 캐릭터는 일본 학원물에서의 일반적인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힘있고 쌈 잘하고 머리는 비었지만 천성은 착하고 정의감 있고....
이런 캐릭터가 학원물에서는 역시 힘이 장땡이야 하면서 짱먹는 그렇고 그런 비슷비슷한 스토리를 양산하지만, 나이가 먹어 학교선생이 되거나(GTO) 정치가 비서가 되면 (쿠니미츠의 정치) 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캐릭터 자체만 가지고 본다면 쿠니미츠의 라이벌이 얘기하는 정치와 쿠니미츠가 얘기하는 정치의 차이는 없어지고 수많은 에피소드에서 쿠니미츠가 보이는 행동의 의미등이 없어지게 되죠.
사실 쿠니미츠의 정치는 처음 소재의 친근함 때문에 끌렸습니다. 필요도 없는 도로공사에 의한 관과 건설업체의 유착, 우리나라 새만금을 생각하게 하는 이시하야만 간척의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다룬 농약과 유기농 문제까지 일본에서의 (물론 우리나라도) 핵심 환경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라보는 문제의식이나 해결책들도 풀뿌리 정치차원에서도 올바른 방향입니다. 물론 해결방식 자체는 결국 쿠니미츠의 완력이 동원되는 클라이막스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것은 만화의 구성상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처음에는 소재에 끌렸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물론 중간중간 삑사리 들이 있지만...)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점점 마음에 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쿠니미츠와 라이벌(이름을 모르겠습니다. --;;)이 담판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있지요. 그 담판에서 라이벌은 신시바가사키시를 살리기 위한 합리적 개발 방안을 제시합니다. "외부의 자본을 유치해서 중심 상점가를 키우고 캐릭터 산업과 부가 산업을 창출해서 발전을 시키겠다." 뭐 이런 류의 얘기였는데 그 라이벌은 부패하지 않은 일본(물론 우리나라도) 엘리트 관료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우리나라 지자체의 대부분은 이런 모델의 개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민들 역시 이런 개발 계획에 반 수 이상은 동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쿠니미츠의 얘기는 "당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제시한다면 도대체 평범한 주민은 무얼하느냐? 단순히 정치를 쳐다보는 존재냐?" 였습니다. (정확한 표현이 기억 안나는 군요. 아주 인상깊은 대사였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쿠니미츠의 '정치'라는 것은 주민의 동원이 아닌 참여, 중앙집중적 개발보다는 상부상조하는 삶을 통한 행복의 추구, 외부의 자원이 아니라 지역에서 순환할 수 있는 자원 순환의 도입등 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를 '축제'의 장이라고 보는 것 역시 마음에 들더군요. 게다가 주인공 캐릭터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능력입니다. 머리가 빈대신 자기 얘기를 주구장창 떠드는 게 아니라 귀가 열려 있는 것이지요.
여기까지가 제가 본 쿠니미츠의 정치인데 파시즘 하고는 차이가 좀 크지 않을까요? 어쨌든, 지금 배경이 시장선거여서 나오는 장점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만일 쿠니미츠가 비서에서 벗어나고 본격 정치가가 되어 일본 총리에 도전하는 것 까지 얘기가 진행된다면 파시즘의 성격을 보여줄 가능성은 있겠지요. 하지만 현재의 스토리 진행상 거기까지 가기에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게 안도가 되면서도 그렇게 진행됐을때 작가는 어떤 정치를 보여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GTO에 대해서는 길게 할 얘기는 없고, '평교사' 영걸 캐릭터에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임도 교감도 교장도 교육감도 아닌 평교사가 영걸에게 딱 어울리는 캐릭터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고 아무리 사고를 쳐도 영걸은 평교사가 딱이지요. 그리고, 영걸에게 학교는 아이들과 노는 곳입니다. 물론 그 논다라는 것은 '상남 2인조'시절의 노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비록 역시 폭력이 난무하기 하지만 말이지요. --;; 아이들도 자기들을 통제하고 교육시키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선생을 바라지요. 영걸은 그런 아이들의 개성과 특성을 살려주는 존재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일들 속에서 자기 영향력을 넓혀 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반 아이들과 그 자리에서 노는 선생입니다. 파시즘적 욕망의 인간형 하고는 차이가 있지요.
위 두 만화를 일본작가가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아이들도 즐겨 보는(특히 GTO) 이유는 한국의 정서와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점점 합리적으로 되어가는 시스템 속에서 무기력해져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해결책 중 하나로 파시즘이 제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신드롬도 그렇고 많은 일본만화의 파시즘적 성격도 그런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해결하는 다른 방안으로 시스템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본연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빛내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위 두 만화책이 그런 길을 일말이라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목록
Dream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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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도 쿠니미츠의 정치 좋아하는데.ㅋㅋ GTO도 봐야겠네요.ㅋㅋ부가 정보
박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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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둘 다 안봤는디.. 함 봐야지...부가 정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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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만화와 멀어졌었는데... 이걸로 함 시작해봐?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