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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0
    서사연,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 (새길, 1991)(2)
    구르는돌

서사연,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 (새길, 1991)

나 대학 1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한국역사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때 선생님이 해방이후 여성사 연구에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이임하 선생님이었다. (그 쪽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는 말임.) 물론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 때 나는 매일 아침과 저녁 꼬박꼬박 학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에 서서 이라크 파병 반대 선전전에 빠져 있었다. (아, 그 때는 왜 그렇게 선전전이 재밌었는지... ㅋㅋㅋㅋ)

 

여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 때 선생님이 내 준 과제가 좀 두루뭉실하게 역사에 관한 책 한권 골라서 읽고 서평 쓰라는 거였는데, 나는 당최 뭘 읽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아리 선배 한명을 붙잡고 책 한권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그 선배가 추천해 준 책이 소위 '한자발'로 통하던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책이었다.

 

 

 

 

너무 옛날책이라 딱히 땡기진 않았지만 선배의 성의를 봐서 며칠을 붙잡고 있긴 했었다. 그러나... 나는 선배의 성의를 괜히 고려했다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ㅋㅋㅋ 앞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나는 이렇게 재미없는 책들만 봐야 한단 말인가? 절망끝에 책을 집어 던졌고, 대신 나는 박노자의 <나를 배반한 역사>를 읽고 어찌어찌 과제를 해결하긴 했다.

 

그리고 원래 동아리방에 있던 저 책은 여차저차해서 '의도치 않게' 내 소유가 되어 내 책꽂이에 꽂혀 있다. 당시 선배의 설명에 따르면 이 책이 소위 PD론의 정수를 담은 책인데, 고런 책을 읽다가 GG쳐버렸다는게 못내 굴욕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여튼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한지 6년만에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한국사회성격논쟁에 대한 PD진영의 결과물로서 그리고 식반론(식민지반(半)봉건사회론?)과의 대결속에서 한국자본주의가 식민지자본주의에서 신식민지자본주의로, 그리고 80년대를 경유하면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성장전화해 가는 과정을 분석한 책이다.

 

책을 다시 손에 쥔 지는 6년째지만 이러저런 필요에 의해서 이 책의 서문은 여러번 읽은 적이 있어서 대충 맥락은 머리에 박혀 있는 상황. 그래서인지 다시 봐도 재미는 없다. 내가 요즘에 나오는 세련된 문체의 글들에 매혹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런 누르스름해진 종이 위에 건조하기 짝이 없는 문장을 읽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ㅠ.ㅠ

 

근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게 옛날 책이고, 재미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요즘 나의 관점에서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좀 거시기한데가 있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한일합방 이전 시기부터 진행된 조선사회의 본원적 축적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그 당시 조선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분석이 가미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 이곳저곳에서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을 강조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레닌의 제국주의 분석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식민지적 '특수'에 따른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분석하는데, 왠지 나는 이 부분에서 레닌적 방법론을 한국사회 분석에 좀 억지스럽게 끼워맞춘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닌의 분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사실 나에게는 그게 맞는지 틀린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ㅋㅋㅋ) 적어도 조선에서 자본주의 초기 발전과정을 분석하는데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조선 초기 자본주의 발전이 지체된 이유를 식민지 모국으로부터 이식된 자본주의의 특수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공백이 너무 많이 남는다. 왠지 이런 이론은 당시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일반이론 같다는 느낌? (그래서 어느 나라의 사례에도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실제로 조선에서의 본원적 축적을 논의하려면 조선 내부의 시장경제의 발전 상황은 어땠는지(별 볼일 없었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이 외부에서의 자본유입에 어떻게 반작용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도 유일하게 봉건적 성리학 국가로 남아 있었던 조선이 개화에 대처하는 자세가 자본주의화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지 등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얼마간 경제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적합한 용어가 생각이 나질 않아서 '경제주의'라고 한 것인데, 내가 말하는 '경제주의'는 딴게 아니라, 이 책에서 다루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발전과 이에 따르는 계급투쟁 분석이 19세기말-20세기초의 조선이라는 희한한 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조선은 경제보다는 정치, 그것도 사대부 당파간의 정말 쓰잘데기 없는 말싸움이 지배하던 사회였으니까....

 

요런 생각은 얼마전에 독파한 남경태의 <종횡무진 한국사>(그린비)의 하권 말미를 보면서 느낀거다. 남경태는 이 책을 통해 조선 역사를 설명하면서 철저히 '정치주의'적인 방식을 택하는데, 뭔 말이냐면 조선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근거해 역사를 서술하기보다는 중국보다 더 중국적인 중화사상을 무려 600년동안이나 간직한 성리학 국가라는 점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그게 실상 실학, 북학, 서학 등이 횡횡하던 조선말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진실'이라는 거다. 러시아와 일본이라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각축을 벌이던 20세기 초에도 여전히 그러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조선 말 자본 축적을 위한 제조건을 밝히는데 이런 부분이 고려됐어야 했다.

 

앞에서 밝힌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사실 책 전반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책의 초반, 그러니까 1905년을 전후한 개항시기에 대한 분석에 대한 감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사회의 봉건적 요소가 폭력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을 겪는 20세기 중후반부에 대해서는 나의 이런 불만이 적용되진 않을 거다. 게다가 한국사회성격논쟁이라는 특수한 지형에서 탄생한, 그래서 맑스-레닌주의라는 토양에 강하게 결박되어 있는 이 책에 많은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한계점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김상봉 교수가 5.18에 대해 분석하면서 기존의 맑스주의적인 계급투쟁론에 근거해서는 5.18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그렇다고 계급투쟁적 시각을 폐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조선 말부터 생겨난 조선 민중과 국가간의 대립은 서구의 근대 시민의 탄생과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고, 그렇기때문에 개인의 '권리 침해'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 계급투쟁적 시각에 일정한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김상봉 교수는 그래서 5.18을 절대적 공동체를 향한 투쟁이었다고 말하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의 논문을 아직 읽어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으니 일단 패스. 여튼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과 이에 맞서는 민중 저항의 동학이 앞으로 좀 더 '한국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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