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문 닫은) 양승룡 당시 학과장 개인홈피에
학과존치 결정 소식이 올라왔길래, 그에 관해 올렸던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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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통(폐)합 논의가 일단 '농업경제학 전공의 기존 단과대 내 존치'로 일단락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같은 결정을 본 분들 사이에서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일단락됐는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네요. 게다가 적어도 저로선 워낙이 지금 상황에서 학과 존치 자체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보는 입장였던 터라, 딱히 좋다 나쁘다 할 상황이 아니라 여겨지거든요?
더구나 양 교수님께서 올린 학과존치 이유인즉, "생과대 내의 학제간 연구와 연계교육 필요성"이란 점도 일단락의 '속내'가 과연 뭔지 더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대목이고요.
"서로 간의 관용과 화합을 통해 식자경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일치된 목표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정진"한다셨지만 누가, 어떻게, 어떤 비전을 갖고, 이런 정진의 여건과 기초를 다질 것인지 역시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간 벌어진 갈등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게 그렇게 녹록치 않을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의 학과존치 결정, 향후 비슷한 갈등을 되풀이할 수밖엔 없을 잠정적이고 모호한 봉합에 불과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한미fta 정세와 관련해 흥미로웠던 건, 한두봉 교수님 이름이 엡티에이 반대 서명자 명단에 올라있었단 점임다. 학부시절 이 분 강의 때 주제발표 했다가, "이념써클"스런 주장한다며 중도에 발표를 제지당했던 적이 있었는데요.ㅋㅋ
전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 시각상 별 달라진 게 없이 엡티에이 반대 입장에 있는 쪽입니다만, 한 교수님 이름도 반대 교수 명단에 올라간 걸 보니 좀 묘하더군요. 이념써클스런 견해에 대한 태도가 그새 바뀌신 건지.. 아님 항간의 비판마냥 지금 한미엡티에이와 관련한 정부의 폭주가 지적으로 좌-우할 거 없이 광범한 불만과 이의를 초래하고 있기는 있는갑다 싶기도 하고 말이죠. 뭐, 걍 갑자기 생각이 나서리..;;)
암튼 각설하고.. 해서, 이번 학과존치 결정과 관련하여, 그것이 고식지계용 봉합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들은 뭔지 얘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 제출되는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둬야겠죠. 뭐또, 그렇다고 이게 '어디까지나 제 생각' 뿐인 것만도 아닐 테지만요.
먼저, (생과대 내의) 타전공간 연계와 학제연구에 대한 기대가 생과내 '내'에서 유달리 높다고 볼 여지나 근거는 대체 뭐냐는 점입니다. 이건 당장, 농업경제학이 연계하거나 분과간 가로지르기를 시도해야 할 전공은 그럼 뭐냔 물음과도 직결되거니와, 그런 일련의 작업들이 특정 단과대 소속이라야 하는 근거가 명확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제 생각엔 크게 먹거리와 이의 생산조건을 포괄적으로 다뤄야 할 농업경제학에 있어 연계하지 않아야 할 분야는 사실상 없다고 봐요. 생과대 내의 타전공 분야서들 다룰 '기술/환경 요소'들(주류 경제공학적 시각에 벗어날 경우, 농업이윤 축적의 생태적 지속성 여부도 포함될)에 대한 지식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다는 건 물론 아닙니다.
다만 저로선 그런 전공간 연계효과를 기대하기로 치자면, 가령 먹거리-식량-농업관련 담론들이 미디어나 일상에서 어떤 가치를 부여받으며 전공의 위상은 물론 실물 분야의 위기/피폐화를 방조 내지 조장하는지에 대한 학제연구도 그 어떤 학제연구보다 절박하고 중차대한 일이 아니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요즘 경영-경제학 분야 같은 데선 '웹2.0'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기술적 획기성에 주목하는 가운데, 그런 측면이 거대기업들의 돈벌이에 얼마나 보탬이 될 거냘 놓고 그야말로 아주 난리들인 모양입니다.
고작 거대기업들의 돈벌이에 터보엔진를 달아줄 수단으로서가 아니더라도, 이런 기술적 개가가 비영리적 기술체계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 삶의 질 개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사회과학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은 아주 가치있는 일이리라는 데는, 저 역시 전혀 이의가 없어요.
그렇다면 이 때, 경영학과가 이를테면 전자/전기/전파/컴퓨터공학 전공 등이 있는 공대나, 정보통신대에 '물리적으로 가까워야' 후자 분야의 신경향에 대한 지적 접근이 더 잘 될 것인가?
글쎄요, 이렇게 하지들도 않겠지만 경영대학과 공과/정보통신대학 간의 지리적 거리가 멀다 해서 두 분야간 학제연구와 전공연계 효과가 딱히 신통찮을 이윤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이건 분야간 연계의 핵심고리란 것이, 전공소속이나 학제의 지리적 근접성과는 상관도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그걸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는 겁니다. 지금 같은 논리로는 아주 딱이라고 봐요, 이런 소리 듣기에.
때문에 결국 짚어보고 싶은 건 이런 겁니다. 생과내 내 존치를 통해서 기대할 수 있는 전공연계, 혹은 학제연구 효과란 어떤 것이냐는 거죠.
나아가 그렇게 해서 이뤄지는 전공연계/학제연구 효과라는 게, 이를테면 언론(사회)학 분야서 그나마 이뤄지는 걸로 아는 (농업-식량) 담론분석 연구라든가, 1세계 지역 국가들의 농업(보호)정책 하고 한국 등 제3세계 지역 국가들의 농업(안락사)정책이 구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정책결정 매커니즘에 대한 연구 등등과 결합하는 것만큼 그렇게 절박하고 중요한지도 저로선 쉬이 납득이 되질 않는군요.
물론 양 교수님께서 윌슨이 개념화한 '통섭' 얘기하시믄서,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거짓 경계가 허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데 대해선 저 역시 아무런 이의가 없어요. 외려, 자연현상과 연계된 사회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그런 허구적 대립은 시급히 끝장이 나야한다 보죠.
다만 제가 궁금한 건 이겁니다. 그런 통섭이 자연과학 분야와의 학제적 소통을 통해 극복돼야 하는 것만큼이나 시급한 일이 사회과학 분야 간의 통섭 아니냔 거죠. 그리고 이게 생과대 내 타전공간 가로지르기보단 현실적으로 훨씬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는 거고요.
요컨대 인문-자연 분야할 것 없이 지적 깊이의 고양을 위한 전방위적 가로지르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거야 지당하지만, 중요한 건 그 가로지르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볼 만한 지점이 어디냔 점일 겁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정복조 교수님 같은 분들, 농대 내 타전공과의 연계강화 필요하고도 중요하단 얘기하시는 거 곧잘 들었지만, 아시다시피 그 후 10여 년이 넘도록 그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죠. 앞으론 그리 될 거다? 글쎄요, 이게 다짐의 강도로만 풀릴 일이면야 그런갑다 할텐데, 앞서 말씀드린 전차로 실로 난망한 일이란 생각밖엔 들질 않는군요.
그럴 바엔 차라리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타 전공과의 연계와 가로지르기를 시도하는 게 가시적 성과로나, 그 성과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으로나 훨 높은 영양가가 있잖겠나 싶은데요.(더구나 윌슨의 통섭 개념이란 말이 좋아 통합학문 지향이지, 당사자는 아니라 해도 결국엔 생물하적 결정론을 사회현실에 대한 방법론으로 확대적용하려는 것에 불과하단 만만찮은 반론도 있고요. 윈델 베리가 쓴 <삶은 기적이다>(녹색평론사)가 그런 책입니다.)
뭐, 여러가지로 상황이 급박해 이런 모호한 진술로 일단락음을 알렸다고 볼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학과존치는 결코 문제의 해결은커녕 사태의 봉합 내지 갈등의 잠재화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단 생각이 든지라 이렇게 결정된 상황에 대해 얘길 봤습니다. 정리하면, 대충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네요.
_생과대 내 존치의 근거로 거론한 학제연구/타전공간연계 필요성이라는 건, 외려 타 단과대 내의 특정 전공들(이를테면 정경대 내의 정치-언론-행정학 내지 문과대 내 사회학)을 대상으로 할 때 실질적 성과 면에서나 사회적 파급력 면에서나 현실성이 더 높아보인다는 점.
_더구나 생과대 내의 이학분야와의 가로지르기를 이유로 드는 건 (많은 인식론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회계열-이학계열간 '현실적 거리'를 감안할 때 그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대목. 결국 어느 쪽과의 연계/가로지르기가 더 손쉽고 효과적일 것인지, 그리고 이 점을 향후 커리큘럼 개정 및 전공교원 임용시(나아가 학과 틀의 근본적 혁신을 위한 비전에) 어떻게 감안-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
_무엇보다 학제연구/전공간연계의 실효성을 오직 '지리적 근접성' 여부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 또한 현 학과존치 결정이 안고 있는 최대 맹점. 예컨대 정경대 내 경제학부의 농업경제학 전공으로 소속이 바뀐다 해서, 생과대 내의 타전공의 성과와 도모할 시너지효과가 더 떨어질 이유는 전혀 없음. 중요한 건, 분과허물기가 적절한 문제의식의 깊이를 통해 얼마나 짜임새 있게 성과를 이룰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
_정경대로의 전속으로 전공 자체의 붕괴를 우려하지만, 이는 단과대 소속 여하보다는 앞서 예로 든 바, 향후 농업경제학(궁극적으론 먹거리 문제) 연구의 방법과 형식을 이끌 혁신적 비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취약한 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봄.
_예컨대, 생산(경제학) 분야를 연구할 경우 '고작해야' 생산함수를 방법적 툴로 하여 작물생산효율의 최적조건 따위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 즉, 이같은 생산이 이뤄지는 공간 내지 지역의 '삶과 문화'(나아가 이들을 규정짓는 사회적 조건과 그 변동의 요인들)에 대한 포괄적 접근으로 연구의 매력을 높이고, 수강자들이 관심을 가질 접촉면을 넓힐 필요.
시간도 늦고, 얘기도 넘 길어지는 듯하야,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전공의 형식과 내용을 어케 바꿀 것이냐는 점 못지 않게, 아니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이 전공에 지적/실무적 관심을 갖고 발을 들일 친구들을 어케 뽑느냔 점이란 봅니다만.. 이에 대해선 조만간 다시 얘기해보도록 하죠.
그리고 얘기 난 김에 덧붙이고 싶은 게, 예전에 박미희란 친군가요? 농업경제학과 존치근거를 나름 얘기하면서, 미국 쪽선 지금 농업경제학이 일종의 '학문적 우량주'로 평가받고 있단 얘길 했었죠 왜?
음.. 제가 보기에 이런 식의 진술은 지금 미국 쪽과 한국 쪽의 농업 및 식량을 둘러싼 현실이 소위 '지식생산'의 거점이라는 대학에서 어떤 식으로 관련을 맺는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거라 보는지라서요. 미국의 (주류)농업경제학계가 지금 유달리 탄력을 받고 있는 이윤, 사실 간단하거든요. 초국적 농업자본법인들의 빵빵한 후원 아래, 제3세계 및 한국 같은 곳의 농업기반을 파탄낼 이들의 행보에 날개를 달아줄 지식의 주요 생산거점이 바로 그 곳이니까요.
이런 (지정학적, 문화적) 맥락의 차이를 놓치고서, 미국 농업경제학계는 저리 잘 나가는데 우리 쪽이 이래서야 되냔 식의 얘기는 자칫 그 선의와는 별개로 아주 위험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단 생각입니다. 암튼 뭐, 학생선발방식과 관련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얘길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