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4/12/12 18:13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두주마다 한번씩 모 정치조직의 기관지에 글을 토해내고 있다. 이것 역시 거기에 쓴 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작성한 입장글까지 보내준 홍실이 선배에게 감사를... ----------------------------------------------------------------------------------- 얼마전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에서 음주측정기를 구입해서 조회시간에 노동자들을 음주측정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만방자한 행동의 근거는 ‘음주가 산재사고를 늘린다’는 것이었다. 이에 발 맞추기라도 하듯 10월 이목희 의원은 ‘근로자의 음주가 산업재해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대안’이라는 정책자료집을 발간하고 노동자들의 음주를 관리하기 위해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 employee assistance program)'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음주가 산재를 늘린다는 근거도 어처구니 없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한 EAP라는 것의 본질을 살펴볼때 이는 노동자들을 ‘스트레스 관리’라는 이름으로 더욱더 적극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자본의 전략일 뿐이다.


이목희의원은 ‘첫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인 제조/건설업종이 산재의 총 66.7%, 산재사망의 50.9%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두 업종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월등히 높고, 음주량과 음주빈도가 높다. 둘째, 연간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 수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관찰된다.’는 이유를 들어 음주가 산재를 증가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산재통계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 산업재해는 1-49인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절반이상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2002년에는 71.2%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게 음주 때문이란 말인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을 다니며 보건관리를 해 본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문제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숨쉬기조차 힘든 작업조건, 전무한 안전장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에 지쳐서 프레스에 손가락이 짤리고, 없는 안전장치 때문에 추락하고, 인력이 부족해서 깔려죽는게 그들의 현실이다. 소규모 사업장을 가 보기나 하고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하는걸까? 두 번째 연간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 수에 대한 근거는 통계에 대한 기본개념이 없는 것이다. 정책자료집에 나와 있는 그림을 보면 비슷한 양상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는 분모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산재 사망자 수가 아니라 사망률을 가지고 비교해야 통계학적으로 맞는 것이다. 사망자 수가 아닌 사망률을 적용하면, 주류 출하량이 급격히 증가한 98-2001년도에는 사망률이 감소하고 2001년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림 2). 특히 이 기간 중 뇌심혈관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많이 늘어났는데 이의 원인은 스트레스 및 노동강도의 증가가 원인임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또한 이러한 상관관계가 우연에 의한 것인지 실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전혀 규명된 바가 없다.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폐암에 많이 걸린다’고 할 때, ‘라이터를 폐암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라이터를 많이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라이터와 폐암의 상관관계가 나타난 것이지 라이터가 폐암의 원인은 아닌것처럼 술의 문제도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이다. EAP? 노동자 통제의 세련된 전술 한편 그 대안을 제안하고 있는 EAP를 살펴보면 주장의 의도가 분명해진다. EAP는 노동자 개인 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안고있는 고민이나 스트레스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본’이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의 명백한 목표는 바로 ‘생산성의 향상’과 ‘노동자 통제’이다. 기존에 도입되어 있는 고충처리센터에서 회사 경영과 업무 관점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EAP는 정신과 의사나 산업의학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산업카운셀러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팀과 연계해서 다양한 업무 및 생활상의 문제를 상담하고 관리 해준다. 이는 ‘스트레스 관리’라는 미명하에 소위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도입되고 있다. 국내에도 외국계 회사들과 일부 ‘선진 자본’을 중심으로 도입이 되었으며 정부에서도 공식적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비밀보장’이 된다고 선언은 하지만 EAP의 핵심은 ‘지속적인 업무수행을 방해하는 노동자의 이상 행동을 파악하고, 감독관이나 경영자 혹은 사무장 등에게 자문을 주며, 치료에 도움을 주는 지역사회의 자원을 파악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가족의 문제, 업무상의 문제, 노동과정의 문제 등 개인의 모든 정보가 자본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심지어 ‘관리’되는 것이 EAP의 핵심인 것이다. 노동자 개인의 사생활까지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것이 자본의 속셈이다. 자본의 통제전략에 저항하자! 이목희의원의 어설픈 도발은 스트레스를 빌미로 한 자본의 ‘통제’ 전략이 가시화 될 것임을 의미한다. 미국에서의 EAP의 전면적인 도입이 술과 약물남용에 대한 것부터 시작되었음은 주지할 사실이다. 사실 이미 학계와 정부에서는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 즉 한국식 EAP에 대한 논의들과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상에 ‘직무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조항이 추가 되었고, 이의 실행을 위한 KOSHA code가 개발중에 있다. 외국 자본을 중심으로 이미 자체적인 EAP가 실행중인 곳도 있다. 스트레스나 술의 문제, 더 나아가 산업재해나 직업병의 문제에서 ‘관리’란 지금의 노-자의 역관계상 ‘은폐’와 ‘통제’를 의미할 뿐이다. 산업재해나 직업병의 문제는 현 수준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지 ‘관리’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자본의 ‘자유’를 위해 각종 안전 규제도 완화하고 있는 마당에 ‘관리’라는 것은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키고 산재에 대한 ‘은폐’를 조장하며, 유연화된 노동시장을 기본으로 하여 고용을 빌미로 노동자들을 말 잘 듣는 노예로 만들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노동강도 강화와 자본에 의한 통제, 그리고 노동 유연화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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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2 18:13 2004/12/1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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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술은..진통제다.

    Tracked from / 2004/12/13 14:18  삭제

    * 이 글은 해미님의 [술을 빌미로 노동자를 통제하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 해미님의 글을 일고 덧글을 쓰다가 글자수가 초과 되었다고 해서 아예 트랙백을 했다. 술은 진통제다......그

  2. Subject : "때 이른 도발"

    Tracked from / 2004/12/13 14:50  삭제

    * 이 글은 해미님의 [술을 빌미로 노동자를 통제하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후배가 올린 글을 보고, 이전에 썼던 글을 올린다는 것을 까먹었음을 깨닫다. 이목희 의원의 깜찍한(^^) 주장에 대

  3. Subject : 우리는 그래서 술을 마셨다

    Tracked from / 2004/12/13 16:20  삭제

    * 이 글은 해미님의 [술을 빌미로 노동자를 통제하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1 그 냥반, 평상시에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히 부서가 다른 직원들과는 굉장히 낯을 가려서 안면트기가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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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4/12/13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미안하지만, 자본은 훨씬 더 가혹한 증거를 요구합니다. '무지랭이 노동자'들이 술먹고 사고낸다는 것이 대중의 경험이고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보거나 생각한 것이 없으므로

  2. 해미 2004/12/13 1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그렇습니다.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깨기 위해서는 더 가혹한 증거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어처구니 없습니다. 당연한 것을...조금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는 것을...더..더...노력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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