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8/07 07:26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다양성과 포용성이 동시에 그리고 배제와 은폐의 전략과 함께 작용하는 도시 뉴욕은 처음에는 사실 별로 매력이 없었다. 서울과 비슷한 대도시이고 교통정체도 심하고 사람도 많은...

 

서울에서 63빌딩에 가거나, 한강유람선을 타거나, 고궁에서 산책을 하거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지 않고, 이뿐 건물들 구경을 가지 않는 것처럼 뉴욕 사람들은 자유의 여신상에 가지 않고 거기로 가는 페리를 타지 않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지 않는다.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은 뉴욕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메트로폴린탄에는 몇개의 피라미드와 신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한 이집트관과 그리스/로마관이 있었다. 잘 보존되어 있는 벽화들과 파피루스 그리고 석상들과 석기들은 정말 충격이었다. 게다가 신전도 그대로 옮겨 놓다니, 수십여구에 달하는 미이라와 장기를 담아 놓았다는 단지를 보면서 미국의 탐욕에 한기가 느껴졌다.

 

피라미드를 파헤친 사람들에게 내렸다는 파라오의 저주가 정말 있을거 같았다. 무덤을 그렇게 파헤쳤으니 벌을 받아도 마땅하다. 하지만 그 보관과 수집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도저히 넓어서 다 볼 수 없을거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유럽 회화관으로 향했다. 허걱... 거기에는 더 놀라운 광경이 있었다. 고흐, 세잔, 모네, 마네, 피카소, 칸딘스키, 젝슨 폴락 등등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현대 회화의 거장들의 그림이 떡 하니 걸려 있는 것이다. 피가소의 경우 청색시대, 적색시대, 황색시대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흐름까지 알 수가 있는 전시였다. 심지어 그림들이 유리도 없이 그냥 걸려 있고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고 있었다.

 

정말 미술교과서가 따로 없는 컬렉션이었다. 놀라운 건 그런 그림들이 무심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아이스크림을 들고 지나가던 관람객이 그림에 아이스크림을 푸~욱 눌러 찍어도 모를거 같았다. 하나 하나가 미술 교과서인 그림들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원화를 앞에 두고 스케치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이런 자원들이 있으니 20세기 미국 미술의 비약적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메트의 소장품중에 내 시선을 가장 잡아 끈 것은 고흐의 '흰밀밭의 사이프러스'였다. 내 핸폰의 바탕화면에 깔여 있는 그림을 거기서 만날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장이라두 살아서 꿈틀거릴것만 같은 붓터치와 그림안에서 온전히 느껴지는 바람의 물결, 당장이라도 들릴듯한 밀이 사르륵 부딪히는 소리가 환상적이었다.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가슴이 벅차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다리에 힘두 빠지고 당장이라두 주저 앉을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림앞에 20분이 넘게 앉아 있었다.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런 기분이 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음날 메트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안고 현대미술관(MoMA)로 향했다. 모마는 '돈이 정말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넓지 않은 (물론 메트에 비해서) 갤러리에 걸려 있는 작품 하나하나가 다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샤갈의 '나와 마을',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그림들 천지였다. 거기에 미로, 달리,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와 칸딘스키, 몬드리안, 잭슨폴락의 추상화까지... 도대체 없는게 없었다. 시간이 없어 스케치와 사진들을 못 본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20불이나 하는 입장료가 전혀 아까울 것이 없었다.

 

모마에서 또 한번 놀란것은 기획전에서였다. '세잔과 피사로'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진행중이었다. 그 기획전은 같은 동네에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세잔과 피사로가 같은 풍경을 얼마나 다르게 묘사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동일 주제에 대한 세잔과 피사로의 그림을 나란히 걸어놓고 있었다. 얼마나 그림이 많으면 이런 전시회를 기획할 수 있는건지...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건물자체가 예술이라는 구겐하임을 찾았다. 칸딘스키의 특별전이 진행중이었다. 구겐하임의 컬렉션도 역시 훌륭했으나 메트와 모마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없어 슬쩍 둘러보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뉴욕의 미술관들... 언젠가 다시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국을 떠난다는 사실이 가장 아쉽게 만든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화가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든 아니든 미국의 침략의 역사와 자본주의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든 그림의 대상이 거의 백인이라는 것이 아니꼽든 아니든... 상관없이 좋았다. 이런 나의 정치적 이중 잣대가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우짤꼬... 너무 너무 좋은 것을.... 

 

 

 



메트와 모마는 그림들을 찍을 수가 있었다.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서 심하게 흔들린 그림들을 제외하고 나의 무지로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제목도 기억을 못하지지만 내 카메라에 남아 있는 그림들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고흐의 정물화


 

#2. 고흐는 소박한 농촌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구두'와 같은 작품처럼 소시민의 삶이 담겨있는 그림들...


 

#3. 역시 고흐의 풍경화


 

#4. 촌부같은 모습의 자화상


 

#5. 메트에 있는 말과 사람의 갑옷으로 만들어 놓은 기마대


 

#6. 드가의 발레리나들...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7. 르느와르의 화사한 여인들. 당장이라두 그림에서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8. 모네의 풍경화들


 


 

#9. 메트에는 이런 미이라들이 수십구이다. 원한이 서려있는 듯한 으시시한 느낌...


 

#10.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작가 베르메르의 그림들도 많았다. 눈물이 고인 듯한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는데 사진은 영~~ 잘 나오질 않았다.


 

#11. 메트에는 조각들로 장식된 실내 정원이 있다.


 

#12. 블랙아이리스라는 그림이다. 작가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어디선가 여성의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상당히 외설적인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본것 같다. 진짜 그런가?


 

#13. 이집트에서 통째로 가져온 사원내부에서 찍은 사진이다. 건물을 통째로 가져다 놓다니... 엄청난 인간들이다. ㅡ.,ㅡ;:


 

#14. 흰 밀밭의 사이프러스...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포스터를 충동구매해서 내방 벽에 붙여 놓았다.


 

#15. 누구의 그림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너무나 맑아보이는 표정과 반짝이는 듯한 살결이 좋아서 찍었다.


 

#16.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


 

#17. 그리스의 어마어마하게 큰 도자기이다. 이런걸 조각 조각 맞춰 복원해 놓았다. 대단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18. 쇠라의 그랑드 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 점묘화라서 그런지 나른한 느낌이 훨씬 강했다. 이런 유명한 그림이 구석탱이에 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걸려 있었다. 


 

#19. 자코메티의 뼈다구만 남은 인간모양의 조각상들도 정말 많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뼈다구만 남은 줄 알았는데 각 인물마다 다른 표정이 있고 피부에 대한 표현등이 담겨 있었다.


 

#20. 햇빛이 떨어지는 메트의 중앙과 left wing 사이의 통로에는 그리스/로마/유럽의 조각상들이 깔려(?) 있었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21. 미국의 호퍼의 그림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1900년대 초반의 미국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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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7 07:26 2005/08/0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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