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함께 FTA 시리즈 중 하나인 한-EU FTA 비준에 동의한 걸 놓고, 민주노동당에선 '배신'이라며 이른바 "야권연대 정신으로 돌아오라"고 성질을 냈단다.
바보 아닌가. 이정희 대표부터 해서, 민주노동당의 소위 대가리들, 좀 솔직해지자. 그럴 줄 정말 몰라서 민주대연합에 발 담갔나? 대체 뭘 바랬던 거냐. 소위 자유시장 자체를 세속화된 복음이라 믿고, 자유민주주의의 교의가 돼버린 이 믿음이 그리 헛되지만은 않을 물적 토대를 갖추고 있으며, 야무지게도 내친 김에 이 복음으로 영생까지 꿈꾸는 이들이 모인 점진적 중도주의 계열의 국민(통합)정당한테 말이다. 애당초 이런 정당과 야권연대 할 거면, 차라리 들판에 그저 소풍 나왔을 뿐인 이들한테서 바야바 같은 야생성을 찾아내는 게 훨씬 더 빠르고 확률도 높았을 게다.
일단 민주당부터 해서, 얘네와 애써 각 세우느라 참 고생이 많은 국참당 지도부를 좀 찬찬히 뜯어보자. 자타칭 민주개혁파라 불리며, 이 정치적 노선이 적어도 우리 시대의 불가피한 사명인 양 주장해온 이들이다. 뭣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경 안팎을 가로질러가며 특정세력/집단/계급에 의해 기획-추진돼온 FTA 시리즈를, 가장 교조화된 이른바 자유시장 원리로 작동하는 제도적 장치로 이해하긴 커녕 '세계사적 진보니 대세' 같은 때깔로 분칠해온 이들이었기도 하다. FTA 시리즈가 이미 제도화됐던 지역/국가들에선 그게 작동원리상 사람 사는 세상은 커녕 사람 잡는 세상만 지속가능케 하는, 다시 말해 전문가엘리트들과 대기업권력, 고위기술관료들한테만 유용한 것이었음이 확연해진 진 사실 꽤 오래다. 이건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외면할 수 없는 관련 분석과 정보가 꽤 적잖은 현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FTA를 민주개혁 노선의 완성을 이유로 기어이 수용해야겠다는 세력이 '도탄에 빠진 민생'을 말하고 양극화를 걱정한다 했으면, 이런 자기분열적인 허세가 노동자-대중의 민생관 얼마다 따로놀지 진작에 전투적으로 건드려줬어야지. 어처구니 없게시리, 야권연대용 쪽수 불리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나 돌릴 게 아니라 말이다. 무슨 반엠비면 천국, '분열'이면 지옥도 아니고 말이다.
그간 달라져왔고 앞으로 더더욱 달라질 "물적 토대"와 맞물릴 수밖에 없는 정치적 분화를 그저 '분열'로밖엔 못 보게 습속화돼온 우리네 일상의 정치적 실천감각이 아래로부터, 긴 호흡을 갖고서 바뀌지 않는 한, 저런 자타칭 자유민주주의 정치엘리트들의 자뻑 혹은 과잉대표성은 스스로 찌끄러지고 나아가 박살이 나긴 커녕, 외려 사랑에 속고 돈에 울었다는 심순애들만 양산해내기 십상일 게다. 정치에 대한 불신, 환멸은 이렇게 확대재생산되면서, 저 자유민주주의자들의 직업적 기반만 되줄 뿐. 의미심장하고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 필요성은 늘 듣기 좋은 레토릭으로만 우리 귀를 간지럽히면서 말이다. 닥치고 대동단결, 묻지마 연합의 후과가 더 끔찍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반엠비의 레토릭으로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치의 토대를 불모화시킨단 얘기다.
그러구 보면, 소위 자유시장 원리의 강화와 '민생회복'을 모두 이루겠다는 정치적 곡예에 들어간 민주개혁파 정당들과 함께 쪽수만 합치고 늘리면 지분이 생기고 커질 거라 보는 자칭 진보-좌파 세력의 자충수적 행보 혹은 뇌내망상이 사실 더 한심하고 착잡하긴 하다. 정 그럴 거면, 나 같은 시민(아닌 시민)들 내지 노동자-대중의 민생에 숨통을 틔워줄 리더라고, '국민' 내지 노동자-대중의 요구로 자기네가 이러는 거라고, 어줍잖게 나대가며 설레발치지나 말든가. 대체 그 국민은 누구며, 노동자-대중인 국민이더라도 어느 노동자-대중이 그러라 했는지, 나아가 정말 그러라고 "명령"했대서 그래도 되는 건지에 대해선 속시원한 얘길 들어본 적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