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5/12 00:13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감사를 받은 오늘,

프로젝트 땜시 지방으로 모두들 출장을 가고 간만에 혼자 병원에 남은 의사가 된 오늘,

해야 될 일을 여전히 품고만 있었던 오늘,

불현듯 따뜻한 봄기운을 피해 집으로 일찍 귀가한 오늘,

 

결국 일은 시작도 못하고 불질만 하고 있다. ㅠㅠ

 

#1.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어긋나다.

 

집에서 저녁을 먹던 와중 우연히 MBC에서 하는 '가족愛발견'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파스텔톤이 이쁘기만 한 모자를 눌러쓴 그녀들의 모습이었다.

KTX에 담았을 그녀들의 꿈의 상징인것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들의 알록달록 모자색...

 

투쟁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인 마뜩치 않은 흐름이었건만,

그녀들이 왜 싸우는지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 그저 감상적인 내용이었지만,

가족이라는 틀에 그녀들을 가두어 버리는 문제가 많은 접근이었지만,

그녀들의 모습을 그렇게 불현듯 만나니 좋았다.

 

'아직은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갔은 어린 양'류의 발상이 맘에 들지 않지만, 엄마를 부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녀들을 바라보다보니 밥숟가락이 저절로 상에 다시 내려졌다.

 

목이 메여서 괜시리 물만 들이켰다.

 

TV 리모콘만 만지작 거리다가 방에 들어와 일을 시작해보려 하니, 좀전에 그렇게 내 목을 메이게 하던 그녀들이 전원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메이데이날 만났던 어깨가 많이 아프던 수배자였던 그 동지는 팔도 다 낫지 않았을텐데...

 

빌어먹을, 내가 가족愛를 발견하는 현장으로서 그녀들을 TV로 만나고 있던 그 시간, 그녀들은 산산히 깨어진 꿈과 절망을 가슴에 상처가 되도록 끌어안고 경찰에게 끌려갔다. 

 

그렇게 같은 시간이었건만 공간은, 그리고 정서는 어긋나고 있었다.

 

#2. 같은 공간, 다른 시간에서 어긋나다.

 

밤 10시가 넘어서 걸려온 친구녀석의 전화,

군의관으로 가 있는 친구녀석의 지친 목소리,

이래저래 피로가 몰려오는 나의 시간,

그 시간에야 겨우 일이 끝났다는 녀석의 지친 목소리였다.

 

평택 대추리때문에 비상이라는 그 녀석의 공간,

군인들의 보호를 위한 물품을 사느라 돈이 엄청들었다는 그 녀석의 공간,

운동권도 아닌 그 친구의 국방에 대한 짜증나는 이야기였다.

왜 필요한지 동의되지도 않는 국방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 녀석의 이야기에

약간의 설득과 토론을 전화상으로 하다가 얘기하기가 싫어졌다.

'어짜피 얘기해봐야 평행선이니 얘기 그만하자!'고

차갑게 오래간만에 전화한 피로에 절어 전화한 친구를 밀쳐냈다.

 

결국,

 

그 친구는 '주말에 조심하라'는 걱정을 남겼고,

나는  '너희만 비상이 아니라 우리도 비상이야'라는 짜증을 남겼다.

 

같은 공간이건만 시간은, 그리고 정서는 어긋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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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2 00:13 2006/05/1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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