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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그 후](상)“나는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가슴이 무너져내렸다

특별취재팀 = 송윤경·이효상·정대연·윤기은 기자 kyung@kyunghyang.com

입력 : 2020.11.13 06:00 수정 : 2020.11.13 08:39

 

주 6일·12시간·최저임금 노동···절망할 틈도 없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날의 기록을 담은 일기를 보는 모습이다. 이 해고자가 '신입'이었던 대우차 시절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 내 '계급'이 있다는 것, 자신은 비정규직 계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지엠 직원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서로의 아빠가 '직영'(정규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임금이 '직영'(정규직) 절반이니 사는 모습이나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중학교 갓 들어간 아들이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저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조용히 사라져야 했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진은 한 비정규직 해고자가 마지막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날의 기록을 담은 일기를 보는 모습이다. 이 해고자가 '신입'이었던 대우차 시절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공장 내 '계급'이 있다는 것, 자신은 비정규직 계급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한국지엠 직원이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서로의 아빠가 '직영'(정규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임금이 '직영'(정규직) 절반이니 사는 모습이나 씀씀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때 중학교 갓 들어간 아들이 어린 마음에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그저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측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 때 공장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 특별취재팀

 

대다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인
중소·영세 공장으로 ‘재취업’
쉬고 싶어도 연차는 꿈도 못 꿔
배달·택배 노동자 환경도 열악
 

김현우씨(36·가명)는 올여름부터 음식배달 기사로 일하고 있다. 한 달 전 배달할 떡볶이를 받기 위해 분식점에 들어갔을 때였다. “아빠다!” 아내와 음식을 먹던 여섯 살배기 딸이 소리쳤다. 가족과 마주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당황스러웠다. 과속방지턱을 지나다 초밥이 한쪽으로 쏠려 6만5000원을 물어준 날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불러냈다. 8년간 힘든 일을 마다않고 일했는데 왜 쫓겨났을까.

김씨는 지난해 12월31일 해고된 585명의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중 한 명이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대량 해고하려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사내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은 원청(한국지엠)이 업체들과 계약을 끊으면 쉽게 해고할 수 있다. 2018년 1월에도 이 공장은 비정규직 64명을 이런 식으로 내보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대량 해고는 대단한 뉴스가 아니다. 이들이 어떤 일자리로 이동하는지 역시 특별한 분석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2020년, 경향신문은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대량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추적했다. 대기업·대공장 정규직의 가장자리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한 번 더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엔 갈수록 심각해지는 일자리 양극화 등의 노동 현실이 담겨 있다.

취재진은 지난 6주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649명 가운데 138명을 온라인 설문조사 했다. 그중 32명은 인터뷰를 했다. 설문응답자 가운데 한 번이라도 재취업을 한 사람은 85명이었다. 재취업 경험자 62%는 중소·영세 공장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었다. 32%는 음식배달·택배·화물운송을 경험했다. 나머지는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지엠 시절보다 월수입은 50만~100만원(29%) 혹은 100만원 이상(23%) 줄었고 하루 노동시간은 2~3시간(39%), 3시간 이상(25%) 늘었다. 응답자 절반은 “연차 개념이 없는 곳에서 일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결과 해고자들이 재취업한 영세·중소 공장은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평일 평균 10~12시간 일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을 받았다. 주로 토요일까지 강제로 일했고 더러는 일요일까지 나와 청소라도 해야 했다. 음식배달·화물·택배노동자가 된 이들은 아예 근로기준법 밖으로 밀려났다. 이들의 신분은 근로기준법이 보호대상으로 삼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오토바이나 1t 트럭을 구입하고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떠안는다.

한국지엠 시절에 대한 해고자들의 감정은 양가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립다고 했다. 정규직과 한 공간에서 일했기 때문에 노동시간, 유급휴가 면에서 법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란 이유로 정규직 임금의 50~60%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이런 고용방식은 불법(파견법 위반)이다. 법원은 일관되게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8100억원을 지원받은 한국지엠은 곧 창원공장에 신차종을 배정하기로 했다. 공장의 일감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는 ‘동료 비정규직’의 해고에 눈을 감았다. 2018년 비정규직 64명 해고 직전엔 정규직 노조가 사측과 합의하기까지 했다.

중소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한 해고자는 휴식시간에 앉아있을 곳이 없어 땅바닥에서 쉰다. 그는 깍두기, 고추가 반찬의 전부인 식판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게 노예노동 아닐까.” 50년 전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산화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묻는다. 한국 사회는 과연 노동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있는가.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그래픽 | 성덕환·김덕기 기자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2018년~2019년 649명의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다. 5년~15년간(설문응답자 80%의 근속기간)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해고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일터로 이동했을까. 해고자 28인의 이야기를 신문 지면 그래픽에 축약해 담았다(위 이미지들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아래는 위 이미지들 속 텍스트다. ‘①현재 하는 일’ ‘②노동시간, 수입’ ‘③과거와 현재 생활’ 등의 항목을 가지고 각 해고자의 상황을 정리했다.
 

■최우현(38·가명) 

① 현재 하는 일 : 물류 운송

② 노동시간·수입 : 주 6일 새벽 1시부터 아침 8시까지 노동. 월 수입 180만원

③ 23세에 한국지엠에 들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그는 사소한 사건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일할 때 이어폰으로 노래 듣는 걸 봤다. 저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근데 정규직이 와서 너는 들으면 안 된다고…. 그때 제가 비정규직인 걸 처음 알았다. 임금 차이가 크다는 것도.” 한국지엠에서 해고된 뒤 들어간 공장은 화학약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유통기업 하청업체로부터 물량을 받아 편의점에 배송하고 있다. 심야 노동을 하고 있는 그는 낮에 푹 잠들지 못한다.

■유근상(50대 후반·가명) 

① 나이가 많아 일자리 못 구함

③ 1995년 대우에 입사할 때는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 없었다. 차별도 억울한데 해고까지 당하니 앞이 캄캄했다. 5년 전 아들이 “아빠처럼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해고 뒤 아내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정상민(39) 

① 택배기사

② 주 6일 아침 7시부터 저녁 9~10시까지 노동

③ 2018년 해고 이후 택배노동자가 됐다. 운전, 고객 응대, 배송, 장시간의 막노동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1년간 가족들도 말을 못 걸었다. “한국지엠도 참 불합리했는데 여기는 모든 책임을 노동자가 지는 노예계약이다.” 계약 만료 형태로 해고 위기에 놓인 동료를 도우려다 노조를 만들었다. 지난달에는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는 택배노동자 한 명이 저소득과 회사의 갑질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올해 물량 급증으로 바쁜 와중에도 그와 동료들은 고인 죽음의 책임을 회사에 묻고 있다.

■차진우(39·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주 6~7일 주·야간 교대근무, 야간 때는 오후 7시30분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퇴근

③ 올 초 해고 이후 한국지엠 비정규직 동료들과 복직투쟁을 벌였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이들을 농성장에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비참하고, 미안했다.” 이후 공장 생산직 일을 알아봤다. 먼저 다닌 직장은 3명이서 할 일을 2명에게 시켰다. 담배 피울 짬도 안 나 그만뒀다. 현재 직장은 12월까지만 일할 수 있다. 구내식당 아침 메뉴는 깍두기, 고추, 멀건 국이 전부다. “1970~1980년대가 생각난다”고 했다.

■김석표(40·가명) 

① 사업을 하는 친척을 돕고 있음

③ 2018년 해고 뒤 대출 받아 호떡 푸드트럭를 시작했다. 트럭 옆에 돗자리 깔고, 일하면서 아이를 봤다. 개인 사정으로 장사를 접은 후 공장에서 최저임금을 받았는데 생활이 힘들었다. 친척이 6개월간 월급 줄 테니 심부름을 해달라고 했다. 이후로는 어떻게 될지 그 자신도 모른다. 대출 빚을 못 갚아 아내는 곧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다.

■김규태(46·가명) 

① 육아 전담하며 구직 중

③ 남편이 해고되자 아내는 대기업 하청업체에 생애 첫 취업을 했다. 해고 후 빚은 2500만원이 늘었고, 집은 전세에서 더 좁아진 월세로 바뀌었다. 한국지엠에서 같이 일하던 비정규직 ‘동생’이 정규직이 몰던 차량에 치였지만 3일 만에 다시 출근해야 했던 게 16년 한국지엠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호규(38·가명) 

① 담배 필터 제조

② 주 5일 10시간30분씩 노동. 2주씩 주야간 교대근무. 160도의 열 기계 앞에서 작업하다 팔에 화상 입음.

③ 두 자녀를 부양하는 그는 해고 후 3000만원을 대출했고, 차 한 대를 처분했다. 부모님과 처가댁에 매월 10~20만원씩 드리던 용돈도 5만원으로 줄였다. 어느 날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자녀분 적금통장 해약하시는 게 맞나요?” 아내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이의 적금통장을 몰래 깬 것이었다. 한국지엠 마지막 퇴근길에 조씨는 동료와 이런 말을 하며 공장을 나왔다. “우린 뭐였지? 나사 한 조각이었나?” 그는 해고 후 두어달 쉬는 동안 밖에 나갈 일을 최소한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최씨에게 “기운 차리라”며 응원했지만 그는 해고 후 “안쪽으로 침전하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진기(42·가명) 

① 전기 배선 설치

② 주 5일 하루 8시간씩 노동. 월 수입 300만원. 전선 설치 중 전기가 몸에 오르거나 전선이 터지는 경우 있음.

③ 김씨는 매년 12월 31일마다 아내와 가족 계획을 세운다. 김씨의 아내는 계획을 짤 때마다 “한국GM을 그만 두고 형 회사로 가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선뜻 한국GM을 나올 수 없었다.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 있겠지’라는 보상심리에 11년 동안 한국GM 창원공장으로 출근했다. 해고가 되고 나서야 형 회사로 들어갔다. 김씨의 아내는 6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은 데에 이어 올해 혈액암 판정도 받았다. 김씨는 아내를 요양병원에, 초등학생 아들을 장모님께 맡겨야 했다. 해고 후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던 학원 몇 곳을 끊었지만 김씨의 마이너스통장은 늘어나고 있다.
 

■한지석(44·가명) 

① 건설현장 일용직

② 일당 12만원. 코로나19 이후 공치는 날이 많음

■한석희(45·가명) 

① 아파트 관리

② 5일에 한 번 24시간 노동. 월 수입 230만원

③ 해고 뒤 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드문 사례다. 그러나 입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바로 잘리는 신세다.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10~20년간 일했던 창원공장을 그만두면서 라커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몇 가지가 안된다. 한 해고자는 한국지엠 정규직들의 동계 점퍼를 얻어 왔다. 하청 노동자의 점퍼보다 질이 좋고 따뜻하다. 그는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작업복의 재질이 다르다”고 했다. 사진은 해고자들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자신의 작업복이다. | 특별취재팀

지난해 12월 한국지엠 창원공장은 비정규직 585명을 대량 해고했다. 해고자들이 10~20년간 일했던 창원공장을 그만두면서 라커룸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몇 가지가 안된다. 한 해고자는 한국지엠 정규직들의 동계 점퍼를 얻어 왔다. 하청 노동자의 점퍼보다 질이 좋고 따뜻하다. 그는 “직영(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작업복의 재질이 다르다”고 했다. 사진은 해고자들이 취재진에게 보여준 자신의 작업복이다. | 특별취재팀

■김수현(50·가명) 

① 대리기사, 택배기사, 건설현장 일용직

② 일감이 생길 때마다 일함

③ 대학생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자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0만원짜리 적금을 깼다. 생활비가 부족해 아내 명의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설복현(50·가명) 

① 전자제품 입·출하 보조

② 주 6일 12시간씩 노동. 최저시급

③ 2018년 먼저 해고된 65명 중 1명이다. 해고 후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한 공장에선 파이프 절삭유를 다뤘다. “기름이 독해서” 고무장갑은 늘 하루만에 “열십자로” 찢어졌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한국지엠에서 그는 자동차 미션 만큼은 ‘빠삭’ 했다. 50대인 지금, 과거 쌓은 기술 대신 힘을 쓰는 상·하차 업무를 한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지금의 일터에 젊은이들이 상당히 들어왔다. 관리자들 눈빛이 달라졌다. 또 밀려날까봐 걱정스럽다. 부모님과 처제가 아파 빚이 늘고 있다.

■석동훈(49·가명) 

① 택배기사

② 주 80시간 노동. 월 수입 300만원

③ 2018년 해고 뒤 택배 노동 한 달 만에 몸무게가 20㎏ 줄었다. 배송 중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2주 만에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김희관(53·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일 중 평일 11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월 수입 260만원

③ 해고 후 한 없이 작은 사람이 된 느낌이다. 인간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서동규(39·가명) 

① 화물 운송, 연삭기 공장 야간 파트타임(투잡)

② 평일 14~15시간씩, 토요일 12시간 노동. 월 수입 250만~300만원

③ 문씨는 여유가 없다며 여러번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와의 대화는 한밤중에 이뤄졌다. 1t 탑차로 화물운송을 하는 그는 아침 7시30분부터 12시간 일한 다음, 저녁 8시부터 밤 11시까지 중소공장에서 파트타임 노동을 한다. 하루라도 쉬려면 자신의 대타를 직접 구하거나 25만원을 물류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힘들어도 견뎌야 한다. 아픈 아이의 치료에 목돈이 드는데 해고 뒤 빚이 5000만원 늘었다. 한국지엠 시절 가족 캠핑을 간 적이 몇번 있다. 그후 두 아이는 캠핑가자고 노래를 부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한번 더 캠핑을 가보고 싶다.

■김현우(36·가명) 

① 음식배달

② 주 6일 12~14시간씩 노동

③ 도급들(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날아간다’는 소문이 지난해 초부터 들리기 시작했다. 나오기 전에 2000만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해고 20일 후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위장 수술을 받았다. 생활비를 최대한 줄였는데도 마이너스 통장이 바닥났다. 아픈 아내가 걱정할까봐 말은 하지 못했다. 연말에 대출 만기 연장이 될지가 가장 걱정이다. 그는 “내년부터가 진짜 위기일 것 같다”고 했다.

■정우철(46·가명) 

① 퀵서비스,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7일 12~13시간씩 노동. 최저임금

③ 아내가 코로나19로 어린이집 교사 구직에 어려움을 겪다가 7월에야 재취업할 수 있었다. 자녀 셋을 키우느라 월 300만원은 필요하다. 해고 후 빚이 5000만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종현(39·가명) 

① 카드 배송

② 카드 한 장 배달할 때마다 900원을 받는다. 하루에 많아야 40장을 돌린다.

■신호상(29) 

① 에어컨 실외기 생산직

② 하루 12시간 노동. 최저임금

③ 신씨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20대 초반부터 한국 GM에서 7년을 일해오며 돈을 모았다. 해고 후 작은 회사와 큰 회사 20여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신씨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공해주는 곳은 없었다. 코로나19가 불어닥쳐 일자리도 줄어들었고, 그가 면접보러 간 직장의 처우는 몹시 안 좋았다. 그는 “어딜 가나 정규직은 안 뽑는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수한(41·가명) 

① 직업훈련학교 수강 후 구직 중

③ 한국지엠에서 쫓겨난 뒤 ‘자격증’에 매달렸다. 같은 일을 15년 넘게 했지만 해고돼 보니 “내가 했던 일은 누가 와도 금세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기술직이니까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전기기능사를 땄다. 한 단계 높은 전기기사도 공부 중이나 퇴직금이 바닥나 마냥 취업을 미룰 수 없다.

■신우근(39·가명) 

① 당구장 아르바이트

② 하루 5시간 노동. 최저임금

③ 일자리를 못 구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해고 뒤 결혼식을 미뤘다. 친한 한국지엠 정규직들은 최근 “인연 되면 다시 만나자”며 계모임을 깨버렸다. 짜증과 화가 많아졌다. 1년 새 성격이 바뀐 것 같다.

■정태우(42·가명) 

① 버스 운전

② 주 5~6일 하루 평균 8시간씩 근무. 매주 주·야간 교대. 월 수입 230만원

③ 한국지엠 다닐 때 생각없이 따놓은 대형면허로 버스 기사 일자리를 어렵게 구했다. 코로나19로 승객이 뚝 끊기면서 월급이 140만원까지 줄었다. 아내와 번갈아가며 지인의 호프집에서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손님이 없어 지난여름 일이 끊겼다.

■조연재(39)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주·야간 교대근무

③ 2018년 한국지엠에서 해고되고 또 사내하청 노동자가 됐다. 밥도 보호장구도 안 주고, 법도 안 지키는 회사를 관두고 새 일자리를 구했지만 또다시 사내하청이었다. 아내 역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다.

■하세호(47·가명) 

① 물류 운송

② 주 6일 근무

③ 해고 후 1000만원의 부채가 생겼다.

■신승연(41·가명) 

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함

③ 정규직으로 복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입었던 한국지엠 작업복을 집 장롱에 모셔뒀다.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자 평소 내 이름을 부르던 정규직이 ‘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호진(41·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하루 12시간씩 노동. 최저임금

③ 한국지엠에선 로봇으로 들 것을 지금 공장에선 사람이 든다. 그래도 여름에 에어컨이 나온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는데 선풍기만 트는 공장도 많다. 코로나19로 일을 몇 달 쉬었다. 회사가 아예 망할까봐 불안하다.

■태종현(55·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 계약직

② 주 6일 중 평일 11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월 수입 263만원

③ 지금 일하는 공장엔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해고된다는 조건이 있다고 들었다. 휴식시간엔 의자도 없어 자판기 앞 땅바닥에 앉아 쉰다. 치매에 얼린 어머니와 관절이 성치 않은 누나와 함게 살고 있다. 어머니는 한밤중에 밖에 자주 나가신다. 한번은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파출소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정상적인 걸 안 하면 보살피는 게 다 힘들다”고 말했다. 누님은 관절염 치료비를 한푼이라도 더 벌어보고자 아픈 다리를 이끌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6개월 동안 했다. 태씨는 30여년 전 감속기 설계를 하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았다. 개인 작업실도 있었고 업무 도중 짬이 나면 직장 동료들과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생활용품점을 열었지만 IMF로 인해 폐업했다. 그뒤 한국GM에 입사했다. 그는 같은 근무 시간이어도 감속기 설계를 하던 당시 시간과 비정규직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오중선(38·가명) 

① 자동차 부품업체 생산직

② 평일 12시간, 토요일 8시간 노동

③ 현재 일하는 공장에선 연차휴가를 쓰는 사람을 한 번도 못 봤다. 코로나19로 이전 공장에서 일감이 없어 주 4일만 일하다 지금 일터로 옮겼다. 해고 전 받아놓은 대출을 아픈 부모님을 위해 쓰고 있다.

■해고노동자 649명 중 끝내 만나지 못한 510명…“휴일에도 근무” “새벽 2시에 끝나” 고단한 생업의 굴레

2018년 이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649명에 이른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지난 6주간 다양한 경로로 모든 해고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심층면접과 설문조사에 총 138명이 응했다.

취재팀이 만나지 못한 510여명 가운데 일부는 경향신문과 직간접적으로 연락이 닿았지만 “주 7일 근무한다” “일이 새벽 2시에 끝난다” 등 생계를 이유로 취재를 거절했다. 해고 과정에서 겪은 맘고생으로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를 단절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복직을 위해 회사와 소송 중이어서 언론 접촉이 곤란하다는 해고자도 있었다.

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심층면접에 응한 노동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업 상태인 사람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영세 제조업 공장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 일이나 건설현장에서 날품팔이식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해고자 A씨는 “작은 회사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옛 동료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사실상 강제로 이뤄지는 잔업 3시간까지 마치면 집에 밤 10시에 도착한다. 철야근무까지 한다”며 “맞벌이하는 부인과 아이 셋 육아 문제로 많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B씨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지엠에 다니던 시절이 나았다고 말한다”며 “거의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근골격계 질환을 겪는 등 산업재해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보험료가 1년에 400만~500만원에 이르는 운송용 오토바이 보험을 들지 않고 일하다가 사고를 내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해고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해고자 C씨는 “서로 바빠서 연락을 못하기도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연락해서 술도 먹고 할 건데 만나면 우울한 얘기만 하니까 서로 안 만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해고 후 이혼을 한 사람도 있고, 주변인과 연락을 끊고 시골 고향으로 간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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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30600055&code=940702#csidx5599ef21eb6ba3ba87de3a10aedab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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