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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노동’ 택배 분류, 환산하면 연 9,300억…이젠 누가 책임져야 하나

 

분류작업 정상화 위해 정부·택배사·대리점·화주·소비자 등 역할 필수

윤정헌 기자 yjh@vop.co.kr
발행 2021-02-09 16:38:22
수정 2021-02-09 16: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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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터미널 한 편에 쌓여있는 택배물량
서브터미널 한 편에 쌓여있는 택배물량ⓒ김철수 기자 
 

28년간 ‘공짜노동’으로 택배기사가 떠안았던 ‘분류작업’이 택배사로 옮겨갔다. 분류는 택배사 책임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파업 선언과 정부의 중재, 번복과 합의 과정이 지난하게 반복됐다. 여진은 끝나지 않았다. 대리점이 ‘합의 원천 무효’를 외치고 있다.

갈등이 ‘사회적 합의문’ 한 장으로 쉽게 조절 될 것 같지 않다. 택배기사가 감내한 분류작업을 경제가치로 단순 계산하면 연간 1조원에 육박한다. 1조원의 돈을 누군가가 대신 지불해야 하는데, 과연 누가, 얼마나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공짜노동’ 분류작업 돈으로 환산하면 연 9,300억원대 규모

지난해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지난 5년간 택배 물류 통계 및 택배기사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면 택배기사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에 달한다. 71.3시간 중 43%에 달하는 30.7시간을 분류작업에 할애하고 있다. 하루 평균 5시간 넘게 분류작업을 한다.

현재 택배업계가 분류인력에 지급하는 돈은 시간당 1만원 정도다. 분류작업에 드는 시간은 짧게는 5시간에서 많게는 7시간이다. 평균 6시간이라고 보면 택배기사 1명이 분류작업으로 받을 수 있는 하루 인건비는 약 6만원이다. 주 6일을 일하는 택배기사가 한 달(4주)간 분류작업의 대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44만원 정도인 셈이다.

 

실제 분류지원인력을 직접 고용해 운영 중인 택배대리점연합 관계자는 “현재 고용해 운용 중인 분류인력 1명당 월 140~150만원 정도의 인건비를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의 택배기사는 총 5만4천여명 수준이다. 이들 택배기사가 해 온 분류작업의 노동 가치는 연간 9,331억2천만원(144만원x12개월x5만4천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이 택배사에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 만큼 앞으로 분류작업에 대한 노동의 대가가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다.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고
CJ대한통운, 한진택배, 롯데택배 로고ⓒ기타

분류인력 비용 지불 핵심 택배사와 대리점
... 택배기사 공짜노동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택배사와 대리점은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을 가장 많은 부담해야 할 주체다. 택배기사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현재와 같은 구조로의 운영이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성장 역시 지금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분류업무에 대한 책임이 있는 택배사와 인력을 직접 고용해야 하는 대리점은 관련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국내 택배산업은 택배기사의 ‘공짜노동’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택배사업이 처음 시작될 당시엔 물량이 많지 않았던 만큼 별도의 분류인력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택배시장이 성장할수록 분류작업에 투여되는 노동강도도 점점 높아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됨에 따라 택배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기사들은 하루 평균 6시간 이상을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의 ‘연간 발표’를 살펴보면 최근 8년 동안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은 매년 평균 10.02%의 성장률을 보였다. 2012년 14억598만 박스였던 택배 물량은 2019년 27억8,980만 박스까지 늘어났다. 하루 평균 800만 박스에 달하는 택배물량이 발생하는 셈이다. 매출액도 크게 늘었다. 2012년 3조5,232억원 규모였던 국내 택배시장 매출은 2019년 6조3,303억원으로 8년 새 79.7%나 증가했다.

특히 대형 택배사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 50%에 육박하는 CJ대한통운은 최근 6년간 평균 18.8%에 달하는 매출 상승을 이뤘다. 대한통운이 CJ그룹에 본격 편입된 2013년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부문 매출은 9,016억원 수준이었다. 그리고 2014년엔 1조2,486억원으로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5년 만인 2018년 매출 2조2,619억원을 기록하며 2조원의 벽 넘었다. 2019년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부문 매출액은 2조5,024억원을 기록했다.

택배업계 2, 3위인 한진택배와 롯데로지스틱스(롯데택배)도 빠르게 성장했다. 2016년 나란히 5000억원대를 기록했던 롯데와 한진의 택배부문 매출은 2019년 기준 각각 8327억원, 8147억원까지 늘었다. 이 기간 한진택배와 롯대택배는 연평균 15%대 성장을 지속했다.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대리점들도 택배기사의 손을 떠난 분류작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대리점은 택배기사가 배송하는 택배물량에서 건당 수수료를 떼면서도 분류작업에 대해 대가는 지불하지 않았다.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을 택배기사가 떠안음으로써 발생한 이익을 택배사와 함께 대리점도 취한 셈이다.

실제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대리점들도 택배시장의 성장과 함께 덩치를 키웠다. 택배기사는 전체 99% 이상이 대리점 소속이다. 택배기사의 숫자가 늘어난 만큼 택배대리점의 규모 역시 커지는 셈이다.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4년 3만8천여명 규모였던 택배기사는 2019년 5만4천여명까지 늘었다. 택배기사가 배송하는 택배물량의 건당 수수료가 주수입원인 대리점으로서는 택배기사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대리점은 분류인력 비용을 택배사와 나눠서 분담하고 있다. 분담률도 낮지 않다. CJ대한통운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예상했던 비용의 50%를 대리점에 전가했다.

사업 규모에 비해 과중한 부담이 전가됐지만, 대리점은 택배사의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 택배기사와의 관계에서 ‘갑’인 대리점이지만, 택배사와의 관계에서는 ‘을’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실제 분류인력 투입 비용이 예상보다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택배사가 30%를 대리점이 70%를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자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거세게 반발했고 결국 CJ대한통운과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은 ‘분류인력 투입구조와 비용’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 발표
택배종사자 과로대책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 발표ⓒ뉴시스

사회적 합의 주도한 정부의 역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부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가파른 성장으로 인해 발생한 분류작업 문제 해결을 위해선 사업자와 종사자, 대리점, 화주, 소비자 등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이를 중재해 줄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정부 주도하에 사회적 합의기구가 꾸려진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정부부처와 국회, 택배사, 대리점, 대형화주, 소비자 등으로 꾸려진 합의기구는 지난달 21일 ‘1차 합의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합의안 이행과 관련해 택배노사간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재논의가 이뤄졌고, 다시 한번 잠정 합의안이 마련됐다.

잠정 합의안에는 ▲1차 사회적 합의에 따른 분류작업 인력(CJ 4,000명, 롯데 1,000명, 한진 1,000명)은 2월 4일까지 투입 ▲투입인력 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조사단을 구성 ▲롯데·한진의 경우, 투입인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시범사업장 운영 ▲택배요금 및 택배비 거래구조개선을 가능한 5월 말까지 완료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잠정 합의안까지 도출됐지만, 아직 정부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택배업계 노동구조가 정상화하기까지 막대한 비용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이 계획돼 있다. 정부는 1차 합의안을 통해 택배사업자가 분류작업 설비 자동화 추진계획을 수립하면 국회와 정부가 2021년부터 예산·세제 등을 통해 지원을 추진하고, 계획수립 및 이행상황을 점검·관리하기로 했다.

이미 국내 유통구조에서 혈관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택배산업’은 이제 정부로써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주요 산업 중 하나다. 올해 초 택배 관련 법인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생활물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물류법은 △택배사업 등록제 도입 △택배사업자와 종사자간 안정적 계약 유도 △택배용 화물차의 기타 화물 운송 제한 △표준계약서 및 서비스약관 근거마련 △종사자 보호, 안전운행, 서비스 개선조치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학계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추후 사회적 합의기구 내에서 택배비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예정인 만큼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택배비 인상시 택배사들이 일괄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도 자칫 ‘담합’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면서 “합의기구를 만든 정부가 그런 부분들까지 고민해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뉴시스

택배사-화주간 백마진 문제 해결 중요성 커져
... “택배비 인상, 택배사 가격 경쟁력 향상 용도 악용될 우려 높아”

택배사와 화주간에 발생하는 백마진 문제 해결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백마진은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소비자들로부터 받은 배송비보다 더 낮은 단가에 택배 계약을 맺고, 마진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2017년 국토교통부가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에 따르면 소비자는 온라인쇼핑업체에 2,500원의 배송비를 지불하고 있지만, 온라인쇼핑업체와 택배사가 계약하는 평균 단가는 1,730원이다. 택배 계약 과정에서 770원의 백마진이 발생하는 셈이다.

백마진은 택배사가 화주(생산자 혹은 유통업체)와 계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택배사나 택배대리점들은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타사보다 더 낮은 단가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따낸다. 물량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단가를 낮추는 ‘치킨게임’이 백마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리베이트 형태로 발생하는 백마진도 있다. 택배 대리점과 소속 택배기사들은 개별 영업을 통해 온라인쇼핑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이때 타사 대리점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택배 단가가 낮아진다. 택배사는 대리점과 기사가 ‘최저 가격’ 이하로 내리지 못하게 하는데, 정해진 가이드라인보다 더 낮은 금액을 제시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사회적 합의기구 내에서도 분류작업 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해결 과제로 백마진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 택배대리점 관계자는 “백마진 문제가 해결돼 제값에 택배 계약을 맺을 수 있다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상당 부분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백마진 관행이 남아 있는 이상 택배비가 인상되더라도 인상된 금액이 택배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통상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할 때 택배비는 택배사에 직접 지급되지 않는다. 소비자로부터 배송비를 받는 건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다. 이후 유통업체와 택배업체간의 택배단가 계약이 이뤄지는 만큼 백마진 문제가 지속할 경우 택배비 인상 의도와 달리 택배사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분류한 짐을 싣고 있는 택배기사
분류한 짐을 싣고 있는 택배기사ⓒ민중의소리

택배업계 문제 해결에 택배비 인상 동반돼야... 선진국 1/4 수준

공짜노동으로 인한 수혜자에는 소비자도 포함된다. 소비자들은 그동안 택배기사들이 공짜노동인 분류작업을 떠안음으로써 저렴한 가격에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국내 택배시장은 지난 2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택배요금은 30%가량 떨어졌다. 택배물량 급증으로 당연히 발생했어야 할 ‘분류작업’ 비용을 택배기사들이 떠안았다. 여기에 택배업계의 저가 경쟁까지 더해지며, 택배비가 오히려 낮아졌다.

소비자들은 더 싼값에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그 부담은 고스란히 택배기사에게로 향했다. 2012년 2,506원이었던 평균 택배비는 2019년 2,229원이 됐다.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현격히 낮다. 미국 페덱스는 8달러90센트(1만88원), UPS는 8달러60센트(9750원)로 한국보다 최대 4.4배 비싸다. 일본 야마토 익스프레스 택배비도 676엔(7,353원)으로 3배 가 넘는다.

학계에서도 이번 택배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택배비 인상’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봤다. 하헌구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충분히 빠른 속도와 높은 서비스를 받아 온 데 비해 택배비가 낮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동안 고생해 온 택배기사들을 위해서라도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택배비 인상에 동참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렇게 인상된 비용이 택배기사에게 갈 것이냐는 문제 남는다”며 “그런 부분에서도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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