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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장애여성의 성”인데, 발제 내용은 막 산으로 가는 이상한 발제문.
발제자 : 금철
(주 텍스트인 <장애여성공감 10년 활동사> 글은 요약 발제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이미 요약이 잘 되어 있는 글이라, 발제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김원영씨의 글을 함께 읽으며 느낀 생각들을 그냥 주저리 주저리 읊어보겠습니다.)
잡설하고
며칠 전, 대학 동아리 후배들을 만났습니다. 그 동아리 이름은 ‘노동문제연구회’이긴 한데, 이런저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데모를 나가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동아리입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장애인 집회, 적어도 420때 만큼은 연대하는 그런 동아리입니다. 그 동아리에 작년에 중증장애인 새내기(S군)가 들어왔더랍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언어장애가 심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 할 때는 꼭 노트북을 이용해야만 하는 정도인 그런 친구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제 3학년에 올라가는 후배 한 명이 저한테 카톡을 보내서는 “동아리 전체에서 장애인이 같이 동아리 활동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아서” 책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데 도움받을 만한 책이 뭐 없겠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일단 오늘 이야기하는 김원영씨의 책을 추천해 줬습니다(저는 이 책이 장애인 개인의 욕망의 서사를 이해하고 공동체가 이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데 더 없이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책 몇 권 읽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닐테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몇 년간 활동하기도 했던 동아리에서 장애인 학우와 함께하는데 있어서 후배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습니다. 제가 뭐 대단한 도움이 될거라 생각해서 만난게 아니라, 후배들이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서, 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지요.
후배 두 명과 거의 2시간 반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야기 중에 제가 흥미롭게 들었던 주제는 술과 귀가와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동아리 활동을 하다보면 밤 늦게까지 뒷풀이를 하고는 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S군이 항상 고민거리가 된답니다. 그런데 S군이 늦게까지 뒷풀이를 하다가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되어도 집에 갈 생각도 안하고 콜택시도 안부르고 있어서, “너 집에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그래도 대답을 안하고 술만 마시더라는 겁니다. 한번은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 다 되어서 S군과 급하게 지하철을 탔는데, 이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나는 2호선 막차가 끊겨버린 상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탄 선배가 급한 마음에 S군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했는데, 부모님의 대답은 “S는 집에 알아서 잘 온다”는 것이었답니다. (S군의 집은 마포구청 쪽입니다) 그리고 S군은 잠깐 절망한 표정을 보이다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 한 시간 넘게 전동을 굴려 집에 갔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동아리 MT를 가서는 대책 없이 술을 너무 마시고는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인 노트북에 술을 쏟아서 노트북을 고장을 낸다던지, 활동보조인이 오후 쯤이면 퇴근해 버려 그 이후 시간의 활보는 동아리 내의 선배·동기들의 부담이 되어버린다던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딱히 뭐라고 답을 해주기 난감한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저한테 ‘장애인이 함께 하는 공동체의 윤리’를 어떻게 세워야 겠냐는, 초 대박 난감한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동아리 내에서 어떤 친구는 ‘여성주의를 고민하기 위해 여성주체를 세우듯이 장애주체를 세워야 하지 않냐’라는 의견도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의견에 대해 ‘그 의견은 의도야 어찌되었건 장애주체한테 활보 전담시키는게 되지 않겠냐’라는 의문을 던졌고, 역으로 차라리 학교에 장애학생 활동보조를 근로장학생으로 쓸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하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온갖 문제들이 활동보조 부족의 문제에서 생기는 일이니,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의 문제를 학습권의 차원에서 학교에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어찌보면 너무 재미없고 정해진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야기를 나누던 한 후배의 표정이 급 실망 모드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는 다른데서도 많이 들어봤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제도의 변화가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는 그런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동아리라는 공동체 내에서 S군과 관계맺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라는... 그런 고민이었다라면서... 이를테면 S군이 옛날 옛적 어느 산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서 지금과 같은 사회 제도나 조건들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에서라면 이 동아리는 어떤 공동체의 윤리를 가져야 할까... 그런 문제였다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활동보조의 확충’이라는 것이 실제 도입되는게 쉽겠냐는 문제와는 별도로, 한편으로는 그렇게 외부의 제도적 대안을 바라는 것이 공동체의 책임을 외면하는, 심리적으로 손 쉬운 방안을 찾는 것 아니냐는.... 그런 반론으로 들렸습니다.
이 때부터 아, 내가 얘네들을 괜히 만났구나 하는 후회도 들고, 지금부터 말 잘못했다가는 선배로서 이미지만 안 좋아지겠구나 싶어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막 그랬습니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 제가 막 짱구를 굴려서 해 준 대답은 뭐 이런 거였는데 잘 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S가 옛날 옛적 어느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면, 일찍 죽었거나 살아 남았다면 그 불편한 몸으로 살아갈 그 만의 테크닉을 체득해서 살아갔을 거야. 중요한 것은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활동보조인도 있는 조건에 있는,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S의 삶이야.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난 뒤에 동아리 뒷풀이에 참석한 S의 속 마음은 어땠을까? 잘은 모르지만 상상해 보자면 이런게 아닐까?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가온다. 저걸 놓치면 집에 못 가는데... 근데 내가 그렇게 가고 난 뒤에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거나 더 늦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다른 선배‧동기들은 내가 가고 난 뒤에 자기들끼리 더 많이 놀 수 있겠지? 그러면 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만 소외되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여러 차례 멘붕이 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일부러 더 늦게까지 술을 마셨을테고... 만약 이런 상상이 어느정도 맞는 것이라면, 이런 소외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동체의 윤리? 좋은 얘기이긴 한데, 그것을 동아리 내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풀려고 한다면 동아리의 다른 선배‧동기들끼리 S에 대한 동정을 공유하고 봉사를 분담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동아리 바깥으로 터뜨려 버렸으면 좋겠어. 비장애인 친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누리고 있는 그 자유를, 왜 S는 누릴 수 없는 건지, 그 억눌렸던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이야기 하자는 거지. 그래서 실제로 학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활동보조인을 고용하는 제도를 도입해 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많지 않을까? 이러한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S는 자기 삶을 서사화 할, 기존과는 다른 기회를 얻게 될테고, 그러면서 자신과 비슷한 조건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공감과 연대가 형성될 수도 있을거야. 나는 그렇게 S 스스로가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사회화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게 다른 어디도 아니고 우리 동아리(=운동권 동아리) 같은데서만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
이런 말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나와서, 계속 김원영씨의 책 5장 제목에 실린 단어, ‘야한 장애인’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지향했던 ‘나쁜 장애인’이라는 모델이, 굳이 비유를 들자면 교장쌤이 쇠사슬 묶고 경찰한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면, ‘야한 장애인’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야한 장애인’ 하니까 제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처음으로 활보하러 갔던 이음여행에서 “나는 자유인이야!”라고 외치며 소주-맥주-막걸리를 섞어마시던 최○○ 형, 며칠 전 야학에서 뒷풀이 술자리가 갑자기 노래방 분위기로 변했을 때 ‘마지막 한 곡만 더’를 10번 외치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노래를 부르던 이○○ 형, 어느 날 갑자기 진한 화장을 하고 나타난 김○○ 누나, 그리고 핸드폰으로 야동보던 몇몇 야학 학생들... 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후배들에게 (그리고 야학에 몸담고 있는 저에게도) 필요한 것은 이런 ‘야한 장애인’들의 ‘야(野)’한 욕망에 더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 이런 야한 욕망들을 교류하고(!!?잉?!!)), 이것을 사회화시켜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쇠사슬 묶고 투쟁하는 ‘나쁜 장애인’들이 해야 할 일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구요. 그러다 이번에 김원영씨의 책을 다시 읽다가 아래 구절에 눈에 꽂혔습니다.
“우리는 손상된 몸의 어디까지가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장애’이며, 어디까지가 손쓸 수 없는 ‘하늘의 불운’인지는 완전히 알 수 없고, 또 최악의 경우엔 손상된 몸의 고통과 욕망을 자유롭게 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들조차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칸트가 말하는 자유다. 다시 말해 죽음을 앞둔, 추하고 소외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의 욕망을 차단하는 것이 ‘자연적 질서’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욕망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218쪽)
2. 각설하고
‘손상된 몸의 고통과 욕망을 자유롭게 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도 ‘그러한 욕망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라는 이 말을, 만약 소설책 속에서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잠깐 해 봅니다. 그러면 좀 더 거리감을 두고, 삶에 대한 무궁한 가능성을 꿈꾸는 결의의 문장으로,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러나 이것은 그런 픽션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며 ‘섹시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있는 한 청년의 고백이니 사실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애인의 성적 욕망에 가장 솔직하게 직면한 시도가, 어쩌면 <핑크 팰리스>같은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이 다큐의 문제점은 공감의 텍스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장애인의 섹스를 ‘선택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섹스는 권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김원영이 소개하는 만화 <리얼>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중증장애인 ‘야마’의 대사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지점입니다(“니들 섹스는 했냐? 나는 섹스가 뭔지도 모르고 죽게 생겼다.” /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 섹스! 이런 나한테 뭘 어쩌라고! 팔을 들어 올리고 싶어도 들지를 못해. 이건 내 몸뚱이가 아니야!”). 만일 야마에게 섹스가 권리라면,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야마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 ‘의무’를 수행해야만 합니다.
실제 장애인 성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는 노르웨이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이 있고, 북유럽 현지 탐방을 통해 이 문제를 검토한 장애여성공감의 보고서1)에는 이런 논쟁지점들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존중받을 권리는 있지만 사랑받을 권리는 없다”는 말로 성서비스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오슬로 대학 잉거마리 교수는, 장애인이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프라이버시나 독립생활과 관련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지만 성적만족을 위한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적만족이 제기하는 또 다른 문제는 ‘만족’의 내용이 개인마다 다르고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저는 “존중받을 권리는 있지만 사랑받을 권리는 없다”는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사랑이 상호간 육체적, 감정적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라면, 상대방의 만족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일방향적인 성서비스가 갖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2)
“성노동이 성적만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계적이거나 강제된 활동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성구매자에게 당연하게 부여되는 ‘선택’과 ‘만족’이 성판매여성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발상은, 역으로 이제껏 ‘선택’과 ‘성족만족’이라는 것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중심으로 허용되어 왔는가를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구매력 있는 비장애 남성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의 위계와 차별이 작동하는 현실과, 이 속에서 성판매여성, 장애인 등 광범위한 성적 ‘소수자’들이 억압받고 있다는 데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겠다.”
말하자면, <핑크 팰리스>와 같은 시도는 결혼과 성매매를 두 축으로 하는 이성애적 가부장제에서 비장애 남성이 갖는 지위를 장애 남성도 갖고자 하는 것인데, 저는 이것이 매우 협소한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봉사가 필요한 것이라면, 그게 꼭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인간적인 관계망이 삭제된 이런 섹스봉사라면 고성능 자위 도구로 대체해도 무방한 것 아닌가? 물론 아무리 최첨단 자위 도구가 나와도 장애-비장애 남성의 성적 불만족 상태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이문열의 <아가>의 경우도 이런 남성의 성적 판타지(성기결합이 사랑의 행위라고 인식하는 것!?)를 집단적으로, 또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일어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왜곡된 성적 판타지의 확장이 장애남성의 성적 욕망 재생산을 포획했다고 할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방송, 광고 등에서 재생산되고 있는 그런 판타지들....)
오히려 우리가 요구할(?!!!) 것은 성적 불만족 상태를 해소할 ‘섹스’의 권리(또는 사랑‘받을’ 권리)가 아니라, 관계로서의 ‘사랑’을 나눌, ‘사랑’을 할, 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지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참 무감각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작년 쯤에 장애인야학에서 공부하는 장애인들의 현실에 대해 취재하겠다고 KBS <사랑의 가족>에서 여러 야학을 취재하고, 전장야협 실무자인 저의 인터뷰를 따 갔었는데, 제가 인터뷰 하면서 야학의 긍정적 성과의 하나로 ‘야학에서 함께 공부하시다가 결혼하시는 분들도 있다’라고 하니까, 카메라를 들고 있던 방송국 직원이 어이없어 하면서 그런 얘기는 빼라고 했더랍니다.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장애인의 학습권, 뭐 이런 얘기 하고 있는데 웬 결혼 타령이냐는 반응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통해 가정을 구성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깃거리라고 여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잉거마리 교수의 말처럼 ‘성적 만족’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고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구할 것은 획일화된 방식의 성기결합 권리가 아니라, 에로스적 관계를 맺고 만남을 유지할 정당한 ‘사적 공간’(물리적이고 또 사회적인)을 확보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3)
3. 그래도 여전히 찜찜한 문제.
저는 김원영씨의 책이 인상 깊었던 것이, 한 명의 장애남성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느꼈던 정체성의 불안, 욕망 (특히 섹시해 보이고 싶다는!)을 이야기하면서도, <핑크 팰리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온전히 긍정할 수 없는 매 순간 순간 마다 그가 택했던 ‘쿨’해지기의 방식을 내려놓고, 욕망을 직면하여 ‘핫’해질 수 있었던 과정이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에 대한 묘사를 다시 한번 옮겨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물었을 때 H는 내 다리를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다리가 가진 오랜 투병의 기록, 고통의 경험, 질병의 흔적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면 내 다리는 결코 에로틱할 수 없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희생이나 동정은 가능할지라도.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에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인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채,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잇는 어떤 감정의 선들이 ‘자연적 질서’를 예리하게 걷어냈다. 상상과 몰입. 2평방미터쯤 되는 목성의 위성을 타고 지구에서 진화한 온갖 질서가 ”병신 육갑한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떠올릴 한치의 여지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나는 그녀의 다리에 키스했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는 말은, 성적자원봉사와 같은 방식으로 실현할 수 없는 관계맺음의 전혀 다른 경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책을 호식이형과 함께 읽고 나서 책을 덮었을 때, 호식이형은 재밌기는 한데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불편한 감정을 우리는 김원영의 친구 정훈이의 발언과 같은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형 정도의 장애니까 그런 거야. 혼자 휠체어도 밀고 다니고, 서울대도 다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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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여성공감 북유럽 <장애인 성서비스> 연수 리포트」, 『여/성이론』 통권 24호 (2011년 전장연 활동가대회 자료집에도 실림)
2) 장애여성공감, 위와 같은 글.
3) 그런 면에서 시설 내에서 연애 못하게 하는 게,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시급히 다뤄져야 할 것이 아닐까요?
1탄. 읽고서 재미난 부분 중심으로 정리해 본 것.
_____________________
김원영의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에 대한 감상
0. 이거 왜 쓰는지 말해 봐.
첫 번째 세미나 시간에 어쩌다보니 ‘장애개성론’, ‘장애문화론’ 과 같은 개념에 대한 토론이 오고갔다. 이와 함께 장애의 모든 문제를 사회적 차별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장애인 개인 또는 그 집단만이 갖는 불편함과 삶의 장벽 들은 어쩔 것이냐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왔다.
나는 그 시간에 산재 장애인이신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실제로 사회적 차별로 환원할 수 없는 그런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걸 (장애인운동의 입장에서) 어쩔 수 있겠냐라는 의문을 던졌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나의 이런 발언이 너무 비겁하게 이 쟁점에 대해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김원영씨의 책,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이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갈등 지점을 드러나 보이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의미있는 독서 소재였다.
이 책의 내용을 다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고, 이 책에서 누가봐도 가장 센세이션 하게 느낄 법한 5장 “나는 ‘야한’ 장애인이고 싶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저자 김원영에 대한 소개 :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1급 장애인이 되었고, 열다섯 살까지 병원과 집을 오가는 생활만을 해 옴. 이후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재활학교 및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 재활학교에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려는 노력은 해당학교의 입학 거부로 영영 꿈이 되어버릴 뻔 했지만, 봉사활동을 하러 오던 대학생을 통해 알게 된 장애인자립생활운동가들의 도움으로 일반고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었음. 대학 진학 후에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 활동을 통해 장애 대학생의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을 해 옴. 현재 서울대학교 로스쿨 재학 중.
1. ‘장애’를 정체성으로 긍정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라는 물음 앞에서.
“나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 활동을 하면서, 장애를 가진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독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자신을 ‘장애인’이라 당당히 칭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장애인 친구들에게도 장애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고, 우리가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한 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질병을 가진 몸의 운명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과 싸워야 했다.”
“그런 의무의 진원지는 바로 내 몸이었다. (...) 나는 자신이 없었다.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한 거창하고 추상적인 담론을 떠들어대는 동안에도 내 신체는 약하고 볼품없었다. 나는 직립보행에 에로틱한 매력을 느낀다. 어깨의 움직임 그리고 팔과 다리의 교차. 나는 휠체어를 1.8초당 한 번씩 미는 것이 가장 섹시하다고 주장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170센티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 데이트,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책을 들고 거니는 캠퍼스. 나는 어느 순간 걷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장애인권연대사업팀의 팀장이었다. 장애는 하나의 정체성이며, 손상된 몸은 곧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런 내가 ”사실 난 걷고 싶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구차하고 비굴한 고백처럼 느껴졌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좀 놀랐다. 그런데 사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욕망의 표현이지 않은가. 근데 왜 나는 놀랐을까? 어쩌면 ‘장애’라는 개념은 사회구조적 차별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차별을 깨는 것을 통해 불합리한 ‘장애’개념을 깰 수 있다는 발언 구조 속에서 이런 욕망의 발화 자체를 억압해 왔던 것이 아닐까? 사실 이런 욕망은 저상버스가 100% 도입되고, 활동보조가 24시간 이상 보장된다고 해도 해결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문제를 모종의 ‘억압’의 결과라고 부르는 것도 망설여지지만, 그 배경에는 인간 몸의 ‘탁월함’에 대한 서열화가 깔려 있기 때문에 그저 외면하는 것도 올바른 것 같지는 않다. 그럼 어쩌지? -_-;;
저자는 이어서 다른 장애인 친구들의 몸이 그 의문의 진원지임을 밝힌다. 재활원 동기였던 정훈이는 항상 쾌활하고 운동도 공부도 잘했지만, 근육장애가 점차 심해져 결국 휠체어를 혼자 밀 수 없는 상황까지 되었다. 결국 그는 스물 셋의 나이에 죽었다.
그런 그가 죽기 전에 저자는 정훈이를 찾아가 자립생활운동을 소개하고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우리에겐 활동보조인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으며, 집에만 있을 이유가 없다, 당당하게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네 근육 장애, 그 자체가 너야, 인마. 너 중증인 거 내가 아는데, 그래도 밖으로 나와라. 다 살 길이 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입을 연 정훈이의 대답. “그건 형 정도의 장애니까 그런 거야. 혼자 휠체어도 밀고 다니고, 서울대도 다니잖아.”
정말 장애를 온전히 긍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저자는 혼란스럽다. 그렇다. 솔직히 아무리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쳐대서 자기 긍정을 해대려고 해도, 결국 자기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인 것인데, 눈 앞의 친구에게 자신의 한 마디를 알아듣게 하는데 온 몸을 다 써도 1분 이상 소요되는 상황에서 자기 긍정이 말처러 쉬울 수 있을까. 나도 자신이 없어진다.
저자가 소개하는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가 썼다는 또 다른 만화 <리얼>의 한 장면도 나를 얼어붙게 했다. 장애인 농구 국가대표가 된 경증의 장애인(키요하루)이 중증 장애인 친구(야마)에게 찾아가 농구팀의 소식을 전할 때, 친구가 한 말은 이랬다. “나한테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거냐?” / “니들 섹스는 했냐? 나는 섹스가 뭔지도 모르고 죽게 생겼다.” /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다. 섹스! 이런 나한테 뭘 어쩌라고! 팔을 들어 올리고 싶어도 들지를 못해. 이건 내 몸뚱이가 아니야!”
그리고 저자는 작은 챕터 하나를 마무리 지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키요하루 정도의 장애인이라면 의족을 달고 리프트가 달린 버스를 타고 ‘정상 세계의 거주민’으로 편입될 수 있을지 모른다. 장애인 운동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야마와 정훈이에게 더 길고 건강한 생명을 보장하거나 나와 같은 장애인에게 아름다운 사랑과 활력 있는 대학 생활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져야 할 운명, 신 앞에 무릎을 꿇고 구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하늘의 영역’인 것처럼 보였다.”
2. 쿨해지는 것을 관두기.
이렇게 장애를 온전히 긍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비굴하게 보이는 것도 싫은 딜레마 앞에서, 저자가 택한 방식은 ‘쿨’해지는 것이었다. 계단 앞에서 누군가에게 들어올려질 때, 자신을 돕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쿨하게 한마디 한다. “야, 이거 완전 왕이 된 기분인데?”
그런 쿨함이 (사실상) ‘강요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sexuality에 있다. 저자는 대학에 입학한 후 자주 만났던 H와 깊은 정서적 교감까지 나누게 되었으나, “난 너에게 속물적인 감정 따위는 없어. 오직 나이에 비해 똑똑하고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너와 지적인 교류를 하고 싶을 뿐이야.”라는 듯 행동해야 했다.
그러나 우연히 H와 늦게까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의 방에 함께 들어오게 된 저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말을 꺼내 본다.
“저... 내 다리를 좀 봐 줄래?”
온갖 수술자국이 남아 있어, 어머니 말고는 어떤 여성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다리. 절대 섹시해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 다리를 드러내 보이는 순간에 대한 그의 묘사는, 솔직히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말로 요약하며 담으려는 이상한 짓은 그만두겠다. 그냥 옮겨 적으련다.
“내가 물었을 때 H는 내 다리를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다리가 가진 오랜 투병의 기록, 고통의 경험, 질병의 흔적을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드러난다면 내 다리는 결코 에로틱할 수 없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희생이나 동정은 가능할지라도. 그곳은 우리 둘 이외에는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로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장애인과의 에로스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침투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에 말려 들어갔다. 장애인의 몸에 씌워져 있던 동정, 시혜, 고통, 비극의 시선들이 괄호 안으로 들어갔다. 에로스는 평등한 인간의 관계에서만 출현한다. 누군가가 상대를 지배한다면, 또는 누군가가 상대를 도와야 한다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다리를 내보인 순간, 그동안 내가 어설프게 시도했던 지적인 동반자인 척, 쿨한 척, 숭고한 관계인 척했던 행위는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내 몸은 자유롭게 부유했다. 내 다리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섹시함을 뽐냈다. 섬세한 감각들이 날을 세운 채, 그러나 결코 날카롭지 않게 내 자의식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잇는 어떤 감정의 선들이 ‘자연적 질서’를 예리하게 걷어냈다. 상상과 몰입. 2평방미터쯤 되는 목성의 위성을 타고 지구에서 진화한 온갖 질서가 ”병신 육갑한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떠올릴 한치의 여지도 없는 시간을,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나는 그녀의 다리에 키스했다.”
3. 그래도 어렵다.
그렇게, 김원영이라는 한 장애인은 쿨해지는 것을 관두고, ‘핫’한 장애인이 되었다. 하늘이 내려준 불운에 걸려 장애인으로 살게 된 사람들은 오로지 착하게 살아야한다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가로질렀다. 이 횡단은 우리가 접해왔던 (장애인의 사회로의 출현을 촉발한) 장애인운동의 문제의식과 닮았으면서도 조금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고통과 욕망의 흔적들을 직시했다. 그래서 사실은 자신의 몸이 아주 유약하다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자유와 함께 사랑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어렵다. 그의 삶을 따라, 그의 욕망이 알을 깨고 내 눈 앞에 튀어나온 이 날것의 모습을 보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훈이의 말처럼, 그가 ‘핫’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혼자서 휠체어도 밀고 서울대도 다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마도 그가 ‘핫’하고자 시도하기 전에는, 이 조차 불가능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계속 병원에 다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기도원에 들어가려고 했었다고 말한다. 그 때 김원영의 삶은 말 그대로 “하늘이 준 불운”이었다. 그러나 김원영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공동의 노력으로 통제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불운”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손상된 몸의 어디까지가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장애’이며, 어디까지가 손쓸 수 없는 ‘하늘의 불운’인지는 완전히 알 수 없고, 또 최악의 경우엔 손상된 몸의 고통과 욕망을 자유롭게 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들조차 우리가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칸트가 말하는 자유다. 다시 말해 죽음을 앞둔, 추하고 소외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의 욕망을 차단하는 것이 ‘자연적 질서’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욕망을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과감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우리는 그가 말하는 대로 ‘하늘의 불운’을 역행하는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자유를 갈망하는 ‘비정상’ 신체들의 삶을 서사화하고 핫하게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엉엉.
페이스북에 쓴 글.
페이스북에 쓴 글. - 2012.7.17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 108게송으로 새롭게 중론 읽기 김성철 불교시대사, 2004 |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중론>에 대한 책을 다 읽었다. 나는 초딩때부터 절에 다녔지만 간단히 암송하는 불경 몇 구절에 대해서도 무슨 뜻인지 배워본 적이 없었다. 하기는 이렇게 어려운 내용을 초딩때 아무리 들어봤자 이해를 했겠나...
<중론>은 인도의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용수(인도식 발음으로 나가르주나)가 저술...한 '공空'사상에 대한 핵심적 저작이다.
책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다 접어두고, 딱 이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지식은 쌓아서 이룩되고 지혜는 부수어서 얻어진다"
공사상은 지혜를 얻는 것을 막는 온갖 희론, 망상, 헛된 관념을 때려부수는 무기이다. 마치 손오공이 108요괴에 맞서 싸우듯이.
나도 하'오공'(悟空)이 되고 싶다. 다 때려부수고 지혜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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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욕심과 분노의 구심점이다. 좋은 것을 나를 향해 당기는 마음이 욕심이고, 싫은 것을 나에게서 밀어내는 마음이 분노심이다. 욕심과 분노는 그 힘의 방향이 반대다. 불교 전문용어로 욕심을 '탐(貪)', 분노를 '진(瞋)'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탐'과 '진'의 마음은 모두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나며 이런 어리석음을 '치(痴)'라고 부른다. 이런 세 가지 마음, 즉 탐진치가 바로 '독과 같이 우리는 해치는 세 가지 마음(三毒心)이며 이를 제거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최종 목표가 된다.
겉으로 분노심과 욕심을 억누를 수는 있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우리 암속에서 분노심과 욕심은 다시 발생한다. 따라서 삼독심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은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이다.
- 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의한 해탈], 148p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천년의상상, 2012 |
페이스북에 썼던 글. 2012.11.4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푸른숲, 2010 |
사실, 이 책을 서점에 눌러 앉아서 거의 다 읽긴 했지만 언젠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을것 같아 사 들고 나왔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언젠가는 나의 자서전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이렇게 출판사에서 편집해주는 깔끔한 형태의 책이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온 삶 그대로를 고백하고, 누군가가 나의 고백을 경청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식으로 나의 자서전을 읽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독자가 딱 10명...만 되어도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서전을 쓴다면 이 책에서 처럼 어떠한 얇은 포장마저도 벗겨낸 채로 내 욕망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직 자기 내면의 욕망에 근거해 자기 삶을 풀어내는 저자의 담대함이 부러웠다. 사실 나는 한번도 그래본적이 없어서....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국민학교 밖에 안나온 산재 노동자의 아들"이라는 굴레에 묶여, 내 자신을 그 규정속에 묶어 놓고 살았다. 그 규정 속에서 한발짝도 못벗어난 채, 그 안에서 희망의 증거가 되어야한다는 강박에 치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런 강박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했다. 나는 단 한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고, 우리 부모님도 그런 나를 보며 못가지고 못배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고 미안해하는것, 그것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나의 대학 1~2학년 시절은 이런 나의 조건을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고, 밤마다 신음소리같던 엄마의 아픈 하소연을 떠올리며 불면증으로 밤을 새우던 나날이었다.
나는 이런 시간들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고유한 자양분이 될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택도 없는 소리이다. 그것은 희망의 증거는 커녕 절망의 표준이 되었을 뿐이고, 그 속에서 나는 피폐해져 갔다.
나는 나의 운동이 내 욕망의 한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축제이자 전투이길 원한다. 너무나 멋지게 그러한 시도를 한 김원영씨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다 쓰고 나니 내가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게 되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좀 밍숭맹숭하긴만) 후회없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이것도 페이스북에 썼던 글. 20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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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번째로 읽었다. 처음 읽을땐 그냥 쏟아지는 질문공세가 짜증나서 대충 읽고 별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L모 선생의 '생각보다 허접한 책'이라는 평가에 귀가 솔깃하여 '대체 얼마나 허접하길래!?'라는 의문으로 다시 집어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허접하다고(물론 L선생도 그런 의미로만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뭔가 이 책이 담고 있는 파괴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말미에 가서 샌델이 끊임없이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로부터 연유하는 도덕과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소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선택의 자유만을 앞세우다가 그런 도덕과 가치라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을 보수주의자들에게 빼앗겼다는 비판 속에서 나온다. 이 대목을 읽다가 프레임 전략을 외치며 보수주의에 대항할 것을 주장했던 조지 레이코프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면 레이코프나 샌델 모두 (그들이 아무리 고전철학적 논의를 하더라도) 순수하게 '현실정치적' 고민 속에서 나온 철학을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현실적인' 철학이 대중들에게 일정한 설득력, 파급력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가치, 미덕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경계는 어디인가가 문제다. 샌델은 '충직 딜레마'라고 이름 붙인 장에서 갑자기 '애국심'이라는 쟁점을 들고 나온다. 웹사이트를 통해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불법 이민자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정당성 문제를 논하면서 그는 마이클 왈저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사회 구성원이 되는 조건을 규제하는 능력, 즉 입국허가, 거부 규정을 정하는 능력은 공동체 독립의 핵심이다."
결국 그가 앞에서 이러저런 쟁쟁한 철학자들을 등장시키며 신나게 썰을 풀었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미덕은 '국경'을 근거로 하는 미덕, 즉 타국의 인민을 배제하고 내부의 동일성을 단단히 하고자하는 '도구'로서의 미덕이다. 뒤에 가서 그는 이를 '연대'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연대라고 이름붙이기 민망한
'내식구 감싸기'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명박 대통령의 영포회 감싸기도 훌륭한 연대의 사례다. 반면 어떠한 공동체적 소속의 근거를 공유하지 않음에도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내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구고 공유하는 한진중공업 앞의 희망버스 난장은 샌델식 정의론으로는 당췌 설명이 안된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런 식의 '정의론'이 보수주의에 맞서는 진보주의적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할 정의는 내가 속한 공동체의 서사속에 구현된 가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간의 가치 충돌이 빈번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욱 보편적인 가치를 '새롭게' 형성할 것인가가 아닐까?
예전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들을 정리하기 위해 블로그로 옮겨옵니다. 그런데 2011년에 썼던 글들이 다 확인되지 않네요. 페이스북 나빠!!!
201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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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터진 이 판국에 나는 일본의 반핵운동가 타까기 진자부로오의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원자핵공학을 연구하던 대학교수가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과학'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반성하고 고뇌하는 모습들이 내 가슴이 꾹꾹 눌러 담기고 있다.
"토지를 강제수용하려고 공항공단 측에서는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해서 반대파 학생들을 밀어낸 뒤 불도저로 땅을 뒤집어엎고 나무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몸을 사슬로 나무에 묶고 저항하는 농민들과 지하땅굴 속에서 저항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았다."(82쪽)
"이러한 저항을 지속시키고 농민들이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려면, 농민들이 대지 위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푸른 들을 파괴하고 공항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사회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84쪽)
"실험과학자로서, 나 또한 상아탑 안의 실엄실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 자체를 실험실로 삼아, 방사능을 두려워하는 어민들과 불도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농민의 처지를 내 것으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가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87쪽)
얼마전 326집회때 장애인동지들이 쇠사슬 사진관을 하면서, 쇠사슬로 자신의 삶과 투쟁을 표현하는 모습들이 인상깊었다. 그런데 농민들에게는 쇠사슬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투쟁에서 쇠사슬이 시설과 집안에만 묶여있던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당당하게 알리는 것이었다면, 농민들에게 쇠사슬은 이 땅과 농민 자신은 절대 분리될 수 없음을, 그것은 이 땅과 농민 자신 모두의 죽음임을 처절하게 알리는 것이었다. 죽음의 공항에 반대하며 삶의 농토를 추구했던 나리따 농민들의 쇠사슬과 죽음과도 같은 침묵만이 강요되는 시설을 뛰쳐나와 온전한 삶을 추구하는 장애인의 쇠사슬은 왠지 다른듯 하면서도 닮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삶을 위한 투쟁들과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암담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밤이다.
세계공화국으로 가라타니 고진 비(도서출판b), 2007 |
자본주의 이행논쟁 - 동녘신서 15 高橋幸八郞 외 동녘, 1997 |
가라타니 고진의 책은 충격적이다. 그의 <세계공화국으로>에 담긴 주제는 역사적 교환양식, 칸트와 맑스, 세계제국과 세계경제 등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버거운 것들인데, 이걸 300쪽도 안되는 얍실한 책 한 권에 다 담았다. 심지어 쉽다!! 어쨌든 난 이 책을 산지 두어달 만에 두 번 완독했는데, (감히 용기내어 말하자면) 난 이 책의 내용이 뭐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적어도 15분 정도는 쉬지 않고 혼자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전적으로 내 능력이 아니라, 저자의 능력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 자체가 원래 고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저자가 작정하고 쓴 책이라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쨌든 이 책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자기가 줄곧 주장해 온 내용을 거의 다 쏟아낸 듯 하다. 이 책의 부제를 굳이 붙이자면 '1시간만에 읽는 가라타니' 정도?
어쨌든 이렇게 쉽게 세계화 속의 자본-네이션-국가의 문제를 둘러싼 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신 덕에 내가 앞으로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뭔지가 좀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 하다.
일단 고진에게 특이한 점은 그가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니라 '교환양식'을 통해서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가 책에서도 언급하듯이 이런 논의는 20세기 중반 모리스 돕과 폴 스위지 간에 벌어졌던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스위지의 계보를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진을 이 논쟁에 가담시켜 본다면, 그에게는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봉건제 조차도 그 내부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봉건제는 '제국의 아주변'에서 출현한, 즉 제국권력이 영향력을 뻗치는 범위의 (상대적)외곽 또는 사이공간에 존재하는 타자였다. 이를테면 서유럽 봉건제는 로마제국의 아주변에서, 일본의 봉건제는 중국제국의 아주변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에게서 국가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던 4가지 교환양식(호수 / 약탈-재분배 / 상품교환 / 어소시에이션) 중 약탈-재분배를 기초로 성립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상품교환은 기본적으로 독립적인 자유민의 존재가 보장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와는 다른 토대를 갖는 것이다. 즉 상품교환은 공동체의 바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상품교환은 공동체가 끝나는 곳에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 또는 그 성원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마르크스)
그렇다고 그가 국가와 상품교환이 완전히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근대 자본주의 등장 이후에 네이션(나는 이것을 그냥 '민족주의'정도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다)이 등장해 이 둘을 매개하여 자본=국가=네이션의 보로메오의 매듭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들 각각은 상품교환, 약탈-재분배, 호수적 교환관계를 상징한다.
여기서 또 다시 가라타니의 주장이 자본주의 이행논쟁과 관련해 쟁점을 형성하는 부분은 '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라는 주장이다. "상인자본과 달리 산업자본은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얻지만 이는 아직 잉여가치의 실현이 아니다. 잉여가치가 진짜로 실현되는 것은 그 생산물이 유통과정에서 팔릴 때"라고 주장하고 또,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것을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말한다. 이렇게 그는 산업자본주의의 특징으로서 노동과정에서의 노동자의 자본가에 대한 예속과 이를 통해 얻어지는 잉여가치에 대한 부분은 일정정도 상대화시키고, 스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유통과정과 상업에 방점을 찍는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2년 가까이 책꽂이에서 잠자고 있던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꺼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스위지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하지만(그런데 이 책만 보면 스위지가 돕, 다까하시, 힐튼, 힐 등에게 다구리 당하는 형국이다), 아직 고민이 좀 남는다. 스위지의 논점은 이후 월러스틴이 잘 계승해서 논의했듯이, 분석의 시야를 세계체계로 확장시켰다는 측면은 있지만, 어쨌든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모순의 변증법'을 상대화시킨 것 아닌가? 또한 자본주의의 기원을 가치체계 사이의 계산적 차이를 이용해 이윤을 얻는 상인자본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본주의의 고유한 노동과정에 대한 분석은 어떤 로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가? 나아가 이 논의의 끝까지 밀고 나가면 노동가치론은 폐기되는 건가?
그럼에도 돕과 다까하시 등의 논리로는 스위지가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봉건제 붕괴의 원인이 봉건 영주의 과도한 수입욕구와 이를 견디지 못한 농노들을 영지 이탈에 있다고 했다. 이에 스위지는 영주의 수입욕구라는 것도 국제 사치품 교역의 성장에 따른 결과이고, 농노들의 이탈은 도망갈 곳이 있어야 가능한데 이 당시 봉건영지 외부에 성장하던 상업에 기반한 도시가 이를 가능케 했다고 답한다. 딱히 도망갈 곳이 없던 동유럽의 경우에는 재판 농노제가 나타났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이다. 이에 돕은 봉건제 외곽에 존재하던 도시들도 사실상 봉건 영주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들은 오히려 반동적인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좀 부족해 보이는 대답이고, 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던 바는 "스위지 너, 계속 그렇게 말하면 넌 마르크스주의자 아니야" 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직 잘 모르는게 많아서 대충 정리해 봤는데, 어쨌든 이 두권의 책 덕분에 앞으로 공부할 게 더 많아졌다. 일단 올 여름이 가기 전에 <자본론> 1권부터 제대로 정독하자!!
지난달에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몇 마디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시간을 낸다.
조봉암과 박헌영. 이 둘은 모두 해방 이전 조선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거목들이다. 하지만 해방과 함께 맞이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해 결국 사실상의 정치적 반대파가 되고, 둘 모두 각각 남한과 북한에서 부당하게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법살 당했다. 정태영의 <조봉암과 진보당>과 안재성의 <박헌영 평전> 모두 이 법살의 희생자들의 정치적 명예 회복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들의 목적이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어차피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의 스탈린주의적 편향을 비판하면서 독자적 길을 걸은 조봉암이 북한의 간첩이 아니라는 것과, 평생을 조선공산당의 정치적․이론적 지도자로 살아왔던 박헌영이 반공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상식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 동의할 만한 내용 아닌가?
오히려 나는 이 둘을 통해 해방 전후 공산주의 운동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비극성을 발견한다. 조봉암은 왜 둘도 없는 동지 박헌영을 향해 매서운 비판의 문건을 날려야만 했는가? (비공개로 전하려던 조봉암의 계획과는 달리 미군정의 수색에 의해 문건이 발견되면서 부득이 공개되고 말았지만) 이 문건을 받게 된 박헌영은 왜 성실하게 토론에 임하지 못하고 조봉암을 축출하는 것으로 사태를 종결하고야 말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조봉암, 박헌영 개개인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과물에 대한 평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봉암과 진보당>에 실린 박헌영을 향한 조봉암의 편지를 읽어보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근거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소양국간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국제정세를 고려하여 지나친 친소적 노선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으며, 신탁통치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 말이다. 어쩌면 당시의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그의 그런 구상은 꿈 같아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그런 평가는 사실 사후적인 결과를 중심에 두고 하는 것이고 당시 상황에서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런 면에서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당은 지나치게 코민테른의 지령을 조선 정세에 무매개적으로 대입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대한 조봉암의 비판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약간 저자의 주관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박헌영 평전>에 묘사된 박헌영의 정치적 토론 자세나 정세적 치밀성으로 미뤄봤을 때, 박헌영이 이런 비판을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다소 미스테리다. 설령 박헌영이 스탈린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김일성이 ‘권력형 스탈린주의자’라면 박헌영은 그보다는 죄질(?)이 덜한 ‘이론형 스탈린주의자’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박헌영의 합리적인 대처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조봉암은 철저한 대중지향적 노선에 기반하여 현실정치 참여로 방향을 잡았고, 박헌영은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반공주의에 맞선 전국적 저항을 통해 조선공산당 사수에 힘을 쏟는다. 어차피 둘 다 50년대 한반도 정치에서 축출 당했다는 면에서 패배자임에 틀림없지만, 최근 남한 진보정치 내부의 평가 움직임을 봤을 때, 둘 간의 경쟁에서 조봉암이 ‘역사적’ 승리를 거둔 듯 하다. 작년 조봉암 법살 50주기를 맞아서 주대환의 사회민주주의연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모두 그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토론회를 열면서 조봉암 노선의 복권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조봉암을 대한민국 건국공신으로 치켜세우는 사민련의 입장이나, 그의 진보당 건설 투쟁을 현재적으로 해석하면 ‘반MB연대’라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봉암의 법살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가 현재까지 내려져오면서 노무현의 죽음과 노회찬 X-파일 사건 유죄 판결을 낳았다는 진보신당 조현연 교수의 주장도 말이야 맞는 말이래도, 그런 주장이 미래지향적 정치적 비전을 형성하는데 그리 중요한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실장이 말한, 미소대립이 직접적으로 투영된 한반도 현실 속에서 평화통일이라는 구상(그는 이를 당시 반둥회의로 대표되는 중립국 제3세력 노선과 맞닿아있다고 말한다)을 제시했던 조봉암의 국제정치에 대한 혜안을 본받아 21세기에 걸맞는 정치적 리더쉽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표를 주고 싶다. 이런 관점 하에서라면 나는 앞으로 조봉암 노선의 적극적 해석을 통한 진보정당의 비전형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단서들을 몇 가지 달아야 한다. 내가 제시하려는 단서들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조봉암의 노선이 더 현실적이고 대중정치에 부합하는 것이었다면, 왜 그의 시도는 법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렸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서 이승만이 나쁜 놈이다’가 제시되는 건 부당하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박헌영도 변명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헌영과 조선공산당도 잘 해보려 했지만, 미군정을 등에 업은 우익들의 테러가 만연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탄압에 의해 지하 비합정당이 되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대구총파업, 4.3항쟁 등 대중들의 자생적 봉기를 끝까지 책임지고 지도하려는 노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박헌영의 북한행도 이런 상황에서 조직의 붕괴를 막으면서 대중투쟁에 대한 지도를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조공의 이런 노력을 언급하지 않고 이들의 스탈린주의적 오류만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사실 조봉암이 제헌의회 선거에서부터 다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엄혹한 투쟁의 시기에 침묵을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다만 인터넷 참세상에 소개된 책에서처럼 조봉암을 변절 지식인이라 표현하는 것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다.(변절 지식인 조봉암과 비극의 뿌리 조선공산당))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조봉암의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그가 역사적으로 성공한 북유럽식 사민주의와 비슷한 내용을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실패가 예정되어 있던 코민테른식의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자주적으로 국제정세를 읽으며 제3노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에도 코포라티즘의 물적 토대가 전무했던 50년대 한국 상황에서 텍스트적 유사성만을 근거로 조봉암이 개량적인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주장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무시한 해석이다.
그와 비교해 박헌영은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조직적인 인간이었고, 그래서 그 조직(코민테른과 조선공산당)의 오류가 그대로 박헌영의 오류가 되어버렸다. 안재성의 설명대로 박헌영이 김일성의 주전론에 거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전쟁에 반대하는 실제적 행동을 하지 않은 이상 그도 전쟁의 공범이긴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진보운동의 역사에서 박헌영을 버리고 조봉암을 택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다. 조봉암의 현실주의는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온 노동대중들의 자생적 투쟁을 우회한 현실주의였다. 당시의 대구총파업, 4.3항쟁등이 조선공산당의 모험주의의 소산이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 당시 조선공산당은 사실상 전국적 지도 체계가 붕괴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공산당은 대중 투쟁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극의 길로 빨려들어 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와 함께 조선공산당의 오류에 대해서도 좀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이재유를 비롯한 경성 트로이카의 중심들이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았다면 적어도 코민테른 입장에 따라 반탁에서 친탁으로 우왕좌왕하는 조공의 행보는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이재유는 박헌영이 자신의 밀사를 통해 상해에서 보내주는 공식 문건과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활동할 것을 권하였을 때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문건이 도착하는데만 한달이 넘게 걸리는데, 어떻게 조선의 구체적 정세에 맞는 운동을 하겠냐는 것이다. 가혹한 탄압에 의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이들의 죽음이 조선공산당에 가장 큰 비극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장석준 등 진보신당의 브레인들이 주장하는 ‘조봉암 계승론’은 ‘비판적 계승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진보정당의 정치적 리더십은 폭발하는 대중적 불만과 투쟁을 수평적 토론과 연대 속에서 대안적 사회체제에 대한 구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끄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50년대 민중항쟁과 함께했던 조선공산당의 긍정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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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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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