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민간 성매매 여성들도 자발적으로 그 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들 대부분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데는 사회적 영향도 매우 크다. 취약 계층을 그쪽으로 내모는 시스템이 우리 사회 내에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들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부조리도 당연히 규명되고 청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간 성매매 여성의 문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본질이 다르다. 본질이 다르므로 해결 방법도 달라야 한다. 단순히 명칭이 같았다는 이유만으로 양자를 동일시하게 되면 똑같은 해결 방법을 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두 문제의 해결에 실패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민간 성매매 여성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떼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영훈 이사장은 명칭이 같다는 이유로 두 문제를 똑같이 놓고 바라본다. 그러고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비판한다. 민간 성매매 여성도 많은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따지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는 미군 위안부 문제도 언급한다. "해방 후 '우리 안의 위안부'를 가장 길게 대표하는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미국군 위안부입니다"라면서 "민간에서 통용된 호칭은 양색시·양공주·양갈보 등입니다만, 공식적 호칭은 미군 위안부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위의 두 문장은 '미국군 위안부'라는 소제목 하에 처음 나온다. 첫 문장에서 호칭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가 똑같이 불렸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호칭 문제에 집착하는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부터 민간 위안부가 있었고 1900년대에는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도 있었거늘,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꼭 집어내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이영훈 이사장의 주장이다.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리는 최대 근거는 민간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가 한때 똑같은 호칭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각각의 특성이 어떤가는 비교하지 않고, 단순히 호칭만 놓고 그런 결론을 성급하게 내린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미군 위안부에만 유독 '선처 호소'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각각의 위안부 문제가 다 똑같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는 특정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특별 대우'를 호소한다. 비판하려면 다 똑같이 비판해야 한다고 해놓고, 특정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다.
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비판을 외면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국인들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위안부 강제동원을 자행한 일본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간다. 이를 두고 '그는 왜 유독 일본에 대해서만 침묵할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일본에만 그런 '선처'를 베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태도는 미군 기지촌 문제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는 이 문제를 명분으로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비판하거나 한미동맹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표시한다.
"사회운동가들은 미군 위안부 문제가 국가의 폭력이었다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미군 위안부 문제가 박정희와 전두환 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국가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지적하고 싶습니다. 동시대 전국 도처에서 발달한 사창가의 여인들은 훨씬 더 비참했다고 말입니다."
미군 위안부보다 열악하게 생활한 성매매 여성들이 있는데 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미군 기지촌 문제를 비판하는 한국인들을 겨냥해 "나아가 그들은 위안부 문제의 근원에 한미동맹이 있다고 주장합니다"라고 한 뒤 "그러한 주장에 저는 동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매매를 금지하면서도 미군 위안부를 용인하는 것이 위선적인 태도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렇지만 저는 그 수준에 관한 한, 우리의 인생살이 자체가 위선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한미동맹에서 파생되는 미군 기지촌 문제를 비판해야 할 대목에 가서 '우리 인생 자체가 다 위선'이라는 엉뚱한 말로 얼버무린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정치적 사고의 산물
▲ 이영훈 전 교수 등이 펴낸 <반일 종족주의> 325페이지. 이 전 교수는 "위안부 생활은 "위안부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 |
ⓒ 이영훈 |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그가 일본군 위안부뿐 아니라 미군 위안부 문제 역시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의 인식이 한미일 삼각동맹과 무관치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그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 미국을 변호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이영훈 이사장이 학술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으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 있음을 뜻한다. <반일 종족주의>에 나열된 그의 주장들이 치열한 학문적 탐구의 결과라기 보다는,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정치적 사고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15년 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을 당시 그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하여 여성을 강제 동원하고 감금하여 병사들에게 성적 위안을 강제한 행위는 국제사회가 협약으로 금하고 있는 성노예 범죄"라고 인정하는 '이영훈 담화'를 발표했다. 그래놓고도 그는 그날의 사죄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안부에 관한 망언들을 <반일 종족주의> 내에 가득 담았다. 나눔의 집에서 큰절을 올리고 50분간 두 손 모은 채 할머니들의 말씀을 경청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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