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하네케의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칼로 미련없이 자신의 가슴을 베어버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들의 신경증과 불안을 드러내는 그의 영화에 흥미가 생겼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떻게 그 불안과 신경증을 드러낼 것인가?
이번 영화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한다.
누군가에 의해 감시된 나의 일상을 확인하는 끔찍함. 그리고 그 끔직함을 확대 재생산 하는 과거의 기억과 죄의식. 그리고 폭력을 부르는 내가 가진것에 대한 소유욕과 이를 확대 재생산 하는 비디오라는 미디어.
(이 지점에서 잠깐 하이텍 언니들이 생각났다. 매일 저렇게 내 일상이 감시받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폭력인지...)
영화는 스릴러의 형식을 취하다가 결국 혼란에 빠진다. 누가 만든 비디오인지는 결국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마지막의 엔딩신의 또 다른 일상을 보면서, 조르쥬의 아들 피에로가 마지드의 아들을 만나는 일상들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가 완전히 엉키는 것이 당혹했다.
이번 하네케의 영화는 불안과 신경증을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방식으로만 보여줄 뿐이 아니라 그런 불안과 신경증의 근원이 그리고 이로 인한 폭력이 가진것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임을 드러낸다.
그 가진것이라는 것이 거대한 그 무엇도 아닌 중산층의 안락하고 편안한 가정이든, 지식인의 허영이든 간에 조류주는 자신이 가진 그 어느 것도 흔들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신경증을 드러낸다.
내 시각에서 나의 일상에 균열이 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그리고 소유한 것을 그 어느 것도 잃지 않기위해 남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폭력과 '나는 책임이 없다'는 회피까지...
결국 타인에 대한 폭력은 소유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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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2006/04/19 16: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아니스트보다는 덜 새디스틱하던데...약해지셨어.ㅋ
글쎄 나의 경우는 조르쥬씨가 자살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절대 비디오는 그가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랬달까.
화명의 조명 톤은 바뀌지 않았는데, 화면의 전환이 느껴졌어.
여하간...끝 장면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봤는감?
봤으면 알려줘.
해미 2006/04/19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미/ 나두 그건 정말 놀라웠는데... 마지드가 자살을 하면서 한 마지막 말이 자기가 보내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말여. 끝 장면은 나두 계속 헤깔리는데 조르쥬의 아들의 학교 앞이구, 마지드의 아들이 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조르쥬의 아들이 수업끝나고 나오니까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헤어지는 장면이었던거라구 생각해. 마지드의 아들이 복수를 위해 조르쥬의 아들을 만나는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일상적인 느낌이야. 결국... 모든게 거짓이거나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우. 어렵지 않냐?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