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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5/26
    주대환, <대한민국을 사색하다>(13)
    구르는돌
  2. 2010/04/13
    오쿠다 히데오
    구르는돌
  3. 2010/03/11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 <리영희 프리즘> 서평(5)
    구르는돌
  4. 2010/03/06
    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3)
    구르는돌
  5. 2010/02/18
    <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내 코멘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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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0/02/12
    박영균,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
    구르는돌
  7. 2010/02/04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에 대한 코멘트 한 가지 더.(1)
    구르는돌
  8. 2010/02/04
    이계삼 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3)
    구르는돌
  9. 2009/12/28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6)
    구르는돌
  10. 2009/12/21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구르는돌

주대환, <대한민국을 사색하다>

 

 

오랜만에 서평.... 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코멘트를 달을 수 있을 만한 책을 읽었다. 주대환의 글은 예전에 그가 우파 잡지 <시대정신>에 기고했다고 하여 논란이 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한...)를 대충 보고, "이건 뭥미?"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어제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심심하던 차에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예전에 서점에서 대충 본 적이 있긴 한데,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제는 그냥 훑어보던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만 부르자>(131쪽)라는 아주 도발적인 제목을 발견하고 읽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나도 요즘 비슷한 고민으로, 어지간하면 앞으로 '동지'나 '민중'같은 단어는 쓰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의 말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하 임진곡)과 같은 민가나 '동지', '민중'하는 단어들은 "그 곡조와 가사의 지나친 비장함은 일상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고, 그 정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설고 닫혀 있다는 느낌을"(132쪽) 주기 때문이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운동권 하위문화'와는 단절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좀 하고 있던 터였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이 꽤 있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1.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자?

 

그에 따르면 우리가 80년대적 운동권 동창회 정서를 버리지 못하면 이른바 '토종좌파'(그는 칸트적인 합리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경험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토종좌파'라는 말로 개념화한다. 그가 대표적 토종좌파로 칭찬하는 사람이 제주대 이상이 교수다.)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토종좌파라는 말이 한국적인 정세와 조건에 맞는 운동을 하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의 말에 백번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임진곡'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때 이 노래가 청와대에서 불려졌다는 말을 듣고, 이런 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로 엮여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임진곡'을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이유라면 오히려 나는 더 열심히 임진곡을 부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한국적 '토종좌파'는 단순히 맑스-레닌의 교조주의에 빠져있지 않다고해서, 외국이론에 심취해서 현실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는 먹물적 근성을 버린다고만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게 아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 스스로가 그것으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았을, 518을 잊고서는 우리는 앞으로 어떤 진정한 의미의 저항운동도 시작할 수 없다. 518에 대한 해석이야 다를 수 있지만, 그 저항현장의 상징인 노래를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일 뿐이다. 물론 나도 그로부터 연유한 운동권 하위문화가 얼마나 심각하게 운동 전반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질식시켰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저항운동이 앙상한 운동권 하위문화로 귀결된 것이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경로는 아니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져 버린 조건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조건들 속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조건들 속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악몽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짓누른다."(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2. 토지개혁 때문에 대한민국의 출발은 진보적이었다?

 

우리는 지난 저항운동의 역사가 남겨놓은 한계와 가능성을 명확히 하고, 그 가능성을 중심으로 계승해 나가야 겠지만, 그렇다고 맘에드는 것만 골라서 이어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면에서 여운형과 조봉암을 치켜세우며 "대한민국은 진보적인 시대에 건국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찍이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역사에 대한 '편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 명의 훌륭한 정치인이 해방을 전후하여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었고,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란 점에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실제 이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체제'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느냐 하는 문제로 오면 그리 대답할 만한 게 없다. 실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포부를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타살되었고, 그러니 그들이 역사에 남긴 것은 말과 글, 즉 '사상'뿐이다.

 

주대환의 말대로 해방 직후 유력한 정치인(김일성, 박헌영, 여운형, 김규식, 김구, 이승만) 중에 좌우 양극단의 두 사람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타살되면서, 한반도는 사실상 극우와 극좌의 나라가 되었다. 적어도 50년대 남한은 '이승만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텐데, 토지개혁 하나만 가지고 이 나라가 조봉암의 업적 위에 세워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해도 비약이 너무 심하다. 이에 더해 (그것이 북한과의 체제경쟁 과정에서 출현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제외한다해도) 토지개혁을 현재 대한민국 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으려는 논의는 문제가 많다. 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주대환은 자신이 아무리 신좌파를 외치고 다녀도 구좌파적 사고방식, 즉 단계론적/진화론적인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그는 남한의 토지개혁을 치켜세우면서, 그것은 집단농장으로 전락한 중국 공산당의 토지개혁이 아니라 79년 덩샤오핑 체제 하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이 남한의 그것과 견줄만 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농민들에게 자기 소유의 땅을 쥐어주고 "모두 부자가 되라!"라는, 우리나라 모CF의 "부자 되세요~"와 견줄만한 지상명령을 제시한다. 이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잘 드러나는데, 이것을 보통 중국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에 있어 첫 기점으로 삼는다. 주대환에게 이것은 한국의 토지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소농의 나라였습니다. 토지 개혁으로 조그만 땅뙈기를 갖게 된 수많은 자영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그 말릴 수 없는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입니다."(226쪽)

 

정리하자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토지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로의 발전과 번영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고, 대한민국은 이런 '위대한 유산'을 바탕으로 낡은 NL과 PD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보면 제2인터내셔널 당시 자본주의의 성숙이 자동적인 사회주의로의 진화로 나아가게 한다고 말한 일부 '정통 맑스주의자'(주대환이 따르는 베른슈타인류나 그가 반대하는 스탈린류나 모두 여기에 속한다)들의 사고방식과 뭐가 그리 다른지 궁금하다. 게다가 '자발적 중노동'이라니!! 이런 식이라면 인클로저 운동 당시 도시로 내몰린 빈민들의 노동도 '자발적'이었고, 먼지 소굴 평화시장에서 어린 여공들의 일을 대신해주기도 했던 전태일의 노동도 자발적인 것이다. 어쩌면 주대환의 생각은 작년에 광주항쟁에 대해 '선진국에서도 다 그런 과정을 겪더라'라며 통과의례쯤으로 발언했던 황석영의 관점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월러스틴이 말했듯이,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은 신흥 자본가계급의 출현이 아니라 기존 귀족계급의 '환상변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는 '근대로의 진화'라고 보는 관점은 옳지 않다. 한국의 50년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조선 말기와 일제 식민지 시기에 봉건 지주였던 놈들이 반민특위를 짓밟고 자본가계급으로 '환상변신'을 했다는 것은 굳이 월러스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이 아니던가?

 

 

3. 전쟁은 '평등주의'다!?

 

나아가 내가 주대환을 다음의 인용문을 근거로 '주전론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억지일까?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두어 차례 전선이 밀려 내려오고 밀고 올라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다니고, 월남 또는 월북함으로써 뒤섞이는 사이에 신분 질서와 귀족의 생활양식, 전통문화는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고급문화를 대중이 따라하여 전반적으로 문화적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모두가 어떤 가식도 핑계도 없이 노골적으로 돈과 힘을 추구하는 천민이 된, 위대한 천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 ...)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평등하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니요?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평등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의 평가는 상대적입니다. 건국 당시의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는 것은 절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222-3쪽)

 

한국전쟁이 기존의 신분관계를 청소해서 대한민국은 모두가 천민인 나라,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원래 자본주의 자체가 천한 것이니 한국식 천민자본주의가 부끄러울 이유도 없고,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어 온 엄청난 교육열도 이 '천민적 평등주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위대하신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팔할이 전쟁이었다. 오 전쟁이시여~ 뭐 이런건가?

 

이런 식의 주장은 사실상 종말론적으로 읽힌다. 모든 것이 파괴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새로 지을 수 없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대전이 전지구적 경제성장의 기회를 가져왔다고 말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을 앞에서 지적한 그의 '자발적 중노동'이란 표현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전쟁으로 피폐화된 상황 속에서 한국은 근대적 평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얻었고, 이로써 근대화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이 일제의 식민통치와 세계대전 참전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이라면 현재 전쟁을 겪고 있는 중동지역 시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축복의 폭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4. 여전한 남의 것에 대한 맹목적 추종

 

이에 대해 나의 과잉해석이라고 말한다면 인정하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일때 한 쪽 눈엔 블라인드를 쳐버리는 습관은 여기서 그치는게 아니었다. 이를테면 "마찬가지로 뒤집어 보면, 한국이 OECD에 가입했다는 사실 역시 때로는 고맙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하게 OECD에 가입해서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하는 외환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과연 OECD가 한국의 가입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 엄두를 내었겠습니까?"(230쪽) 같은 구절 말이다.

 

한국 정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국제기구의 말을 잘 들었다고 공무원노조 탄생의 공을 OECD로 넘기는지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주대환은 자기가 그렇게 부르짖는 '토종 좌파'로서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 그는 대한민국을 긍정하자고 말하면서도 그 근거를 대한민국 내부가 아니라 항상 외부에서 찾는다. 대한민국 최초 헌법이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도 사실상 서구문물에 대한 찬양이다. 그가 여운형, 조봉암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을 좋아하는 것도 그들이 '서구적' 국가관료제도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지 시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모조품으로서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의 장석준은 주대환의 이런 주장을 두고 역사 속에서 어떤 기원적 사건을 찾고 그것으로부터 정통성의 계보를 작성하는 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자들의 역사관인데, 주대환의 주장이 딱 그 꼴이라고 비판했다. (장석준, <진보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시민과세계 2008 하반기호) 여기에 덧붙이자면 주대환은 한국 땅에서 한 번도 자리를 잡은 적 없는 서구형 민주주의/복지국가를 대한민국 정통성의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면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대중들의 저항행동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긍정해야 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는 장석준이 말하듯이 "민주공화국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넘어서야"한다. 그런 방향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써내려가야 한다.

 

 

 

 _______________

 

 

사실 이런 글을 읽는 것은 나로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앞서서 운동했던 대표적인 분이 이렇게 매력없는 글로서 사람을 실망시키니 후배의 마음은 찢어진다. 한 논평자의 말처럼 주대환의 이런 선회는 이미 90년대초 '신노선'을 선언할 당시의 선택이 "주어진 선택지들 중에서 선택한 무엇이 아니라 '더는 이대로 돌파할 수 없는 한계선'을 맞닥드리며 어쩔 수 없이 포기하며 좌파에게 남은 기획을 '새로운 기획'이라 믿고 또 다시 헌신해온, 좌파의 총체적 위기와 기획의 빈곤 위에서 싸워온 우리 운동과 우리 자신의 현실적 자화상"(최윤식, "사민주의가 대안일 수 없는 이유", 레디앙, 08.09.08)인 것처럼 예정된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어차피 좋든 싫든 주대환류의 역사적 효과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미래도 이렇게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운동의 혁신'이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운동의 결과들과 단절을 선언하는 것 밖엔 길이 없지 않는가?

 

부탁드린다. 어린 놈이 더 이상 이런 절망스러운 결론에 다다르지 않도록 선배님들이 지난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좀 더 성실하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그것이 '대안사회'로 불리든 '진보한국'으로 불리든, 그것을 이뤄나가는데 미력한 지성을 보태는데 망설일 이유를 만들지 않게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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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오쿠다 히데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참 좋아한다.

 

<남쪽으로 튀어>에서는 혁명의 꿈을 잃고 방황하는 자족적 아나키스트의 삶이 조금은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가슴아프게 그려졌고, <공중그네>에서는 삶의 이면들을 아주 코믹스럽게 그려졌다.

 

이번 주말에 읽은 <마돈나>는 <공중그네>와 비슷한 컨셉이긴 한데, 그것보다는 뭔가 더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게 느껴졌다. <마돈나>에는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과장급 샐러리맨의 5가지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특히 마지막에 실린 '파티오'라는 단편은 살짝 애잔하기까지 하다.

 

토지개발회사에 근무하는 노부히사는 미나토파크를 상업적으로 활성화시키는 2년짜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항상 그 곳의 파티오라는 뜰에서 독서를 하는 노인에게 눈길이 간다. 부인과 사별하고 고향에서 혼자 텃밭을 가꾸면 사는 자신의 아버지 생각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노부히사는

 

....

 

 

"그런 것이다. 아버지는 불평을할 권리도 없다. 그리고 오효이 씨도. 세상이 이래도 좋은 것인가. 노인에게는 기득권이 있는 것이다. 오래 살아온 인간의, 그곳에 있어도 좋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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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 <리영희 프리즘> 서평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 『리영희 프리즘』서평, 그리고 나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나 그리고 나의 여자친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물론 그 친구는 엄마가 하도 보채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했다지만, 나이가 올 해 스물여섯이나 먹은 성인이 제 얼굴에 칼 대는 일을 엄마가 하란다고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친구가 아무리 변명한다 해도 그 선택에 자신의 욕망이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다고 믿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단 한번의 수술로 그간 우리가 지켜왔던 여성주의 운동의 대의를 배신한 친구의 선택에 분노를 터뜨리고 난 후에도 뭔가 개운치는 않았다. 나조차도 부지불식간에 그 친구에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보편이 될 수 없는 도덕률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 식의 도덕률로 그를 욕한다면 알량한 대학 졸업장을 받아보겠다고 두 달간 토익학원에 시간과 돈 그리고 영혼까지 갖다 팔았던 나는 얼마나 정당한가? 냉정하게 말해서 그와 나의 차이점이라고는 노동시장에서 나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기계발의 기술을 외모에 까지 적용했느냐 안했느냐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나면 내가 감히 그 친구에게 들이밀은 도덕주의는 혹시 '꼰대스러운' 운동권의 자격지심의 발로는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대에 좌파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분열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의미"(한윤형, <냉소주의시대의 우상과 이성>, 206쪽)한다는 한윤형의 지적은 이미 그런 분열증 증세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는 의사가 작성해준 진단서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학생운동을 할 때, 우리는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과 경쟁교육을 비판하면서도 밀린 방세를 내기 위해 영수과외를 해야만 했다. 이쯤 되면 과연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MB교육인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에 세 번씩은 꼭 울어대는 내 배꼽시계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내 앞엔 지금 『리영희 프리즘』이란 책 한 권이 놓여져 있다. 70년대 대학생에겐 '스승'이었고, 그래서 프랑스 진보언론 르몽드로부터 '사상의 은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상징적인 지식인 리영희. 그는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쉼 없이 '몽롱한 의식에 끼얹은 찬물 한 바가지'같은 글들을 쏟아냈고, 그렇게 리영희로부터 세례 받은 청년들은 소위 '의식화'가 되어 80년대를 분노와 저항의 세월로 채워갔다.


2010년 3월 11일. 나는 리영희의 일생의 화두였다는 우상(偶像)과 이성(理性)에 대해 생각한다. 그것도 거의 대다수의 청년세대가 리영희를 모르고 리영희의 사상에 빚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2010년 3월 11일에.



스승이 없는 시대, 우상맹목의 시대


지난 21세기의 첫 10년간, 우리는 확실히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았다. 70년대 대학생을 감화 받게 했던 리영희도, 80년대 대학생이 리영희를 경유하여 만난 마르크스도 우리에겐 없다. 91년 사회주의권 붕괴를 찍고 턴한 청년세대의 사상적 좌표는 그간 '모셔왔던' 스승들을 사정없이 패대기를 쳐대더니 결국 지금의 청년세대를 탈이념, 탈정치 그리고 냉소주의를 뼛속 깊숙이 받아들인 'Cool'한 이들로 성장시켰다. 그러는 동안 리영희가 치열하게 마주해왔던 군부독재라는 우상은 자본독재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지만, 우리는 이전 청년세대와는 다르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우상을 치열하게 대면하고 파괴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Cool'했기 때문에.


그러했기에 사르트르식으로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으로서 지식인 또는 그람시식으로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지식인은 소위 '꼰대'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는지.(이대근,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다>, 133쪽 참조) 어쩌면 우리에게 '지식인'은 특정한 기술(Technique)을 전수해주는, 이를테면 메가스터디 손주은 사장같은 사람이 아닌지.


그렇게 스승이 부재한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우리는 분명 고통스럽게 억압과 마주해야 할 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탈정치'라는 이름으로 그 부담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 부담이 자리잡고 있던 자리에 지금 무엇이 들어 앉아 있는가? 얼마 전 삼성 총수 일가를 비판한 책에 대한 광고를 거부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의 고위간부라는 사람들이 'Cool'하게 던진 말들 속에서 나는 그것의 실체를 본다. "삼성은 우리의 파트너", "삼성은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의 대상". 이미 우리시대 우상(偶像)이 되어버린 삼성은 그들에게 신문사 경영의 일부가 되었고, 리영희에겐 그것과 맞서기 위해 벼려내야 했던 무기였던 이성(理性)이 그들에겐 삼성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적응의 기술'이 되어버렸다. 이 '적응의 기술'이 시장주의를 통해 자유의 가면을 쓰는 과정을 안수찬 기자는 <진짜 기자의 멸종>이라는 글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고통스럽게 '사유'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렇게 억압과 마주해야 할 부담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대신, '생각'을 잃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지만, 우리는 지금 확실히 의심의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병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5쪽 참조) 우상의 지배 하에서 작동되는 두뇌의 의식작용은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화학적인 생리작용과 다르지 않다. 화학적 생리작용으로만 유지되는 유기체를 우리는 '노예' 또는 '짐승'이라고 부른다.


확실히 이 구절은 아팠다. 너무 아파서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리영희는 사르트르를 인용해 자유의 의미를 절절하게 전했다. 사르트르는 독일 점령 하에 있을 때처럼 자유로웠던 예가 없었다고 했다. 일체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매일 정면으로 모욕을 당할 때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유라고 했다. 막다른 골목에 쫓겨 있었던 까닭에 거동 하나하나가 앙가주망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억압자에 저항함으로써 자유를 느꼈던 그에게는 저항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였다." (이대근, <다시, 지식인의 책무를 묻다>, 144쪽)


나와 같이 범속한 인물이 저런 자유에 털끝만큼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심지어 앞에서 말한 '진보언론'의 간부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상과 이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우리 삶의 두 부분일 따름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그러나 나는 또 아프게 되새김질 한다. 나치 전범재판에 회부된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에게 사유는 '능력'이 아니라 '의무'이다. 우상이 끊임없이 이성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오고 둘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조건 속에서, 우리가 그 둘을 분리해내려는 고통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만 아이히만의 변종일 뿐이다. 아이히만은 가정에 충실했고 성실한 직장인이었다. 다만 너무 성실한 나머지 유태인을 살해하라는 우상의 명령에 대해 '사유'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친구에게 묻는다. 성실하게 일주일에 세 번 토익학원에 다니는 동안, 그리고 유행에 맞춰 성형외과를 찾는 동안, 너는 얼마나 자유로웠냐고. 너는 얼마나 네 안에 자리 잡은 우상에 대해 사유했느냐고. 5.18의 시인 김남주는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은 맨 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라고 꾸짖었다. 시인 앞에 한 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스승 없는 시대를 함께 버텨내온 나의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그 친구는 얼마 전 만났을 때 김규항의 『예수전』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도 최근에 그 책을 접했다. 종교와 별 다른 인연을 맺지 않았던 나도 이 책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친구였던 '최초의 사회주의자' 예수의 삶에 깊이 감동했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스승 없는 시대에 스승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는 사실에 감사했었다. 나는 여전히 나의 친구와 함께 사유하고 싶다. 자유롭기 위하여. 나의 이성과 육체 모두가 진정 자유롭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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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강신주는 보기 드물게 친절한 철학 선생님이다. 그 동안 대학 새내기쯤을 대상으로 한 철학 입문서로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정도가 각광을 받아왔지만, 이 책 또한 잘난척하기 좋아하는 얘들 몇을 빼놓고는 그다지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 2006년에 강신주의 <철학, 삶을 만나다>라는 책을 만나고 '요것 참 물건이 나왔구나'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이 책을 추천도 많이하고, 그래서 몇몇 얘들은 그걸 가지고 새내기와 함께하는(^^;;) 철학 세미나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랬던 강 선생께서 이번에 또 하나의 물건을 내놓으셨다. '시를 통한 철학읽기'라고 해야 더 정확할 듯 싶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내가 원래 문학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닌데, 시는 더더군다나 인연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예전에 '투쟁 자료집' 만들때 빈 공간 채워 넣으려고 갖다 쓰던 브레히트나 도종환의 몇몇 구절 정도가 좀 인연이 있었을 뿐... 사실 시라는게 나같은 범속한 인간이 읽으면 '그래서 대체 뭐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오는게 대부분이어서 딱히 가까이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세계였다. 그런데 또 강 선생께서 친히 철학-삶-시의 삼각관계를 자연스럽게 풀어헤쳐주셔서 우리는 또 수줍게 시 속에서 나의 삶과 철학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게 된다.

 

일단 내가 이 책에서 소개된 책 중에 가장 맘에 든 시는 김남주 시인의 '어떤 관료'이다. 원래 김남주 시인의 직설적인 화법과 따가운 질책은 언제나 좋았지만, 이 시는 더욱이나 울림이 크다. 각설하고 감상을~

 

어떤 관료  -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국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딘가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정직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이 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사유는 권리가 아니라 의무다"라는 명제를 꺼내드는데, 요즘 내 삶에서 그럴만한 계기는 딱히 없었지만 왠지 이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구청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만 보이면 공무원들을 말한다. "이 자식 이거 군대를 보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근면함은 무사유의 다른 표현이다. 군대는 무사유 속에서 근면함을 형성시키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악인이 될 수 있는 무사유의 일상성.

 

 

어쨌든 이 책은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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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에 대한 내 코멘트

구르는돌님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꼭 사서 봐야할 이유.] 에 관련된 글.

 

 

 

 

현재 알라딘에서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기념으로 "삼성,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는 이름으로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삼성의 공과를 당신에게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생각을 간단한 댓글로 올리면 되는 이벤트인데, 아래는 거기에 내가 쓴 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예전에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TV에서 김용철 변호사 관련 뉴스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보시던 식당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저 놈 아주 나쁜 놈이야, 괜히 삼성 배신해 가지고 주가나 떨어뜨리고..." 그런데 이번에 나온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이 아주머니의 말씀이 정치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떠나 기본적인 사실관계의 측면에서도 완전히 틀린 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그의 양심고백이 있은 후 오히려 삼성의 주가는 더 올랐다고 한다.

물론 이 아주머니에게 사실관계의 정확성을 따져보고 말하라고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주머니는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를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삼성은 누구로부터도 상처받아서는 안될 말 그대로 '물신'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이 상황에서 물어야 할 것은 김용철 변호사의 발언으로 우리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감성의 주된 영역이 왜 우리사회의 '무너진 도덕성'이 아니라 '떨어지는 주가'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것이다. 시장에서 팔려나갈 우리의 가격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양심, 가치, 도덕, 윤리 쯤이야 시궁창에 처박아도 된다는 우리의 '상식'(Common Sense).

굳이 삼성의 '공'(功)을 말하자면 바로 이 점, 우리 모두에게 도덕과 양심, 그리고 윤리적 관계의 시체 위에 삼성제 가전제품이 딸린 아파트 한 채씩 쥐어주고 '여전히' 식민지적인 착취의 성과물들을 포식(飽食)할 권리를 분양해 줬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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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균,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

 

 

요새 한창 박영균의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와 이진경의 <역사의 공간>을 읽고 있다. 또한 웹서핑 차원에서 이러저런 블로그에 들어가는데 그 중에 문화평론가 이택광의 블로그도 있다. 의도적으로 이들을 비교해 봐야겠단 생각은 없었지만, 독서의 와중에서보니 이들의 차이점과 교집합이 조금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일단 그 첫번째로 박영균의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감문.

 

 

*       *       *

 

지금 읽고 있는 <맑스, 탈현대적 지평을 걷다>는 08년 말쯤에 산 책인데, 50페이지쯤 읽다 포기해 버렸었는데 그 새 내 머리가 좀 컸는지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도 되면서 그럭저럭 읽고 있다. <진보평론>등에서 그의 논문을 몇 번 보긴 했는데, 이 책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는지 제대로 읽은 적은 없다. 앞으론 별 두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맑스주의 '정통'의 붕괴라는 이론적 조건에서 마주하게 되는 '탈현대적 맑스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 및 수용하면서 맑스 사상 속에서 이러저런 방식으로 왜곡되어 왔던 변증법과 유물론을 저자 나름대로 복권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실 저자는 좌파 이론 진영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Orthodox한 맑스주의를 고수하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포지션의 사람들은 스피노자, 니체 등으로부터 연유하는 탈현대적 맑스주의 비판을 그간 적지 않게 해 왔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이 책은 참 식상한 면이 있다. (박영균의 주장과는 많은 편차가 있긴 하지만) 나름 Orthodox한 맑스주의를 고집한다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자면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좀 짜증나는 구석도 있었다. 예전에 한 선배가 이들을 두고 농담조로 던진 한 마디가 생각난다. "걔네들은 메이데이날 공장가서 기도나 올리라 그래라."

 

그러나 적어도 박영균은 이런 비판을 들어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는 서론에서 "오늘날 많지 않은, 그렇지만 탁월한 탈현대적인 맑스 철학의 모색이 몇몇 논자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최종적으로 결여하고 잇는 것은 맑스 철학의 근본적인 지반이다. 그것은 맑스 철학의 정체성이 아니라 탈현대적 기획과 흐름들에 정세적으로 묶여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런 경우, 맑스는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러 시체들의 얼굴들을 짜깁기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지적인 공포를 유발한다. 맑스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모를 지적인 공포가 방향을 잃은 담론들의 난무와 지적 진지함에 대한 의욕 상실을 낳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맑스 철학의 '근본'을 옹호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이러한 옹호는 맑스주의자로서의 원칙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보여진다. 한편 그는 탈현대적 맑스주의 근저에 있는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 편한대로 넘겨짚지 않고 꼼꼼하게 따져보고 평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알튀세르의 '철학의 실천'과 그람시의 '실천의 철학'이라는 철학의 두 계기와 스피노자의 유물론과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이라는 두 계기를 설명하는데, 난 이 부분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힘겹게 읽으며 참 공부 제대로 했다. -_-;; 사실 Orthodox한 맑스주의자들의 글에서 이렇게 성실하게 탈현대적 흐름을 분석한 경우는 처음 본다. 그래서 이 책에 좀 고마웠다.

 

그는 끊임없이 맑스와 알튀세르, 맑스와 그람시, 맑스와 스피노자, 맑스와 들뢰즈를 대면시키고 대질심문한다. 그래서 그가 도출한 결론 중에 눈에 띄는 것은 "포스트적 담론들의 과학 비판과 해체는 윤리학적 문제설정이나 윤리적인 실천을 넘어서지 못하고 적대적 실천의 장으로 집중되는 정치를 해체하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212p)는 지적이었다. 이 점은 나도 얼마간 고민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요즘 이러저런 문화평론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공허감 같은 것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아래 문장에서는 그가 세운 '원칙'이 잘 드러난다.

 

이제, 던져야 할 질문은 포스트적 담론에서 이야기하듯이 '어떻게 사람들은 파시즘을 자신의 욕망으로 생산하는가'가 아니라 '그렇게 표상하고 욕망을 그런 식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었던 물질적 토대가 무엇인가'이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그 토대의 효과가 어떻게 사람들의 욕망을 채취하고 굴절시키며 지배 권력으로 절합시키는가'를 찾아야 한다. (233p)

 

그러나 이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그러므로 우리가 근본 변혁적 실천을 모색한다면 그것은 이 토대 중심성과 그 중심성에 의해서 제시되는 현 지배체제의 외부를 극한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적대성을 내재하고 있는, 그리하여 자본의 외부를 생성하는 운동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계급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그가 세운 원칙의 타당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토대중심성에 대한 철학적 의문?) 특히 다음의 문장을 읽고 난 이후로 난 갑자기 이 책의 결론이 예상이 되면서 급 실망 모드로 돌아섰다.

 

우리는 부-자, 부-부의 관계맺음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자의 관계맺음 없이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관계맺음의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자, 부-부 관계 또한 이런 본질적인 강제력에 의해 그 차이 또한 변형된다. 차이는 적대의 질서를 따라 절합되고 구획된다. 내가 아무리 선한 아버지라도 아들을 대하는 방식은 자본주의와 봉건제에서 다르다. 부-자 관계에 의해 노/자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자 관계에 의해 부-자 관계는 변형된다. (222p)

 

이런 (내가 보기에는) 황당한 결론을 내기 위해 400페이지 넘는 책을 썼단 말인가? 과연 우리는 부-자, 부-부 관계 없이 살 수 있는가? 난 저자의 결론을 반박하기 위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쓰진 않겠다. 이런 결론을 내기 위해 400페이지를 달려나간 저자에겐 이를 반박하기 위한 실증적, 논리적 반박 모두 무의미하게 들릴것만 같다. 왜냐면 사실 그 자신도 노/자 관계가 왜 우선인지 '증거'를 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탈현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차이의 존재론'과는 다른 맑스의 '모순의 변증법'과 '역사 유물론'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차이의 존재론은 차이 그 자체로 모든 운동을 '생성'으로 일반화하지만 모순은 그렇지 않다. 생성운동은 '구별'이 아니라 '대립'에 있다. 대립을 통해서 포착되는 '모순'은 운동이 하나의 강제적인 힘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성, 존재의 가능성을 제시한다."(223p)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이 말 어디에도 그 모순의 중심이 노/자 관계라고 나와 있지 않다.

 

게다가 "맑스가 자본주의에서 해방 주체를 찾고 그 존재를 노동자계급으로 설정한 것은 진정한 운동운 불가피하게 강제되었을 때에만 성립된다고 보기 때문"이라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는 수동적/소극적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 아닐까? '불가피하게 강제'되었을 때에만 성립하는 운동을 과연 진정한 운동이라 할 수 있을까? 그의 이론적 논의 속에는 대중의 자율적 의식화의 가능성, '불가피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운동으로 조직화시킬 가능성에 대해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책의 평론가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읽었기 때문에 저자가 제기한 쟁점에 대해 가타부타 따지고 들어갈 여유 또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왜 그는 모순의 담지자를 존재론적으로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고, 그 관계를 체현한 존재라면 오히려 그 존재를 존재 가능성을 변화시키는 관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순의 중심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중심되는 모순이 어떤 것인지는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도 변화 가능한 것이고, 모순의 과잉 또는 과소 결정되는 지점의 변화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차별화는 노/자의 계열화 속으로 절합되며 이주노동자는 노/자의 계열화 안에서 이중적인 차별화로 강제되며 특이성 자체를 변형한다"(232p)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하간 이 책은 나름 '학습의 기쁨'과 함께 실망도 함께 준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이 현 시점에서 Orthodox한 좌파가 보여줄 수 있는 발전된 논의의 최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고마움과 씁쓸함을 함께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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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에 대한 코멘트 한 가지 더.

구르는돌님의 [이계삼 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에 관련된 글.

 

 

교사들은 대개 모범생입니다.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임용고사 제도가 생긴 이후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지만, 교사들은 다채로운 인생체험이 없고, 임용을 위해 몇년간 애써 터득한 기술 말고는 별로 가진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사들의 신분에 대한 자긍심 -- 안도감이라 해야겠지만 -- 은 걱정스러울 만큼 높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른바 요즘 아이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난해한 존재입니까. 그래서일까요, 교무실에서는 교사의 지도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을 탓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동병상련의 정들을 나누는가 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사는 스스로가 이미 학교 교육이라는 폭력의 일부임을, 자신의 내면에도 폭력의 상처가 아로새겨져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바탕에서 아이들과 세상을 응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중.고교시절에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 '범생'이었지만, 대학 시절 4년 내내 열등생으로, 방황하는 영혼으로 살 수 있었음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임용고사에 탈락하여 패배자의 자리에 서 본 기억에 가까운 이들의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을 이미 겪었거나, 지금 겪고 잇는 아이들의 아픔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50p

 

나는 어차피 교사도 아니고 앞으로 교사가 될 사람도 아니기에 위의 글이 나와는 하등 상관 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슨 글을 읽든지간에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습관 때문에 그저 이게 남 얘기 같지는 않다. 이걸 보고 있자니 괜히 내 학생운동 경험이 생각났다.

 

사실 나 때도 그렇고 지금 학생운동이란 걸 하고 있는 이들은 (교사가 그런 것처럼) 대개가 다 모범생이다. 옛날에는 전문대에서도 학생운동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그나마 가끔 언론에 오르내리는 학생운동 집단들은 서울의 몇 개 '명문' 대학에 근거를 둔다. 간혹 지방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한다는 국립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좀 억지스럽게 해석해 보자면 지금의 학생운동은 고딩시절 선생님 말 가장 잘 들었었고 사교육도 받을만큼 받은 얘들이 자신이 받은 혜택을 부정하겠다고 나서는 행동이다.

 

그래서일까? 그런 모범생들이 모여 하는 운동이라는게 강의석처럼 튀는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작정하고 투쟁적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마음맞는 얘들끼리 모여 쿵짝쿵짝 세미나 몇 번 하다가 끝나기 십상이다. 실제로 나는 내 자신이 그런 식의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그런 경험을 '운동'의 경험으로 기억(또는 추억)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한번도 상처받아 본 적 없을 것처럼 한없이 밝기만 한 후배들을 대하는게 힘들었다. 나는 여태 한번도 내돈 주고 사 신어본적 없는 10만원이 넘는 신발을 예사로 생각하는(가끔 그런 신발을 모으는게 취미라는 얘도 있었다) 얘들도 있었는데, 그런 얘들은 우리의 운동을 이러저러한 소비활동의 하나 쯤으로 생각했던 것만 같다. 그런 아이들과 노동자 농민 철거민의 아픔과 고통에 연대하자고 말하는건 어쩌면 아이티 지진참사에 봉사활동 가자고 말하는 것 정도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얘들 데리고 다니려면 가장 만만한게 그저 세미나 였다. 그러나 세미나에만 몰두하는 것만큼 자폐적인 짓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일에 몇명을 동원했는지로 내 활동을 자족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무슨 영업사원도 아니고....

 

학생운동이 '모범생운동'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즈음에 활동을 빈곤아동 공부방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던 무리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의 활동을 너무 평가절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와 나를 규정했던 집단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말을 걸 수 있도록 시선을 외부로 향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외부가 나의 경계를 뚫고 들어오도록 문을 열었어야 했다. 한때 내 주변에 진보적인 운동을 함께 했던 이들이 대학원 진학을 많이 하는 걸 보는데, 이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무슨 공부를 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얼마간 우리는 '모범생'이라는 정체성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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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삼 저,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곧 있으면 신참 교사가 될 석돌이에게 줄 선물로 산 책인데, 선물 주는 사람이 먼저 읽어보고 소감을 말하면서 건내주는게 예의일 것 같아서 어제 밤 1부만 읽어봤다. 2부의 분량이 더 많기에 서평이랍시고 벌써 몇 마디 떠드는게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1부 내용만으로도 뭔가 저자의 말에 대답하고 싶어지는게 생겨버렸다.

 

일단 내가 다닌 고등학교 얘기 몇 개부터 하고 시작해야 겠다. 그 학교는 대전 최고 명문 고교였다가 90년대 후반부터 대전 서구, 유성구에 신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쇠락한 학교이다. 특히나 학교 선생님 중에는 동문들도 꽤 있었는데, 자신들의 잘 나가던 옛날을 생각하면서 찌질하게만 보이는 자신의 제자들을 구박하길 밥먹듯 했다.

 

그런데 어느날 영어선생이란 놈이 수업시간에 이런 소리를 한다. 자기 반 학생 부모들 중에 대학 졸업한 사람이 2명 밖에 안된다고... 그러니 얘들 수준이 그 모양 아니냐... 저 서구에 XX고, ○○고에 가면 대졸 이상이 한 반에 2/3 이상이다. 내가 이딴 똥통학교에서 얘들을 가르치다니... 어쩌구 저쩌구..

 

얘들 앞에다두고 이런 저질스러운 소리나 해대는 인간을 선생으로 두고 살았던게 우리네 고딩시절이었다. 내가 보통 악몽을 꾸면 그 중 열에 아홉은 고등학교 시절이 배경이다. 모의고사를 보고서 내 라이벌이 나보다 점수가 더 잘 나올까봐 걱정하고 있다던지.... 그런 꿈 꾸고나면 아침부터 기분이 더럽다. 실제 내 고3시절은 그게 병적인 수준이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자살하지 않은게 다행이란 생각도 '아주 가끔' 한다. ㅋㅋㅋㅋ

 

내가 학창시절에 전교조에 대한 얘기를 들은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앞의 영어선생과 다른 사람이다)이 했던 소리가 전부다. 그 양반은 한때 전교조 조합원이었는데 탈퇴를 하고 수업시간에 전교조의 '전'자도 못들어 본 얘들한테 전교조 욕을 했다. 전교조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가야 하는 얘들 망치는 집단이라고...

 

그 선생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또 있다. 체력장을 했던 날이었는데, 그 다음시간이 영어였다. 체력장에서 검사해야 할 항목이 워낙 많기 때문에 체육선생님은 기록을 적는 일을 대충 몇명 아이들 뽑아서 시켰다. (구체적으로 어느 대학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장 점수를 입시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기록을 조작하려 했다. 그런데 이 영어선생이란 작자는 대놓고 좋은대학 가고 싶으면 그런 것 쯤은 좀 올려서 적으라고 당당히 말하는 거였다. 내가 맨 앞자리에 앉아서 그건 나쁜일 아니냐고 했더니, 대학가는게 중요하지 그런게 대수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좋다. 이런 나에게 이계삼 선생님의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은 내 고교시절을 더욱 서럽게 느끼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 줄 수 있는 '전교조 선생님' 한 분만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내가 1학년 말에 문/이과 선택할 때 이과 선택했다가 문과로 바꾸겠다고 했을 때, 그 때 내 담임이 했던 "문과 가봤자 취직할데도 없으니까 이과로 가 임마!"같은 말은 듣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모의고사를 보기 전 날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막힐 듯 해서 잠도 못 자고 날밤을 샜을 때, 내 얘기를 한 마디라도 더 들어주려 하는 사람 덕분에 난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을 텐데... 그 때 내 얘기를 들어준 것은 상담실에 배치되어 있던 대학원생 학교사회복지사 뿐이었다. 아래 구절을 읽으면서 그 기억이 아프게 떠올랐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관련하여 엄청난 오해와 왜곡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제 교육의 장(場)은 변인들을 조작하여 프로그래밍화한, 이를테면 파블로프가 개를 가두어놓은 실험상자 같은 것이 되었다. 골방에서 친구들과 나누었던 어설픈 인생상담은 점점 비일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교육받은 전문 상담사가 직접 학교를 방문하여 진행하는 상담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대체해가고 있다. 체험학습 -- 체험도 학습하는 것인가 -- 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전문 지도자가 아이들의 체험을 안내하고 조직화한다. 그리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전문적인 '평생교육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공적 영역이건 사적 영역이건, 수없이 교육기관을 전전하며 끝없이 무언가를 배운다.

- 27~8pp

 

내가 학교 상담실을 찾아가서 딱 두번째 만남이 있었을 때, 그 사회복지사는 내게 홀랜드 진로심리검사 용지를 들이밀었다. 내가 미래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긴 했지만, 내가 불안해 했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 때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그 사회복지사 뿐이어서 고맙게 생각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난 결국 학교 상담프로그램의 개입 과정에 따라 변화될 '종속변수'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             *             *

 

 

내 고딩때 얘기는 대충 끊고,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과 이에 대한 간단한 생각들을 정리한다.

 

1부 글 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좋은 언어'와 관용의 정신>이었다. 제목은 약간 고리타분한 냄새가 나긴 하지만, 이 글은 논술교육에 관한 글이다.

 

한가지 인상 깊었던 체험은 첨삭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할 무렵에 겪은 일이다. 그때 논제가 대략 '현대문명의 위기에 대한 생태론적인 대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손에 들어온 첫 답안지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 학생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심층샌태주의로 규정하고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론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었는데, 한창 입시준비에 몰두하고 잇을 수험생이 어떻게 머레이 북친과 그 당시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호지 여사의 책을 읽었을까, 놀라웠던 것이다. 그러나 한장두장 첨삭을 계속하다가 그 감동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어버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북친과 호지의 입장을 논거로 주장을 전개하고 있어기 때문이다. 그 학원의 논술강사가 모의고사를 앞두고 수업해준 내용을 천편일률적으로 옮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더 읽다 보니 생태론의 기본적인 가정, 즉 현대사회의 지속불가능성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이나 이해도 없이 SF영화 같은 감각으로 황당한 가설을 늘어놓는 답도 적지 않았다. 나중에는 몹시 짜증이 났고, 이런 답안을 작성한 학생들의 지적 수준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첨삭을 마치고 답안지를 들고 그 학원 논술실로 가서 답안지를 작성한 학생들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이들은 그학원의 지역 분점인 강남 D학원생들로, 우리나라에서 서울대 진학률이 제일 높은 집단이며, 대부분이 이른바 SKY대학 이상으로 진학한다는 거였다. 상당히 놀라웠다. 돌이켜보면 이미 그때 논술교육의 본질을 아아챌 수 있었음에도 나는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했다.

- 55~6pp

 

 

논술고사의 파행은 극히 단순한 사실에서 연유한다. 논술고사의 도입 자체가 극히 반교육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기 대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수능시험이 도입된 이후 지난 10여년 동안 내신-수능-대학별 고사가 대입제도의 근간이 되었다. 내신과 수능의 오랜 갈등, 사교육의 팽창과 공교육의 위축, 수능의 난이도 논란, 내신의 변별력 논란 속에서 상위권 대학은 대체로 수능과 내신을 기본 요건으로 하면서 논술 및 면접 고사로 변별력을 찾게 되었다. 이 속에서 손 안대고코 풀련느 격으로 다양한 학생선발 방식을 개발하지 않고 우수한 학생을 손 쉽게 독점하려는 대학의 욕심이 깔여 있고,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을 독점한 상류층과 어떻게든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보려는 차상위계층간의 쟁투와 상호타협이 깔려있다. 요컨대 논술고사는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싼 제 요소, 제 세력들 간의 혈전의 역사가 잉태한 기괴한 사생아이다. 논술고사는 오직 상위 30퍼센트 이내 학생들을 줄세우기 위해(변별력을 얻기 위해) 도입된,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상위 30퍼센트 '인적 자원'의 등급을 감별해내기 위한 기제일 뿐이다.

아무리 대학 입학고사라 하지만, 논술은 중등교육에서 이루어지며 중등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논술이 중등교육으로 담아낼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담보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변별력' 획득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한국 교육의 현실이 이렇다. 내신에서 수능으로, 수능에서 내신으로, 이제는 논술로, 아이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점령해야 할 각개전투의 고지는 계속 늘어난다. 이제 또 무슨 고지가 새로 솟아오를 것인가.

- 62p

  

그러나 진짜 주목해 봐야할 부분은 다음에 있다.

 

인터넷으로 논술강좌를 들은 한 아이와 대화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강사 선생님이, 토론도 그렇고 논술도 그렇고, 중간 지대는 없고 오직 찬/반 두개밖에 없으니깐, 자신의 속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일단 어느 한 입장을 정해서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 공격해야 하는 거라고, 어떤 주장에 대해 상대방이 '왜'라고 물었을 때 스스로 답변을 갖춰 놓지 못하면 결국 지고 마는 거라고..." 그 아이는 논술과 토론이 몹시 두렵고 공포마저 느껴지는데, 아마도 강사 선생님이 자꾸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 64p

 

위와 비슷한 경우가 내게도 있다. 예전에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올린적이 있는데, 바로 100분토론과 관련해서다. 08년 말 미네르바가 체포되고 100분토론에서 이를 다룬 것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을 지나가던 다른 공익 얘가 뭐보냐고 묻길래 100분토론 본다고 말해줬다. 그러더니 그 놈이 하는 말. "누가 이겼어요?" 나는 좀 당황하긴 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야, 토론에 이기고 지는게 어딨어? 다 서로 다른 의견 주고받는 건데..."  그러나 그 놈은 또 말한다. "에이,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 놈한테 토론이라는 것은 어떤 합의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대화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스포츠였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의 내용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현란한 말빨과 공격적이고 선정적인 언사로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리고 청중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100분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은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우리사회에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낸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런 부정적인 면을 바탕으로 밥그릇 챙긴 대표적인 인물이 진중권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

 

우리는 이렇게 대화와 토론 조차도 당장의 승자와 패자를 가름해야만 하는 아주 고약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             *             *

 

 

아래도 그냥 인상깊었던 구절.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알 수 없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으며, 생과 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의 바깥을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계'를 살면서 '저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한 개체에게 죽음이란 말하자면, '있음'이 어느 순간 '없음'으로 화(化)하는 것일진대, '저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 없이 이 기막한 변화를 우리가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생에 집착하고 생을 사랑할 수록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나 또한 저렇게 죽어갈 것이라는 공포가, 함께 자라난다. 결국 이것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 -- 신앙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인간은 지난 수천년간, 종교(宗敎) --으뜸가는 가르침 -- 라는 이름으로 이 신앙의 체계를 일구어왔다. 이것은 생과 사의 신비에 맞닥뜨린, 인간 존재의 가장 치열한 정신활동의 결과물이다. 놀랍게도 세상 모든 종교들은 하나같이 '저 세계'는 '이 세계'의 앞뒤에 잇닿아 있지 않다고 가르쳤다. '저 세계'는 바로 '지금, 여기'에 '이미' 와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생산과 노동, 이 모든 억조창생들과의 관계맺음이 결국 '저 세계의 전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열쇠는, 영원한 삶은 바로 이 현재의 삶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자기가 바로 빵이자 포도주인, 육화된 진리라고 가르쳤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항상 더불어 빵을 떼었고, 그곳이 곧 하늘나라임을 선포했다. 공자는 가장 그리운 모습을 '불빛 아래 둘러앉아 같이 밥을먹는, 대동(大同)의 사회'로 표현했다. 해월 선생은 사람이 하늘이고, 밥이 하늘이므로 사람은 곧 밥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그는 밥 한그릇에 세상의 이치가 다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빵과 밥이 부족했던, 이른바 낮은 생산력의 징표가 아니라, 인간의 숙명임을 우리는 믿고 있는 것일까?

만약 이 진리에 고개 끄덕인다면, 이제 이런 질문들이 생겨난다. 밥을 위한 노동, 밥을 위한 희생, 밥의 나눔, 거기에 깃드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 우정과 사랑, 이것 외에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만약, 사람이 밥을 위해 살지 않고 휴대폰과 컴퓨터와 자동차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어떤 세상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발전된 세상'이라고 굳게 믿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 70-1pp

 

 

이거 다음 다음 페이지에 어떤 아이가 일기처럼 쓴 글이 인용되어 실려있었는데 대충 내용이 이렇다. 산골마을에 사는 일근이라는 아이가 옆 동네 놀러갔다가 그 동네 춘근이라는 아이랑 싸웠는데 춘근이가 먼저 "야이 씨발놈, 개새끼야, 좆만새끼, 호로자석..." 뭐 이런 욕을 했댄다. 그런데 여기에 대꾸하는 일근이의 욕이라는 것이 고작(??) "야이 참나무야, 대나무야, 밤나무야, 옻나무야..." 이었단다. 이걸 보자니 또 생각난게 있었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공익 얘랑 짱게를 먹으러 갔다가 맘에 안다는 공무원 흉을 같이 보고 있었는데, 그 놈이 갑자기 욕이랍시고 한다는 소리가 "다들 대가리에 뻐큐를 처박아야 돼"였다. 나는 한편으론 처음들어보는 이 프리스타일 욕에 감탄하고, 그 아이의 뛰어난 '창조력'(??)에 감탄하고야 말았다. 그 아이의 눈에 일근이 같은 얘가 눈에 띄었다면 그저 밥맛없는 꺼벙이 쯤으로 여겨졌을까? 에휴~~~

 

 

 

 

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발췌 추가)

 


"(...) 여하튼 '디워' 논란이 상당히 재미있는 소재임은 분명해 보였다. '논객'이라는 신종 검투사들과 '네티즌'이라는 관객들이 펼치는 말들의 전투, 혹은 말들의 향연, 말들의 소용돌이, 의미없는 증오와 분란, 행동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동의와 깨달음, 나는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268p)

 

"지난 2007년 3월, 택시노동자였던 허세욱 선생이 분신하고서 며칠 뒤 운명했던 날, 내가 사는 지역에서 언제나 해오던 한미FTA 반대 선전전에서 그분이 환히 웃고 있는 영정을 들고 거리에 서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 그러나 그런 애틋한 감상은 서둘러 접어야 했다. 이 자리는 절박한 현장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열명도 되지 않는 우리 대오를 바라보았다. 그날, 허세욱 선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절대 다수의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았고, 대신 인터넷을 켰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고, 대신 방구석에서 인터넷을 하기 때문이다." (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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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한 마디로, 열등감 팍팍 느껴지게 하는 책이다.

저자 한윤형은 기껏해야 나보다 학교를 2년 일찍 들어갔고,

나이는 83년 생으로 겨우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것 뿐인데 (아마 빠른 83인 듯...)

그가 이 책에서 펼쳐보이는 지적세계는 나와 적어도 10년 이상 차이 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기왕에 고등학교때부터 조선일보-서울대 주최 논술대회에서 대상을 먹을 정도로

글빨 날리시던 분이기에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당췌 용납이 안되는 수준이다.

책에 나온 참고문헌 제목만 보고 판단하건데

그는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5권 모두를 독파한 것은 물론

서중석, 윤해동, 한홍구, 박노자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수많은 연구성과를 섭렵하고,

또 뉴라이트들의 관점을 담은 온갖 출판물들을 쥐잡듯이 파헤치며 읽어온 듯 하다.

 

이 책의 부제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가 보여주듯이

이 책은 전문-학술적인 연구서라기 보다는 역사학자, 정치인, 언론 등에서 제기된

온갖 자료들을 탈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새롭게 직조해 내어 뉴라이트와 민족주의적 개혁진영

모두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게 당췌 보통 내공을 가지고는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사실 그가 참고한 책들이 고매한 학자분들 처럼 어려운 학술논문이나

해외 문헌들은 거의 없고, 기왕에 알려진 대중 역사서적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사실 누구라도 이 책들을 좀 읽어봤다면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져봤을 법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져봤을 법 한 거랑, 실제로 그걸 글로 재구성할 능력이 있는 거랑은

다른 거다. 그런 면에서 이 양반은 사람 기가 눌려 버리게 하는 데가 있다.

제기랄....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뉴라이트-민족주의자와 논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한 입장은 예전에 장석준씨가 주대환의 '대한민국 긍정론'에 대해

반박하면서 쓴 '진보좌파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라는 글과

김상봉 교수가 경향신문에서 박명림 교수와의 서면 대화를 통해 밝힌 공화국 논의의 필요성과

여러 모로 접속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들의 논의를 잘 버무리면

진보좌파에게 어울리는 '대한민국론'을 정초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주대환에 대한 입장에서 장석준과 한윤형이 조금 갈리는 것 같긴 하지만... 뭐 둘 다 동의할 만한 입장이긴 한데, 내 생각으론 주대환이 뜬금없이 뉴라이트 편을 들면서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의도가 과히 불순하여 얼마간 장석준의 입장이 더 옳은 것 같기는 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들러의 개인심리이론에 기초하여

'열등감과 보상'을 통해 지적 성장을 이루고자 하시는 20대 여러분은

꼭 이 책을 읽기를  강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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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나는 두 눈을 내게 고정시킨 채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으며,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서 수영장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마다 나는 자꾸만 내가 그녀를 배반하였으며 그녀에게 죄를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그런 느낌에 대해서 분연히 저항하면서 그녀를 비난하고 또 자신의 죄에서 빠져나오는 그녀의 방식을 너무 천박하고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죽은 자들에게만 해명을 요구할 권리를 주고, 죄와 보상을 불면증과 악몽에다 국한시킨다면, 살아 있는 자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러나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나 여기 그녀에게 해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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