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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날

 

자료 한 보따리를 제본맡기고

나오는 출근길이 차다

겨울 입구에 도착하려면 꽤 남았는데

성미급한 바람이 제멋대로 날씨 자랑이다

 

밤늦게까지 수집한 자료 새벽이 다 되어서야 정리를 끝내고

결국 아침녁 비오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잠드느라

온몸이 찌쁘뜨하고 눈꺼풀은 연신 감기지만

 

나 또한 때이르게 꺼내입은 겨울쟈켓에

사과 하나 입에 문채 아삭하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다

 

지난 화요일로

정태춘아자씨의 <평화 그 먼 길 간다> 거리공연이 막을 내렸다

8월 말쯤 한 번 가봤으니

벌써 그로부터 두 달 정도가 흐른 셈이다

 

그 날도 오늘마냥 철없는 날씨탓에 가을인듯 바람이 찼다

여름 중간에 서있던 나는 조금 추웠으며

작은 무대막은 쓰러질듯 펄럭였다

박은옥아줌마의 머리칼은 춤췄고

정태춘아자씨의 모자가 날리지 않을까 나는 아슬했다

 

하지만 아자씨는 담담하게 기타줄을 튕길 뿐 말을 아꼈다

그에게 담배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그때 생각했던거 같다

아줌마는 또 다른 아줌마들을 위해 양단몇마름을 구성지게 불러주었다

그녀의 안경너머 사람들은 모두 흥겨워했던걸로 기억한다

.

.

 

그냥 그렇단 소리다

찬 바람 맞으며 들어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났다는 시시한 얘기..

 

처리해야 할 일들이

또 책상 한 가득이지만

적어두지 않으면 영영 잊어버릴까봐

지금 여기에 남겨두기로 한다

.

.

 

여전히 창문너머로 바람이 차다



이 공연은 오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간, 아주 맑은 눈빛들이 우리 부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기 차가운 거리에 마주 앉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아직 끝내지 않았습니다.

설령,
올 겨울 우리가 패배하더라도
그래서 대추리 도두리 사람들이 모두 거기서 쫓겨나더라도
그래서 거기
동아시아를 관할하는 자본제국의 새로운 전진기지가 서더라도
그것은 우리들의 기정 사실이 아니며 단지
반성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린 그와는 다른 길을 찾고 있으니까요.
우린 다른 미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얼마간은 좀 더 긴 미래를 생각하며
부당한 현재에 함께 맞서 주십시오.
거긴 황새울, K-55 캠프 험프리 미군기지 철조망
식민지의 국경선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대추리 도두리의 촛불을 끄지 말아주십시오.
그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늘 환기해 주십시오.

 

그리고, 12월 11일 거기 모여주십시오.

 

- 정태춘 (2005. 10. 25. 마지막 공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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