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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이 사는 법!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고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일단, 아버지 어머지 자식이라는 이 삼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결원이 생겨서는 안되고, 이들은 모두 믿음직한 가장․인자한 가정주부로써의 역할에 충실해야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루한 이 공식은 tv드라마를 통해 지속적으로 주입되어 도무지 새로운 공식으로 대체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 조금 낯선 모습의 ‘가족’이 있다. 물론, 이들은 가족행세를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가족이라는 개념이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집단은 분명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 될게다.

아무튼 이들은 구성부터 매우 특이한데, 냉소적인 어머니(프란체스카), 무능력한 아버지(두일), 버르장머리없는 아이들(켠, 소피아)에 철없는 이모(엘리자베스)에 이르기까지, 구성원들이 이렇다보니 그들이 벌이는 시츄에이션 또한 평범할 수 없는 법.


한달만에 집으로 돌아온 두일을 보고 놀란 가족들, 모두 벌떡 일어나 울먹이던 순간. 정작 두일의 한 마디. “이게 왠 당황스런 시츄에이션?”

낭비벽 심한 엘리자베스가 월급을 몽땅 옷값으로 날리자 길길이 날뛰던 두일, 이내 엘리자베스를 다독이고 가족들 모두 눈물 그렁그렁하던 바로 그 때. 프란체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화목한 분위기.. 정말 싫어!”


‘가족'은 애초부터 서로의 입맞에 딱 들어맞게 구성된 집단이 아니기에 서로 못마땅해하고 자주 삐걱거릴수밖에 없다.

비록, 사랑이라는 필연적 요소로 결합된 부부사이라 하더라도 수십년의 세월속에서 그들의 관계는 대체로 재정립되고, 더군다나 부모와 자식간은 온전히 우연적인 관계 아니던가!

이렇듯 가족이 강한 우연적 요소로 결합된 집단이라는 발칙한 얘기는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며, 그래서 가족대화합의 공식을 깨는 프란체스카의 가족이 현실에 더욱 가까운 것도 슬프지만 진실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카식 ‘현실적인 가족’ 속에 완벽히 부정적인 냉소만이 존재하는가?

“my sweet home" 예찬이 없어도, 여럿의 개인으로 구성된 공동체 속에서 생겨나는 찰나의 온기에는, 비록 순간일지언정 깊은 울림이 있게 마련이다.

백마디의 구라보다 딱 한 번의 진실된 눈맞춤이 더욱 인간적이고 진지할때가 있지 않던가.


<안녕, 프란체스카>의 또 한가지 미덕은, 이상적인 가족의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은유의 공간을 확장시켜 기존의 가족공동체 속에서 터부시되어왔던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한다는 점이다.

애정결핍인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동성애코드를 부여하고, 터프함과 다정다감이라는 고정된 부모의 성역할을 전도시키며, 나이순으로 치면 할머니뻘 되는 뱀파이어를 막내딸로 설정함으로써 권위적인 사회를 비웃는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을 벗어남으로써, 더욱 다양한 화제를 공유할 수 있는 ‘활기차고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가족’이 새롭게 창출되는 것이다.


얘기가 좀 장황해졌다.

결국, 기존 드라마속 화목한 가족은 허구이고, 오히려 파편화된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가족이 더욱 활기찰수있단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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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확장된 해석은 둘째치고라도...

<안녕, 프란체스카>는 너무 웃긴 드라마다!

제작진이 학습시키는 유머의 체득시간은 그 어떤 코미디프로보다 훨씬 빠를 정도니까.

프란체스카식 말투로 “토할만큼 재밌는” 이 드라마를 보고 깔깔거리기 위해 나는 오늘도 지루한 월요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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