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만약에'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만약에 내가 인도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너희들이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패키지 상품을 탔더라면. 만약에 유찬이가 가고 싶었던 다른 곳으로 갔었다면. 만약에 날짜를 하루만 더 늦췄다면. 너희들이 없는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끝까지 생각했다. 만약에. 하지만 너희들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살아야 했다. 먼저 가버린 너희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나 원통하고, 그 비통한 마음은 갈수록 깊어진다.
내 아내 정희야. 아직도 너의 카톡 프로필은 태국 파타야에서 여행 중이다. 아이들의 엄마로, 어린이집 원장으로, 야간 대학원생으로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면서도 늘 웃음을 앓지 않고 씩씩했던 예쁜 내 애인 정희. 사고 두 달 전,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둘이서만 인도를 여행했고, 그동안 힘들었던 점을 서로 이야기하며 앞으로의 우리 계획을 세웠지. 인생의 노년을 계획하며 '이제부터라도 더 잘해 줄 수 있는데, 이제부터 시작인데'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너무나 미안했고 또 미안하다.
사랑하는 내 아들 예찬아. 어느덧 장성하여 아빠와 술잔을 부딪치며 세상을 이야기했었지. 아빠가 해외에 나가 근무하게 되면서 '아빠 없어도 엄마와 동생 잘 볼 수 있냐'는 말에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멋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던 내 아들 예찬이. 며칠 전 네 학교에서 1주기 추모식을 해 다녀왔다. 정성껏 준비해 준 교수님과 학교 관계자분들, 너희 친구들 보면서 '우리 아들 정말 잘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추모식이 끝나고 내려오는 길에 너무나 안타까워 한없이 울었다.
한없이 귀여운 막내 유찬아. 세상 고민 없이 사는 것 같던 네가 가끔 걱정이었는데 훈련소를 마치고 장애인 센터에서 공익근무하며 '스스로 일어나고 잘 생활한다. 우리 유찬이가 변했다'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역시 내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시기, 너무 짧은 너의 21년. 항상 아빠가 귀찮게 만지고 쓰다듬어도 귀찮아하지 않고 아빠를 가장 좋아해 준 우리 유찬이.
예찬아, 유찬아. 아빠는 아빠라는 말이 이토록 친근한 단어인지 이제야 알았다. 이제는 너희들에게 들을 수 없는 아빠라는 말. 아빠가 아빠답게 생활하고 너희들을 영원히 기억할게.
사랑하는 내 가족들. 나는 (참사 직후) 한국에 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유가족으로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 나라인데,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단순 교통사고로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원인은 너무나 명확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광주·전남 지역민이어서 우리 지역의 정치권이 나서줄 것을, 우리 지역 경찰의 수사를 믿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참사와 다를 바 없이 가고 있다. 아빠는 결심했다. 우리 아이들이 알고 있는 아빠의 모습으로서 너희의 억울함을 밝히고 최선을 다하기로. 아빠답게 당당히, 때론 단순하게 목이 터져라 외치고 미친 듯이 너희의 억울함을 알릴 것이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가끔 지칠 때면 추모관에서 한없이 울고 다시 다짐한다. '무너지지 말자. 아빠답게 행동하자.' 우리 가족을 파괴한 주범, 내 아내의 인생 계획을 파괴한 주범, 내 아들들의 청춘과 삶을 파괴한 주범, 그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아빠가 노력할게. 그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릴게. 다 끝나는 날 너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최근 아무도 꿈속에 나오지 않아 많이 서운하다. 누구든 꿈속에 나와 응원 좀 해주라. 영원한 김정희의 남편이자 김예찬, 김유찬의 아빠임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오늘도 너희들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시 다짐한다.
2025년 12월 20일, 김정희의 남편, 김예찬 김유찬의 아빠 김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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